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역의 농업인대학이 억대 부농의 꿈을 실현하는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도 최우수 농업인대학으로 선정된 양평의 친환경농업대학과 함께 부농이 된 농업인을 찾아봤다.
경기 양평 친환경농업대학 특강이 친환경농업교육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8월8일, 경기 양평 농업기술센터의 친환경농업교육관은 배움의 열기로 후끈했다. 친환경농업대학의 110명의 학생들이 대강당에서 김선교 대학장(군수)의 특강에 몰입해 있었다.

양평은 1999년부터 친환경농업을 실천할 인재를 발굴하고 집중 육성하기 위해 친환경농업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친환경농업대학은 전문농업과, 신규농업과, 농산가공과 등 3개과로 이뤄져있다.

매년 품목이 바뀌는 전문농업과는 올해에는 한우 20두 이상을 사육하는 전업농을 대상으로 한우의 번식과 사양 관리 등을 가르치고 있다. 70두의 한우를 키우는 최용식씨는 “한우 전문가의 강의와 전국의 우수 사육 농가를 둘러보면서 농장에 새로운 사육법을 접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농·귀촌자를 위한 교육과정인 신규농업과에는 지난 6월까지 양평경찰서장을 지낸 남현우씨가 다른 귀촌자들과 함께 기초적인 농사법에 대해 듣고 있었다. 남 씨는 “전업농을 하기보다는 텃밭에서 채소를 기를 생각에 참여했다”며 웃었다.

농산가공과에서는 주부들과 창업 희망자들이 전통장 등 발효식품 가공을 배운다. 서울에서 3년 전 귀촌한 이영화씨는 “취미삼아 하던 장아찌 담그기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는데, 창업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110명 정원에 매년 170~180명이 지원할 정도로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는 여느 대학생처럼 학생증이 발급되고, 이를 통해 자동으로 출석이 체크된다. 수업은 1주일에 하루, 1년 동안 진행된다. 농번기인 5월과 10월엔 수업이 없다.

교육과정은 차별화돼 있다. 특히 분임조 과제 수행이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과별 소규모 그룹을 분임으로 구성해 재학생들이 선진농장이나 농업관련 연구기관 등을 견학장소로 선정해 분임과제 계획을 세우고, 신기술 습득사례, 소득화 방안 전수 경험 등 분임별로 습득한 지식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성과는 실질적이다. 친환경농업대학은 말 그대로 친환경농업 실천의 기반이 되고 있다. 전문농업반 졸업생 중 42%인 245명이 친환경 인증을 획득했다. 현재 경기도 전체 인증농가는 7353호이며, 그 중 양평군의 인증농가는 1718호로 전체 인증농가의 23%를 차지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처음으로 선정한 농업마이스터에도 이 대학 졸업생과 재학생이 각각 1명씩 뽑히기도 했다. 양평군이 경기도 최고의 친환경농업 실천지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기반이 바로 농업대학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차별화된 교육과정과 성과 등을 인정받아 이 대학은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올해 농업인대학 추진평가에서 경기도 최우수 농업대학으로 선정됐다. 김선교 대학장은 “앞으로 변화하는 농업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농업의 경쟁력과 농가소득 향상을 위해 돈 버는 친환경 농업 육성에 힘을 쏟을 것”이라며 “친환경농업대학이 이를 위한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환경농업대학 주요 교재

재배기술에서 유통·마케팅, 인문사회 분야까지 교육

농업인대학은 지역농업의 특화발전에 필요한 품목별 중장기 기술교육을 통해 전문 경영인으로 육성하기 위해 지난 1999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지난해까지 1만명이 넘는 농업인이 대학을 수료했다.

이남수 농촌진흥청 농촌지도사는 “기존의 단기·생산기술 중심의 교육이 중장기·맞춤형 교육과정으로 바뀐 것이 바로 농업인대학”이라며 “농업인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농업인대학은 평생학습의 장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전문재배기술에서 유통·마케팅, 인문사회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교육이 이뤄져 농업인의 경영 마인드 함양은 물론 지역농업과 농촌 공동체사회를 이끌어갈 리더로서의 역할과 자세를 배양하기 때문이다.

교수진은 대학과 연구소, 농업기술센터, 우수 선도농가 등 관련 분야에서 최고 권위의 전문가가 초빙돼 이론과 실기, 현장학습이 병행된다. 이를 통해 농업인의 이해를 높이고 학습효과 향상과 교육생의 참여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김대수 양평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은 “교육과정이 전문화돼 있고, 교수진이 농업인에게도 유명한 전문가로 구성되기 때문에 출석률이 거의 100%에 이른다”고 밝혔다.

농업인대학은 전문 영농 기술의 함양으로 농가 소득 증대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가 소득의 15%인 250만원 가량이 농업인대학의 교육효과를 통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농업인대학 수료자 중 억대 농가도 증가 추세다. 2008년 427명이었던 1억원 이상 소득 농가는 지난해 수료자의 8.8%인 918명으로 늘어났다.

농촌진흥청은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 보급과 체계적인 운영 지원을 통해 농업인대학 운영 내실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박공주 농촌진흥청 역량개발과장은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중앙과 지방 간 업무 협력을 강화해 교육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친환경농업대학 졸업생 박애경 가을향기 대표

유기농 된장으로 2억4000만원 매출

박애경 대표가 장독의 뚜껑을 열어 보이며 웃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에 있는 가을향기의 마당에는 장독이 가득했다. 유기인증 국산 콩만 사용해 담근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이 장독마다 익고 있었다. 이곳에서 지난해 팔린 장류는 2억4000만원어치에 달한다. 박애경 대표(55)는 “한해 5000㎏의 유기농 콩을 옛 방식대로 장으로 담근다”고 말했다. 가을향기는 2004년 장류로는 처음으로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250g 유기농 된장 가격은 7000원 정도로 일반 된장에 비해 2~3배 정도 비싼 편이다.

박 대표가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때는 1997년. 2010년 세상을 떠난 남편이 갑자기 귀농을 결정하면서다. “어느 날 강원도로 여행을 가다, 당시 이곳에 지인이 있어 하루를 묵게 됐어요. 그때 남편이 귀농을 하자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남편의 뜻을 꺾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들어왔죠.”

귀농 첫해 척박한 땅에서 생산한 것은 쌀 9가마와 콩 2가마가 전부였다. 콩을 시장에 내다팔려고 보니 가격이 너무 쌌다. 알아보니 메주로 파는 것이 훨씬 비쌌다. 간장을 담그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무농약으로 직접 재배한 콩을 가마솥에 장작을 때 삶고, 메주는 황토방에서 띄웠다. 옛 방식 그대로다. 하지만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재고가 쌓였다. 이때 만난 것이 생협(생활협동조합)이었다.

“유기농으로 키운 애호박을 도매시장에 경매에 내놨는데, 한 박스에 500원을 쳐주는 겁니다. 첫 출하였는데, 경매사들이 길들이기에 나선 거였죠.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줬어요. 마침 생협 관계자가 지나가다 제대로 된 가격에 구매를 해줬어요. 이후 그곳을 통해 쌀과 채소, 장류를 팔았어요.”

친환경 농업을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이를 배울 만한 곳을 찾기 쉽지 않았다. 책을 통해 스스로 공부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터득해 나가던 그들에게 힘이 된 곳이 농업인대학이었다. 남편은 1999년 농업인대학 1기로 입학해 친환경 농법을 배웠다. 마을 주민 중에도 친환경 농업을 시작하는 농민들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과의 신뢰가 쌓이면서 귀농 5년 만에 남편은 이장을 맡을 정도가 됐다. 박 대표는 “남편이 워낙 열심히 일했고, 마을 주민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다 보니 탄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크게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생계를 유지할 정도였다. 판매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한 단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2006년부터다. 생협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백화점에서 입점을 요청하고, 홈쇼핑 판매도 이뤄졌다. 매출이 쑥쑥 늘기 시작했다.

2010년 남편 김씨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만 박 대표의 열정은 끝이 없었다. 박 대표는 2012년 친환경 농업대학농산가공과에서 발효방법과 함께 포장이나 디자인 등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를 배웠다. 작은 차별화가 큰 성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을향기의 장류는 올해 프리미엄 식품관으로 유명한 신세계백화점 SSG 푸트마켓 청담점에 입점을 앞두고 있다. 명품 전통 장류로 평가를 받은 셈이다.

박 대표는 “전통의 맛을 살리기 위해 수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라며 “식초 등 새로운 발효제품도 내놓을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친환경농업대학 재학생 최용식 풍년목장가든 대표

직접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을 밥상에 올려 인기

최용식 대표는 직접 키운 농산물을 밥상에 올린다.

서울에서 양평으로 가다가 양수리 방향 남한강 드라이브 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길가에 기와집이 덩그러니 있는데 그곳이 풍년목장가든이다. 이곳의 반찬 가짓수는 20여가지.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직영 농장에서 정성껏 농사를 지어 밥상을 차리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음식점을 나설 때면 무료로 나눠 준 한 봉지의 삶은 감자를 쥐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옥수수나 고구마를 주기도 한단다. 음식 맛뿐 아니라 농산물 무료 나눔에 감동을 받아 단골이 된 손님들이 많다.

이곳을 운영하는 최용식 대표는 토박이 농사꾼이다. 음식점 인근에서 70두의 소를 사육하고 있으며, 6600㎡(2000여평)의 논·밭농사를 짓고 있다. 이를 통해 그가 지난해 올린 매출은 2억원이 넘는다. 그가 음식점을 연 것은 2005년이다. “농사를 크게 짓는 게 아니어서, 수확한 농산물을 서울 등에 내다 파는 게 힘들었어요. 시간은 많이 뺏기는 반면 가격은 제대로 못 받았으니까요. 그래서 차라리 식탁에 올리자고 마음을 먹었죠.”

1999년 양평군 친환경농업대학에 다닐 때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는 농사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굳어가고 있었고, 이를 현실화한 것이 바로 음식점 창업이었다.

음식점을 낸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모두 그를 만류했다. 농사만 짓다가 어떻게 식당을 운영하겠냐며 비웃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음식점은 황토와 통나무로 지어 시골 분위기가 흠씬 나도록 했다. 밥상에는 유기농으로 직접 키운 나물과 채소를 올렸고, 소고기는 자신이 사육한 한우를 도축해 사용했다.

밥상에 오르지 않는 농산물은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음식 맛 외에 뭔가 얘깃거리가 있는 음식점을 만들려는 최 대표의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사실 속으로는 걱정을 많이 했죠. 근데 두 달 만에 손님이 넘쳐 나는 겁니다. 6개월쯤 지나니까 방송사에서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도 오더군요. 천천히 공든 탑을 쌓을 생각에 모두 거절했어요.”

음식점과 농사는 가족을 중심으로 철저히 분업화했다. 음식점은 그의 아내가 도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농사는 큰아들인 병무씨가 이어받았다. 병무씨는 농사를 짓는 게 어떻겠냐는 아버지의 권유를 흔쾌히 따랐다. 작은 아들인 병호씨는 양평읍내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

매출은 계절에 관계없이 안정적이다. 오가며 들르는 손님도 많지만 서울 등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모임도 많다. 음식점에 손님이 없는 겨울에는 한우를 출하해 소득을 올린다. 사료 대신 콩과 보리, 쌀겨 등으로 만든 소죽을 먹여 키우는 한우는 육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최 대표는 올해 다시 농업대학에 입학해 전문농업과에서 친환경 한우 사육에 대해 배우고 있다. 평생 한우를 키웠지만 배울 것은 아직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Tip  |  김선교 친환경농업대학 학장


“친환경농업 통해 억대 부농 500농가까지 확대”


“양평은 전국 최초로 친환경 농업 특구로 지정될 정도로 친환경 로컬 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역입니다. 서울에서 살기 위해 가장 오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김선교 친환경농업대학장은 “농산물의 공급과잉으로 인해 무엇보다 안정적인 판매에 역점을 두고 있다”며 “이를 위해 친환경 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는 로컬 푸드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평군은 오는 9월 두물머리에 있는 세미원에 로컬 푸드 직매장을 개장할 예정이다. 양평시장에는 이미 직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가 찾아오는 시대라는 점에서 농촌관광사업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해 양평군을 찾은 체험관광객은 150만명에 달한다. 그는 4계절 테마가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체험객을 끌어들인다는 복안이다. 강소농 육성에도 적극 나선다. “양평군의 호당 경지면적은 1.05ha로 전국 평균인 1.4ha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소득 증대를 위해선 새로운 작물 발굴과 함께 신기술 개발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는 “유기농 오리, 부추, 버섯, 쌈채소, 뽕잎 등 양평만의 향토 사업을 육성해 현재 311농가인 억대 부농을 500농가까지 확대할 것”이라며 “이를 친환경농업대학이 주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