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는 국내에서 창조경제를 가장 먼저 주목한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훨씬 전인 2009년부터 ‘창조경제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창조경제에 천착해왔다. 최근에는 이 연구회를 사단법인으로 전환해 창조경제 정책 제안을 하는 민간 싱크탱크로 발돋움시켜 나가고 있다. 그를 만나 창조경제 구현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인재 양성에 관한 견해를 들어봤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과연 성공적인가? 이런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사람은 아마 교육계 내부에도 적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민화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의 공교육이 썩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과거 산업화 시대는 모방경제이자 효율경제였습니다.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가기 위해서는 ‘성실한 인재’를 길러야 했어요.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 전략에 맞게 교육제도가 최적화됐던 거죠. 하지만 시대적 패러다임이 창조경제로 바뀌고 있습니다. 모방경제, 효율경제에 최적화된 인재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창조경제를 떠받칠 창조인재는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요컨대 ‘창조교육’의 요체는 무엇이어야 할까. 이 교수는 ‘적게 가르치고 많이 배우는 것(Less Teaching, More Learning)’이 교육의 기본방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칭(Teaching)은 교사가 정답을 가르치는 것이죠. 반면 러닝(Learning)은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찾는 겁니다. 자기주도 학습이라고도 하죠. 창조경제 시대에는 문제를 찾을 줄 아는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육과는 반대로 가는 거죠. 기존 교육은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구하는 것이지만 창조교육은 문제를 찾는 교육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정답 아닌 문제 찾도록 하는 게 창조교육
우리 공교육은 초등학교부터 정답 찾기만을 가르치고 있다. 시험에서 정답을 많이 찾는 학생만이 우수한 성적을 받게 된다. 최종 목표는 대학 입시를 무난히 통과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답 위주의 대학 입시가 모든 교육을 망치고 있어요. 지금의 대학 입시는 창의적인 인재가 아니라 정답을 잘 찾아내는 기계를 만들어냅니다. 요즘 시대는 인터넷에 물어보면 답이 다 있어요. 답이 있는 문제를 공부한다는 것은 노래방에 가면 가사가 다 나오는데도 그걸 다 외우는 것과 마찬가지죠. 인터넷 때문에 ‘콘텐츠’ 교육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어요. 인터넷에 들어가면 모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걸 하나 더 안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콘텐츠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 자체가 이제 불가능합니다.”

이 교수는 창조인재를 키워내려면 티칭에서 러닝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듯이, 콘텐츠(내용) 교육에서 컨텍스트(맥락)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맥락과 관계를 파악해낼 줄 알면 다른 문제에 부닥쳐도 능히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2010년 카이스트 IP영재기업인교육원 ‘IP(Intellectual Property)-CEO 과정’을 개설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IP영재기업인교육원은 창의적 잠재력을 지닌 영재를 조기에 발굴해 지식재산을 창조하고 기업을 경영하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기관이다. 이 교수는 IP영재기업인교육원의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차세대 기업가를 육성하는 데 정성을 쏟고 있다.

“IP-CEO 과정에서는 ‘정답이 없는 교육’을 합니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문제가 평가방법이에요. 정답이 있는 건 평가가 쉽지만 정답이 없는 건 평가가 어렵죠. 더욱이 정답이 없는 교육에서 학생들을 평가하면 학부모들이 그 결과를 쉽사리 수용하려 하지 않는 문제가 생깁니다. 주관적 평가라고 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고민 끝에 해법을 찾았습니다. ‘피어 리뷰(Peer Review: 동료평가)’가 그겁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상호평가를 하도록 한 거죠. 선생님은 단지 학생들의 상호평가에 편견이 개입했는지 여부만 따져봅니다.”

IP-CEO 과정에서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습 주제를 제시한다. 일반 학교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예를 들면 의료산업과 유람선여행을 결합한 ‘메디컬 크루즈(Medical Cruise)’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거기에 활용할 수 있는 각종 특허를 내고 사업계획서를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던지는 식이다. 이런 과제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타당성과 적합성이 있으면 모두 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학생들에게 주제로 제시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해답을 찾아가는 노력을 하게 되죠. 그 과정에서 굉장한 사고력 훈련이 됩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중학생들이 고등학생들보다 오히려 더 나은 결과물을 내는 경우가 많더라는 겁니다. 그건 고등학생 정도 되면 정답을 찾는 교육에 익숙해진 탓에 창조성이 억압돼 있기 때문이죠. 중학생은 상대적으로 정답 찾기의 틀 속에 덜 갇혀 있어 창조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겁니다.”

차세대 영재기업인 육성에 심혈 기울여
IP영재기업인교육원 IP-CEO 과정에서는 매년 전국적으로 80명의 교육생을 선발해 교육하고 있다. 방학은 물론 학기 중에도 여러 차례 학습캠프를 열어 ‘협업교육’을 실시한다. 협업교육을 하는 것은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협동과정에서 더 큰 창조성이 나온다는 판단에서다.

“아이들이 서너 명씩 팀을 이뤄 과제를 풀어가는데 다들 너무 재미있어 합니다. 어쩌다 사정이 있어 교육이 연기되면 항의가 빗발쳐요. 왜 수업을 안 하냐고요(웃음). 창조성 수업은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스스로 흥미를 느껴 밤새워서라도 문제를 풀게 돼요.”

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창조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사회풍토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아이디어나 이야기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교육은 한마디로 ‘또라이’ 교육입니다. 언뜻 봐서 바보 같은 이야기나 쓰레기 같은 이야기를 해도 그 가치를 인정하는 데서 창조교육이 출발한다는 뜻입니다. 창조경제 사례로 꼽히는 미국이나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이 바로 그겁니다. 에디슨은 ‘한 무더기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 꽃피는 것이 발명’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사회도 그 말을 깊이 음미해볼 일입니다.”

▒ 이민화 교수는…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한국 벤처의 대부로 불린다. 초음파 영상 진단기 업체 메디슨의 설립자로 한때 가장 주목받는 벤처기업인이었다. 벤처기업협회 초대 회장을 맡아 코스닥 설립과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을 주도했으며 현재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한국디지털병원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사)유라시안네트워크 이사장, 카이스트 교수로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창조경제의 개념과 방향, 전략 등을 집대성한 <창조경제>(왼쪽 사진)를 출간하는 등 ‘창조경제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