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의류업체 휠라코리아는 미국 골프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아쿠쉬네트(Acushnet)를 전격 인수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 골프용품 대표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를 인수했다는 것은 세계 속에서 그만큼 우리 기업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이후 아쿠쉬네트는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는 등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있다. 한국법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김영국 아쿠쉬네트코리아 사장을 만나 활약상을 들어봤다.

아쿠쉬네트, 골프공 판매 1위 타이틀리스트 보유…

   

휠라코리아에서 인수후 실적 호전



고무 자재 재생업체를 운영하던 필 영(Phil Young)은 1932년 어느 날 치과의사인 친구와 골프를 치던 중 이상한 일을 경험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분명 치기는 제대로 쳤는데 이상하게 공이 홀컵에 들어가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필은 친구가 운영하던 치과병원에 가서 골프공을 ‘X-레이’로 촬영했다. 결과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X-레이로 찍은 대부분의 골프공 중심(Core)이 가운데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형태도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곧바로 필은 새로운 골프공 개발에 착수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졸업한 그에게는 무엇보다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 곁에 오랜 벗인 고무전문가 프레드 보머가 있다는 것도 그를 든든하게 했다. 3년 동안 연구개발한 끝에 필은 1935년 일관된 중심과 모양을 갖춘 골프공을 개발했다. 현재 전 세계 골프공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기준 1위를 기록 중인 타이틀리스트 공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다.

골프공만 80년 만든 역사와 전통의 기업

이런 이유로 아쿠쉬네트 타이틀리스트는 미국 골프의 자존심과도 같은 브랜드다. 이런 역사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지난해 한국 기업에 팔렸다는 건 골프를 좋아하는 미국인 사이 화젯거리였다.

세계 골프시장에서 우리나라는 꽤 ‘큰손’으로 꼽힌다. 시장 규모가 미국, 일본, 영국 다음으로 큰 데다 앞선 세 나라에 비해 성장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 골프용품 업체들에게 한국은 기업 명운을 걸고 경쟁해야 하는 시장이다. 아쿠쉬네트가 진출한 것은 지난 2004년. 테일러메이드 한국지사장을 역임한 김영국씨를 초대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하면서 아쿠쉬네트는 본격적인 시장공략에 착수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아쿠쉬네트는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여느 골프용품 업체와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국내 일반업체에게 독점 공급권을 준다거나 지사 형태로 운영하지 않고 한국법인을 주식회사 형태로 등록한 것이다. 외국계 법인치고는 상당히 이례적인 접근 방식일 수 있다. 김영국 사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주식회사로 등록하면 회계 감사 등 한국 내 실정법을 모두 준수해야 해요. 이건 어찌 보면 외국계 기업에겐 번거로울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핵심기업 가치 중 하나가 바로 ‘투명경영’이에요. 아쿠쉬네트는 전 세계 어느 곳에 지사를 설립하더라도 모두 해당국가 내 주식회사를 만드는 형태로 세웁니다. 이게 하나의 관행처럼 돼 있어요. 국내 외국계 골프브랜드 중에서 주식회사 형태로 회사가 운영되는 곳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

아쿠쉬네트코리아에서는 현재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 등 두 개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다. 타이틀리스트가 골프공과 골프 클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풋조이는 의류, 골프화, 장갑이 주력 상품이다. 시작이 그래서인지 골프공 분야에서 타이틀리스트는 수십년간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시장점유율이 약 50%이며, 국내에서도 50~60%대에 이른다.

“골프를 치다보면 분명 제대로 스윙을 했는데 공이 오른쪽, 왼쪽 제 멋대로 가는 경우가 있을 거예요. 그럴 때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은 자세나 스윙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어쩌면 골프공에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왜 전 세계 프로골퍼 10명 중 6명 이상이 우리 공(타이틀리스트)을 쓰겠습니까. 그만큼 오류가 적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80년 이상을 골프공만 만든 회사예요. 관련 특허만 800여개로 우리가 가진 특허의 60% 이상이 골프공과 관련돼 있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전 세계 아쿠쉬네트 직원들에게도 대주주 변경은 놀라운 소식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아쿠쉬네트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사 포춘 브랜즈(Fortune Brands) 소유였다. 포춘 브랜즈는 골프용품을 생산하는 아쿠쉬네트 외에 보안서비스 업체 포춘 브랜즈 홈 앤드 시큐리티, 주류업체 빔(Beam)을 소유하고 있었다. 휠라코리아가 포춘 브랜즈로부터 아쿠쉬네트 대주주 지분을 인수한 것은 지난해 7월말 무렵이다. 당시 M&A에는 휠라코리아가 전략적 투자자(SI)로 나서 경영을 책임지며 미래에셋PEF(사모펀드)와 국민연금공단이 재무적 투자자(FI)로, 산업은행이 인수금융사로 참여했다. 

휠라코리아 인수 후 매출, 이익 모두 급성장

휠라코리아가 대주주가 된 이후로 아쿠쉬네트 사내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윤 회장님(윤윤수 휠라코리아·아쿠쉬네트 회장)은 대주주, 이사회 의장 역할만 하시고 전반적인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는 구도이다 보니 특별히 달라진 건 없습니다. 다만 윤 회장님께서는 인수 전부터 중국 골프용품 시장을 중요하게 여기신 것 같아요. 그래서 ‘아시아시장 특히 중국, 동남아를 겨냥한 상품을 만들라’고 경영진에게 주문하고 계시죠. 특히 회장님께서 기회가 있으실 때마다 일선 공장 직원들을 격려하시고, 사내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시니 본사 분위기는 오히려 좋아진 거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제 생각으로 정(情)으로 상징하는 아시아 문화와 정직으로 대표되는 미국 기업문화가 결합되면서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휠라코리아에 인수된 이후 아쿠쉬네트는 영업실적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2월 미래에셋이 발표한 실적 자료에 따르면 아쿠쉬네트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1억70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보다 60%나 증가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4% 증가한 13억3400만달러를 기록했다. 아쿠쉬네트코리아 역시 지난해 1025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설립 7년 만에 처음으로 1000억원대를 넘어섰다. 전년(888억원)보다는 15.4% 증가한 수치다. 당기순이익은 25.6% 늘어난 167억원을 기록했다.

“제 주변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대주주가 됐으니 이제 국민브랜드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요. 솔직히 저희(아쿠쉬네트코리아)야 이런 점이 많이 부각되면 될수록 좋아요. 사실 우리가 잘 돼야 국민연금이 수익을 내고 뭐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웃음). 물론 글로벌 본사 입장에서는 한국 브랜드라는 게 달갑지 않겠지만요. 우리 아쿠쉬네트에는 △프로덕트(Product·제품중시) 컴퍼니 △프로세스(Process·과정중시) 컴퍼니 △피플(People·직원중시) 컴퍼니를 상징하는 ‘3P’라는 기업철학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Process)을 중시해요. 그게 직원(People)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죠. 그래야 좋은 제품(Product)이 나오거든요.”

최근 아쿠쉬네트가 가장 중점을 두는 시장은 아시아 신흥시장이다. 윤 회장은 인수 직후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신제품 NXT 투어(tour) S와 DT 솔로(SoLo)는 타이틀리스트가 설립된 지 처음으로 생산한 컬러공이다. ‘깐깐한 골퍼를 위한 깐깐한 클럽(Serious clubs for serious golfers)’이 슬로건인 아쿠쉬네트는 공 하나를 만들 때도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하얀색 공만을 고집했다. 그러나 노란색, 빨간색 등 튀는 색을 좋아하는 아시아 아마추어 골퍼들의 특성을 겨냥해 80여년간 고수해온 이 원칙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만큼 아시아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뜻이다. 내년에는 아시아 아마추어 골퍼들을 위해 아시안스펙골프클럽도 처음 선보인다.

“그런 면에서 한국 시장은 글로벌 아쿠쉬네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테스트 마켓(시장 반응을 시험하는 곳)이에요. 본사에서는 아시아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우리나라를 교두보로 삼는 분위기죠. 이번에 AP1 단조 아이언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선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지난해 일본에 출시돼 엄청나게 히트친 경량 메탈 프리미엄 클럽 VG3시리즈(드라이버, 페어웨이 우드, 하이브리드)를 두 번째로 우리나라 시장에서 출시하는 것도 그만큼 한국 시장의 비중을 감안해서죠.”



- 아쿠쉬네트 브랜드 타이틀리스트의 주력 상품 골프공

‘나어떡해’ 부른 샌드페블즈 출신 드러머

김 사장의 이력에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외에도 가수라는 직함이 붙어 있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재학시절 활동한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에서 드러머로 활동한 김 사장은 1977년 ‘나 어떡해’라는 곡으로 제1회 대학가요제에 참가, 친구 4명과 함께 대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는 암울했던 시대상을 반영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추억의 노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나 어떡해’는 동아리(샌드페블즈) 선배였던 산울림의 김창훈(가수 김창완의 동생)이 작곡했다. 김창훈은 김 사장의 용산고 선배다. 그가 샌드페블즈에 들어오게 된 것도 순전히 김창훈의 권유 때문이었다. 

“마지막까지 이름을 부르지 않아 그냥 집에나 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그만…(웃음). 지금도 가끔 방송 출연 요청이 오긴 와요. 1년에 한두 번 정도. 그렇다고 자주 연습을 가는 편은 아니고, 방송 나가기 1~2주 전 주말에 모여 연습하곤 하는 게 다예요. 다들 바빠서 얼굴 보기도 쉽지 않고…. 2004년인가 어디선가 한국인이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를 조사했는데 ‘나 어떡해’가 1등을 했다고 해요. 아마 작곡한 사람이야 저작권료를 꽤 받았겠지만, 우리야 뭐…. 사실 편곡은 우리가 했는데(웃음).”

지금도 그는 글로벌 기업 CEO 6명으로 구성된 밴드활동을 통해 재능기부에 나서고 있다. 김 사장에게 밴드 활동이 주는 매력을 물었다.

“드럼을 치다보면 당연히 스트레스가 풀려요. 흥도 나고. 그리고 무엇보다 밴드에게 중요한 것은 팀워크, 하모니예요. 이기적인 생각에 나만 도드라지려고 하는 것부터 없애야 하모니가 날 수 있는 법이죠. 그러다 보니 이런 밴드 활동은 절제미를 배우게 합니다. 솔직히 요즘은 통 바빠서 특별히 시간을 정해놓고 드럼을 치지는 못해요. 그냥 직원들하고 회식할 때면 근처 라이브 바에 가서 음악 반주 정도로 (드럼을) 쳐주고 있죠.”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룹사운드 활동과 기업 CEO. 이 둘을 연결하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지금 와서야 절실히 느끼지만 모든 일에는 차별화가 중요한 거 같아요. ‘나 어떡해’만 해도 처음에는 ‘두두두두’ 드럼 치는 소리로 시작해요. 왜 지금도 그렇지만 그룹사운드 노래 보면 키보드 연주나 드럼 스틱으로 ‘딱딱딱’ 치면서 시작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잖아요. 우리 때도 전부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는 회의 끝에 “좀 다르게 시작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왜 그리고 후렴 부분에 고함치는 소리가 나오거든요. 그것도 뭔가 색다르게 해보자고 생각해서 한 건데 그게 대히트를 친 비결이죠. 모든 직장생활이라는 게 남과 다르게 시도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 김영국 사장은…

1957년 생. 용산고, 서울대 조경학과 졸업. 94년 나이키 마케팅 부장. 2000년 테일러메이드

코리아 지사장. 2004년~현재 아쿠쉬네트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송창섭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