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최우선 국정목표인 ‘창조경제’가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다. 그럼에도 세간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도대체 어떤 정책을 펼쳐나갈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12일 디지털방송 솔루션업체 알티캐스트를 방문해 아이패드로 스마트 셋톱박스를 조작해보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의 알티캐스트 방문은 창조경제와 관련한 첫 번째 현장방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12일 디지털방송 솔루션업체 알티캐스트를 방문해 아이패드로 스마트 셋톱박스를 조작해보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의 알티캐스트 방문은 창조경제와 관련한 첫 번째 현장방문이었다.

새 정부 창조경제 정책 밑그림

‘창조경제 7대 실천전략’
IT융합·창업촉진이 양대 골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12일 디지털방송 솔루션 분야에서 국내 1위 업체인 알티캐스트를 방문해 창조경제 추진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제가 구상한 창조경제는 정보기술(IT)과 산업의 융합,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새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 정책의 얼개는 대략적으로 나와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 기간에 새누리당이 창조경제 공약을 내세우며 제시한 ‘창조경제 7대 실천전략’이 단서다. 여기에는 창조경제 정책의 방향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창조경제 구현의 핵심 기반은 과학기술이다. 새 정부는 사람이 주체가 되고 기술개발의 혜택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른바 ‘국민행복기술’로 ‘사람 중심의 성장’을 추진해나간다는 것이다.

그 핵심에는 IT가 자리를 잡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IT기술을 산업 전반에 적용·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IT를 바탕으로 농·어업 고부가가치화, 제조업 경쟁력 제고는 물론 서비스업 분야에서도 신(新) 서비스, 신 시장, 신 일자리를 적극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IT강국이라고 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는 그다지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이 불균형 상태인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해나가기 위해 새 정부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해나갈 계획이다.

소프트웨어산업 집중 육성 계획 눈길

우선 응용 소프트웨어 육성 및 활성화를 위해 공공 부문과 대기업의 개별 소프트웨어 상품 구매를 적극 장려할 방침이다. 또 ‘오픈소스(Open Source)’ 기업을 사회적기업으로 육성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오픈소스란 소프트웨어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소스코드를 인터넷 등을 통해 무상 공개해 누구든 개량과 재배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소프트웨어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콘텐츠 업체로 이뤄지는 ‘생태계 기업군’ 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도 시선을 모은다. 예를 들어 애플 아이폰 등장 이후 스마트폰 운영체제, 단말기, 애플리케이션을 중심으로 새로운 거대시장이 형성된 것처럼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도 하드웨어, 콘텐츠 산업과 연계해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창조경제 실천전략의 또 다른 중핵은 창업 활성화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적극적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창업 생태계가 구축된 ‘창업국가 코리아’의 청사진을 실현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창업국가 코리아’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과학기술이 결합한 창업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나라의 비전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창조적 중소기업이 꽃을 피우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창업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도 다양하게 추진될 예정이다. 먼저 전국 대학에 창업기지를 건설하는 한편 창업연구실을 운영하면서 청년 기업가를 집중 양성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융합형 인재들을 육성해 창업의 길로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콘텐츠 분야 창업·실버 창업 적극 지원

나아가 창업 단계별로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사회 전반의 창업 열기를 북돋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창업 촉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을 감안해 이른바 ‘패자부활’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엔젤투자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금융지원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지식재산권 제도를 개선해 창조적 인재들을 적극 보호·육성하기로 했다.

콘텐츠 분야의 창업도 적극 활성화시켜 나갈 예정이다. 창의성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예비 창업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일환으로 ‘콘텐츠 펀드’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고학력의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시대를 맞아 실버 창업을 독려하기 위한 제도도 마련된다.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막 은퇴한 경영 및 기술 분야 전문인력의 창업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실버창업교육센터’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펼쳐 나가기로 했다. 우선 벤처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도울 예정이다. 또한 해외 벤처캐피털을 국내에 유치해 벤처업계 자금 숨통을 터주기로 했다.

청년층의 해외 취업 기회도 대폭 확대해 나간다. 국내 일자리 창출이 제한적인 점을 감안해 세계 각국의 인력채용 시장을 파고든다는 복안이다. 해외 취업에 장려금을 주는 제도 도입도 검토된다.

이른바 스펙을 초월한 인재양성 시스템도 마련된다. 열정과 잠재력을 갖춘 청년을 선발해 해외 명망가들과 멘토링으로 연결시켜 글로벌 인재로 키워 나간다는 구상도 관심을 끈다.

정부의 창조적 전환도 추진된다. 이른바 개방과 공유를 통한 ‘창조정부’를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정부가 먼저 창조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민간 부문을 지원하거나 견인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창조정부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윤곽도 드러나 있다. 우선 공공정보의 체계적 수집과 전면적 개방을 바탕으로 민간 부문의 창의와 활력을 접목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창조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을 정부가 맡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가 클라우드 컴퓨팅 센터를 설립해 지식정보의 체계적 분류 및 과학적 분석을 도모하고 빅 데이터 분석 기반의 미래예측 활동을 지원한다는 계획도 관심을 모은다. 나아가 지식정보산업 진흥을 통해 더욱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창조경제의 현실적 걸림돌

칸막이식 규제·창의성 꺾는 풍토가 문제

우리나라는 과연 창조경제를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일까. 현실적으로 법·제도·관행 측면에서 창조경제에 걸림돌이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그간의 방송통신 융합 정책에 대해 “규제 따로, 진흥 따로”라고 꼬집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LED솔루션업체 A사는 2011년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했다. LED조명등에 IT기술과 태양광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보안등이었다. 하지만 제품 시판을 하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았다. 해당 부처 담당자가 기존 법령을 근거로 제품 형식 인가를 질질 끌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2000년대 중반 휴대폰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원격진료기기(당뇨폰)를 개발했지만 끝내 출시하지 못했다. 인허가 부처끼리 통신기기냐 의료기기냐를 두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통에 상용화를 포기한 것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직원들이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직원들이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지식정보사회가 진전될수록 칸막이식 영역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융합을 선도하는 국가와 기업이 미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는 2011년 ‘산업융합촉진법’을 제정·공포했다. 기존 법·제도가 융합 신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하지만 융합기술·제품의 원활한 상용화를 위해서는 제도적 환경이 더욱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IT산업은 왜 하드웨어에 비해 소프트웨어가 약할까. 소프트웨어 업계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안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PC 사용자들은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서 쓰는 경우가 많지 않다. 불법복제가 관행처럼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일반 사용자만 그런 게 아니다. 기업, 기관, 단체들도 정품 소프트웨어 구매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한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그런데 대기업 외주를 받으면 종속적 도급관계에 묶이고 보수도 인건비 수준밖에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소프트웨어 업계가 발전할 수 있는 토양 자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신설로 창조경제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하지만 미래부 출범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광범위한 분야를 관장하고 막대한 예산배분권을 행사할 미래부가 비효율적인 ‘공룡부처’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 소장은 “정부 출연 연구소는 상명하복 구조가 뿌리내리고 있다. 창조적인 연구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관(官) 주도의 과학기술 혁신은 불가능하다. 또한 공무원들의 창조·융합 마인드가 없이는 창조경제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창업 활성화를 이루는 데도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진단이다. 엔젤투자 문화 정착,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 분위기 조성, 특허 등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등을 통해 젊은 창업자들을 인큐베이팅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창조경제 이렇게 가자

창조경제의 두 가지 열쇠
‘교육 개혁’과 ‘창업 인프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또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과거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은 일정한 성과를 낳은 적이 있다. 하지만 21세기 경제 패러다임은 정부가
통제하고 주도하기에는 너무 역동적이다. 전문가들로부터 창조경제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단순한 IT융합보다
‘현상파괴적 기술’ 개발해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무엇보다 IT융합이 핵심이다. IT를 통해 전통산업의 스마트화를 이룬다는 게 요지다. 문제는 IT기술로 산업 고도화가 되면 전통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고급 일자리는 일정 부분 늘어날 수 있겠지만 결국 능력 있는 소수만 먹고 사는 경제로 갈 공산이 크다. 창조경제가 목표로 하는 일자리 창출과는 정반대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근혜노믹스의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IT융합의 역설을 충분히 숙지하고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사실 지난 10여년간 융합은 산업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였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IT융합을 통해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IT융합이 새로운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기업들은 산업융합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IT융합의 답은 나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창조경제를 통해 IT융합을 추진한다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IT와 기존 산업의 융합이 아닌 다른 무언가와의 융합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2025년 미국을 먹여 살릴 ‘현상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 시장을 완전히 재편하는 와해성 혁신기술)’ 6가지를 담은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읽은 이 보고서가 제시한 미래 기술은 생물노화 관련기술, 에너지 저장 소재, 생물연료 및 생물기반 화학, 청정석탄 기술, 서비스 로봇, 만물 인터넷 등이다.

이 기술들의 공통점은 모두 융합기술이라는 점이다. 우리 정부도 NIC 보고서에서 창조경제의 정책 방향에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창조경제의 주력산업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정부의 몫이다. 정부가 ‘창조경제 아이템’을 잘 선택해 육성한다면 우리나라 미래 성장동력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과욕은 금물이다. 전례를 보면 정부가 주도하는 혁신은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IT를 전통산업의
새로운 가치창출 증폭기로 써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일자리 창출이 궁극적 목표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산업구조 재편과 혁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통산업의 혁신은 기계가 인력을 대체하는 혁신이었다. 다시 말해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혁신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IT, 소프트웨어, 콘텐츠 산업을 육성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삼성테크윈 R&D센터에서 연구원들이 이동형 감시경계로봇(STAR)을 테스트하고 있다.
삼성테크윈 R&D센터에서 연구원들이 이동형 감시경계로봇(STAR)을 테스트하고 있다.

즉 IT를 통해 전통산업에 새로운 가치창출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IT를 ‘가치창출의 증폭기’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농업이나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IT를 잘만 융합하면 얼마든지 시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애플 아이튠즈와 음악시장의 상관관계를 보면 그런 전망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아이튠즈는 디지털음원 시장을 대폭 키운 주역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음악 시장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12년을 기점으로 전체 음악 시장이 성장세로 반전됐다. 아이튠즈가 음악 소비를 지속적으로 늘려온 결과 음악 시장의 규모를 키운 것이다.

스마트폰은 IT를 통한 가치창출 증폭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 시대 개막으로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라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됐고, 결국 수많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IT 활용 전략에 대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단지 비용감소나 경영효율화라는 관점이 아니라 추가적인 가치창출로 시선을 돌리자는 것이다. 상생의 생태계 철학으로 IT융합을 활용한다면 IT는 전통산업과 기존 비즈니스의 혁신 및 진화를 통한 가치창출의 증폭엔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부문 선택과 집중보다
골고루 씨앗 뿌려야

창조경제는 보는 시각에 따라 개념이 달라진다. 따라서 정부가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창조경제는 결국 시장에서 성과물이 나오는 법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식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창의성 발현을 통한 창조경제는 무엇보다 인프라가 중요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창조경제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정부는 싸이 같은 인재가 자기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끼를 발휘하고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사회 인프라를 갖춰주는 게 필요하다. 문화예술 분야든 과학기술 분야든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지원은 몇 조원을 쏟아 부어도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특허 몇 건, 논문 몇 편 식으로 양적인 목표관리를 하다 보니 실제 산업화나 상용화로 이어지는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창조경제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에는 국가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통해 철강, 자동차 등 몇몇 주력산업에 자원을 우선 배분했다. 하지만 21세기 경제는 워낙 복잡다기하고 역동적이기 때문에 어느 분야가 낫거나 유망하다고 판단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직접 나서서 특정 부문에 자원을 집중하기보다 될성부른 부문에 골고루 씨앗을 뿌려두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특정 산업에 국가 예산을 대거 투입했다가 자칫 잘못되면 정책실패는 물론 심각한 자원낭비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사실 대기업은 연구개발 재원이 넉넉한 편이다. 그러기에 정부의 창조경제 예산은 주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 진흥에 방점을 찍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유망한 벤처나 중소기업에게 절실한 연구개발·장비확보 자금을 지원한다면 큰 효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지식경제 R&D성과 전시회’를 방문한 어린이들이 T-50 고등훈련기 모형 앞에서 즐거워하고 있다. 창조경제는 교육개혁을 통한 창조적 인재 양성이 대전제라는 지적이다(왼쪽). 지난해 개최된 ‘나노 코리아 2012’ 행사에서 관람객들이 신기술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나노융합기술은 미래 성장동력을 이끌 핵심 신기술로 꼽힌다.
‘지식경제 R&D성과 전시회’를 방문한 어린이들이 T-50 고등훈련기 모형 앞에서 즐거워하고 있다. 창조경제는 교육개혁을 통한 창조적 인재 양성이 대전제라는 지적이다(왼쪽). 지난해 개최된 ‘나노 코리아 2012’ 행사에서 관람객들이 신기술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나노융합기술은 미래 성장동력을 이끌 핵심 신기술로 꼽힌다.


개인의 아이디어 중시하는
교육개혁 선행돼야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가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부지런하게 손발(노동력)을 움직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뇌(창의력과 상상력)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방법은 이제 중국 등 노동력이 풍부한 신흥국 등장으로 써먹을 수 없게 됐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경제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최고의 벤치마킹 모델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우리보다 국토도 좁고 자원도 더 빈약하지만 창조경제를 너무 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강수량이 극히 부족하다 보니 세계 최고의 물 관리 기술을 개발해냈다. 또 주변 국가와 달리 석유가 안 나는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전기자동차를 적극 보급하고 있다.

창조경제를 구현하려면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인재를 길러내려면 결국 교육체제가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교육방식은 개인들의 ‘아이디어’ 향상을 목표로 한다. 수업시간에는 ‘토론과 질문’을 중시한다. 토론과 질문은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공유하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우리나라도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육체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창조경제는 불가능하다.

창조경제는 ‘창업경제’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창업은 세상에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인구는 적지만 창업 열기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뛰어난 인재들이 거침없이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데는 물론 사회적 배경이 있다. 그 핵심은 ‘후츠파(Chutzpah)’, ‘탈피오트(Talpiot)’, ‘요즈마(Yozma)’로 요약된다.

후츠파는 당돌함 혹은 대담함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한마디로 도전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인에게는 일종의 정신문화다. 탈피오트는 이스라엘군이 운영하는 엘리트 부대를 말한다. 인재들이 군 복무 중에도 적성에 맞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어 제대 후 벤처기업 창업으로 연결된다. 요즈마는 이스라엘 정부 주도로 설립된 벤처캐피털이다. 현재는 운영 주체가 민간으로 넘어갔다. 요즈마는 아이디어와 기술만으로 창업하는 벤처기업에게 든든한 자금줄이 돼 주고 있다.


대기업·벤처기업 상생하는
혁신 생태계 구축해야

한국은 지금껏 선진국 기업을 따라가는 ‘모방경제’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제 모방경제는 한계에 부닥쳤다. 우리나라보다 더 잘 베끼는 중국의 부상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이 향후 5년 안에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추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만약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소니나 노키아처럼 추락한다면 국가경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참담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창조경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창조경제는 창조적 인재가 필요하다. 현재의 주입식·암기식 교육방식으로는 창조경제를 구현할 수 없다. 교육개혁이 안 되면 창조경제도 공염불로 돌아갈 것이다.

창조경제 실현에는 창업이 또 다른 핵심이다. 대기업은 비대하고 관료화된 조직 탓에 자체적인 혁신이 쉽지 않다. 기업 세계에서 창조는 결국 혁신이다. 중요한 것은 작고 혁신적인 기업이 창조를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대기업에게도 창조적 벤처기업의 존재는 도움이 된다.

미국 GE는 매년 작고 유망한 기업을 다수 인수합병(M&A)함으로써 혁신을 기하고 있다. 요컨대 자체 혁신이 어려운 대기업들이 벤처기업 M&A를 통해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의 사례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상부상조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건강한 창업 생태계 조성으로 창조적 벤처기업이 지속적으로 배출돼야 한다. 아울러 공정한 룰이 적용되는 벤처 M&A 시장도 만들어져야 한다. 이 시장을 통해 대기업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유망 벤처를 인수하는 한편 벤처기업은 매각 자금을 바탕으로 또 다른 창업에 도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창업하는 젊은이들에게
‘고기 잡는 법’ 가르쳐야

요즘 창업에 나서는 후배들을 보면 창업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창업한다니까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식이다. 막연한 생각만으로 워밍업도 하지 않은 채 바로 물에 뛰어든다면 결과는 뻔하다. 또 하나 걱정되는 것은 창업에 도전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뚜렷한 수익모델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하면 되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앱 개발자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창업을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다. 벤처기업이 많을수록 성공하는 사례도 수적으로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벤처기업의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제대로 된 창업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창업을 권장하기 전에 먼저 안정적인 창업 인프라를 갖춰줘야 한다.

벤처 창업이 활발해지려면 자금 수혈이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창업에 대한 훈련과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창업 실전 경험이 있는 선배 기업가들이 창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금 지원도 하는 벤처 생태계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비유하자면 단순히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식의 지원이 아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식으로 창업을 독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벤처기업의 성공확률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다.

성공한 벤처기업가는 ‘성공 DNA’를 갖고 있는 법이다. 그것을 주변과 나누고 증폭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울러 선배 벤처기업가와 후배 벤처기업가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력모델도 활성화해야 한다. 아무리 선배라도 후배에게 선의의 도움을 무한정 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