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 건국의 아버지 마오쩌둥(1893~1976)이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고국의 눈부신 발전상에 눈이 휘둥그레질지도 모른다. 그의 사망 후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1904~1997)은 실용주의적인 개혁·개방 정책 노선을 과감하게 추진하면서 중국이 오늘날 G2 국가로 ‘굴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베이징, 상하이를 필두로 동부 지역에 위치한 대도시들의 마천루는 중국 경제 고도성장의 의심할 바 없는 상징물들이다.
하지만 동부 지역이 대외개방의 거점으로서 상전벽해를 이루는 동안 서부 지역은 국가 발전전략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바람에 낙후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랬던 서부 지역이 2000년대 초부터 중국 정부가 추진하기 시작한 이른바 ‘서부 대개발’ 정책의 결실 덕분에 힘찬 용틀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서부 대개발은 무려 50년에 걸친 초(超)장기 국가개조 프로젝트다. 이제 막 2부 능선을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중국 서부 지역은 충칭, 청두, 시안 등 3대 핵심도시를 중심으로 자본과 인력을 급속하게 빨아들이며 이미 또 다른 천지개벽을 이뤄나가고 있다. 중국 서부 대개발의 현주소와 함께 한국 기업들은 어떤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해본다.

중국 서부 대개발 어디까지 왔나
1단계 인프라 대대적 확충으로 ‘천지개벽’
‘중국의 심장’이자 ‘세계의 엔진’으로 부상


중국 서부 내륙지역이 글로벌 기업들의 격전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서부 대개발’ 정책의 결실이 빚어낸 후광효과다. 중국 경제의 새로운 심장으로 강력한 박동을 시작한 서부 지역은 이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고층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중국 충칭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말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대통령 취임 후 첫 중국 방문으로 의미가 남달랐다. 특히 주목할 것은 박 대통령이 중국 수도 베이징과 함께 3000년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 시안(西安)시를 찾았다는 점이다. 한국 대통령이 시안을 방문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중국 수도 베이징을 제외한 지방도시로는 그간 상하이, 청두(成都), 칭다오(靑島)만 방문했다.

시안시는 중국 서부 내륙 산시성(陝西省)의 성도로 13개 왕조가 1000년 동안 수도로 삼았던 유서 깊은 도시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진시황릉을 비롯해 중요 문물과 유적이 300여개나 있다. 고대 중국과 서역을 연결했던 교역로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바로 시안이다. 중국의 장구하고 찬란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 시안이다.

그렇다고 시안이 단지 옛 영광에만 기대고 있는 역사도시는 아니다. 시안은 항공우주 산업기지와 하이테크 산업단지가 둥지를 트고 있는 첨단 과학기술의 요람이기도 하다. 베이징, 상하이와 더불어 중국 3대 대학도시로서 풍부한 연구·개발(R&D) 인력과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IBM, 인텔, 필립스 등 글로벌 전자·정보·통신 기업들도 다수 진출해 있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도 무려 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반도체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은 2014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박 대통령 시안 방문에 숨은 뜻

박 대통령은 국빈 방문 마지막 날 시안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박 대통령을 영접하고 공장을 안내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대통령과 한국 대표기업의 후계자가 시안에서 조우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왜 시안을 찾았을까. 무엇보다 중국 서부 대개발이 무르익으면서 서부 지역 3대 핵심도시 중 하나인 시안이 한·중 경제협력 확대의 새로운 교두보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또 시안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점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시 주석은 문화대혁명 당시 숙청된 아버지 시중쉰 전 국무원 부총리를 따라 산시성 옌안(延安)시에서 7년간 하방(下放) 생활을 했다. 시안은 옌안과 지근거리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의 시안 방문은 다목적 포석을 담은 절묘한 정상외교 카드였던 셈이다.

중국 서부 지역이 용틀임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2000년부터 본격 추진한 ‘서부 대개발’ 정책이 서서히 결실을 맺으면서 서부 지역 경제가 고속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교통, 통신, 에너지 등 사회 인프라 구축에 대대적인 투자가 단행된 덕에 투자환경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서부로 달려가는 이유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추진 이후 동부 연해지역을 먼저 개발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덩샤오핑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 주창한 이른바 ‘선부론(先富論)’이 동부 우선 경제개발 정책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 선부론은 대외개방이 수월한 동부 연해지역부터 발전시킨 후에 그 결실을 서부 및 내륙지역으로 전이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덩샤오핑의 선부론은 오늘날 중국이 ‘G2’ 국가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선부론도 어쩔 수 없이 부작용을 남겼다. 동부 연해지역과 서부 내륙지역의 경제격차가 너무 심하게 벌어졌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동부와 서부의 심각한 경제격차 해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역 간 경제 불균형 상태를 그대로 뒀다가는 정치·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으로부터 권력을 승계한 장쩌민 총서기는 문제해결에 나섰다. 그는 1999년 서부 대개발 전략의 개념을 처음 공식 언급했다. 이듬해 중국 국무원은 ‘서부 대개발 정책 실시에 관한 통지’를 발표했다. 또 같은 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서부 대개발의 핵심사업 추진을 승인했다. 마침내 중국 서부 대개발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중국 서부 지역은 충칭(重慶)직할시, 쓰촨(四川)성, 산시(陝西)성, 구이저우(貴州)성, 윈난(雲南)성, 간쑤(甘肅)성, 칭하이(靑海)성, 닝샤(寧夏)자치구, 신장(新疆)자치구,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광시(廣西)자치구, 시짱(西藏)자치구 등 총 12개의 성·시·자치구를 아우르는 지역을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중국 방문 기간에 시안시를 찾아 진시황릉 병마용갱을 둘러보고 있다.

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유럽 진출 교두보

전체 국토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1.5%에 달할 만큼 광대한 영역을 자랑한다. 반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6.9%에 그친다. 서부 지역은 면적 대비 인구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낙후된 지역이 많다. 도시화율도 44.9%로 전국 평균(52.6%)에 비해 낮다. 중국 국내총생산에서 서부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기준 19.8%를 기록했다.

하지만 서부 지역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특히 중국 내에서 주요 에너지·자원의 보고로 꼽힌다. 중국 전체 석유 매장량의 30%, 천연가스 매장량의 82%, 석탄 매장량의 41%가 서부 지역에 집중돼 있다. 또 망간(63%), 크롬(99%), 철광석(29%) 등 광물자원도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동부 연해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이라는 점도 약점에서 강점으로 뒤바뀌고 있다. 서남부 방향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은 물론 독립국가연합, 유럽과의 대외교역 전진기지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서부 지역은 지난 2000년 대비 변경무역 규모가 14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김창도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중국 서부 지역은 도로, 철도 등 인프라가 크게 개선되면서 물류비용 절감 등에 힘입어 주변국과의 경제교류가 급증하고 있다”며 “특히 주변국에 대한 수출 규모가 20배나 늘어나면서 수출기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 대개발 정책은 무려 50년에 걸친 장기적인 국가 프로젝트다. 따라서 3단계에 걸친 단계별 추진전략을 택하고 있다. 1단계(2000~2010년)는 준비 단계, 2단계(2011~2030년)는 본격 추진 단계, 3단계(2031~2050년)는 완성 단계다.

1단계는 주로 사회 인프라 확충과 산업구조 조정, 생태환경 및 투자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2단계는 1단계에서 마련된 인프라를 토대로 각 지방의 특성에 맞는 특화산업을 육성함으로써 서부 경제를 도약시키는 단계다. 마지막으로 3단계는 서부 지역 전체의 현대화를 통한 경제적 번영을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1단계 서부 대개발 기간 동안 막대한 재정을 서부 지역 인프라 구축에 쏟아 부었다. 2000~2012년에 걸쳐 서부 대개발 관련 프로젝트만 해도 187개나 추진됐고, 총 3조6800억위안의 천문학적인 재원이 투자됐다. 서부 대개발 중점 프로젝트는 대부분 도로, 철도 등 교통망 구축과 에너지 개발에 집중됐다. 아울러 산업구조 고도화와 생태환경 보호 사업도 추진됐다.

중국 국토를 동서남북으로 연결하는 4대 핵심 프로젝트도 순조롭게 진행됐다는 평가다. 4대 핵심 프로젝트는 ‘서전동송(西電東送: 서부의 전기를 동부로 보냄)’, ‘남수북조(南水北調: 남부의 수자원을 북부로 보냄)’, ‘서기동수(西氣東輸: 서부의 천연가스를 동부로 보냄)’, ‘칭짱철도(靑藏鐵道: 칭하이성의 시닝과 시장의 라싸를 연결하는 철도)’ 등 4개 사업을 말한다.

투자한 만큼 결실도 풍성하게 거둬들이고 있다. 서부 지역의 경제지표가 직접적인 증거다. 2011년 서부 지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에 비해 6배나 훌쩍 뛰었다. 중국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4%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1인당 GDP 증가율은 연 평균 17.1%에 달했고, 대외수출 증가율도 연 평균 24.2%에 달했다. 이 모든 지표가 중국 전체 평균을 웃돌고 있다.

최근 중국 경제는 성장세가 하락하고 있다. 연 평균 10%를 상회하던 경제성장률은 7%대로 주저앉았다. 일각에서는 경착륙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서부 지역만큼은 전체 추세에서 예외적이다. 서부 지역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2008년 13.1%, 2009년 13.5%, 2010년 14.2%, 2011년 14.0%, 2012년 14.3%로 소폭이지만 오히려 꾸준한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서부 지역이 중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직접투자 가파른 증가세

서부 지역의 투자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외국 자본도 속속 몰려들고 있다. 지난 2000년 서부 지역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20억30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2009년에는 147억8000만달러로 7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전자, 자동차, 가전, 장비제조 분야 대기업들이 이전한 충칭시, 쓰촨성, 산시성, 윈난성, 칭하이성, 닝샤자치구 등은 FDI가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속속 중국 서부로 몰려오고 있다. 특히 충칭시, 청두시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에 속하는 굴지의 기업들이 각각 200개 이상 진출해 있을 만큼 세계 유수 기업들의 격전장으로 떠올랐다. 특히 서부 지역은 동부 연해지역과 달리 기업소득세율 감면(15%), 토지심사 간소화 등 외국인투자 우대 정책이 유지되고 있는 점이 매력적인 투자 유인책으로 작용한다.

중국 정부는 이른바 3개 전략개발구를 서부 대개발 2단계의 핵심 성장축으로 삼고 있다. ‘청위(成渝) 경제구’, ‘관중(關中)-톈수이(天水) 경제구’, ‘광시(廣西) 베이부완(北部灣)’ 경제구가 그곳이다.

청위 경제구는 서부 지역 핵심도시인 충칭과 청두를 중심으로 인근 38개 도시를 아우르는 경제구역이다. 상주인구가 1억명에 육박하고 1인당 GDP는 서부 지역 평균보다 40% 가량 높다. 산업기반, 도시화, 부존자원, 과학기술 등 모든 면에서 서부 최고라는 평가다.

광시자치구에 위치한 베이부완 경제구는 아세안(ASEAN)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조성되는 경제구역이다. 이곳은 서부 지역에서 유일하게 바다에 면해 있어 수출·물류기지로 집중 육성될 계획이다. 또 관중-톈수이 경제구는 산시성 성도인 시안을 중심으로 산시성과 간쑤성의 주요 도시들을 포함하는데, 서북부 내륙 개발의 전초기지로 키워나간다는 게 중국 정부의 구상이다.

최근에는 충칭시, 청두시, 시안시를 각각 꼭짓점으로 하는 이른바 ‘서삼각(西三角) 경제권’이 새로운 성장거점으로 주목되고 있다. 서부 지역에서 가장 핵심적인 3대 도시를 엮어 서부 최대의 성장동력으로 발전시켜나가자는 전략이다. 실제 서삼각 경제권에는 이미 중국 토종 대기업들과 글로벌 기업들이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서부 지역 투자가 미미했던 한국 기업들도 서삼각 경제권을 중심으로 진출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종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은 “향후 중국 서부 지역은 인프라 투자와 도시화 추진을 가속화하면서 고속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며 “중국 정부는 충칭, 청두, 시안 등 핵심거점의 성장 과실을 주변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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