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은 핵심요소로 꼽힌다. ICT를 산업 전반에 적용하고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비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는 지난 10월 향후 5년간의 ICT 분야 연구·개발(R&D) 정책과 방향을 담은 ‘ICT R&D 중장기 전략’을 발표했다. 일명 ‘ICT 웨이브(WAVE) 전략’으로 불리는 정부의 ICT 육성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우리나라 ICT 산업은 201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2.3%, 수출의 28.3%를 차지할 만큼 국가경제의 핵심산업이다. 세계적인 위상도 높다. 한국 ICT 산업의 생산규모는 세계 4위, 수출 규모는 세계 5위에 올라 있다.

스마트폰, 메모리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3대 수출 품목은 세계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또 국내 ICT 인프라 및 활용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1년 기준 ICT 발전지수 세계 1위, 모바일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가 단적인 지표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분석기관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 따르면 한국 ICT 산업의 경쟁력은 2008년 3위에서 2011년 19위로 오히려 뒷걸음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이명박 정부 5년간 ICT 정책기능이 분산되고 ICT 육성정책이 후순위로 밀려난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국내 ICT 산업의 고질적인 ‘3대 불균형 성장(하드웨어, 대기업, 완제품 중심의 성장)’이 심화하면서 건강하고 균형 잡힌 ICT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현재 세계 ICT 산업은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소프트웨어와 플랫폼, 융합이 성장과 혁신의 촉매로 떠오른 데다 인간중심 기술과 개방형 혁신이 최대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스마트·모바일 혁명’이 가져온 구조적인 판도 변화다.

정부의 ‘ICT 웨이브(WAVE) 전략’도 세계 ICT 산업의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골자는 국내 ICT 산업의 고도화 및 창조산업화를 견인하는 동시에 국민생활 밀착형 R&D를 강화해나간다는 것이다. 요컨대 스마트 혁명 시대에 활용도와 시장성이 큰 핵심 원천기술을 개발·선점하는 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8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 클라우드쇼 2013’에 참석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초고화질 곡면 OLED TV를 만져보고 있다. 맨 왼쪽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
지난 8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 클라우드쇼 2013’에 참석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초고화질 곡면 OLED TV를 만져보고 있다. 맨 왼쪽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

스마트 시대에 시장성 큰 기술 개발 중점

박태완 미래부 정보통신방송기술정책과 서기관은 “정부는 창조경제 실현의 가장 기초적인 도구가 ICT라는 판단에서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고 기업들도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ICT 기술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과거 정부들의 ICT 육성책이 ICT 인프라 깔기, 하드웨어와 산업 중심 기술 개발에 중점을 뒀던 것과는 차별화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ICT 웨이브 전략은 정부의 4가지 ICT 육성정책 비전을 함축한 용어다. △세계 최고의 ICT 경쟁력 확보(World Best ICT) △연구·개발 환경의 획기적 개선(Activating R&D Ecology) △산업적 성과 창출(Vitalizing Industry) △국민의 삶의 질 개선(Enhancing Life)이라는 4대 비전의 영어 표현에서 각각 앞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ICT 웨이브 전략은 구체적인 수치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향후 5년 내에 기술 상용화율 35%(현재 18%), 투자 생산성 7%(현재 3.42%), 국제 표준특허 보유량 세계 4위(현재 6위)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콘텐츠(Contents), 플랫폼(Platform), 네트워크(Network), 디바이스(Device), 정보보호(Security) 등 5개 분야에서 10대 핵심기술 개발을 통해 15대 미래서비스를 실현한다는 청사진이다. 콘텐츠(C), 플랫폼(P), 네트워크(N), 디바이스(D)를 아울러 흔히 ‘CPND’로 부르기도 하는데, 스마트 혁명 이후 ICT 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4대 핵심 분야를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 나날이 심각해지는 사이버 공격에 대한 정보보호 기술을 덧붙여 5개 분야가 정해졌다는 게 미래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ICT 웨이브 전략을 통해 10대 핵심기술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을 선점해나간다는 계획이다. 10대 핵심기술은 홀로그램, 콘텐츠2.0, 지능형 소프트웨어,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플랫폼, 빅데이터·클라우드, 5G 이동통신, 스마트 네트워크, 감성형 단말기술, 지능형 ICT 융합모듈, 사이버 공격 대응 등이다.

정부는 또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고 수요가 많은 분야를 중심으로 15대 미래서비스 도입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15대 미래서비스로는 사용자 선택형 실감방송, 미래 광고, 차세대 스마트워크, 재난·재해 예측 등 국민편익 증진과 사회문제 해결에 필요한 분야들이 선정됐다.

ICT 웨이브 전략은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도 중점 목표로 삼고 있다. 과거 정부들이 주로 하드웨어 기술 개발에 치중했던 것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특히 정부가 소프트웨어를 창조경제의 ‘실현도구(Enabler)’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소프트웨어 경쟁력 제고를 바탕으로 전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는 물론 신산업 발굴, 미래 핵심기술 및 서비스 창출 등에 기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삼성SDS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는 연수생들이 실습을 하고 있다.
삼성SDS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는 연수생들이 실습을 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인력·산업 육성에도 팔 걷어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의 최우선 과제는 전문인력 양성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우수 인재들이 소프트웨어 분야를 기피하는 데다 산업계에서 필요한 인력 수요도 제대로 충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우선적으로 소프트웨어 분야 고급인력을 대거 양성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창업-성장-글로벌화의 단계를 원활하게 밟아갈 수 있도록 건강한 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한편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육성 및 제품 개발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국방, 농업, 의료, 환경 등 공공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주요 업종별 시장 창출형 대형 소프트웨어 R&D도 강화해나갈 방침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자율 주행용, 선박 무인 운항용, 플랜트 스마트 유지보수용 SW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부는 ICT 분야 R&D 성과의 보급과 확산을 위한 대책도 마련했다. 골자는 기획→평가·관리→사업화로 이어지는 ICT R&D의 전(全) 주기에 걸쳐 ‘기술사업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될성부른 기술에 R&D 지원을 집중함으로써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특히 기획 단계부터 시장의 요구에 부합하는 R&D 과제 선정을 위해 ICT 분야별로 민간기업 협의체를 구성해 의견을 수렴하는 한편 국민 대상 오디션형 R&D 기획을 통해 일반인의 아이디어를 R&D에 반영하는 사업을 추진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또 중소기업이 주관하는 R&D 과제 비중을 2017년까지 32%(2013년 22.7%)로 끌어올려 중소기업 맞춤형 R&D 지원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ICT 웨이브 전략 추진을 통해 향후 5년간 ICT R&D 분야에만 총 8조5000억원의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게 된다. 이를 통해 생산 유발 12조9000억원, 부가가치 창출 7조7000억원, 일자리 18만개 창출 등의 효과가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박근혜 정부의 ICT R&D 투입 예산은 역대 정부 중 최대 규모다. 이명박 정부(5조545억원)와 비교해도 3조4000억원 이상 많은 수치다. 현 정부가 얼마나 ICT 육성에 큰 무게를 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강성주 미래부 융합정책관은 “정부의 ICT 웨이브 전략은 향후 우리나라 산업을 이끌어나갈 미래 먹을거리를 지금부터 준비한다는 취지”라며 “이렇게 ICT 경쟁력을 강화해나가면 우리 사회 현안인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과 다른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