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40대 중후반 이후의 한국의 중장년층이라면 새벽부터 울려 퍼지는 새마을운동 노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70년대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었던 새마을운동이 40여년 만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제2 새마을운동을 지역사회 발전 모델과 일자리 창출의 대안으로서 조망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첫 번째로 해외에서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관심과 함께 오늘날 그 가치를 어떻게 재해석해야 하는지 살펴봤다.

새마을운동 노래가 해외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한국 내에서는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새마을운동이 해외 개발도상국에서 그 의미가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을 만큼 짧은 시간 내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국의 경제발전이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입장이 바뀐 것도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 1950년대 우리나라는 아프리카보다 더 가난했다. 당시 국제 사회로부터 127억달러라는 대외원조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은 2010년 초 선진국 원조클럽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의 정식회원국이 됐다.

1. 경기 성남 분당 새마을역사관을 찾은 외국인 새마을 지도자들이 한국의 새마을운동 전개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 새마을운동중앙회는 기존 새마을운동 정신에 새로운 개념을 접목한 ‘뉴 새마을운동’을 펼치고 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원들이 ‘성폭력ㆍ술폭력ㆍ학교폭력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3. 라오스는 옥수수 재배를 2모작에서 4모작으로 늘려 새마을운동 시범마을 1인당 소득이 580달러에서 2100달러로 증가했다.
1. 경기 성남 분당 새마을역사관을 찾은 외국인 새마을 지도자들이 한국의 새마을운동 전개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 새마을운동중앙회는 기존 새마을운동 정신에 새로운 개념을 접목한 ‘뉴 새마을운동’을 펼치고 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원들이 ‘성폭력ㆍ술폭력ㆍ학교폭력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3. 라오스는 옥수수 재배를 2모작에서 4모작으로 늘려 새마을운동 시범마을 1인당 소득이 580달러에서 2100달러로 증가했다.

새마을운동 세계 각국으로 전파
세계 석학을 비롯해 국제기구의 전문가들,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이 새마을운동을 주목하고 있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의 성공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것이 바로 새마을운동”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주민 리더십과 주민 조직이 만들어낸 정신혁명, 기술향상, 농업 생산성 향상 등을 높이 평가했다.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UNESCAP), 유엔 세계식량계획(UNWFP) 등 국제기구는 새마을운동을 개도국 빈곤 문제 해결 방안으로 도입하고 있다. 유엔은 빈곤퇴치 운동인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달성하기 위한 모델로 새마을운동을 정했다.

새마을운동은 현재 27개국에서 169개 사업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 103개국 5만여명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새마을운동 교육을 받고 갔다. 지난해 새마을운동 교육을 받은 외국인만 68개국 803명에 달한다. 현재 몽골, 라오스, 네팔,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새마을운동 사업이 활발하다. 몽골은 2004년부터 마을 단위로 도로포장, 마을회관 건립 등 환경개선사업과 양 목장 등 가축은행, 미싱 지원을 통한 가내 부업 등으로 소득증대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몽골새마을회에서 사막화 방지를 위해 ‘한 사람 한 나무 심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09년부터 새마을사업을 시작한 라오스는 옥수수 재배를 2모작에서 4모작으로 늘려 시범마을 1인당 소득이 580달러에서 2100달러로 증가했다. 네팔은 한국에서 지원받은 각종 씨앗으로 채소와 콩을 재배하고 염소은행을 통해 소득을 높여 나가고 있다.

아프리카 새마을운동 도입의 선도주자인 콩고는 내 농장 만들기, 내 집 만들기, 양어장 설치 운영 등으로 소득 향상 단계로 접어들었다. 우간다에서도 마을길 보수, 양계·양돈사업, 제빵공장 운영 등으로 마을 자립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 나가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도 마을진입로 포장, 마을회관 건립, 새마을농장 운영 등으로 자율적인 추진역량을 확보했다.

이러한 새마을운동의 세계화에 앞장선 곳이 새마을운동중앙회다. 1990년대 중반부터 새마을운동 해외보급 사업을 벌여 온 중앙회는 기존의 중국, 동남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중남미 등으로 활동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저개발국의 빈곤퇴치를 위한 새마을운동중앙회의 현지화 사업이 확산되자 정부도 공적개발원조(ODA)의 핵심 사업으로 새마을운동을 채택했다. ‘새마을운동 ODA’ 모델은 단순한 인적, 물적 지원을 넘어 동기를 부여하고 자립의지를 갖게 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설계됐다. 정부는 새마을운동 ODA를 우선 아시아(라오스), 아프리카(르완다)에 시범적으로 추진하고, 점차 확산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새마을운동 세계화에 적극 나섰다.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경상북도는 지난 2006년 새마을운동 세계화 기본 계획을 수립한 후 새마을운동 해외보급과 연수단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3월19일에는 아프리카 14개국 대사를 초청해 새마을운동 세계화에 대한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경영대학원 교수는 “새마을운동이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민간주도형의 개발 모델이라는 점에서 개발도상국의 현실에 잘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원조나 일시적인 구호활동보다는 이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의식개혁 등에 먼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소진광 가천대 행정학과 교수는 “개도국의 새마을운동은 현지 전문가와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실천해야지 한국 전문가나 봉사단의 일거리가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1.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에 제2 새마을운동을 접목할 계획이다. 지난 2011년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에 손을 대며 활짝 웃고 있다.2. 농협은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등 농촌지역과 농업인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최원병 회장이 농촌 다문화가족에게 희망송아지를 전달하고 있다.
1.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에 제2 새마을운동을 접목할 계획이다. 지난 2011년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에 손을 대며 활짝 웃고 있다.
2. 농협은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등 농촌지역과 농업인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최원병 회장이 농촌 다문화가족에게 희망송아지를 전달하고 있다.

창조경제에 제2 새마을운동 접목
그동안 국내에서도 새마을운동중앙회를 중심으로 새마을운동은 그 명맥을 이어왔다. 새마을운동중앙회는 근면·자조·협동이라는 기존 새마을운동 정신에 변화(Change)·도전(Challenge)·창조(Create)라는 ‘3C’ 개념을 접목시킨 ‘뉴 새마을운동’을 펼쳐왔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해 녹색생활을 실천하는 그린코리아운동, 성숙한 시민의식 함양 등을 통해 국격을 높이는 스마트코리아운동, 나눔 문화 확산을 통해 살맛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해피코리아운동, 새마을운동의 세계화인 글로벌코리아운동이 그것이다.

농협중앙회도 새마을운동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농촌 지역과 농업인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의료 소외지역 농업인에 대한 무료 진료활동이나 결혼이민 여성 등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 등이 이에 포함된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새로운 농촌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농협은 제2 새마을운동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농협이 지난 3월4일 농업인 복지서비스 확대와 농업·농촌 활력화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제2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농협은 올해 아프리카 등지에 농기계를 지원하는 등 새마을운동의 세계화에도 적극 동참한다는 계획이다.
새마을운동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각종 여론 조사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가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책’으로 꼽힌다. 한국 사회의 국민적 통합과 성장 동력이었다는 점에서다.

최근엔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에 제2 새마을운동을 접목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새마을운동의 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 이미 농수산식품부는 도시민의 재능기부 등을 통해 농어촌의 활력을 높이는 ‘함께하는 우리 농어촌운동’을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새마을운동 확산을 위해 국제협력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올해부터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구촌 새마을단원’(가칭)을 모집해 지구촌 곳곳에 새마을운동을 전수한다는 계획이다.

제2의 새마을운동은 양극화 해소와 경제민주화,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마을운동이 추진됐던 1970년대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 이론의 권위자로 꼽히는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새마을운동은 21세기 모든 분야에 걸쳐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에 부합한다”며 “새마을운동을 정치 편향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 개발과 의식개혁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전국적인 운동으로 추진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등 공동체적인 경제주체들을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새마을운동의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마을기업은 마을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을단위 기업이다. 780여 마을기업이 운영 중이다.

새마을운동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혹은 막연히 동경하기보다는 실용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필요하다.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개발시대의 새마을운동에서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다”며 “제2의 새마을운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나 다가오는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잘 살아 보세’만큼 국민을 결집시킬 만한 절실한 가치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Tip | 새마을운동의 변화

한국 농촌 재건에서 전 세계 농촌 개발 모델로 부상

1972년 3월 경북 청도군 운문면을 시찰하던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1972년 3월 경북 청도군 운문면을 시찰하던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1970년 4월2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방 순시에서 ‘농촌재건운동에 착수하기 위해 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마을 가꾸기 사업’을 제창했다.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통해 전국 3만5000여곳의 농어촌 마을 전체를 발전시켜 보자는 것이었다. 이것이 새마을운동의 계기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그는 매달 월간경제동향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새마을운동 성공사례를 발표하도록 했다. 또 면·리 단위까지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챙긴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새마을운동의 초점은 ‘가난’이었다. 특히 농촌의 빈곤이었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화 추진을 통한 개발 경제로 인해 도·농 간의 격차는 갈수록 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67년 농촌가구의 평균 소득은 도시가구의 60%에 불과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 4년 만에 농촌의 소득이 오히려 도시를 앞질렀다. 이로 인해 농촌의 가난을 몰아낸 새마을운동은 도시 지역과 공장 등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새마을운동이 농어촌을 넘어 도시로까지 확산되면서 국민의식개혁운동으로 승화됐다.

초기 새마을운동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던 1970년 25만원에 불과했던 농가 연평균 소득은 1979년 223만여원으로 급증했다.

정부 정책도 주효했다. 의식개혁과 경쟁체제가 선순환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 마을 단위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새마을연수원을 건립해 수많은 새마을지도자를 양성했다. 새마을연수원에 모인 지도자들은 성공사례를 공유했으며, 이는 못 사는 마을의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새마을지도자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의식이 전국 곳곳으로 퍼졌다.

정부는 새마을운동 성과가 뛰어난 마을을 A, B, C로 나누고, 보다 나은 성과를 거둔 마을에 우선 지원하는 차등 정책을 펼쳤다. 이는 마을 간의 경쟁을 유발시켜 농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다.

김준경 KDI 교수는 “잘 살아 보겠다고 스스로 돕는 사람만 돕겠다는 것이 박 전 대통령의 신념이었다”며 “이러한 자조정신은 오늘날 우리 사회운동에 좋은 시사점이 된다”고 평가했다.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새마을운동은 관 주도에서 민간주도형으로 바뀌게 된다.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이름을 바꾸고 정부 기구에서 민간 기구로 변신을 시도한다. 새마을운동중앙본부는 중앙 및 시·도·군·구 단위까지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췄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정치적 역할을 어느 정도 하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될 정도로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 ‘새마을비리’가 폭로되면서 새마을운동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이었던 4대 회장 전경환씨의 비리로 인해 새마을운동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1989년부터 본부는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로 개편하고 순수한 민간주도의 운동으로 새마을운동을 재추진했다. 1990년대 새마을운동은 목표를 ‘잘살기 운동’에서 ‘함께 잘살기 운동’으로 재정립하고 더욱 자율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1998년엔 ‘제2의 새마을운동’을 선언하기도 했다.

2000년 새마을운동중앙회로 명칭을 변경한 이후 비정부기구(NGO)로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다지고 있다. 유엔이 인정하는 NGO가 된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저개발 국가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하고 있으며, 지역사회 주민의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지역사회개발운동의 구심체로 평가받고 있다.

‘새마을운동기록물’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심사가 진행 중이다. 새마을사업 성공수기, 새마을교육 교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기획 초고와 연설문 등이 대상이다. 새마을운동중앙회와 함께 등재를 준비한 한도현 교수는 “새마을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