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설립 3주년을 맞이해 <대우는 왜?>라는 책을 출간했다. 옛 대우그룹 고위임원 33명이 저술한 이 책은 대우인들이 눈물과 땀으로 일궈낸 세계경영론이 골간을 이룬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 이 책을 펴냈을까. 대우그룹의 부활을 꿈꾸는 것일까.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을 만나 책 출간 배경과 연구회 활동을 들어봤다.


우리 기업사에서 대우처럼 드라마틱한 부침을 기록한 기업도 없다. 제3공화국이 출범한 지 4년 뒤인 1967년 무역회사(대우실업)에서 출발한 대우는 1990년대 중반 재계서열 2위까지 외형을 키우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세계 유수 기업들이 100년 걸릴 일을 대우와 김우중 회장이 5~10년 만에 해내자 당시 대우가 주창한 ‘세계경영’은 한국경제 희망 같아 보였다. 그러나 1997년말 외환위기 직후 불어닥친 경제 환경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대우는 계열사가 뿔뿔이 해체되는 비운을 맞는다.

그룹이 해체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대우의 세계경영론은 우리 기업들에 새로운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동남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가 신흥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진작 이곳에 뛰어든 대우그룹의 경영 노하우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만 해도 대우와 김우중 회장은 젊은이들에겐 신화 같은 존재였어요.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지만 직장인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기업인 하면 늘 김우중 회장이 최상위를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원인이야 어떻든 IMF 외환위기 후 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 젊은이들에게 대우와 김우중 회장은 부도덕한 인물이 돼 버렸어요. 이따금씩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이 그래서인지…. 회장님도 그렇지만 임원들 상당수의 나이가 70을 넘기고 있는데 이대로 우리의 세계경영 노하우가 묻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이라도 말할 수 있고 글로 쓸 수 있을 때 기록을 남기자. 그래서 시작했죠.”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책 출간 이유를 거침없이 설명해나갔다. 대우의 모태였던 ㈜대우 무역부문 사장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물러난 장 회장에게는 아직까지 그룹 해체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듯했다.



- 1992년 5월 미 경제잡지 <포춘> 표지인물로 선정된 김우중 전 회장.

“대우 해체로 세계경영 허망하게 끝나”

대우그룹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정책당국의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놓고 논란의 여지가 많다. 물론 대우 퇴직자들은 여전히 정책당국의 조치에 대해 불만이 많다. 국내보다는 해외매출 비중이 큰 대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구조조정을 펴다 보니 그룹이 공중 분해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룹 해체와 동시에 대우의 꿈인 세계경영도 허망하게 끝을 맺었다고 말한다.

“당시 원·달러 환율이 800원대에서 1600원대로 치솟으면서 우리 부채는 두 배로 뛰었죠. 문제는 아시아 금융시장이 연쇄적으로 부실해지면서 평상시 같으면 롤오버(대출연장)해주던 해외 금융기관들이 일시에 상환을 요구하게 된 거예요. 주가가 폭락하니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하자니 금리가 사상 최고 수준이어서 그럴 수도 없었어요. 그러니 채권시장에 기댈 수밖에 없었는데 정부가 그쪽마저 발행을 제한하니 어떻게 (기업을) 유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장 회장은 아직도 당시 기억이 생생한 듯 연신 찬물을 들이켰다.

“지나간 역사지만 당시 대우는 외환위기에 대한 원인과 해법이 정부와 달랐어요. 당시 국내 외환보유액이 빠르게 감소한 건 일시적인 문제였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 기업이나 경제 펀더멘털(기초)은 튼튼했죠. 문제는 정부가 단자회사(투자금융사)를 종합금융사로 바꾸면서 해외로부터 자금조달이 가능하도록 하면서부터 시작됐어요. 해외에서 단기 저리로 자금을 조달해와 다른 개발도상국에 높은 금리로 대출해주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유동성 위기를 겪으니 어떻게 됐겠어요. 대출은 고금리 장기로 했으니 상환할 수 없고, 그래서 외환보유액이 급감한 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수출만 늘리면 위기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봤거든요. 일례로 1998년 한해 무역흑자가 432억달러였어요. 그중 140억달러를 우리 ㈜대우 혼자서 해냈던 겁니다. 지금 보세요. 저희 해법이 틀리지 않았잖습니까.”

그룹 해체 이후 김우중 회장은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때마침 분식회계, 외화밀반출 등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김 회장은 국가경제를 파탄낸 주범으로 위상이 곤두박질쳤다. 그가 해외로 출국하자 몇몇 대우그룹 계열사 노조가 체포조를 만들고 검찰이 인터폴 적색수배리스트를 올린 것은 김 회장 본인이나 옛 대우인들의 자존심에는 엄청난 상처로 자리 잡았다. 

“1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저는 저희가 했던 일이 잘했다고 항변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도 저희 때문에 피해본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고요. 과정이야 어떻든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으니까요. 다만 외화 밀반출과 관련해서는 조금 오해가 있는 거 같아요. 당시 세계 곳곳에 설립된 해외법인은 한국 본사가 지급보증을 서줬기 때문에 자금난이 발생하면 한국 본사까지 문제가 생기는 구조였어요. 당시 외환관리법은 해외에서 필요한 자금은 해외에서 조달해야 했는데, 그럴 수 없어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해준 건데 그걸 가지고 외화밀반출이라고 하니 억울하죠.”

이번에 낸 <대우는 왜?>에는 경제개발 과정에서 대우가 해낸 다양한 쾌거들이 기록돼 있다. 나이지리아, 리비아, 알제리 등 아프리카 사회주의 국가들과 국교를 맺기 전부터 무역선을 개설한 것, 구소련 몰락 이후 동유럽·중앙아시아 국가로의 진출과정도 비교적 자세히 소개돼 있다. 부실덩어리였던 한국기계를 인수해 세계적인 중장비제조사로 키운 대우중공업 이야기, 대우자동차, 대우전자 등 화려했던 대우의 활약상이 소개돼 있다. 1992년 북한의 공식 초청을 받아 김일성 주석을 만난 일화, 88서울올림픽 유치 과정 뒷이야기까지 담아냈다.



- 지난 3월 대우 창립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우중 전 회장(왼쪽). 김우중 전 회장은 초창기 대우조선이 만든 국민차 티코를 가끔 출퇴근용으로 사용했다.

가장 먼저 세계로 나간 대우인 흔적 담아

“저는 비록 대우는 망했지만 대우라는 브랜드는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에 견줄 만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대우는 우리 근대화의 상징이죠. 수많은 나라들이 코리아보다 대우를 먼저 알았으니까요. 금호그룹이나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을 인수한 뒤 대우라는 브랜드를 떼지 못하는 게 왜 그렇겠습니까. 해외시장에서 대우라는 브랜드를 아직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한번쯤 생각해 볼 법도 하다. 그룹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우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경영이 더 활발해졌겠죠. 저희는 이미 1998년부터 지역 본사제를 도입했어요. 지역본사별로 각자 사장을 둬 독립 경영을 하도록 했던 거죠. 가령 미국 법인은 대우 아메리카, 중국은 대우 차이나 등등…. 당시 고위 관료께서 지금도 이따금씩 언론에 나와 ‘대우는 시장의 신뢰를 잃어 구조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정책당국이 계속 우리 문제를 슬쩍슬쩍 흘린 게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였어요.”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 따르면 김우중 회장은 현재 베트남에 체류 중이다. 개인적인 약속이 있을 경우에만 한 달에 한 번꼴로 국내에 들어오고 있다. 이따금씩 측근들이 영구 귀국 의사를 물어보면 김 회장은 “하긴 해야겠지. 하지만 아직은…”이라는 말로 에둘러 넘어간다고 한다. 옛 대우그룹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김 회장은 아직도 자신에게 붙어 있는 ‘실패한 경영자’, ‘정경유착·분식회계 기업인’이라는 오명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후문이다. 상당수가 이미 법원 판결을 통해 무죄로 입증됐지만 전경련 회장에서 하루아침에 실패한 경영인으로 전락한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국내 시선이 여러모로 부담된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물론 김 회장에 대한 국내 비판적 여론은 아직도 여전하다. 최근 검찰이 하이마트 주식의 15%가 김 회장의 차명재산이라고 밝히면서 추징금 17조원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한 여론의 시선도 싸늘하다. 장 회장은 이런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인터뷰 내내 “우리 때문에 피해를 본 소액투자자들에게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일반적인 관례였고 의도가 좋았든 간에 실정법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미안할 뿐”이라고 고개 숙였다.

연구회가 올 들어 <대우는 왜?>를 출간하면서 조금씩 활동에 나서는 이유 역시 순전히 국가에 대한 봉사차원에서다. 일부에서 김 회장의 활동 재개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장 회장은 “회장님이나 저나 나이가 70이 넘어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있을뿐더러 재기를 하려면 돈과 조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절대로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장 회장은 다만 청년실업이 심각해지고 기업 간 양극화가 뚜렷해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번에 책을 출간한 것도 이제는 잊혀진 이야기가 됐지만 ‘대우는 시간은 아끼되 땀과 노력은 아끼지 않는다’, ‘대우의 일터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는 기업정신을 젊은 세대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님은 요즘 청년실업 문제를 많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젊은이들이 대기업만 바라보는 걸 우려하고 계시죠. 그건 저 역시 동감하는 부분인데요. 정부가 기업들에 국내 투자를 늘리라고 하는데 그러면 오히려 고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투자되는 돈의 상당수가 설비 자동화에 쓰이는데, 어떻게 고용이 늘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회장님은 우리나라 경제 정책이 제조업 중심에서 IT, 금융, 서비스 산업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서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IMF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상공부 같은 부처의 목소리가 컸는데 지금은 ‘금융이다’, ‘IT산업이다’ 하며 신산업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저 개인적으로 걱정이 됩니다. 우리 경제에 제조업은 기초체력 같은 존재거든요.”



- 지난 1999년 7월 사퇴 의사를 밝히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오른쪽이 장병주 당시 ㈜대우 무역부문 사장.

‘해가 지지 않는 대우’ 경영철학 전할 터

최근 연구회는 청년실업 해소와 해외창업 활성화를 위해 뛰어들었다. 제2의 김우중과 같은 해외 청년 사업가를 만들기 위해 ‘글로벌 영 비즈니스맨 포 베트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난해 전국 대학에서 지원한 150여명 중 40명을 선발해 2년간 해외에서 연수, 취업을 알선해주는 이 프로그램에 김우중 회장도 큰 애착을 걸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월부터 베트남 국립 달랏대학교에서 실시 중인 1기생들을 상대로 2~3차례 특강을 해 청년창업과 해외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회는 앞으로 이들 중 해외에서 창업에 나서는 수료생에 한해 창업자금을 보조해줄 계획이다.

“첫 회는 베트남에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연수 지역을 미얀마 등 다른 국가로 넓힐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김우중 사관학교’라고 부르는데요. 이 중에서 ‘제2의 김우중’, ‘제2의 대우’가 하나만 나오더라도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옛 대우 임원인 우리 연구회 회원 13명이 멘토로 나서 젊은이들에게 도전, 세계경영 정신을 북돋아주는 것도 준비 중이에요.”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정확히 10년이 지난 2009년 10월 설립된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현재 300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며 미국·중국·베트남·프랑스·러시아 등 전 세계 30여개국에 해외조직을 갖춰놓고 있다. 장 회장이 글로벌 청년 리더 양성과 함께 각별히 챙기는 것은 중소기업 해외진출 지원 사업이다. 아직 생존해 있는 대우 임원들의 해외 네트워크를 풀가동해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에 앞장서자는 게 기본 취지다. 지난 2010년부터 매년 5~6편씩 세계경영과 관련된 연구논문을 펴내도록 하는 것과 고려대, 이화여대, 서강대, 아주대에 세계경영과 관련된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장병주 회장은 …

1945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섬유공학과 졸업. 상공부, 대통령비서실, 재무부 과장,  ㈜대우 화학부장, 기획실 부사장, ㈜대우 무역부문 사장.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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