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에 새로운 2인자가 나타났다. 최근 미래전략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최지성 부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건희 회장이 주문하는 ‘신경영’을 주도할 적임자라는 평이다. 삼성이 또 한 번의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월7일 삼성그룹은 깜짝 인사를 발표했다. 미래전략실의 수장을 김순택 부회장에서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교체하는 내용이다. 재계의 이목은 일제히 삼성의 인사에 쏠렸고 그 배경에 대한 ‘설’이 분분해졌다.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장은 그만큼 대단한 자리인 것이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그룹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다.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의 맥을 잇는 조직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미래의 신수종 사업을 계획하는 것은 물론 계열사들을 통솔하고 그룹의 대소사를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하는 회장 직계 라인이다. 미래전략실이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등으로 불렸을 당시에도 고 소병해 삼성그룹 비서실장,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 등 쟁쟁한 인물이 그 자리를 메웠다. 미래전략실장이 곧 그룹의 2인자로 여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 이재용 삼성 사장의 ‘경영 멘토’라 불리는 최지성 부회장의 미래전략실장 부임은 3세 경영 승계를 위한 포석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 “최지성 부회장은 미래를 위한 최적의 카드”

관심을 끄는 것은 실장 교체의 배경이다. 삼성그룹의 공식적인 설명은 최 부회장이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삼성의 미래 성장을 이끌 최적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최근 들어 신경영에 가까운 혁신을 강도 높게 주문하고 있다. 그만큼 현재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6월 3주간의 유럽 및 일본 출장을 다녀온 후 위기의식이 강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장 후 이 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럽의 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하지만 삼성에 대한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삼성이 이를 이겨낼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위기 극복과 혁신에 대한 이 회장의 의지는 인사 발표 다음날인 지난 6월8일 신입사원들에게 보낸 영상메시지에서도 나타났다. 이 회장은 “한 번 실패했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절대 물러서지 말라”며 “실패는 여러분의 가장 큰 자산이요 삼성인의 특권인 만큼 도전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 부회장의 기용은 이 회장의 위기 극복 의지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다. 삼성의 대표 최고경영자(CEO)인 최 부회장은 그룹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최적의 인물이라는 것이 삼성그룹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경영능력이 탁월한 최고의 CEO라는 것이다. “반도체, TV, 휴대전화 이후 그룹을 이끌 주력 신성장엔진을 조속히 육성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글로벌 경영감각과 빠른 판단력, 강한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을 갖춘 최지성 부회장의 기용은 최적의 카드”라는 것이 삼성의 공식 설명이다.

실제로 최 부회장은 CEO로서 상당한 업적을 쌓아왔다. 최 부회장은 그룹에서 가장 강력한 ‘야전사령관’으로 통한다. 시장과 현장에서 단연 돋보인다는 평이다. 실제로 최 부회장은 가는 곳마다 전설에 가까운 성과를 만들어냈다. 1985년 반도체 구주법인장 시절의 활약이 대표적이다. 당시 유럽에서 변방의 이름 없는 기업에 불과했던 삼성의 반도체를 사 줄 곳은 전무했다. 삼성반도체가 세상에 나온 것도 불과 2년 전인 1983년말의 일이었으니 삼성이 유럽에서 ‘무명’인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최 부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유럽 반도체 시장을 누볐다. 무역학을 전공해 기술 지식이 취약하다는 점을 보완하고자 1000페이지에 달하는 영문 기술 매뉴얼을 통째로 외우기도 했다. 입사동기인 이금룡 코글로닷컴 회장의 표현에 따르면 “어떤 일이든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 최 부회장의 노력은 삼성에겐 황무지나 다름없는 유럽시장에서 100만달러의 반도체를 판매하는 결실을 맺었다. ‘디지털 보부상’이라는 최 부회장의 별명은 이때 얻어진 것이다.



-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으로 기용된 최 부회장은 글로벌 경영감각과 빠른 판단력, 강한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삼성 최고의 CEO란 평가를 받는다.

현장에 강한 ‘디지털 보부상’

TV와 휴대전화를 세계 1위로 올려놓은 견인차도 최 부회장이었다. 최 부회장이 진두지휘해 개발한 보르도TV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삼성의 TV사업은 급부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니 브라비아TV를 밀어내고 당당히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도 삼성은 세계 1위 TV메이커다.

애플에 밀려 궁지에 몰렸던 스마트폰 사업을 세계 1위로 도약시킨 주인공 역시 최 부회장이다. 2010년 최 부회장이 대표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삼성전자의 대추격전이 성공한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세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의 45%를 점유하고 있는 이 분야 절대강자다. 스마트폰 브랜드인 갤럭시 시리즈는 지난 5월말 현재 5200만대나 팔렸다.

최근 내놓은 ‘갤럭시3S’ 개발 당시의 일화는 유명하다. 전 세계 동시 출시를 보름 앞둔 시기였다. 최 부회장은 돌연 제품의 개선을 지시했다. 제품의 뒷커버 디자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개선은 가능했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최 부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최고가 아니라면 신제품을 낼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그때부터 ‘밤샘’이 이어졌고 결국은 예정된 출시일 전에 디자인 개선에 성공했다. 최 부회장의 신념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셈이다.

스마트폰의 ‘대역전극’과 함께 삼성전자는 2010년과 2011년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갔다. 2011년 매출액은 전년에 비해 11조원 증가한 165조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임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은 분명 잘 나가는 글로벌기업이다. 하지만 미래를 놓고 생각해보면 불안한 구석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224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몫을 제하면 58조원에 그친다. 전자 외에 미래의 성장을 이끌 새로운 엔진이 필요한 상황인 셈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2년 전 5가지의 신수종 사업을 선정했다. 태양전지, 자동차용전지, 바이오, LED, 바이오제약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최 부회장이 신성장엔진의 본격적인 ‘점화’를 위해 어떤 구상을 들고 나올지 주목된다.

이재용 사장과 오랫동안 호흡 맞춰

재계 안팎에서는 최 부회장에 대한 삼성의 이번 인사를 3세로의 경영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적잖다. 무엇보다 최 부회장이 그룹의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경영 멘토’라 불릴 정도로 오너가의 깊은 신뢰를 얻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재용 사장과는 삼성전자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다.

과거 그룹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때마다 ‘2인자 교체’ 카드를 커내든 이 회장의 인사 방식도 그룹의 ‘대변화’를 예견하게 하는 대목이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 때도 이 회장은 2인자를 바꾸었다. 전임 미래전략실장인 김순택 부회장 기용은 그룹의 인적쇄신을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최 부회장의 인사를 경영승계와 연관짓는 것도 일리가 있는 해석인 것이다. 중견그룹의 한 임원은 “(삼성그룹은) 2~3년 내 이재용 사장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3세 후계구도를 위한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최 부회장의 보직 변경으로 공석이 된 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DMC, 세트 사업)부문장에 이 사장이 임명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삼성전자는 물론 그룹 전체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사업부의 수장으로서 그룹을 이끌어나갈 경영능력을 익히는 데 최적의 자리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사장의 DMC 부문장 기용 가능성에 고개를 젓는 시각도 있다. 실적 압박이 큰 자리는 오히려 후계구도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적이 악화될 경우 경영능력이 의심받을 우려가 큰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금명간에 결론이 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후속 인사에 대해 삼성 측은 당분간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DMC부문장 자리가 당분간 공석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현재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품 사업)부문장인 권오현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DMC부문장 역할은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이 나눠 수행하고 있다. 윤 사장이 소비자가전을, 신 사장이 모바일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 최 부회장은 궁지에 몰렸던 스마트폰 사업을 세계 1위로 올려놓은 견인차로 꼽힌다.

선대 유산 둘러싼 형제 갈등 해법 내놓을까

고 이병철 전 회장의 유산을 둘러싼 형제간의 갈등으로 불거진 지배구조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도 최 부회장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미래전략실장을 교체한 가장 큰 이유도 유산상속 문제에 대한 김순택 전 실장의 대응에 이 회장이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번 교체 인사가 사전에 아무런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도 김 전 실장을 ‘경질’하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순택 전 실장이 물러난 이유는 형제간의 갈등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것이 가장 컸을 것”이라며 “최 부회장이 형제들의 소송에 대해 한층 공격적으로 대응할지 아니면 모든 상황을 마무리 지을지는 아직 알 수 없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 부회장은 ‘독일병정’이란 별명도 가지고 있다.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업무 스타일을 빗댄 것이다. 부드러운 인상처럼 평소에는 온화한 성격이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무섭게 집중하고 빠르게 결정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전략실장 부임 후 최 부회장은 밤낮없이 업무에 매달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룹 전체의 상황을 보고받고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병정의 청사진에 재계의 눈과 귀가 몰리고 있다.

 

▒ 최지성 부회장은 …

1951년생. 서울고·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삼성전자 구주법인장. 반도체 부문 메모리 영업담당 이사. 디지털미디어 총괄부사장. 정보통신 총괄사장. 대표이사 부회장.

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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