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 만큼 뜨겁지만 창조적인 인재를 육성해내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이 궁색해진다. 입시 위주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 풍토가 학교 현장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 최고의 화두로 떠오른 창조경제는 먼저 창조인재의 저변이 두터워져야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창조인재 육성에 앞장서고 있는 몇몇 교육기관의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살펴본다.
카이스트에서 운영중인 IP-CEO 과정은 지식재산으로 무장한 차세대 기업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실제 특허 출원을 해야 수료 자격이 주어진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또 벤처기업가들이 학생들의 멘토로서 기업가정신을 불어넣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카이스트에서 운영중인 IP-CEO 과정은 지식재산으로 무장한 차세대 기업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실제 특허 출원을 해야 수료 자격이 주어진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또 벤처기업가들이 학생들의 멘토로서 기업가정신을 불어넣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과학창의재단 STEAM R&E 사업

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 아우르는 ‘융합인재교육’
한국과학창의재단은 2012년부터 STEAM R&E(Re-search & Education) 사업을 펼치고 있다. 과학중점학교, 과학고, 영재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기주도적 학습 확대를 통해 창의력과 문제해결 역량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 위탁 사업이다.

STEAM은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Mathematics의 약칭으로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 교과의 통합적인 교육방식을 의미한다. 흔히 ‘융합인재교육’으로 불린다.

정부는 우리나라 과학교육이 학생들의 학습동기와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2011년부터 교육현장에 STEAM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과 이공계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심각한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인적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앞날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미래 사회는 과학기술 지식은 물론 융합적 사고와 예술적 감성까지 갖춘 창의적 인재들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STEAM은 ‘과학기술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와 이해를 높이고 과학기술 기반의 융합적 소양과 실생활의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으로 정의된다. 골자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을 대폭 줄이고 체험, 탐구, 실험 중심의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바탕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요컨대 교사가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존 학교교육 틀을 벗어나 학생이 스스로 실생활 속의 문제를 발견, 연구,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여러 분야의 지식을 융합적으로 활용하는 인재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한 첫 번째 STEAM R&E 사업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기 이천 효양고 서창득 교사 팀의 사례는 융합인재교육의 내용과 효과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다. 박수빈 학생 등 1~2학년 학생 5명이 참여한 이 팀은 ‘나무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비(非)목재 펄프를 사용한 종이에 대한 연구’ 과제를 수행했다.

이 과제는 연구 주제 선정부터 학생들이 직접 했다. 환경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던 중에 문득 1년생 초목으로도 종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 박수빈 학생의 제안으로 주제가 정해진 것이다. 학생들은 팀을 이뤄 문헌연구, 자료조사 및 이천 주변 식물 생태계 현지 관찰을 바탕으로 연구계획서를 직접 작성했다. 서 교사는 책임지도교사로서 학생들이 최종 성과를 낼 때까지 안내자이자 도우미 역할을 했다. 

어린 학생들의 연구 수행이 순탄할 수만은 없었다. 여러 차례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면서 팀원들은 사기가 꺾였다. 이때 서창득 교사는 국내 유일의 제지공학과가 있는 강원대에 도움을 요청했고, 비목재 제지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인 원종명 교수를 소개받게 됐다.

원 교수가 흔쾌히 자문교수를 수락하는 동시에 대학 실험시설을 이용하도록 하면서 학생들의 연구도 점차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몇 차례의 고비와 실패가 있었지만 학생들은 마침내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됐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옥수수 및 수수의 폐기물로 2만톤의 목재 펄프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어낸 것이다.

서창득 교사는 “STEAM은 무엇보다 학생들이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교육효과가 크다”며 “우리 팀원들도 자기들이 호기심을 가졌던 과제를 연구하면서 생각이 현실이 되니까 너무 좋아하더라. 아울러 탐구역량과 협동심을 키울 수 있는 계기도 됐다”고 말했다.

5명의 학생들은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학교성적이 살짝 떨어졌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STEAM R&E 과제 수행은 학생들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는 게 서 교사의 진단이다. 올해 3학년이 된 3명의 학생은 서울대, 포항공대(포스텍) 등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1. 효양고 STEAM R&E 팀이 기념촬영을 했다. 서창득 책임지도교사(맨 오른쪽)와 원종명 자문교수(가운데)도 함께했다. 2.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미래형 과학교실 구축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세종과학고가 융합인재교육을 위해 조성한 미래형 과학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1. 효양고 STEAM R&E 팀이 기념촬영을 했다. 서창득 책임지도교사(맨 오른쪽)와 원종명 자문교수(가운데)도 함께했다. 2.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미래형 과학교실 구축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세종과학고가 융합인재교육을 위해 조성한 미래형 과학교실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카이스트 IP-CEO 과정

지식재산으로 무장한 ‘한국의 에디슨’ 양성
카이스트 IP영재기업인교육원은 2010년부터 중·고생을 대상으로 IP(Intellectual Property)-CEO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은 쉽게 말해 지식재산으로 무장한 기업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IP영재기업인교육원은 ‘과학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과 미래 융합기술에 대한 창의적인 응용력을 바탕으로 지식재산을 창조하고 기업을 경영하는 인재 양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허남영 총괄책임 교수는 “IP-CEO의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세계 최고 기업 중 하나인 GE의 모태가 된 에디슨 전기회사를 설립한 발명왕 에디슨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도 좋은 예”라며 “이들처럼 사회적으로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들을 육성하는 게 IP-CEO 과정의 목표이자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IP-CEO 과정의 정기 커리큘럼은 기본과정, 심화과정 각 1년씩 2년간 진행된다. 교육대상은 중학교 1~3학년생 중에서 모집한다. 기본과정에서는 IP-CEO로 성장하기 위한 기본지식(미래기술, 지식융합, 지식재산권, 기업가정신, 인문학 등)을 함양하는 한편 특허 출원 전반에 대한 요령을 습득하게 된다.

교육 프로그램은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강의 및 토론, 커뮤니티 활동과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협업교육과 멘토교육으로 구성된다. 협업교육은 조별 학습을 통해 협력성과 창조성을 신장하기 위한 것이다. 벤처기업가와 특허 전문 교수들이 참여하는 멘토교육도 중요한 교육과정이다. 특히 실제 기업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는 벤처기업가들은 학생들에게 기업가의 꿈을 불어넣는 동기부여자 역할을 한다. 2년차 심화과정에서는 기본과정과 커리큘럼의 틀이 비슷하지만 보다 수준 높은 교육을 실시한다.

허남영 교수는 “장래 희망이 공무원, 교수 등 안정지향적이었던 아이들이 IP-CEO 과정을 통해 멘토 기업가를 만나면서 인생 진로에 대해 진취적인 꿈을 꾸게 되는 변화가 일어난다”며 “그러면서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하고 실행력이나 도전정신도 고취되는 성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IP-CEO 과정은 1년에 특허 3개씩, 2년간 최소 6개의 특허를 출원하는 것을 이수기준으로 정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지식재산으로 무장한 기업인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를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다. 그 덕에 2012년까지 IP-CEO 과정에 들어온 학생들이 특허 출원을 한 건수만 1060여건에 달한다. 10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특허 출원뿐만이 아니다. 이수기준에는 사업계획서 작성도 포함된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직접 자신의 아이디어와 특허를 토대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검토하고 시장조사도 수행한다. 또 각종 발명대회나 창업경진대회 참가를 통해 자신이 갈고 닦은 실력을 객관적으로 비교·검증하는 기회도 갖는다.

놀라운 것은 IP-CEO 과정을 이수한 수료생 중에 벌써 창업이나 사업화에 나선 사례도 6건이나 있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민족사관고 2학년생인 김은엽 학생은 의료 종사자들이 주사기 바늘에 찔리는 사고를 막아주는 이른바 ‘안전디스크 주사기’를 발명해 특허를 출원한 데 이어 한 의료기기업체와 손잡고 제품화를 진행 중이다. 또 서울과학기술대 1학년에 재학 중인 김필권씨의 아이디어 사업도 눈길을 끈다. 그는 서울 곳곳의 동네상권에서 맛으로 소문난 빵집들이 간판제품으로 자랑하는 빵을 배달·유통하는 서비스를 하며 신바람을 내고 있다.

서울시는 창조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설립한 서울크리에이티브랩(SCL)을 통해 서울의 도시사회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는 창조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설립한 서울크리에이티브랩(SCL)을 통해 서울의 도시사회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과정

도시사회 문제 창조적 해결하는 전문인력 배출
서울시는 2012년 서울크리에이티브랩(SCL·Seoul Creative Lab)이라는 산하 연구소를 설립했다. SCL은 지식기반 시대에 창조성과 융합을 바탕으로 도시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산업 및 직업군을 창출하기 위한 창조전문인력 양성사업의 일환으로 문을 열었다. 서울시가 운영하지만 전문가, 시민, 기업, 연구소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고 협력하는 오픈플랫폼 형태의 연구소다.

SCL의 핵심사업 중 하나가 ‘커뮤니티 크리에이터(Community Creator)’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다양한 분야의 젊은이들을 선발해 도시사회 문제 학습, 창의성 개발, 팀별 프로젝트 수행 등을 통해 서울의 사회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재로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 소재 고교 졸업자, 대학생,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선발하며 3개월 이상의 교육을 진행한다.

지난해 11월 개설된 1기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과정을 통해 37명이 창조전문인력으로 거듭났고, 지난 5월에는 2기 과정이 시작됐다. 현재 1기 수료생들은 각종 기관이나 기업들과 함께 교육과정에서 도출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거나 현장 적용을 시도하고 있다.

커뮤니티 크리에이터 과정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로 이뤄진 SCL 멘토단이 힘을 싣고 있다. 멘토단은 교육생들이 팀 프로젝트 수행 중에 생각해낸 아이디어의 현실 적합성을 점검하고 조언하는 등 자문 역할을 수행한다. SCL은 교육생의 아이디어가 우수하고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창업 지원도 한다는 방침이다.

1기 과정에서 인적자원과 유휴공간 공유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한 허브팝(Hub Pop)팀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팀의 최초 아이디어는 사회적기업 활성화 추세에 맞춰 인적자원 활용 플랫폼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수 차례의 토론과 연구, 현장조사 및 이해관계자 면담을 통해 아이디어는 한 가지 사업 구상으로 구체화됐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치여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한 동네 영세 카페와 지역 소재 예술대 학생들을 연계해 주민 문화센터로 활용하자는 게 요지다. 다시 말해 카페는 예술대 학생들에게 연습공간 및 음료를 제공하고, 학생들은 그곳에서 지역주민들에게 교양예술을 교습하며, 주민들은 카페에서 음료를 구입하고 홍보하는 식으로 3자가 모두 이익을 얻는 사업 모델을 도출한 것이다.

조병완 SCL 소장(한양대 교수)은 “SCL은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창의적 인재 양성의 토대를 닦는 것이 목표”라며 “커뮤니티 크리에이터들이 우리 사회의 작은 문제부터 창조적으로 해결해 나가다 보면 더 큰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