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의 팩커즈는 연포장가공 자동화기계 분야의 강소기업이다. 연포장가공 자동화기계는 컵라면 등의 용기 위에 은색 종이로 코팅된 뚜껑을 만드는 기계다. 오차 허용 범위가 1000분의 3㎜에 불과할 정도로 정밀한 기계다. 한 대 가격은 1억2000만원으로, 이 기계를 생산하는 기업은 국내에서는 팩커즈 외 2곳밖에 없다.

팩커즈는 농심과 삼양, 오뚜기, 팔도 등 국내 대형 식품회사에 기계를 전량 공급하는 등 국내에서 가장 높은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컵라면뿐 아니라 요구르트, 치즈, 아이스크림, 커피, 맥주, 세제 등의 뚜껑이나 포장지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태국, 이란, 덴마크, 불가리아, 터키, 러시아 등 세계 4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해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무천 팩커즈 대표(54)는 “기술 및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중동, 유럽지역 수출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이무천 대표는 “해외 전시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해외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 이무천 대표는 “해외 전시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해외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뛰어난 기술력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이 대표는 1983년 아이스크림의 용기를 만드는 삼화알루미늄에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생산라인의 기계가 고장 나면 속수무책이었다”며 “그래서 기계 제작업체로 옮겨 기계와 금형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거쳐 이 대표가 팩커즈를 설립한 것은 지난 1994년. 다양한 종류의 자동화기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직접 실현해보고자 하는 열정의 발로였다. “수동적인 직장생활은 저하곤 안 맞았어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놔도 회사에서는 투자에 나서지 않았어요. 그래서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창업한 거죠.”

그는 그동안 번 돈을 연포장가공 자동화기계 제작에 모두 쏟아부었다. 당시만 해도 이 분야는 유럽·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대기업들은 비싼 유럽산 기계를 사용했지만, 중소기업들은 수작업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규모가 작은 틈새시장이었기 때문에 기술만 갖추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포장지에서부터 기계와 금형을 만든 경험이 큰 힘이 됐다. 그가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1995년 개발에 성공한 기계는 유럽의 값비싼 기계에 비해 성능은 큰 차이가 없으면서 가격은 절반 수준이어서 업계의 호응이 컸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이 그의 제품을 찾기 시작했고, 팩커즈는 급속히 성장했다.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던 팩커즈는 곧바로 위기를 맞았다. 중국으로 수출을 모색하던 이 대표가 1997년 국내 무역 중개상에 대규모 사기를 당해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사기를 당한 직후 IMF 외환위기까지 터지면서 ‘이제는 끝이구나’ 라는 심정이었죠. 너무 허탈했어요. 차라리 인생을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죠. 그래도 그동안 신뢰를 쌓아둔 덕분에 거래처에서 대금 납부를 연기해 주기도 했고,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줬어요.”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갑자기 발주가 물밀듯 들어왔다. 혼자서 제품을 만들며 일주일에 3000만원을 벌기도 했다. 그는 3년 만에 모든 빚을 갚고 다시 일어섰다.

- 팩커즈의 연포장가공 자동화기계로 만든 각종 용기의 뚜껑.
- 팩커즈의 연포장가공 자동화기계로 만든 각종 용기의 뚜껑.


신흥국 중심 해외시장 개척 모색
팩커즈의 연포장가공 자동화 기계는 한 번 설치하면 1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는 더 이상 수요가 없다. 이미 장착된 기계에서 소모되는 금형만 공급하는 상황이다.

이 대표가 해외시장 진출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팩커즈의 지난해 매출은 약 20억원으로, 이 중 해외 수출 물량이 90%에 달한다. 이 대표는 최근 인도, 아프리카 등 신흥개발국을 주요 타깃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 대표가 해외시장 개척에 본격 나선 것은 2007년부터다. 중국 수출로 호된 수업료를 치렀던 그는 해외영업직원을 채용해 직접 시장 개척에 나섰다. 첫 공략지는 이란이었다.

“중동지역은 유제품 소비가 많아 연포장가공 자동화기계에 대한 수요가 많았어요. 처음에는 한국의 아주 작은 기업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죠. 전시회에 참가하고, 직접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어요. 한번 만난 바이어와는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팩커즈는 그해 이란에 1대를 수출했다. 그것이 도화선이 됐다. 2008년 수출물량은 10대로 늘어났고, 인근 지역인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터키·북아프리카로 수출이 확대됐다. 입소문이 나면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유럽 업체에 기계를 공급하기도 했다.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도 해외시장 진출의 든든한 파트너였다. 포장기계의 경우 제품을 직접 시연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어 전시회에 참가하려면 물류비용이 많이 든다. 팩커즈는 경기중기센터를 통해 부스 임차료, 장비 설치비, 운송료 등을 지원받아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태국 국제 식음료, 제약가공 및 포장산업전’에 참가하고 있다. 태국 국제 식음료, 제약가공 및 포장산업전은 지난 1993년 시작된 아시아 지역의 대표적 포장산업·가공기술 전시회로, 해마다 전시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팩커즈는 지난 2011년 이 전시회에서 만난 바이어와 상담을 꾸준히 진행해, 지난해 개최된 전시회에서 4만5000달러의 현장 서면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  미국, 벨기에, 독일 등지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가했으며, 태국·인도에서 하반기 개최되는 전시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전시회에 참가해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