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사는 경영 승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박용만 그룹회장을 보좌하기 위한 인사일 뿐입니다. 박용만 회장이 그룹회장으로 취임한 지 두어 달에 불과한데 승계를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그룹의 4세 경영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시선에 대해 근거 없는 해석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 5월22일 두산그룹은 그룹 이사회를 통해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을 그룹의 지주사인 ㈜두산의 지주부문 회장으로 선임했다. 그룹회장인 박용만 회장의 업무가 너무 많아 보좌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인사 배경도 설명했다. 하지만 재계의 시각은 다르다. 3세의 형제경영에서 4세의 사촌경영으로 넘어가기 위한 수순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의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 선임은 4세 경영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박 회장은 4세의 장자다.

그룹의 두산건설 살리기 의지 확인

사실 두산그룹이 4세 경영승계 준비를 본격화했다는 분석은 지난 3월 인사부터 무성했다. 당시 박정원 회장은 4세 가운데 유일하게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박 회장은 4세들의 맏형이기도 하다. 지분구조도 이미 4세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오너 일가 중 지주사인 ㈜두산의 지분이 가장 많은 사람은 박 회장이다.

지난 3월 기준 5.35%를 소유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박 회장의 부친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30만주를 증여하면서 지분율이 4.1%에서 5.35%로 올라갔다. 박 회장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3.57%,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대표가 3.04%, 박석원 두산엔진 상무가 2.48%로 박 회장의 뒤를 잇고 있다.

3세들의 지분율은 4세보다 낮다. 3세의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1.05%, 3남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2.48%, 4남인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은 2.45%,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0.31%다.

정황으로 봤을 때 두산그룹이 4세 시대로 이전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럼에도 두산그룹이 박 회장의 지주 회장 겸임의 의미를 ‘박용만 회장의 보좌’로 애써 제한하려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들은 두산건설의 경영악화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두산건설의 최고경영자(CEO)인 박 회장의 경영능력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증권가에서는 두산그룹의 차기 총수로 점쳐지고 있는 박 회장의 경영능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두산건설의 경영 상태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시각이 적잖은 것이 사실이다. 두산건설은 지난해 30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냈다. 3893억원의 대손상각을 한 것이 적자의 주요 원인이었다. 두산건설의 어려움은 근본적으로는 부동산경기의 악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매출채권이 급증하고 현금흐름이 막힌 것이다.

지금도 두산건설의 가장 큰 고민은 1조5000억원 규모의 매출채권이다. 미분양 탓에 매출채권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부채규모도 상당하다. 총차입금이 2조2000억원, PF우발채무가 8500억원에 이르러 총부채는 3조원 규모에 달한다. 최근에는 회사의 신용등급이 A-에서 BBB+로 강등되는 수모마저 겪었다.



두산건설 미분양 빠르게 소진되며 턴어라운드 채비

그렇다고 두산건설이 잘못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은 거의 없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정상화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두산건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한 나이스신용정보 역시 두산건설의 실질적 재무 융통성은 양호한 수준으로 평가했다. 계열사들의 지원 의지가 강하고 금융권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도 우수해 재무적인 위기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두산건설의 실질적 재무 융통성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지난해 5월 두산건설은 총 5000억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했다. 3000억원의 유상증자와 1000억원의 전환사채 발행, 1000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주력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이 중심 역할을 했다. 그룹의 두산건설 살리기에 대한 의지가 확인된 셈이다.

그룹의 지원 외에도 두산건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는 적잖다. 먼저 사업포트폴리오 개선을 들 수 있다. 두산건설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주택부문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대신 플랜트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두산메카텍을 합병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했다. 위기에 따른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도 성공했다. 비록 7%대의 높은 금리가 적용됐지만 자금조달에 숨통이 트였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두산건설의 최대 고민인 매출채권 문제도 완화될 기미가 보인다. 무엇보다 미분양 물량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2009년 분양을 시작했지만 분양이 지지부진했던 ‘일산 위브 더 제니스’의 분양률이 상당히 올라갔다. 초기 10%대에 불과했던 계약률이 80%까지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분양한 ‘해운대 센텀 두산위브’도 성공리에 분양을 마쳤다. 250가구 모집에 8000명 가까이 몰려 31대의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1순위에서 전 평형이 분양됐다.

재계 관계자들은 두산건설이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박 회장의 경영능력 부족으로 연결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한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대부분의 건설사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구노력을 통해 체질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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