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주관한 ‘2012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66선’에 농촌진흥청 연구결과 10건이 선정돼 3년 연속 가장 많은 우수성과를 낸 기관으로 평가받았다.

정부는 국가연구개발 사업 중에서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높이고, 과학기술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2006년부터 매년 국가 연구·개발(R&D) 우수성과를 선정해 왔다.

그동안 농촌진흥청은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선정이 시작된 이후 꾸준하게 성과를 도출해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7건, 2010년에는 11건, 2011년에는 10건이 선정된 바 있다. 올해에도 10건이 선정됨으로써 국가과학기술분야 발전과 미래가치 창조에 농촌진흥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대외적으로 입증받는 계기가 됐다. 특히 농진청은 2010년과 지난해에 이어 3년 연속 10건 이상이 선정된 유일한 정부기관이다.

이번에 선정된 농촌진흥청 우수성과는 생명·해양 분야에서 곤충으로부터 고기능성 항생물질의 분리 및 치료효과 규명, 한국형 바이오에너지 원료 ‘거대억새’와 증식기술 개발, 식물을 이용한 ‘실내 공기정화 토털시스템’ 개발, 개화가 빠른 국산 ‘난’ 품종개발, 기온상승 대비 사과품종 개발,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건강기능소재 개발 등 6건, 에너지·환경 분야에서 축산 폐유지를 이용한 ‘저온에서 굳지 않는 바이오디젤’ 생산기술 개발, 국내 최초 천연비료 ‘청풍보라’ 종자 생산기술 개발 등 2건, 기초 인프라 분야에서 돼지 유전체 지도 완성 및 유용 유전자 칩 개발, 젖소 개량지원시스템 구축으로 유전능력의 우수성 국제적 입증 등 2건이다.

농진청의 R&D 예산이 국가 전체 R&D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수성과에 선정된 비율은 15.2%로 적은 예산에도 더 뛰어난 연구 성과를 거둔 것이다.

허건양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장은 “농촌진흥청이 농업현장, 미래성장동력 창출과 기후변화 등에 따른 위기대응 연구를 강화한 결과”라며 “앞으로도 농업인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R&D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미래가치 창조에 농업의 역할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연구를 추진하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허 국장은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된 겨울에도 1180명의 농진청 연구원들은 한국 농업의 발전을 위해 ‘뜨거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며 “이들의 노력이 본격적인 무한경쟁체제에 들어선 우리 농업을 살리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에 선정된 기술에는 농진청의 담당 연구원의 수많은 애환이 담겨 있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 동안 연구에 매진한 결과물이다.

올해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로 선정된 기술 중 바이오 에너지용 거대억새는 연료펠릿, 바이오 에탄올, 바이오 원유 등 에너지화 생산 공정 연구와 상용화에 이용될 전망이다. 억새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가 원산지로 온대지역에서 자라는 식물 중 바이오매스 수량이 가장 많아 선진국에서도 주목하는 에너지 작물이다. 농진청에서 개발한 거대억새는 키가 4m, 줄기가 10㎜로 일반 억새보다 2배 이상 크고 굵다.

김미선 농촌진흥청 화훼과 박사는 19년 동안 국산 난 품종을 개발해 왔다. 거대억새와 고온에서도 착색이 잘 되는 국산 사과 품종인 홍로(원안).
김미선 농촌진흥청 화훼과 박사는 19년 동안 국산 난 품종을 개발해 왔다. 거대억새와 고온에서도 착색이 잘 되는 국산 사과 품종인 홍로(원안).

수많은 연구원의 애환 깃든 결과물

문윤호 농진청 바이오에너지작물센터 박사는 “2011년 6월 금강 하구에 거대억새 시범단지 10ha를 조성했는데, 30년 만의 폭우로 억새밭이 80시간 동안 잠겼다”며 “강물이 빠진 후 억새의 피해는 거의 없고, 잡초만 죽어버린 것을 보고 ‘역시 억새는 억세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데는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김미선 농진청 화훼과 박사는 19년 동안 국산 난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김 박사는 “육종을 처음 시작한 1993년, 5년 후에나 어떤 꽃이 필지 알 수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며 “개화기간의 단축과 종묘급속 생산기술을 통해 난 품종 개발기간을 16년에서 11년으로 5년 단축했다”고 말했다.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육종 과정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다. 김 박사의 회상이다 “1997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어요. 유리온실의 문을 열고, 팬을 아무리 돌려도 한낮에 40도가 넘는 날이 10일 이상 계속됐어요. 고온으로 인해 어린 난 묘목이 모두 병들고 죽어서 얼마나 허탈했는지 몰라요. 2007년 1월에는 품평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꽃이 얼어 평가를 제대로 못 받기도 했어요.”

이러한 역경을 거쳐 화훼과에서 개발한 국산 난 품종은 48개. 국산 품종의 점유율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2008년 0.3%에 불과하던 국산 품종은 지난해 4.8%로 증가했다. 농진청은 2015년까지 이를 10%까지 끌어 올린다는 목표다.

로열티 절감도 기대된다. 난 수출액은 연간 2000만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수출품종의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른 연간 로열티 지급액도 30억원에 육박한다. 김 박사는 “국산 난 재배를 확대해 국내 난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출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품종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일 사과시험장 박사는 미래 수요 예측을 통해 13개의 새로운 사과 품종을 개발, 보급한 ‘사과 전문가’다. 권 박사의 연구경력은 20년에 달한다. 그는 “사과 품종 개발은 시작 후 20년 정도 지나야 성과가 나온다”며 “한 번 연결고리가 끊기면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자 간 원활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하고, 엄청난 끈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 수요를 잘 예측하고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관광농원용 황색사과, 나들이 및 대량급식에 최적인 중과형(테니스공 정도의 크기) 사과, 도시락용 사과 등의 품종을 개발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그가 개발한 온난화 적응성 사과품종인 홍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사과가 착색이 안 될 것을 예상하고 고온에서 붉은색으로 착색이 잘 되도록 개발한 사과 품종이다. 중생종의 66%를 차지하고 있는 홍로의 보급효과는 942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축산 폐유지를 이용한 ‘저온에서 굳지 않는 바이오디젤’ 생산기술을 개발한 이영화 바이오에너지작물센터 박사팀은 농진청 내에서도 가장 고집스러운 연구팀으로 통한다. 그동안 버려지는 소·돼지 기름을 원료로 생산된 바이오디젤은 저온에서 굳어지기 때문에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부분의 바이오디젤이 식물성 기름을 원료로 사용했으며, 이마저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대량으로 발생되는 축산 폐유지의 잠재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이 박사팀이 고집스럽게 연구를 수행한 결과, 이 기술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이 박사는 “기존의 식물성 기름을 이용한 바이오디젤 생산은 수입 식량 작물을 이용했기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며 “우리나라에선 비식량 바이오디젤의 원료개발이 절실했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영화 박사가 소와 돼지기름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디젤 생산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영화 박사가 소와 돼지기름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디젤 생산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Mini Interview
| 허건양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장

“탄탄한 R&D 인프라 통해 종자전쟁에도 대비”

“농촌진흥청은 농업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실용적인 연구, 자유무역협정(FTA)과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등에 따른 위기대응과 미래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연구를 통해 우리 농업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의 R&D를 총괄하고 있는 허건양 연구정책국장은 “농진청의 존재 이유가 바로 농업 R&D”라며 “최근 이상기후와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한 식량위기 문제가 대두되면서 농업분야 R&D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그동안 좁은 국토에서 최대의 생산성을 실현하기 위한 신품종 개발뿐 아니라 농업 부산물의 새로운 가치와 미래 성장동력 발굴 등에 대한 연구에 주력해 왔다. 종자 및 재배기술을 통한 고품질의 안전한 농산물의 생산, 시설 현대화를 통한 에너지 절감 기술, 농식품 가공과 식의약 소재 개발 등 고부가가치 기술 개발을 통해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농업 R&D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이 걸립니다. 길어봐야 2~3년 정도 걸리는 제조업에 비해서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분야죠.”

허 국장은 “농진청은 미래 첨단 농업기술·농업현장 실용화 기술·농식품 안전관리 및 세계화 연구를 통해 동북아 농식품 R&D 허브로 발돋움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연구체계를 조직중심에서 목표(어젠다) 중심으로 전환해 기관·부서 간 공동연구를 활성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탄탄한 R&D 인프라를 활용해 미래 종자전쟁에도 대비하고 있다”며 “국산 품종 개발은 해외로 나가는 로열티 절감과 함께 종자주권을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