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정부 3.0’으로 명명된 새로운 정부 운영 패러다임을 도입했다. 정부는 정부 3.0을 ‘공공정보를 적극적으로 개방·공유하고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 소통·협력함으로써 국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일자리 창출과 창조경제를 지원하는 정부 운영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b정부 3.0의 구체적 내용과 의의를 살펴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 3.0 비전 선포식’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 3.0 비전 선포식’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1
두 아이를 둔 주부 박모씨는 몇 달 전 시청에서 발표한 지역 어린이집 관리 실태를 보고 화가 났다. 아이들이 먹는 식자재의 원산지 표시를 국내산으로 위조하는가 하면 유기농 식품이라고 속여 돈을 더 받아 챙긴 어린이집이 여럿 적발된 것이다. 박씨는 그 소식을 접하고 혹시나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도 그렇지나 않을까 걱정됐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를 둔 주부들이 크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어진다. 지방자치단체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주기적으로 어린이집 현황과 실태를 자세히 공개하기 때문이다. 공개 내용에는 어린이집 아동·보육교사 수, 일반·특별활동비용, 급식현황은 물론 법규위반 및 처분내용까지 포함된다. 주부들이 어린이집을 선택하고 아이를 맡길 때 비교적 안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
직장인 황모씨는 주말만 되면 여행을 떠나는 여행 마니아다. 그런데 간혹 동호회 멤버들과 패키지 여행을 가게 되면 식상함을 느낄 때가 많다. 대부분 여행상품이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문득 ‘개인 맞춤형 여행상품’을 개발하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곤 얼마 후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여행사를 차렸다.

여행상품 개발에는 각종 공공데이터를 적극 활용했다. 날씨, 교통, 지리, 숙박시설 정보는 물론 국민 소비패턴 분석 통계자료와 전국 지역특성 정보 등을 공공데이터포털에서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황씨는 고객관리정보와 공공데이터를 접목해 다양한 개인 맞춤형 여행상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위 두 장면은 정부 3.0을 통해 국민들의 일상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가상의 사례다. 정부 3.0은 언뜻 추상적인 개념 같지만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 그 의미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정부 3.0이라는 개념은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해석된다. 우선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전자정부의 가장 진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즉 정부의 행정업무와 서비스에 적용되는 기술 수준과 형태에 따라 정부 1.0(IT기술), 정부 2.0(인터넷)을 지나 정부 3.0(스마트·모바일)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웹(Web)의 발전을 기준으로 정부 1.0(인터넷 도입), 정부 2.0(개방·공유), 정부 3.0(개인화·지능화)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행정적 관점에서는 국가 운영의 거버넌스(Governance: 통치) 방식이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 관점에서 정부 3.0은 정부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국민을 정책결정 과정의 주체로 인식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기술적·행정적 관점을 종합해보면 정부 3.0은 정부와 국민이 서로 소통하고 함께 참여하면서 국가 정책과 행정 서비스를 개선해나가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정부 3.0 추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아울러 정부 3.0을 추진하기 위한 3대 전략도 제시했다. ‘투명한 정부, 유능한 정부, 서비스 정부’가 바로 그것이다. 각 전략 아래에는 세부 과제가 설정됐다.

투명한 정부, 유능한 정부, 서비스 정부

먼저 투명한 정부는 △공공정보의 적극적인 공개로 국민의 알 권리 충족 △공공데이터의 민간 활용 활성화 △민·관 협치 강화를 중점 추진과제로 삼고 있다. 또 유능한 정부는 △정부 내 칸막이 해소 △협업·소통 지원을 위한 정부 운영 시스템 개선 △빅데이터를 활용한 과학적 행정 구현이 추진과제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정부는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 통합 제공 △창업 및 기업활동 원스톱 지원 강화 △정보 취약계층의 서비스 접근성 제고 △새로운 정보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 창출을 추진과제로 포함하고 있다.

김상진 안전행정부 창조정부기획과 서기관은 “정부 3.0은 정부 내의 소통과 협업, 공공데이터의 민간 개방 등을 통해 국민생활 편의를 향상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민간 부문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공공데이터 개방과 활용은 정부 3.0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게 바로 공공데이터 개방과 활용이다. 현재 범국가 차원의 데이터 포털을 운영하는 나라만 38개국에 이른다.

미국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열린 정부 지침’을 발표하면서 공공정보 전면 개방을 통한 열린 정부 실현 및 상업적 활용 촉진에 나섰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공공정보 개방 포털을 구축한 데 이어 ‘오픈 데이터 정책’도 발표했다.

영국은 2005년 ‘공공정보 재이용 규칙’을 제정하면서 공공정보 개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국 역시 공공정보 개방 포털을 구축했을 뿐 아니라 데이터전략위원회, 오픈데이터연구소 등을 통해 민간 부문의 공공정보 활용을 선도하고 있다.

공공데이터 개방·활용은 매우 큰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는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 연구에 따르면 국내 공공데이터를 최적으로 활용할 경우 2011년 기준 생산유발액은 23조9000억원, 고용유발인원은 14만7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이미 공공데이터 개방 및 활용을 통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례가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가장 선구적인 사례로는 2009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유주완 서울버스모바일 대표(연세대 글로벌융합공학부)가 서울·경기지역의 버스정보를 활용해 만든 스마트폰용 교통정보 애플리케이션 ‘서울버스 앱’을 들 수 있다. 서울버스 앱을 도화선으로 현재까지 출시된 교통정보 관련 앱만 약 2500여개에 이른다. 정부에 따르면 현재 공공데이터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민간기업은 대기업에서부터 1인 창조기업까지 37개사로 파악된다.

정부는 공공데이터의 민간 활용 활성화를 위해 우선 민간 수요가 많으면서 파급효과가 큰 데이터부터 단계적으로 개방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우선적 개방 대상으로는 교통정보, 기상정보, 지리정보, 특허정보, 교육정보, 복지정보, 재정정보, 보건의료정보, 재해안전정보, 공공정책정보 등이 꼽힌다.

한 시민이 태블릿PC에 설치된 버스정보 앱을 이용해 버스 도착 예정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한 시민이 태블릿PC에 설치된 버스정보 앱을 이용해 버스 도착 예정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공공데이터 개방 확대로 경제적 가치 창출

정부는 현재 공공데이터 개방 5개년 로드맵을 수립해놓은 상태다. 이에 따르면 2013년 2260종에서 2017년에는 6150종으로 개방 폭을 크게 확대할 계획이다. 공공데이터 개방 창구는 ‘공공데이터포털(data.go.kr)’로 일원화하는 한편 총리 소속으로 ‘공공데이터전략위원회’도 설치·운영한다.

국민 중심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정부 3.0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과거 정부처럼 공급자(정부) 주도가 아니라 수요자(국민) 입장에서 행정 서비스를 펼쳐나간다는 것이다.

일례로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맞춤형으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가령 현재는 사망 시 72종의 민원사무가 발생하는데 그중 유족연금신청 등 18종의 행정 서비스를 일괄 제공하는 식으로 국민 편의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국민 개개인의 다양한 생활민원정보를 정부 민원포털 ‘민원24’를 통해 하나의 창구에서 통합 제공한다는 계획도 눈길을 끈다. 앞으로 민원24에서는 개인별로 운전면허 갱신일, 건강 검진일, 범칙금 납부기한 등 각종 생활민원정보를 원스톱으로 안내하게 된다.

정부는 또 첨단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 지능형 행정 서비스 창출에도 역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생활편의, 환경관리, 사회간접자본, 재난대응, 민생치안, 맞춤형 복지, 업무효율 등 7대 전략 분야를 중심으로 중장기 로드맵이 수립되고 있다. 올해는 우선 4개 분야 9개 과제를 추진 중이다. 여기에는 충남의 학교급식 연계 로컬푸드 유통시스템, 전남 광양의 국가산업단지 환경감시시스템, 소방방재청의 재해구호물자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사업 등이 포함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저는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얻겠습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 3.0의 요체를 함축한 발언이다. 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정부 3.0 정책이 과연 새로운 정부 운영 패러다임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재난정보, 교통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 분석하는 서울시 서울안전통합상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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