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개의 봉우리를 가졌다고 해 이름 붙여진 경남 거창의 아홉산 중턱. 멀리 거창읍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복분자, 블랙베리 등 베리류를 재배·생산하는 이수미 팜베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4만2900㎡(1만3000평) 농장에는 검붉은 복분자와 블랙베리가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초여름의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농장에서 땀방울을 훔치는 이수미 대표(45)는 에너지가 넘쳤다. “복분자는 6월 중순~하순 수확하는데 열매가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면 딸 수 있어요. 수확하는 게 힘든 줄 모르겠어요.”

이 대표는 복분자 등을 무농약으로 재배한다. 이 농장의 복분자는 청정한 덕유산 자락의 자연환경 속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하다보니 다른 지역의 복분자보다 간을 보호하고 피를 맑게 하는 정혈(淨血) 작용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지역 토양에는 게르마늄 성분이 많아 다른 지역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이한 맛과 향이 있고, 당도도 높다.

작지만 강한 농업 경영체, 이른바 강소농(强小農)인 이 농장의 지난해 순소득액은 1억여원. 이 대표는 “무농약으로 키우다보니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일손이 많이 들지만 효능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며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농업에 뛰어든 것은 1991년 12월. 서울 대형 의류업체에서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던 그는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두고 볼 수 없어 귀농을 결심했다. 이 대표가 처음 시작한 것은 양계였다. 닭을 길러 계란을 내다팔면 바로 현금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과 약간의 대출을 받아 6500마리의 닭을 키웠다.

- 박창구·이수미 내외가 농장에서 복분자를 수확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박창구·이수미 내외가 농장에서 복분자를 수확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20대 초반에 귀농
당시만 해도 여성이 농업에서 성공하긴 힘들다는 선입견이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시절이었다. 젊은 처녀가 얼마나 견디나 보자며 동네 주민들이 내기까지 걸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왕 내려온 거 성공하고 말겠다며 독한 마음을 먹었다.

이 대표는 밤낮없이 일했다. 처음에는 하룻밤 자고 나면 수백마리의 닭이 죽어나갔다. 새벽이 오는 것이 그렇게 두려울 수 없었다. 전염병이 번져 수천마리의 닭을 생매장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수의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닭의 표정이나 몸짓만 봐도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더 이상 죽어 나가는 닭은 없었다.

귀농한지 1년여쯤 지나 남편 박창구씨(53)도 만났다. 박씨는 “아내를 처음 봤을 때 눈이 부셨다”며 “무엇보다 농업에 대한 열정에 반해 바로 결혼했다”며 웃었다. 박씨는 결혼 후 1년가량 직장 생활을 계속하다가 양계업에 합류했다.

6500마리의 닭은 4만마리로 늘었다. 연간 매출은 7억~8억원에 달했다. 이 대표의 탁월한 시장 예측이 비결이었다. 계란값이 폭락해 다른 농가가 사육두수를 줄일 때 이 대표는 오히려 병아리를 대량으로 입식했다. 계란 가격이 다시 오를 때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표는 2005년 사육 규모를 10만마리로 늘릴 요량으로 지금의 농장터를 매입했다.

“처음엔 양계장을 지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양계로는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계란 유통업자에 끌려 다니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요. 이참에 생산자가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한번 바꿔보기로 했죠.”

부부가 선택한 품목은 복분자 등 베리류였다. 컬러푸드가 가진 효능이 알려지면서 항산화물질을 다량 함유한 베리류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때였다.

돌밭이었던 땅에 복분자 등을 심기 위해 부부는 꼬박 3년 동안 온갖 정성을 쏟았다. 중장비를 동원해 땅속에 박힌 돌덩이를 파냈고, 땅심을 높이기 위해 사료작물을 키워 갈아엎기를 반복했다.

전북 고창의 복분자 농가를 찾아 재배기술을 배우고, 거창군농업기술센터와 경남농업기술원에서 마케팅과 식품가공 등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

2008년 복분자와 블랙베리 묘목을 심고, 이듬해부터 수확을 할 수 있었다. 2010년에는 30t을 수확해 모두 직거래로 판매했다. 그러나 위기도 있었다. 2011년에는 냉해로 절반가량의 나무가 말라 죽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2012년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농장의 풀은 부부가 일일이 손으로 뽑는다. 복분자는 생열매 상태로 팔고, 블랙베리는 항아리에서 1년 동안 숙성시켜 진액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올 하반기에는 농장에 체험시설도 마련할 예정이다. 좋은 먹거리인 복분자와 블랙베리, 그리고 체험이 어우러진 베리관광농원을 만드는 게 이들 부부의 꿈이다. 부부가 입을 모았다. “농사? 물론 힘들죠. 하지만 뭐든지 쉬우면 재미없잖아요. 농사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힘든 것을 이겨내는 게 인생의 매력 아니겠어요.”


Mini  interview ● 최복경 경남농업기술원장
<

“2017년까지 1만 강소농 육성”
“중소 규모의 농가를 대상으로 맞춤형 기술·경영개선 지원을 통해 경영과 마케팅 능력을 겸비한 자립형 가족농을 육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경남 지역의 강소농 육성을 총괄지휘하고 있는 최복경 경남농업기술원장은 “2011년부터 올해까지 6733 농가가 강소농으로 육성된다”며 “2017년까지 1만 강소농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에서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609 농가가 강소농으로 육성됐다. 올해에도 1124 농가를 강소농으로 키우기 위해 민간지원단 12명을 확보, 현장교육과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시군 농업기술센터에서도 교육 단계별로 기본교육, 심화교육, 후속교육 등 역량향상교육과 컨설팅을 실시해 강소농 지원모델사업 20군데와 품목별 마케팅 강화시범사업 20곳을 운영하고 있다.

또 농촌진흥청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종합적인 현장 지원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최 원장은 “강소농 역량향상교육과 민간전문가의 활동을 강화하고, 강소농 자율모임체를 적극 육성하는 등 미래지향적인 강소농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품목별 모임체를 협동조합으로 결성해 농가 소득이 향상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