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거리와 상업구들은 왕성한 소비로 활기가 넘치고, 세계적인 기업들의 부동산 개발과 투자가 끊이지 않아 팔방 도처에 건축 현장이 즐비하며,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전략적인 산업 육성과 개발이 눈부시게 이뤄지고 있는 곳.

누구라도 한창 발전 중인 도시의 보편적인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중국에 있는 어느 한 도시의 모습이라고 해도, 이미 중국의 발전상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다지 의외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한국 못지않거나 심지어 한국보다 나은 베이징, 상하이 같은 도시들의 모습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도시가 바닷가로부터 적어도 1000㎞ 이상 떨어진 서부 내륙 쓰촨성(四川省)의 청두라고 말해준다면 한국인 상당수는 “정말?” 하는 의구심을 나타내기 십상이다.

쓰촨성 하면 한국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모습이 몇 가지 있다. 삼국지연의와 촉한(蜀漢), 자이언트 팬더, 실체가 묘연한 사천짬뽕과 사천짜장 같은 매운 음식을 연상할 수도 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시성(詩聖) 두보가 오랫동안 살면서 활동한 곳, 송나라 문인 소동파 또는 근·현대문학의 거두 궈모러우(郭沫若), 바진(巴金) 등이 태어난 곳으로 기억할 것이고,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온라인 마작게임 사천성이 가장 먼저 튀어나올 것이다. 여행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구채구와 같은 명소를 떠올릴 것이며, 그리고 누구나 2008년 쓰촨성 대지진을 기억할 것이기도 하다.

청두시 왕푸징백화점 앞 육교는 항상 쇼핑객들로 넘친다(왼). 지난 6월 중국 청두에서는 세계 유수 기업들이 참가한 2013 포춘 글로벌포럼이 열렸다.
청두시 왕푸징백화점 앞 육교는 항상 쇼핑객들로 넘친다(왼). 지난 6월 중국 청두에서는 세계 유수 기업들이 참가한 2013 포춘 글로벌포럼이 열렸다.


삼국지, 사천요리와 팬더의 고장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중국사람에게 쓰촨성과 청두시에 대해 물어봐도 대답은 역시 자이언트 팬더와 매운 음식, 차 문화와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청두시의 그 어떤 홍보영상물을 보더라도 자이언트 팬더가 빠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고착된 이미지들을 넘어 쓰촨성과 청두시의 발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산업과 경제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우선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중에서 현재 청두에 진출해 있는 기업의 수가 무려 245개에 달한다.

흔히 청두는 ‘소비의 도시’라고 일반화시키는 것과는 다른 실상이다. 인텔 CPU의 50%와 아이패드의 70%가 청두에서 생산되고 있다. 폴크스바겐과 도요타 등도 청두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물류 운송상의 제약이 있는 청두에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진출한 것은 까닭이 있다. 주력제품의 현지시장 규모가 뒷받침되거나, 항공운송이 가능한 경량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이 이뤄지는 경우가 될 것이다.

지난 6월 청두는 중국 도시로는 4번째(홍콩 제외하면 3번째)로 ‘포춘 글로벌 포럼’을 개최하는 영예를 누렸다. 이 포럼에서는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프랑스의 다농 등을 포함한 74개 글로벌 기업의 투자 프로젝트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렇듯 전 세계가 청두와 쓰촨성에 주목하는 정도는 우리가 집착하는 삼국지나 온라인 마작게임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셈이다.

2000년부터 중국의 발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논하자면 항상 주요 화제로 등장하는 게 ‘서부 대개발’ 정책이다. 서부 대개발은 2011년부터 2단계에 들어섰다. 이 서부 대개발의 지리적 시발점이자 힘차게 뛰는 심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중국인, 특히 쓰촨성에서는 청두라고 대답하는 데 주저할 사람이 많지 않다.

서부 대개발의 한 단면을 도시화 및 개발의 모습으로 나타내주는 곳이 있다면, 티엔푸 소프트웨어파크(天府軟件園)를 포함한 청두시 가오신(高新, 하이테크)구가 아닐까 한다. 청두 도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새롭고 참신한 디자인의 빌딩들이 즐비하거나 건설 중인 새로운 세상과도 같은 도시 경관이 펼쳐진다. 이곳이 바로 서구와 남구로 구분되는 가오신구의 남구이다. 1988년부터 일찌감치 조성되기 시작한 가오신구는 1991년 국가급 하이테크존으로 비준을 받아 지금은 중국 서부 하이테크산업의 메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지역에 입주해 있는 ‘포춘 500대 기업’은 120여개에 달하고, 2012년 말 기준 근무 인력 수는 22만8000명, 생산량은 36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나아가 청두는 정보기술(IT), 에너지, 화공, 설비제조, 음식료, 자동차 등의 기존 주력산업과 함께 클라우드컴퓨팅, 신재생에너지, 바이오의약, 항공우주 등 신흥 전략산업 기반도 착실히 육성해나가고 있다.

걱정이 적고 인생을 즐기는 청두인

청두 사람들의 소비 열기는 뜨겁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적고 인생, 특히 현재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현지인들의 특성이 소비 성향에도 반영돼 있다. 청두 하면 중국에서도 소비의 도시로 인식될 정도이다. 일본계 이토요카도 백화점이든, 중국계 왕푸징 백화점이든, 또는 특정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든, 청두점은 항상 자사 매장 중에서 최고 수준의 매출실적을 가져다 준다. 웬만한 쇼핑몰이나 주요 상업지구만 가보아도 남다른 소비의 열기를 후끈하게 느낄 수 있다.

오랫동안 숙성해온 산업기반의 업그레이드와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과 도시발전 계획, 그리고 왕성한 소비.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청두에 흥미를 느낄 만한 여건은 완연히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이 유의할 것이 있다. 적어도 청두에서는 한국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충분하지 못한 제품을 가져와서 현지 상인들에게 프리미엄제품으로 팔아 넘길 수 있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지 백화점 관계자들은 아무리 한류의 영향이 막대하다고 해도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레이블 하나만으로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을 다녀온 여행객들이 허다한 터라 한국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정보는 순식간에 확산되는 상황이다. 현재 청두에서 유통되는 한국 소비재들은 일류 브랜드의 이미지를 주기에 부족하고 제품군의 구색도 온전하지 않다는 게 백화점 관계자의 솔직한 평가다.

이와 같은 얘기들은 물론 일부 소비재에 대한 의견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이든 치열한 격전지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쓰촨성 시장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제대로 경쟁력을 갖춰 공략하기 위한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가 중국 서부를 주목하는 이때, 우리만 이 지역을 삼국지와 쿵푸팬더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산간지방으로만 생각하는 낭만에 빠져 있다가는 사업 기회가 멀리 달아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