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에서 생산하는 차량의 핸들 커버에 쓰이는 가죽원단의 대부분은 국내 한 중소기업에서 만든다. 세계적인 브랜드의 명품 가방, 나이키·아디다스 등 유명 운동화 등에도 이 회사의 가죽원단이 사용된다.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이탈리아산 가죽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경기도 동두천시의 수문상사다.

수문상사는 현재 미국과 콜롬비아 등 남미 국가들과 인도네시아 등에 가죽원단을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30억원의 80%가량을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이 회사의 주경중 대표(60)는 “품질은 이탈리아산 가죽과 비슷하면서 가격이 저렴해 경쟁력이 있다”며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지만 주문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인근에 현 공장의 2배 규모인 제2공장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 주경중 대표가 자사에서 만든 가죽원단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주경중 대표가 자사에서 만든 가죽원단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기술 개발하다 위기에 빠져
주 대표가 가죽에 첫발을 디딘 것은 40년 전이다. 그는 “어머니가 조그마한 가죽 공장을 운영했는데, 20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영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1970~80년대에는 지금의 신촌과 서강대 인근에 신발이나 구두를 만드는 작은 공장들이 수두룩했죠. 이런 공장에 가죽을 납품했는데, 품질이 좋아서 잘 팔렸어요.”

1980년대 피혁산업은 수출 전선의 첨병이었다. 경기 호황과 수출 증가는 피혁업체의 대형화와 기술 개발로 이어졌고, 우리나라는 세계 3위의 피혁생산국으로 성장했다.

가죽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회사의 규모가 커지자 그는 가죽 공장의 경영을 맡게 됐다. 1999년에는 경기도 안양에서 동두천의 피혁특화산업단지로 공장을 이전했다. 현재 이 산업단지에는 수문상사를 포함해 19개의 피혁업체가 입주해 있다.

수문상사는 뛰어난 품질과 오랫동안 닦아 놓은 영업 네트워크 등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했다. 국내 피혁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졌던 IMF 외환위기 때도 이 회사는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주 대표에게도 큰 위기가 찾아왔다. 지금은 성장의 원동력이 된 ‘습식코팅 기술’ 개발에 나서던 2010년쯤이었다.

천연가죽을 가공해 자동차 핸들의 커버나 핸드백의 원재료인 가죽원단을 만들기 위해선 고가의 설비와 기술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많은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져 노동력이 집중 투입돼야 한다.

“가죽원단은 남는 게 없어요. 세계적인 불황에다 이대로 가다간 안 되겠다 싶었는데, 마침 원가절감에 나선 현대·기아차에서 핸들 커버에 쓰이는 가죽원단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때까진 값비싼 통가죽에 ‘습식 코팅’한 원단을 수입해야 했거든요. 습식 코팅된 가죽원단은 일반 가죽보다 2배 정도 비싸요. 그래서 과감하게 기술개발에 뛰어들었죠.”

습식 코팅은 거친 가죽의 겉면을 매끄럽게 만들고 투습·방수 기능이 탁월하며 다양한 색과 디자인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이다. 당시 국내에는 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습식 코팅 기술을 보유한 국내 피혁업체는 수문상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는 2개월 동안 중국 현지 업체를 벤치마킹하고, 전문 기술진도 영입했다. 그러나 기술개발은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습식 코팅 기술 개발에 도전했던 국내 피혁제조업체들이 중도에 포기할 정도로 까다로운 기술이었다. 그 역시 연구·개발에 돌입한지 1년이 지나도록 원하는 품질의 가죽을 만들지 못했다.

핸들 커버에 사용되는 가죽은 부드러우면서도 땀을 흡수해 안착감(安着感·손에 달라붙는 느낌)이 좋아야 하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튼튼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초기에 개발한 제품은 핸들 커버로 사용하기에는 강도가 너무 약했다. 반품되는 제품만 한 달에 4억~5억원어치에 달했다. 이런 상황이 수개월 동안 지속됐다.

버는 돈을 기술개발에 쏟아붓는 바람에 자금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회사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너무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경기북부실용화사업 덕분에 기사회생
이러한 주 대표에게 손을 내민 곳이 바로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이하 경기중기센터)였다. 경기중기센터는 섬유·가구·피혁 등의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1년 이내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을 선정해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하는 ‘경기북부실용화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기술개발을 위한 자금과 전문 기술 등을 지원받은 수문상사는 경기피혁연구센터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1년 만에 습식 코팅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3건의 관련 특허도 취득했다. 습식 코팅 가죽 원단은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명품 브랜드 가방을 만드는 업체 등에도 납품했다. 지난해 이 회사 매출은 전년 대비 30%가량 성장했다.

피혁제조는 거의 사양산업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여전히 성장산업이라는 것이 주 대표의 생각이다. 그동안 피혁산업은 ‘힘들고 작업환경이 깨끗하지 않은’ 이른바 ‘3D업종’으로 분류돼 홀대받아온 게 사실이다. 현재 수문상사는 5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올해 15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 대표는 해외 출장을 갈 땐 공항면세점에서 핸드백이나 구두 매장을 꼭 둘러본다. 그는 “명품 가방을 보면 ‘저건 내가 만든 가죽’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며 “그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