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대학을 ‘창업기지’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상상력과 창의성, 도전정신이 충만한 대학(원)생들이 창업 붐을 일으킨다면 일자리와 신시장 창출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창조경제 시대를 견인하는 대학생 창업 현황을 살펴본다.
지난 6월 연세대 창업사관학교 입학식이 끝난 뒤 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연세대에서 공유경제를 주제로 개최한 창업로드쇼(아래).
지난 6월 연세대 창업사관학교 입학식이 끝난 뒤 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연세대에서 공유경제를 주제로 개최한 창업로드쇼(아래).

국내 대학가에 창업 열풍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보다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대학생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 대학들이 천편일률적인 ‘취업사관학교’에서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창업사관학교’로 체질 전환을 이뤄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중소기업청과 창업진흥원이 공동 실시한 ‘대학의 창업 인프라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창업 동아리와 재학생 창업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전국 각 대학에 창업 친화적인 학사제도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대학의 창업 동아리 수는 2013년 기준으로 1833개에 달했다. 또 창업 동아리 회원 수는 2만2463명, 창업 동아리 보유 대학은 190개로 나타났다. 창업 동아리 수는 전년 대비 약 50%나 증가한 수치라는 분석이다.

대학생 창업 동아리의 전문 분야는 정보기술(31.2%), 전기·전자(13.3%), 기계·재료(10.8%), 공예·디자인(10.0%) 순으로 나타났다. 주로 이공계 전공 학생들이 창업에 관심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창업 동아리가 단순한 친목·교류 활동에 그치지 않고 실제 창업에 도전장을 던지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점이다. 창업 동아리의 77%가 각종 창업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게 단적인 지표다. 실제 2012년 대학 재학생이 창업에 나선 사례는 377개 기업(407명)이나 됐다. 이는 전년의 199개와 비교하면 84%나 증가한 수치다.

이형철 중소기업청 창업진흥과 사무관은 “창업 동아리는 창업으로 연결되는 직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창업경진대회에 활발하게 참가하는 한편 시제품 제작도 하기 때문”이라며 “학생들은 창업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 재학 중 혹은 졸업 후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세대, 창업 동아리 활동의 천국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전국 대학 중 창업 동아리가 가장 많은 대학은 연세대다. 연세대의 창업 동아리는 76개에 달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창업 동아리 수 10위 안에 전주대, 호서대, 조선대 등 지방대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대학 중에는 중소기업청이 2011년부터 펼치고 있는 ‘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에서 창업선도대학으로 지정된 학교들이 많다. 창업선도대학으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창업 동아리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은 전국 6개 권역별로 창업 인프라가 우수한 대학을 지정해 창업 교육·유망 사업자 발굴·멘토링·사업화 지원 등 창업 전 과정을 패키지 식으로 집중 지원하는 사업이다. 중소기업청은 유망 사업자의 시제품 제작, 마케팅 활동 등에 최대 5000만원의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창업선도대학으로 지정된 학교는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대경권(대구·경북·강원권), 동남권(부산·경남권), 제주권 등 6개 권역에 걸쳐 모두 18개 대학이다.

특히 연세대는 수도권 창업선도대학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2000년부터 선구적으로 창업강좌를 개설한 연세대는 기업가정신 특강을 비롯해 창업 아이디어 발굴, 사업계획서 작성, 실전 창업으로 이어지는 창업 전 과정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치고 있다. 또 2002년에 개소한 ‘학생벤처센터’는 창업에 나선 재학생들이 학업과 창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세대 특유의 창업 프로그램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세대는 창업선도대학 지정 이후 창업로드쇼, 창업경진대회, 창업캠프, 창업사관학교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기반 조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나아가 예비창업, 창업초기, 성장초기 등 단계별로 창업기업을 지원하는 맞춤형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신생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에서 온 유학생이나 교환학생을 ‘글로벌 인턴’으로 파견하거나 공과대·경영대 등과의 연계를 통해 경영현안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박소영 연세대 창업지원단 팀장은 “연세대는 창업기반 조성에서 실제 사업화까지 창업 전 과정에 걸쳐 학생창업을 지원하고 있다”며 “또 연세벤처네트워크 등을 통해 학생 창업자 간의 협력은 물론 선배 경영자들과의 네트워킹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덕분에 자연스레 학생창업 활성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의 학생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E*5-KAIST에서 학생들이 사업모델을 발표하고 있다.
카이스트의 학생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E*5-KAIST에서 학생들이 사업모델을 발표하고 있다.
 

카이스트, 한국 벤처생태계의 젖줄 구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는 전통적으로 대학생 창업의 메카로 꼽히는 대학이다. 한국연구재단의 ‘2011 대학 산학협력활동 조사보고서’(2013년 발간)에 따르면 카이스트는 2011년 학생 창업자 수 28명으로 전국 대학 중 1위를 기록했다. 또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 수에서도 94개로 1위에 올랐다. 통상적으로 대학 창업보육센터가 학생뿐 아니라 교원이나 일반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카이스트의 창업 열기가 뜨거운 사실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현재 카이스트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재학생 창업기업 중에는 전자칠판을 이용한 스마트 통합교육 솔루션 업체 ‘아이카이스트’, 교육 애플리케이션 플랫폼 업체 ‘아이엠스쿨’ 등이 눈에 띈다. 아이카이스트는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석사과정의 김성진 대표가 창업했는데, 카이스트가 학교 브랜드와 기술을 출자한 카이스트 1호 자회사로 유명하다. 또 현재 산업디자인학과 학부에 재학 중인 정인모 아이엠스쿨 대표는 약관 20세에 창업해 카이스트 창업보육센터 입주·졸업기업 가운데 사상 최연소 창업 기록을 갖고 있다.

카이스트는 원래부터 과학기술 분야에 관한 이론과 지식, 응용 능력을 두루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게 학교 설립 취지다. 그러다 보니 카이스트의 우수 인재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토대로 창업에 나서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조성될 수 있었다.

특히 카이스트는 벤처기업가들을 다수 배출하면서 한국 벤처생태계의 젖줄 구실을 해왔다. 1세대 벤처기업으로 통하는 큐닉스컴퓨터(이범천·79년 전산학과 박사), 메디슨(이민화·86년 전기전자과 박사), 터보테크(장흥순·89년 전기전자과 박사) 등이 카이스트 출신이 창업한 기업들이다. 카이스트는 1990년대에도 NHN(이해진·92년 전산학과 석사), 넥슨(김정주·93년 전산학과 석사), 네오위즈(나성균·96년 산업경영학과 석사) 등 2세대 스타 벤처기업들을 다수 배출하는 산실 역할을 했다. 2012년 말 기준 정상 영업 중인 카이스트 동문 창업기업은 총 584개사에 이른다. 이 가운데 1개사가 코스피 시장, 34개사가 코스닥 시장에 상장돼 있다.

이종석 카이스트 창업보육센터 매니저는 “카이스트는 창업에 성공한 선배들이 자연스레 후배들에게 기업가정신을 함양시키고 신선한 자극을 주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면서 국내 벤처 창업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는 학교 차원의 창업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우선 창업보육센터에서는 정기적으로 동문 벤처기업인을 초빙해 ‘기업가정신 특강’을 실시하고 있다. 이 특강은 창업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교내 전체에 창업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카이스트 학생창업 지원 프로그램의 백미는 ‘E*5(이파이브) KAIST’로 불리는 제도다. E*5 KAIST는 이른바 ‘서바이벌 오디션’ 방식의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이다. 참가 학생들의 미션 수행을 통한 사업화를 독려하는 한편 최종 선발된 우수팀에는 법인설립 자본금과 해외 창업경진대회 참가를 지원하고 있다.

전주대에서 열린 전북지역 창업캠프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함께 포즈를 잡았다. 전주대 창업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자유분방하게 사업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아래).
전주대에서 열린 전북지역 창업캠프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함께 포즈를 잡았다. 전주대 창업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자유분방하게 사업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아래).


전주대, 전북권 청년창업 활성화의 중심

지방대 중에서는 창업선도대학으로 활동 중인 대학들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창업기지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또 창업선도대학은 아니지만 충남대, 울산대, 원광대, 경성대, 영진전문대, 공주대, 한라대 등이 학생 창업자 수 상위권(한국연구재단 ‘2011 대학 산학협력활동 조사보고서’ 기준)에 포진해 눈길을 끈다.

호남권 창업선도대학인 전주대는 창업 동아리 및 학생 창업자 수에서 모두 상위권에 올라 있어 지방대 중에서도 대표적인 창업기지로 꼽힌다. 전주대는 중소기업청 창업보육센터 평가에서 2011~2013년 3년 연속 우수 평가를 받은 바도 있다.

또 ‘스타 창업 동아리 발굴사업’을 통해 20개 창업 동아리를 집중 지원하고 있으며, 실제 사업화까지 각 단계별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창업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경제학과 4학년 학생 우민지씨는 지난해 토피어리(Topiary: 각종 식물을 동물 모양 등으로 다듬어 보기 좋게 만드는 기술이나 작품)를 활용한 창업에 성공하기도 했다. 

특히 전주대 창업보육센터는 원스톱 창업지원 시스템을 통해 입주기업의 사업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창업 성공률도 높이고 있다. 전주대는 1999년 일찌감치 창업보육센터를 개소한 데 이어 4~5년 주기로 확장사업을 펼쳐 현재는 60개 입주기업의 사업 성공을 돕고 있다. 아울러 전주대는 ‘지역 창업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전북지역에 청년창업 열기를 확산함으로써 전북권 창업 활성화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허헌 전주대 창업지원단 주임은 “전주대는 벤처창업경진대회, 청년창업리더스클럽, 창업토크쇼 등을 운영하면서 지역 청년창업 활성화를 선도하고 있다”며 “또 비즈쿨창업반, 슈퍼스타비즈쿨연합리그, 꿈나무창업캠프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초·중·고등학생들에게도 미래 기업가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