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만 하는 1차 산업으로서의 농업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하지만 생산(1차), 제조·가공(2차)에다 관광·체험(3차)을 융합시키면 희망이 생긴다. 최근 시도되고 있는 ‘6차 산업화’가 그것이다. 6차 산업화는 1, 2, 3을 더하거나 곱하거나 모두 6이 나오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1차 산업, 2차 산업, 3차 산업을 융합한다는 의미다. 이에 <이코노미조선>은 농촌진흥청과 함께 6차 산업화의 기본 방향과 성공사례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경기 이천시 율면에는 특이한 농장과 박물관이 있다. 국내 유일의, 전 세계적으로는 두 번째인 돼지박물관이 그곳이다. 박물관의 이름이 재미있다. ‘돼지 보러 오면 돼지’다. 돼지를 주제로 한 교육과 체험이 동시에 이뤄지는 이른바 에듀팜농장이다. 에듀팜농장은 유아, 초·중·고교 등 학교 교과과정과 연계해 조성된 현장 체험학습장이다.

돼지 인공수정사인 이종영 촌장(47)이 지난 2011년 11월 설립한 이곳에서는 돼지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다. 돼지와 관련된 도자기나 미술품을 보고, 돼지 공연을 관람한 뒤 소시지를 만들고, 돼지를 품에 안거나 먹이를 주는 이색 체험이 가능하다. 1만~2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공연 관람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박물관 개관 이후 지금까지 다녀간 방문객은 6만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5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297㎡(90평) 규모의 돼지박물관 전시실에는 돼지를 주제로 한 도자기와 미술품이 가득하다. 이종영 촌장이 그동안 전 세계 19개국에서 수집한 돼지 인형과 미술품 등 5000여점 중 돼지저금통 3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돼지박물관 전시실에는 돼지를 주제로 한 도자기와 미술품이 가득하다.
돼지박물관 전시실에는 돼지를 주제로 한 도자기와 미술품이 가득하다.

전시도 보고 각종 체험 가능
돼지박물관 옆으로는 편백나무 등 녹지시설과 생태하천, 야외학습장, 돼지관찰시설, 생태연못이 있는 4620㎡(1400평) 규모의 치유정원이 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 박물관 앞 건물에는 체험장과 돼지공연장, 카페, 식당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돼지 공연이다. 공연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살균·소독을 위해 방역기를 통과해야 한다. 공연장은 U자형으로, 80여명이 한 번에 관람할 수 있다. 낮은 울타리로 객석과 무대가 구분되는데 바로 눈앞에서 미니 돼지가 펼치는 공연을 볼 수 있다. 무대에 오른 미니 돼지는 총 5마리로 모두 한 가지씩의 재주를 가지고 있다. 돼지들은 사육사가 멀리 던진 공을 물어오거나, 볼링핀을 쓰러뜨리거나, 장애물을 피해 골대에 골을 넣어 관람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촌장은 “돼지의 IQ는 75~85 정도로 3~4살 아이의 지능과 맞먹는다”며 “이곳에 태어나고 자란 돼지 중 똑똑한 돼지를 골라 훈련을 시킨다”고 말했다.

약 40분간 진행되는 돼지 공연을 본 관람객들은 한결같이 “돼지가 이렇게 똑똑한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밖으로 나오면 나무 데크에서 20여마리 돼지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가슴에 품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소시지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단지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시지의 역사를 배우고, 그동안 소시지에 대해 잘못 알았던 오해를 풀 수 있는 교육시간이다. 체험이 끝나면 이곳에서 만든 소시지와 돼지 바비큐, 제철 채소 반찬으로 구내식당에서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한다.

방문객인 이덕능씨는 “더럽고 지저분한 줄로만 알았던 돼지가 이렇게 똑똑하고 귀여운지 몰랐다”며 “특히 돼지를 자주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이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종영 촌장은 소위 ‘돼지에 미친 사람’이다.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하고 1996년 돼지인공수정센터를 창업한 이후 19개국을 돌며 5000여점의 돼지 관련 수집품을 모았다.

돼지는 미련하고 지저분하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경기 이천에 돼지박물관을 설립했다는 이종영 촌장은 향후 농산물 직판장을 세워 주변 농가의 소득증진을 돕겠다고 말했다.
돼지는 미련하고 지저분하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경기 이천에 돼지박물관을 설립했다는 이종영 촌장은 향후 농산물 직판장을 세워 주변 농가의 소득증진을 돕겠다고 말했다.

돼지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풀고 싶어
인공수정을 위한 씨돼지를 구하기 위해 방문한 일본이나 유럽의 농장에서 그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농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쾌적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아이들을 위한 돼지 체험농장도 있었다. 이것이 체험교육농장과 박물관을 짓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사람들은 돼지를 미련하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돼지는 자신이 대소변을 본 곳에는 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똑똑한 동물입니다. 돼지가 더럽다는 선입견은 식육용으로 좁은 공간에서 사육하면서 생긴 오해들이죠. 이런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고 싶었어요.”

차근차근 준비를 해오던 그가 체험교육농장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지난 2010년부터다. 우연찮게 알게 된 이천시농업기술센터의 농촌관광아카데미 교육과정을 통해서였다. 농촌 관광과 마케팅 등에는 문외한이었던 그에게 교육과정은 큰 힘이 됐다. 일본 등지의 돼지 체험농장을 방문해 벤치마킹도 했다.

3년간의 준비 끝에 그가 돼지박물관과 체험교육농장을 만들겠다고 나서자 주변에선 모두 만류했다. 누가 돼지를 보러 오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성공을 자신했다.

인공수정용 씨돼지를 키우던 돈사(豚舍)를 경기 여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지금의 체험농장과 박물관을 세웠다.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돼지를 관찰하고, 돼지의 습성을 보면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 반응은 생각보다 빨랐다. 입소문이 나면서 방문객들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일주일 동안 1800여명이 농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의 농장은 지역경제에도 상당한 보탬이 되고 있다. 방문객들이 돼지농장 주변의 농촌테마마을 등을 방문하면서 인근 마을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또 주말에는 인근 주민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 촌장은 “농산물 직판장을 세워 주변 농가의 소득 증진을 돕고 향후에는 인근 주민들과 함께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레스토랑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농업을 지역 특성에 맞는 농산물의 생산과 가공, 체험관광이 결합된 6차 산업으로 육성하면 소득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도 농가소득 향상을 위해 농산물의 생산·가공에 체험·관광 융합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천시는 2011년 농업인을 중심으로 ‘이천농촌나드리’를 설립해 농촌관광산업 활성화에 나섰다. 이천농촌나드리는 가족이나 단체 등이 이천 지역에서 체험을 희망할 경우 체험의 종류, 체류기간, 비용 등을 감안해 맞춤 체험 프로그램을 안내해 준다.

(왼) 돼지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다. (오) 한 가족이 소시지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왼) 돼지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사진 촬영도 할 수 있다. (오) 한 가족이 소시지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농업의 활로 모색하려는 새 시도, 6차 산업화
지난해 이천농촌나드리를 통해 이천을 다녀간 체험관광객은 전년 대비 270% 늘어난 15만4000여명에 달한다. 소득도 181% 늘어난 20억9000여만원을 올려 이천농촌나드리가 농촌체험관광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천농촌나드리에는 체험마을 5개소, 교육농장 5개소, 체험농장 17개소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돼지 박물관을 비롯해 도자기와 양봉체험을 할 수 있는 대광도요, 모내기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물댄마을 등이 유명하다.

연규철 이천시농업기술센터 농촌관광팀장은 “체험관광을 할 수 있는 지역을 더욱 확대하고 마을 주민들의 참여 기회도 계속 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천시 외에도 한 해에 7만명의 체험관광객을 끌어 모아 17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전북 임실치즈마을, 얼음축제 등으로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충남 청양 알프스마을도 농업의 6차 산업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농업의 6차 산업화는 농산물 생산(1차 산업)을 바탕으로 제조·가공(2차), 체험·관광(3차) 등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말한다. 한마디로 농어촌 자원으로 농업의 새로운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농업의 활로를 모색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농업인구의 감소 및 고령화와 무관치 않다. 지난 1970년 1442만명이었던 농촌인구는 지난 2011년 296만명으로 대폭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60세 이상 인구는 7.9%에서 44.1%로 증가했다.

농가 소득도 지속적으로 줄었다. 농업소득 비중은 지난 1980년 65.2%에서 2011년 29%로 크게 낮아졌다. 도시근로자 대비 농가소득 격차도 1980년 95.9%에서 2011년 59.1%로 더욱 벌어졌다.

농촌진흥청이 농업의 6차 산업화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시장 개방 확대와 고령화 등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에 따라 농진청은 최근 20여명으로 구성된 6차 산업화 TF팀을 꾸렸다. 이 팀은 총괄지원반·연구개발반·사업추진반으로 구성돼 중장기 전략과 세부 로드맵뿐 아니라 인력교육과 기술 정보 등 전반적인 지원을 하게 된다. 특히 가공·상품화·창업 등을 종합 지원하는 지역 거점 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농촌의 6차 산업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의 육성과 함께 영세한 소규모 경영체에 맞는 유통·마케팅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비즈니스 마인드로 강하게 무장하고, 시장에서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6차 산업화는 농업인이 스스로 농산물을 원료로 해 사업을 다각화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지역 기반의 유·무형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 농촌에는 오랜 역사를 통해 전해 내려오는 지역의 특색 있는 전통이나 제조 기술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이병오 강원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농촌이나 지역의 특색을 갖춘 상품이 더 가치 있고 매력적인 것이 된다”며 “6차 산업화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농촌의 공동체 기능을 복원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