심해저 광물자원, 해양신물질 등이 실제 우리 생활에 요긴하게 쓰이는 해양자원이라면, 그 자체가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를 지니는 자원도 있다. 바로 바다 깊은 곳에 잠들어있는 ‘해저유물’이다. 해저유물은 바닷속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또 다른 해양자원이다. 서해 바다에서 주로 발견되는 해저유물은 수백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며 역사 속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충남 태안 마도 앞 바닷속 유물 발굴현장을 찾아 재미난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았다.
1, 2, 3. 출수유물은 탈염·세척·건조·강화·복원 단계를 거친다. 출토된 유물이 이 같은 보존처리과정을 거쳐 일반 사람들에게 보여지기까지는 보통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잠수사가 이날 발굴한 도자기 파편을 정리하고 있다(왼쪽). 마도 2호선 선체 조각이 탈염 과정을 거치고 있다(가운데). 김효윤 수중발굴과 보존처리담당 학예연구사가 도자기 파편으로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오른쪽).
1, 2, 3. 출수유물은 탈염·세척·건조·강화·복원 단계를 거친다. 출토된 유물이 이 같은 보존처리과정을 거쳐 일반 사람들에게 보여지기까지는 보통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잠수사가 이날 발굴한 도자기 파편을 정리하고 있다(왼쪽). 마도 2호선 선체 조각이 탈염 과정을 거치고 있다(가운데). 김효윤 수중발굴과 보존처리담당 학예연구사가 도자기 파편으로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오른쪽).
지난 7월8일 충청남도 태안군 마도 앞바다를 찾았다. 이글이글 타고 있는 태양 아래 서해 바다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 한가운데 수중유물 발굴작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누리안 호가 있었다. 구명보트를 타고 해안가로 기자를 태우러 온 현장 책임자를 따라 누리안 호로 향했다. 이곳에서의 발굴작업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단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현재 국내에서 허가를 받아 수중문화재를 발굴하는 곳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유일하다.

서해 연안 항로의 길목에 위치한 태안은 과거부터 수많은 배들의 이동로였다. 지난 2007년 고려청자 2만5000점이 실린 태안선이 침몰한 지 약 80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도 태안 바다에서다. 청자를 뒤집어 쓴 주꾸미가 이 지역 어민의 소라 통발에 잡히면서 발굴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누리안 호에 도착하자 점심식사를 마친 잠수사들이 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보통 오전에 한 차례, 오후에 두 차례 발굴작업을 진행한다. 2인1조가 교대로 투입되는데 입수 후 잠수 지속 시간은 90분으로 잠수사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홍광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 마도발굴조사 책임연구원은 “특수부대를 제대한 분이나 산업 잠수사로 10년 이상 활동한 분들이 오랫동안 발굴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잠수사들은 이번 세월호 참사 구조 작업에 파견되기도 했다.

한 잠수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스리랑카에서 수중문화재 발굴 기술 교류를 위해 한국을 찾은 다이아난다(Dayananda)였다. 다이아난다는 스리랑카 해양고고연구소 수중고고학자로, 현재 수중유물 발굴 기술 교류를 위해 지난 7월4일부터 이곳에서 훈련받고 있다. 다이아난다는 “이곳에서 풀페이스마스크(full face mask·얼굴 전체를 덮는 잠수마스크), 다이빙 장비 등 새로운 기술을 많이 경험했다. 스리랑카의 발굴작업에도 이런 기술을 적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잠수 준비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잠수복을 입고 특수 장비가 장착된 헬멧을 썼다. 잠수사의 생명줄 역할을 하는 수면공기공급장치를 점검하는 일도 필수다. 헬멧에는 탁한 바닷속을 비춰주는 조명과 작업 과정을 촬영하는 장비가 장착됐고, 풀페이스마스크에는 잠수 통제실과 교신할 수 있는 통신 장비가 갖춰졌다.

“다이아, 아 유 오케이?(Are you Okay?)”

이곳에 온 지 4일 된 다이아(다이아난다를 부르는 ‘애칭’이다)와 잠수사들은 제법 서로 친해진 듯했다. 생소한 장비에 적응 훈련 중인 다이아를 세심하게 챙겼다. 힘들면 바로 신호를 보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누리안 호와 연결된 줄을 따라 잠수사들이 바닷속의 작업 장소로 서서히 하강했다.

“이제부터는 2층 잠수 통제실에서 보시죠.”

홍 연구원을 따라 잠수 통제실로 들어서자, CCTV를 통해 물속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입수한 잠수사들이 작업이 예정된 그리드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드란 수중발굴 시 잠수사가 작업할 공간을 미리 표시해 놓은 것으로, 잠수사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예상대로 서해 바닷속은 혼탁했다. 잠수사들은 조심스럽게 제토 작업을 시작했다. 제토 작업은 펌프를 이용해 유물을 덮고 있는 펄을 제거하는 것으로, 흡입력이 강한 펌프 입구에 손이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잠수사 고성수씨는 “펄을 빨아들인 뒤 손이나 탐침봉(쇠꼬챙이)으로 해저 지반을 찔러보면서 조심스럽게 유물을 찾는다”고 말했다. 잠수사들은 파편을 찾아 그물망에 담아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작은 파편의 경우 이런 방식으로 작업이 가능하지만 선체를 인양하는 작업은 더욱 어렵다.

홍 연구원은 “마도 2호선과 같이 대형 선체일 경우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선체를 분리해 인양한다. 공기주머니를 단 받침대를 내려 선체 조각을 실은 후 공기주머니에 공기를 주입해 위로 올려보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시대 선박은 나무못으로 연결돼 있어 선체 훼손을 막기 위해 연결 부위인 나무못을 잘라 인양한다. 마도 1·2호선은 고려시대 전라도에서 개경으로 곡물류를 운송하던 운반선으로, 각각 2009년, 2010년 마도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펄이 많은 서해 바다는 수중 시계(視界·시력이 미치는 범위)가 10㎝도 안 되는 날이 많다. 잠수사가 움직일 때마다 부유물(浮遊物)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작업도 수월하지 않다. 고되고 힘든 작업이지만 이들에게 수중발굴은 그 어떤 일보다도 매력적이다.

고씨는 “공기가 끊겨서 숨을 못 쉬거나, 어디에 걸려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유물이 발견되면 매순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8월 스리랑카와의 기술 교류 연수를 앞두고 현장교육을 나온 김서진 수중발굴과 보존처리담당 학예연구사는 “수백년이 지났는데도 청자 본연의 비취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려청자를 봤을 때의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며 “펄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훼손 없이 정말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감동을 전했다.

1. 육상과 달리 수중에서 발굴된 유물은 펄 속에 묻혀 있어 완형(完形)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2. 마도 2호선에서 발굴된 매병.
1. 육상과 달리 수중에서 발굴된 유물은 펄 속에 묻혀 있어 완형(完形)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2. 마도 2호선에서 발굴된 매병.
수백년동안 본연의 색 고스란히 간직한 고려청자들
역사 속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은 또 다른 묘미다. 발굴작업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고려시대 ‘매병(梅甁·맑고 아름다운 비색과 특유의 장식기법이 특징인 고려청자의 한 종류)’의 쓰임새를 새롭게 알게 됐다. 마도 2호선에서 발굴된 매병의 목간(木簡)을 통해서다. 목간에는 보내는 사람(지역), 받는 사람(지역), 화물 내용 등이 기록된다. 한 매병의 목간에는 ‘중방 도장교 오문부댁에 참기름 단지를 보낸다’는 내용이, 또 다른 매병의 목간에는 ‘중방 도장교 오문부댁에 꿀단지를 보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 오문부는 고려시대 무신 정권기 최고 권력기구였던 중방의 도장교(都將校·고려시대의 무관 보직)다. 홍 연구원은 “박물관에 정말 아름다운 매병이 전시돼 있어도 실상 과거 사람들이 뭘 담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목간을 통해 고려시대 사람들이 매병에 술만 담은 것이 아니라 꿀과 참기름을 담았다는 사실이 새롭게 알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도 1호선의 난파시기를 파악한 경위도 재미있다. 홍 연구원의 설명이다.

“‘무진년(戊辰年)’이라고 기록된 목간이 2개가 나왔는데 간지(干支)가 60년 만에 한번씩 돌기 때문에 1208년 아니면 1268년 중 하나인 상황이었죠. 배를 보면 고려시대 배인 것 같고, 도자기나 유물의 출수 양상을 보면 13세기 배 같은 거예요. 목간을 보니 ‘대장군 김순영 댁에 벼 1섬을 올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죠. 고려사를 보니 김순영이 1199년에 대장군으로 승격한 사람인 거예요. 그러면 1208년도 배라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대장군 김순영은 고려 무신 정권기 집권자였던 최충헌 수하의 인물로, 이 목간은 마도 앞바다에서 발굴된 선박과 유물의 절대연대를 밝히는 결정적 자료가 됐다.

홍 연구원은 “몇몇 분들은 좋은 고려청자와 같은 유물을 건져야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고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유물들에 숨겨져 있는 내용을 밝혀 역사 속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자료들이 재밌고 즐겁다”고 귀띔했다. 해저유물은 후세의 자손들에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안내하는 ‘바닷속 타임캡슐’인 셈이다.

가끔 수중문화재의 경제적 가치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홍 연구원은 이렇게 답변한다.

“문화재는 매매 자체가 법적 위반이기 때문에 실제 얼마의 가치를 갖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단순 계산을 해보자면, 2007년 태안선에서 발견된 3만점의 청자대접, 청자접시 등의 도자기들이 한 점당 100만원이라고 쳐도 300억원이죠. 실은 이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닐 겁니다. 고선박 발굴 이후로 유람선이 이곳을 지나며 사람들에게 방송으로 ‘고려청자를 실은 배가 있어 잠수사들이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게 됐습니다. 값진 문화유산들이 발견되는 곳이라는 점을 특화시켜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1976년 신안 방축리 신안선 발굴을 시작으로 38년 동안 총 12척의 고선박과 10만여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수중유물 발굴단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신고가 들어오는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광역 탐사를 진행 중이다. 발굴단이 새로 써나갈 역사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인다.

- 수중유물 발굴작업은 오전에 한 차례, 오후에 두 차례 진행된다. 수중유물 발굴 기술 교류를 위해 한국을 찾은 스리랑카 해양고고연구소 수중고고학자 다이아난다(왼쪽)와 잠수사 고성수(오른쪽)씨가 입수 전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 수중유물 발굴작업은 오전에 한 차례, 오후에 두 차례 진행된다. 수중유물 발굴 기술 교류를 위해 한국을 찾은 스리랑카 해양고고연구소 수중고고학자 다이아난다(왼쪽)와 잠수사 고성수(오른쪽)씨가 입수 전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