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덱스코리아의 첫 한국인 지사장, 국내 항공 특송업계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최고경영자(CEO). 바로 채은미 페덱스코리아 지사장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채 지사장은 28세이던 1991년 부장 자리에 올라 국내 취항 항공사 내 최연소 기록도 가지고 있다. 직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전부 기억하며 소통하는 ‘스킨십 경영’으로 페덱스코리아를 건강한 일터로 만들고 있는 채 지사장을 만났다.



1973년 소형 항공기 8대로 사업을 시작한 페덱스는 현재 697대의 항공기, 4만3000여대의 차량을 운영하며 세계 220개국을 연결하는 세계 최대 항공 특송회사로 성장했다. 하루 처리하는 화물의 수만 750만개에 달한다.

1998년 대리점을 통해 영업을 시작한 후 2000년 9월 직영으로 전환한 페덱스코리아는 채은미 지사장이 CEO에 오른 2006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다. 9개였던 지역사무소는 14개로 늘었으며, 189대였던 운송차량은 279대로 증가했다.

페덱스는 국제 교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화물을 운송하는 물류회사이기 때문에 글로벌 무역은 물론 경기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채 지사장은 “국경을 넘어선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글로벌 무역’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며 “글로벌 무역을 하나의 경제로 환산하면 그 규모가 약 18조3000억달러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페덱스코리아가 늘어나는 특송 서비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맞춤형 서비스를 확대하며 발빠른 대응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전국 규모의 대대적인 서비스 개선사업을 실시했다. 접수마감 시간을 지역에 따라 1~3시간 연장했고, 당일 발송서비스 지역을 확대했다. 배송직원과 차량도 늘렸다.

하늘길도 더욱 넓혔다. 미국 본사가 위치한 미국 멤피스와 인천공항 직항 노선에 보잉777 화물기를 신규 도입해 한·미 간 가장 빠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물류허브인 중국 광저우를 통해 인천공항과 유럽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직항노선의 항공기도 업그레이드했다.

“본사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는 거죠. 특히 한국을 예의주시하고 있어요. 한·EU,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발효로 다양한 비즈니스 성장의 기회가 활짝 열리고 있기 때문이죠.”

페덱스코리아는 한류 산업 육성 및 지원을 위한 ‘한류 서포터’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한류 관련 서비스·문화·소비재 수출기업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후원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일반 소비자와 국내의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다채로운 이벤트도 마련할 계획이다.

“올해에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각종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전담 물류팀이 없는 중소기업이 FTA 등 급변하는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죠. 한국기업들이 잘 돼야 페덱스코리아도 성장할 수 있어요.”

- 채은미 지사장은 권위적이기 보다는 직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이름·얼굴 외우는 것은 직원 위한 배려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한 채 사장은 유학 후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졸업 무렵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꿈을 포기하고 취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1985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그는 1년 만에 당시 아시아 최대의 항공물류기업이었던 플라잉 타이거로 옮겼다. 1991년 이 회사가 페덱스에 인수되면서 그는 자동적으로 페덱스의 직원이 됐다.

그가 최연소 부장 승진, 한국인 최초 지사장 발탁 등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남들보다 2~3배 더 노력했기 때문이다. 매일 영어학원 새벽반을 다니고, 남들보다 1시간 정도 빨리 출근했다. 임원이 되고나선 MBA도 했다.

채 지사장은 요즘도 새벽 5시 반 정도에 일어난다. 종합지, 경제지, 영자지 등 서너 개의 신문과 전문지를 읽은 후 1시간 가량 영어공부를 하고 출근한다. 사무실에 오면 8시가 채 되지 않는다. 20여년의 습관이 이제 몸에 밴 것이다. “흔히 말하는 아침형 인간의 전형이죠. 중요한 일은 거의 오전에 처리합니다. 그렇다고 회사와 일에만 집중하는 건 아닙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7시에 퇴근해 집에서 저녁을 먹어요. 여성 기업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페덱스에서 성공하기까지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회적인 편견과 여성이 일하기 좋은 제도적인 장치는 부족했다.

“고객 관리부장으로 있을 때는 남자 고객들이 매니저를 찾아 나가보면, 진짜 매니저를 불러오라면서 고함을 치고, ‘제가 매니저’라고 하면 ‘여자 말고 남자’ 나오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죠. 지상 운영팀 등에 있을 때는 다수의 남성 부하직원들이 여성 상사를 어색해 했고요.”

그럴수록 그는 자신만의 리더십을 갖추는 데 주력했다. 여성으로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적극 활용, 권위적이기보다는 직원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원들과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보다 많은 대화를 통해 직원들의 얘기를 듣고, 제 의견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특히 페덱스 서비스의 특성상 모든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한 현장을 자주 방문하는데, 단순한 현장방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직원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현장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르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더 건넨다. 700여명 직원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기억하는 그의 ‘스킨십 경영’은 업계에 정평이 나있다. 이름뿐 아니라 언제 입사했는지,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등 직원들의 히스토리도 줄줄 꿰고 있다.

“숫자나 이름을 기억하는 게 특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질수록 기억력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지방사무소에 내려가서 배송 직원이나 콜센터 직원에게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면 직원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작은 관심이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 대한 작은 배려라고 생각해요. 직원 관리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심이 아닐까 싶어요.”

주인의식 갖고 일하는 환경 갖춰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페덱스의 기업문화이기도 하다. 페덱스에는 이른바 ‘P-S-P(People-Service-Profit)’로 일컬어지는 경영철학이 있다. 이는 임직원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그 다음에 서비스와 수익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즉 고객의 화물을 가장 가까이에서 다루고 배송하는 직원들의 자긍심과 만족도가 높아야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서비스의 질 향상이 수익창출로 연결된다는 철학이다. 이러한 사람 중심의 경영철학이 페덱스가 세계적인 특송회사의 입지를 구축하는 밑바탕이 된 것이다.

페덱스는 직원들이 존중받는다는 자부심과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페덱스에는 신규 도입하는 비행기에 직원 자녀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 전 세계 지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신청을 받아 추첨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짓는다. 전체 697대의 비행기에 직원 자녀의 이름이 붙는데, 그중 한 대에는 채 지사장의 아들 이름을 딴 ‘양재’호도 있다. 지난 2000년 채 지사장이 지상운영팀 이사로 있을 때 신청해 당첨된 것이다. 해당 직원에게는 감동을 주고 동시에 직원 자녀에게는 자부심을 안겨주는 페덱스만의 독특한 제도다.

페덱스에는 요직에 공석이 생기면 사내에서 지원자를 공모받아 우선 승진시킨다. 연공서열·성별을 따지지 않고 역량과 자격만 갖추면 누구든지 승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실제 페덱스의 매니저 중 90%는 일반 사원에서 시작해 승진했다. 관리직이 아닌 현장직에서 시작해 임원이나 사장이 된 케이스도 많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임원의 40%는 여성이고, 미국에서는 전 직원의 40% 이상이 소수인종으로 구성돼 있다.

‘방문 열어놓기 정책(Open Door Policy)’이라는 제도도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경영진이나 상사를 찾아가 상담하거나 업무와 관련된 제안이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페덱스만의 인재경영제도로 꼽히는 ‘공정성 보장제도(GFT : Guaranteed Fair Treatment)’도 특이하다. GFT는 일종의 신문고 제도로, 불공정한 대우와 징계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직원은 이에 대해 조사를 요청하고 재심의를 받을 수 있다. 직속 상사에게 불만을 제기해 해결되지 않으면 사업부장, 심사위원회, 최고경영진에게까지 제기할 수 있다.

성과에 대한 보상도 철저하다. 평균 이상의 성과를 보여준 직원을 찾아내 다양한 형태의 보상을 제공하며(브라보 줄루상), 매년 지역별 최고 실적을 거둔 직원을 선정해 시상(파이브 스타상)하기도 한다. 채 지사장도 파이브 스타상을 3번이나 수상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페덱스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 한다. 페덱스코리아의 이직률은 3%를 넘지 않는다. 300인 이상 국내 기업의 평균 이직률 13%보다 월등히 낮은 수치다. 근속연수도 10년이 넘는다. 우리나라 근로자 평균 근속연수인 5.9년의 거의 2배 수준이다.

채 지사장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는 사내행사가 있다. 바로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과 임직원의 정년 퇴임식이다. 사람 관계는 처음과 끝이 가장 중요하다는 확고한 경영철학 때문이다.

 

▒ 채은미 지사장은…

1962년 생. 85년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 졸. 85년 대한항공 입사. 86년 플라잉타이거 입사. 91년 고객서비스부장. 2004년 페덱스 북태평양지역 인사 담당 상무. 2006년~현재 페덱스코리아 지사장.

장시형 기자 / 사진 : 유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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