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의 연구·개발(R&D) 8건이 ‘2013 국가 연구개발 우수성과’에 선정됐다. 이로써 농진청은 4년 연속 많은 성과를 올린 연구기관으로 인정받았다.

지난 10월8일 찾은 경기 수원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뒤영벌 산란실. 뒤영벌은 꽃가루를 옮겨주는 화분매개용 수정벌이다. 산란실에는 전면이 유리로 된 조그만 산란상자 수백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산란상자는 여왕벌 한 마리를 넣어두고 계속해서 알을 낳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노란 알이 보였다. 산란실은 후덥지근했다. 산란실은 평균 영상 27도, 각각의 산란상자는 영상 32도로 유지된다. 특히 산란상자에는 일종의 전기온돌이 놓여 있다. 월동을 하는 뒤영벌이 연중 산란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국립농업과학원 화분매개곤충연구실의 윤형주 박사는 “자연에선 6~7개월간 땅속에서 사는 뒤영벌을 대량 생산하고, 연중 사육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국립농업과학원 화분매개곤충연구실의 윤형주 박사가 산란상자에서 뒤영벌을 들어 보이고 있다.

뒤영벌의 경제적 가치 3조원 넘어

꿀벌은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특히 식물의 75%는 외부의 힘을 통해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묻어야만 열매를 맺는다. 꽃의 수술에서 꽃가루를 묻혀 암술에 옮겨줘 열매를 맺도록 해주는 것이 화분매개곤충이며, 대표적인 곤충이 바로 꿀벌이다. 토마토·딸기·호박·오이·사과 등 대부분의 작물은 꿀벌 없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얘기다. 벌이 사라지면 사람이 대신 꽃가루를 암술로 옮겨줘야 한다. 또 가루받이 방식으로 자란 풀과 곡물을 소·돼지·닭 등 가축이 먹기 때문에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치명적인 식량난에 처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지구에서 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을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윤형주 박사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화분매개곤충, 특히 꿀벌이 급감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작물의 수정에 대한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며 “화분매개곤충은 전 세계 농경지 80~85%의 수정을 담당하는데, 꿀벌 다음으로 대표적인 화분매개곤충인 뒤영벌의 개발 필요성이 대두됐다”고 말했다.

뒤영벌은 1987년 북유럽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상용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네덜란드 업체인 코퍼트 등 외국 업체로부터 전량 수입해 사용했다. 농촌진흥청이 1995년부터 뒤영벌 대량 증식 및 사육기술 개발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국내에는 뒤영벌 대량사육에 대한 기술이 전무했던 것. 또 기술을 배울 곳도 마땅히 없었다. 전 세계 뒤영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와 벨기에 업체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직접 부딪치며 기술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윤 박사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여행을 할 때도 뒤영벌이 보이면 무조건 채집해 연구에 이용했다. 주변에선 ‘벌에 미친 사람’이라고 놀려대기 일쑤였다.

윤 박사는 “뒤영벌 대량 사육에 관한 기술이 없다 보니 대부분의 장비와 벌통을 직접 만들었다”고 밝혔다. 뒤영벌 대량생산의 핵심기술인 인공수정장치, 사육온도와 산란온도를 다르게 한 산란실 등이 그것이다. 뒤영벌 대량 증식에 성공한 2004년부터는 기술이전을 통해 현장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100만 봉군(여왕벌 1마리와 뒤영벌 80~100마리의 무리)이 판매됐는데, 이는 국내 시장의 73%에 해당된다.

그는 “저온현상 등 이상기후가 빈번해지고 있는데 저온(영상 6도 이하)에서도 활동이 가능하고 인공수분 노동력도 절감할 수 있는 뒤영벌 수요는 점차 늘고 있다”며 “최근 들어 꽃필 때 저온피해가 자주 발생하는 과수를 비롯해 토마토, 딸기, 수박 등 시설작물 재배농가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뒤영벌은 친환경 안전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준다. 우리나라는 경지면적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농업을 해 왔다. 농약의 과다 사용은 생산물의 농약잔류, 생태계의 불균형 등 다양한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비닐하우스 등에서 재배하는 과채류는 생식을 하거나 수출을 하기 때문에 농약 사용을 줄여야 할 작목들이다. 이러한 시설 과채류에 뒤영벌을 사용할 경우 농약 사용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 생산이 가능해진다. 또 노동력이 대폭 절감되고, 높아진 수정률과 결실률로 인한 고품질 농산물 생산을 통해 농가 소득은 늘어나게 된다.

뒤영벌 대량생산 기술 개발에 따른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수입대체 효과는 600억원을 상회한다. 농가 보급가격도 상당히 인하됐다. 1997년 봉군당 25만원이었던 뒤영벌 가격은 지난해 절반 이상으로 떨어졌다. 뒤영벌을 토마토뿐 아니라 23개 작물로 확대해 생산성은 20% 높아졌으며, 노동력은 90% 이상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뒤영벌의 경제적 가치는 2030년까지 3조304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윤 박사는 “기술 개발 초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해외 전문 업체들이 이제는 우리에게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찾아온다”며 “시작은 늦었지만 기술력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까지 올랐다”며 뿌듯해 했다.

일종의 전기온돌 장치가 설치돼 있는 뒤영벌 산란상자

국가 연구·개발 우수성과에 선정된 식물공장의 핵심 요소기술이 식물공장의 상용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06년 이후 58건 우수성과 선정

뒤영벌 대량생산 기술뿐 아니라 농진청의 연구 8건이 미래창조과학부가 뽑은 ‘2013 국가 R&D 우수성과’에 선정됐다. 국가 연구개발 우수성과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 중 파급효과가 큰 연구 성과를 선정하는 것으로 모두 6개 분야에 100건을 선정했다. 특히 농진청은 국가 R&D 예산의 3.37%(5333억원)를 사용하지만 우수성과는 8건을 차지해 예산투입 대비 높은 성과를 올렸다.

이번에 농촌진흥청에서 선정된 국가 연구개발 우수성과는 뒤영벌 대량생산 기술, 친환경 작물보호제 개발, 식물공장 핵심요소 기술, 레이더 등을 이용한 농업생산 정보 기술, 슈퍼 농생물체 원천기술, 봉독을 이용한 고부가 실용화 소재 개발 등이다.

친환경 작물보호제 개발은 식물의 복합병제를 방제하고 내재해성을 강화시키는 신개념 미생물제로 소비자의 안전농산물 생산요구에 부응하는 기반기술이다. 이 기술은 민간 기업에 이전이 완료돼 지난해 141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동남아 지역 국가들을 중심으로 수출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식물공장 핵심요소기술 개발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 생산공정을 구축했고, 환경조절을 스마트폰으로 원격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사례로, 식물공장의 상용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레이더 등을 이용한 농업생산 환경정보 관측 및 평가기술 개발연구는 위성에서 제공된 영상을 통해 농경지의 이용변화를 분석하고, 벼 수량을 추정함으로써 식량수급 정책지원과 농업재해 피해 모니터링 대책 수립에 활용할 수 있다.

광합성 효율이 높은 슈퍼 농생물체 원천기술 개발은 미래 해양 플랑크톤을 이용한 대체에너지 개발이나 신약 개발에 응용할 수 있어 미래 성장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봉독을 이용한 고부가 실용화 소재 개발은 2010년 우수성과로 선정된 이후 피부 주름 방지와 여드름 억제효과를 갖는 화장품을 개발·이전해 연매출 100억원을 달성하는 등 사업화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동안 농진청은 국가 연구개발 우수성과 선정이 시작된 2006년 이후 꾸준하게 성과를 도출해 58건의 성과가 선정된 바 있다. 농업현장 대응과 소비자·농식품 분야의 연구를 충실히 수행한 결과이기도 하다.

최유림 농진청 연구성과관리과장은 “국가 R&D 수행 부처 간 경쟁이 치열하고, 우수성과 지원 건수가 예산 투입 규모로 줄어든 상황에서도 8건이 선정됐다”며 “국가 과학기술분야 발전과 창조경제에 농진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평가받은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앞으로 농진청은 단기적인 현안 해결은 물론 장기적인 연구 과제를 추진해 농업기술개발에서 미래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다는 방침이다. 허건양 농진청 연구정책국장은 “글로벌 개방화 시대에 농업인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초·응용분야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미래 가치 창조에 농업의 역할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연구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