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국내 기업들의 중국 서부 지역 투자금액은 5500만달러를 기록했다. 대(對) 중국 전체 투자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6%였다. 이전에도 마찬가지다. 1%대 초반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한국 기업의 관심권 밖에 있는 그야말로 투자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 기업 중 하나가 초대형 투자를 단행하면서 중국 서부 지역 투자 물길을 확 열었다. 주인공은 바로 한국 대표기업 삼성전자. 산시성의 성도인 시안시에 무려 70억달러를 투자해 대규모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70억달러는 삼성전자의 중국 투자 사례 중 사상 최대 규모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지난 9월 공장 착공 1주년을 맞아 시안 반도체공장에 5억달러를 추가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총 투자 규모는 75억달러로 늘어났다. 원화로는 8조원이 넘는 엄청난 투자다.

삼성전자는 올 연말까지 시안 반도체공장에 차세대 10나노급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완공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또 내년 초에는 반도체 후공정 라인도 착공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해외 반도체공장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에 이어 시안이 두 번째다.

시안 반도체공장에서 생산될 10나노급 낸드플래시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각종 스마트기기에 사용되는 반도체다.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글로벌 톱10 안에 드는 스마트폰 제조업체도 여럿 있다. 삼성전자는 시안 반도체공장을 거점으로 중국 반도체 시장 수요에 신속 대응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현대자동차가 중국 서부 지역에 제4공장 건설을 앞두고 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징의 제3공장 생산라인.
 
현대차도 서부지역에 제4공장 건설 임박

현대자동차의 서부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002년 베이징기차와 합작법인 베이징현대차를 설립하면서 중국에 처음 진출한 현대차는 현재 베이징에 연간 10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제1~3공장을 두고 있다.

그런데 현대차는 2015년까지 중국 생산량 140만대를 목표로 하고 있어 서둘러 제4공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제4공장 후보지를 놓고 오랫동안 고심을 거듭해왔다. 최근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중국 서부 지역에 제4공장을 건설할 것이라는 소문이 정설처럼 나돌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후보지로는 충칭직할시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 충칭은 중국 4대 토종 자동차업체인 창안자동차가 자리 잡고 있는 등 자동차도시로 명성이 높다. 산시성 시안, 쓰촨성 청두, 후베이성 우한 등도 후보지로 거론되는 도시들이다. 통상적으로 자동차공장 착공에서 가동까지는 최소 18개월이 소요된다. 따라서 현대차가 2015년 중국 생산량 140만대 체제를 갖추려면 올 연말 전후로는 공장 착공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사실 현대차는 이미 서부 지역에 진출한 상태다. 지난해 쓰촨난쥔기차와 함께 설립한 합자회사 쓰촨현대가 쓰촨성 쯔양시에 연산 15만대 규모의 상용차 공장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중국 승용차 시장에 이어 상용차 시장도 공략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쓰촨난쥔기차와 합자계약을 맺었다.

포스코도 서부 지역에 발을 들여 놓았다. 포스코는 차세대 친환경 제철공법인 파이넥스(FINEX) 기술을 적용한 연산 30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충칭에 건설할 계획이다. 지난 9월 중국 국영 철강업체인 충칭강철집단과 합작협약을 체결하면서 첫 단추를 뀄다. 중국 정부의 비준과 우리 정부의 기술수출 승인을 받으면 본계약을 체결한다. 포스코는 2011년 충칭강철과 양해각서를 맺고 제철소 건설 타당성 검토를 해왔다.

SK그룹 계열사들도 잇달아 중국 서부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다. 먼저 SK하이닉스는 지난 7월 충칭에 반도체 후공정 공장을 착공했다. 투자 규모는 약 1억5000만달러로 내년 7월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충칭 후공정 공장이 완공되면 우시 후공정 공장과 함께 쌍두마차 체제로 중국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SK종합화학은 지난 2월 중국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과 합작으로 총 38억위안을 투자해 충칭에 연산 20만t 규모의 부탄디올 생산공장을 짓는 계약을 체결했다. 부탄디올 생산공장으로는 중국 최대 규모다. 이 공장은 2016년부터 본격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부탄디올은 스판덱스, 합성피혁, 폴리우레탄 등의 원료로 쓰이는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이다. SK종합화학은 중국 부탄디올 시장점유율 15%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중국 시안시 하이테크산업단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기공식 장면.

롯데백화점은 청두에 ‘서부 1호점’ 열어

롯데백화점은 서부 지역의 급성장하는 소비시장을 겨냥해 지난 8월 쓰촨성 청두에 중국 4호점이자 서부 지역 첫 점포인 ‘환구중심점’을 열었다. 롯데백화점이 입점한 청두 ‘신세기 글로벌센터’는 연 면적 176만㎡로 단일 건물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환구중심점 역시 롯데백화점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점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중국 내에서 소비열풍이 가장 거센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청두의 소비자들을 집중 공략할 태세를 갖춘 셈이다.

이밖에 중국 타이어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타이어는 올해 충칭에 연간 생산량 1150만개 규모의 제3공장을 마련했다. 서부 내륙지역의 급증하는 타이어 수요에 적극 대응해 중국 시장 1위를 확고히 다지려는 포석이다.

금융·보험업종의 서부 진출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초 청두에 지점을 개설했다. 청두지점은 우리은행의 중국 내 15번째 점포로 서부 지역 현지화 영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생명도 지난해 청두에 쓰촨 분공사(지사)를 설립하면서 서부 지역에 사업거점을 마련했다. 삼성생명의 중국 사업장은 베이징, 톈진, 칭다오에 이어 청두가 4번째다. 동부 연해지역에 치우쳤던 영업망을 서부 내륙지역으로 확대하는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셈이다.

대기업들이 선발대로 서부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면서 중소기업들도 서부 진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9월 산시성 시안에 중소기업대표단을 파견했다. 대표단은 러우친젠 산시성 성장과의 간담회에서 한국 중소기업들의 본격 진출을 위한 투자환경 개선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바야흐로 한국 기업들의 중국 서부 진출 러시가 시작된 셈이다. 그렇다면 중국 서부 진출에 성공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지금까지 동부 연해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왔던 한국 기업들에게는 반드시 짚어봐야 할 문제다.

김창도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중국 서부 지역은 12개의 성급 지역으로 이뤄져 있어 각각의 시장과 소비 특성을 고려한 거점의 다변화 및 세분화가 필요하다”며 “또한 서부 지역은 아직까지 개방도가 동부 연해보다 낮기 때문에 현지 사정에 밝은 로컬 기업과의 협력이 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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