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월 25일 새벽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출근길 풍경. 사진 김문관 기자2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사진 현대자동차3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 사진 삼성전자4 인적이 드문 울산의 번화가. 사진 김문관 기자
1 2월 25일 새벽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출근길 풍경. 사진 김문관 기자
2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사진 현대자동차
3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 사진 삼성전자
4 인적이 드문 울산의 번화가. 사진 김문관 기자

“모두 우산을 치워주세요. 열화상 카메라로 체온을 측정하고 있습니다. 마스크 안 쓰신 분은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2월 25일 오전 6시 30분, 울산광역시 북구 현대자동차 공장 정문 앞. 추적추적 비가 내려 수십 명이 우산을 쓴 채 쏟아지듯 출근했다. 정문 앞 보안 요원들은 눈에 불을 켜고 모든 사람의 마스크 착용 여부와 체온을 확인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직원은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게이트 옆 고객접견실로 들어가 배포하는 마스크를 쓴 후 체온을 잰 뒤에야 출입할 수 있었다. 한 직원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공장 일부만 가동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파장이 더 커질까 봐 방역과 검문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완성차 1~5공장)은 약 495만㎡(150만 평) 규모로 3만여 명이 근무하는 대표적인 국내 완성차 생산 기지다. 이곳에서는 GV80, G90, 팰리세이드, 싼타페, 투싼, 아반떼, 포터 등이 생산된다. 컨베이어벨트식 생산 설비를 따라 줄지어 완성차를 제조하는 근무 특성상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감염 확산 가능성이 크다.

이 공장은 2월 4일부터 코로나19 진원지인 중국발(發) ‘와이어링 하네스(전선 뭉치)’ 수급 차질 등으로 완전 가동과 부분 가동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 노조에 따르면 울산 공장에서 신천지예수교(신천지) 관련자가 발견되는 등 이날 현재 6명이 자가격리 중인 상태였다.

철통 방역에도 불구하고 이 공장은 2월 26일 다시 일부 차종 생산이 한시적으로 중단됐다. 인근 경주에 있는 1차 협력업체 서진산업에서 코로나19로 직원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진 탓이다. 중국 공장이 아닌 국내 공장의 코로나19 타격으로 완성차 생산을 멈춘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월 21일 서진산업에서 지게차를 운전했던 40대 남성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망 후인 2월 22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서진산업은 임시 휴업을 결정했고, 현대차에 납품하던 부품들을 생산하지 못하게 됐다. 임시 휴업에 들어간 울산 4공장 42라인에 납품되는 서진산업의 부품은 포터 적재함에 사용되는 철판이다.

서진산업의 다른 공장이 울산 현대차 공장 인근에도 있다. 2월 25일 오전 9시쯤 찾아간 울산 서진산업 차륜(바퀴) 공장은 한창 가동 중이었지만, 정문에서 마스크를 쌓아두고 나눠주며 일일이 체온을 재는 등 방역이 한창이었다. 서진산업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직원이 사망한 경주 공장과 이 공장은 약 20㎞밖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매섭다. 한국은 2월 26일 확진자 1000명을 돌파하며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울산에서는 2월 25일 하루 동안에만 2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취재를 위해 이동하는 중에도 스마트폰 안전 안내 문자가 계속 울렸다.

울산에서 가장 번화한 삼산동 등 거리 곳곳은 행인을 찾아보기 힘든 유령도시를 방불케 했다. 2월 25일 저녁, 거리에서 만난 개인사업자 김광록(45)씨는 “삼산동의 상징 롯데백화점과 이 백화점 바로 뒤에 있는 유명 분식집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것으로 확인되는 등, 시민들 사이에 공포감이 커져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15년 경력의 택시기사 구모(60)씨는 “택시 운전을 시작한 이래 경기가 가장 안 좋다”며 “오늘 5시간째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손님은 단 한 명뿐이었다”라고 했다. 삼산동의 한 일식집에서 근무하는 요리사 노모(52)씨는 “코로나19 사태 후 매출이 70% 이상 감소했다”며 “저녁 시간에 거리를 다니는 사람이 확 줄었다”고 했다. 실제 피크타임인 저녁 식사 시간임에도 이날 이 식당에는 모든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인근 다른 식당 풍경도 이와 비슷했다.


삼성전자 흔들리자 지역 경제도 위축

경북 구미의 모습도 경남 울산과 별다르지 않았다. 2월 24일 오후 4시쯤 찾아간 삼성전자 경북 구미 사업장은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방역에 한창이었다. 이 사업장에서 일하던 무선사업부 소속 직원이 2월 22일 오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삼성전자는 해당 사업장을 2월 24일 오전까지 폐쇄하고, 확진자가 근무하는 층은 2월 25일까지 폐쇄해 방역에 나섰다. 사업장 대부분은 24일 오후 재가동됐다. 십여 명의 보안요원이 열화상 카메라를 지켜보며 모든 사람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날 오후 5시가 되자 본격적인 퇴근 물결이 시작됐다. 이 사업장은 유연근무제 시행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 수십 명의 직원이 스마트폰에 뜬 ‘구미시 네 번째 확진자 발생’ 안내 문자를 보며 걸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나온 대구로 오가는 통근버스는 아예 운행을 중단한 상태였다.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 한 관계자는 “대구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은 재택근무 또는 연차 휴가를 쓰게 해, 출근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은 국내에 판매되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곳이다. 삼성전자의 최신 폴더블폰 ‘갤럭시 Z 플립’과 3월 6일 정식 출시되는 ‘갤럭시 S20’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폐쇄 기간이 주말을 포함한 사흘 남짓에 불과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지에는 이른바 ‘가짜뉴스’도 퍼지고 있었다. 이 사업장 인근에 있는 도레이첨단소재(도레이새한) 공장에서도 신천지와 관련된 직원이 발견돼 셧다운에 돌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도레이새한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라고 잘라 말했다.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이 있는 인동은 신시가지로 불리는 번화가다. 그러나 상점가는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임시 휴업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A 식당 사장 이평균(33)씨는 “코로나19로 가동을 멈췄던 삼성전자 사업장이 재가동됐지만, 경기가 언제 살아날지 가늠이 안 되는 패닉 상태”라며 “당분간은 휴업하기로 했으며 폐업도 고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이 비슷한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이날 저녁 인동 일대와 구미역 인근 시내 번화가에서는 행인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구미역 바로 건너편에 있는 재래시장도 적막했다. 번화가 곳곳에는 가게 앞에 ‘상가 임대’ 문구를 써 붙인 폐업 점포가 있었다.


1 2월 24일 오후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 인근에 있는 폐업한 가게. 사진 김문관 기자2 열화상 카메라를 운용 중인 서울역 승강장. 사진 김문관 기자3 텅 빈 대구행 KTX 내부. 사진 김문관 기자4 코로나19로 휴업한 울산의 한 분식집. 사진 김문관 기자5 경북 구미시 SK실트론 사업장. 사진 김문관 기자6 구미역 앞 재래시장, 인적이 드물다. 사진 김문관 기자
1 2월 24일 오후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 인근에 있는 폐업한 가게. 사진 김문관 기자
2 열화상 카메라를 운용 중인 서울역 승강장. 사진 김문관 기자
3 텅 빈 대구행 KTX 내부. 사진 김문관 기자
4 코로나19로 휴업한 울산의 한 분식집. 사진 김문관 기자
5 경북 구미시 SK실트론 사업장. 사진 김문관 기자
6 구미역 앞 재래시장, 인적이 드물다. 사진 김문관 기자

재택근무 확산에 경기 위축 불 보듯

한국 제조업 핵심 지역들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 전반의 위축을 뜻한다. 통계청의 광업·제조업 조사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에 전체 제조업 사업체, 즉 공장의 30.8%가 자리 잡고 있다. 생산 금액은 34.1%에 달한다. 전체 공장의 35.5%, 생산액의 26.9%를 차지하는 경기도와 맞먹는 제조업 밀집 지대다.

특히 산업 중분류 기준으로 ‘조선·항공 등 운송장비’의 84.7%, ‘1차 금속’의 48.8%, ‘석유 정제’의 48.5%, ‘금속 가공 제품’의 44.3%, ‘자동차 및 트레일러’의 42.9%가 영남 지역에서 생산된다. 자동차·기계·조선·금속·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 밀집 지대라는 특성이 드러나는 숫자다.

감염 공포에 따른 지역 경기 위축도 문제다. 2월 24~25일 취재를 위해 이동한 서울역, 김천구미역, 울산역과 KTX 내부는 한산했다. 대구 동구에 거주하는 오모(50)씨는 “대형마트는 오전 11시만 되면 주요 품목이 매진돼 ‘쿠팡 알람’을 맞춰 놓고 온라인 주문을 챙기는 상황”이라며 “최근에는 배송에 걸리는 시간도 길어져 ‘이러다 라면만 먹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한다”고 했다.

특히 산업계 전반으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내수 경기 위축은 불 보듯 뻔한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삼성·LG그룹·SK그룹·한화그룹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2월 25일부터 일제히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회원사(기업)에 감염병 전파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재택근무, 원격회의, 출퇴근 시차제 등의 조치를 자율적으로 시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주요 그룹 총수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간담회에서 내수 진작을 위한 회식을 제안했지만, 상황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꽁꽁 얼어붙은 산업 경기

문제는 이런 어려움이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크다는 점이다. 코로나19는 아직 백신이 없어 이 파장이 언제 그리고 어디까지 퍼질지 예단하기 어렵다. 앞서 2월 중순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사태는 중국에 있는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하고, 중국 수요가 위축되는 문제로 치부됐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한 사태가 강도와 확산 범위 등을 달리해 발생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대구 신천지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빠르게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국내 문제화했다. 특히 영남 지역에 밀집한 자동차와 중화학 공업 단지의 문제가 크다. 대구가 영남 지역의 교통 중심지인 데다, 많게는 수만 명이 한 공장에서 일하는 산업 특성 때문에 한 번 코로나19가 발생하면 공장 전체가 멈춰야 한다.

이미 산업 경기는 꽁꽁 얼어붙은 상태다. 한국은행이 2월 26일 발표한 ‘2020년 2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이달 전 산업 BSI는 65로 전월보다 10포인트 하락했다. BSI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 상황을 나타내는 지표로 100 미만이면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곳보다 많다는 뜻이다.

2016년 2월(6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하락 폭은 한은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컸다. 전 산업 BSI 하락 폭은 2015년 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2012년 7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컸다. 과거 최대 하락 폭은 9포인트였다.

기업이 내놓을 수 있는 마땅한 대책도 없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매출 상위 10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사태가 6개월 이상 지속할 경우 매출액이 8%, 수출액이 9.1%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중국에 생산 기지가 있는 대기업의 84%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기업 중 약 30%는 사실상 대책이 없는 상황으로, 중소기업이 특히 문제”라고 밝혔다.

이미 해외 주요 기관에서는 중국을 제외하고 한국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가장 큰 국가로 꼽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경제 전문가 77명 설문 조사를 인용해 2월 26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중국 밖에서 코로나19로 가장 크게 타격받는 한국은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 1월 전망치보다 0.4%포인트 하락한 2.1%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바이러스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계속 퍼지면 글로벌 공급 사슬이 끊어질 수밖에 없고 곳곳에서 문을 닫는 공장이 많아질 것”이라며 “이는 세계 무역의 디커플링(탈동조화)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수출 중심인 한국 경제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고위 관계자는 “재정 조기 투입, 추경 편성 등을 통해 취약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고 기업들이 최소한의 사업 의욕을 잃지 않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더 이상 공장 셧다운이 발생하지 않도록 출퇴근시차제, 유연근무제 등을 통해 최대한 직원 간 접촉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