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9일 벤처기업협회는 황철주 회장과 함께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를 공동 회장으로 선임했다. 업계는 벤처활성화와 청년 기업가정신 확산을 위한 최적의 조합이라는 평가다. 지난 3월20일 경기 판교 다산타워 10층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회장으로서의 포부와 그동안의 인생역정에 대해 들어봤다.

황철주 회장과 함께 벤처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벤처기업의 창업이 늘어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의 일관된 지원정책을 이끌어내야죠. 또 투자회수를 원활히 하기 위해 M&A 활성화 등 중견벤처의 육성을 위한 제도도 적극 추진할 예정입니다.”

남민우 대표는 2001년부터 협회 임원으로 활동했으며, 부회장도 7년 넘게 맡아왔다. 그동안 여러 차례 협회장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고사해 왔다. 이번에도 회장직은 어떻게 해서든 안 맡으려고 했다. 협회 일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회사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또 한 번 일을 맡으면 대충하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다.

“황 회장은 처음부터 2년만 회장직을 수행하겠다고 했어요. 전임 회장의 임기가 1년 남아 있는 상태에서 연임을 했기 때문에 임기가 1년 남는 게 문제였죠. 황 회장을 아무리 설득해도 뜻을 굽히지 않는 겁니다. 요즘 벤처기업 설립이 늘어나면서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는데 회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면 아무래도 협회가 부담이고요. 그래서 벤처산업 활성화에 함께 나서자고 했죠.”

정부와 함께 벤처산업 활성화 고민

그는 벤처협회에서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황 회장과 제2의 벤처도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벤처붐을 다시 확산시킬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벤처기업의 자기경쟁력 강화와 함께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지속성장의 토양을 다각도로 조성하는 데 노력할 예정입니다. 그렇다고 벤처업계의 입장만 대변하진 않을 겁니다. 정부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죠.”

이를 위해선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다. 동반성장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대기업 중심의 시장 환경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부문에서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기업들이 독식하고 있어요. 중소기업에겐 기회조차 없지요. 자기들끼리 다 해먹었잖아요. B2B기업 중 대기업을 상대로 성장한 기업은 거의 없어요. 휴맥스나 주성엔지니어링 등은 모두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 성공했죠.”

그는 대기업의 반칙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정부가 최근 중소기업 중심 정책을 내놓는 등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중심의 정책이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고, 일자리 창출도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회수가 용이하도록 기업공개는 물론 M&A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적 틀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스닥 기업 중 벤처기업이 상장할 때까지 9년이 넘게 걸립니다. 오랫동안 실적없이 연구개발만 해야 하는 벤처기업 특성상 상장의 장벽이 너무 높아요. M&A를 통해 투자를 회수하는 비중은 1.6%에 불과합니다. M&A의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겁니다.”

차제에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도 바꿀 생각이다. “벤처는 실패를 먹고 자랍니다. 창업한 벤처기업 중 1~2개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사라집니다. 지금 성공한 기업을 보세요. 실패 경험이 성공의 토대가 됐어요. 한 번 실패로 신용불량자로 전락시키는 지금의 금융시스템이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누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에 나서겠습니까.”

남 대표가 최근 엔젤투자에 나서는 이유다. 그는 벤처 1세대들과 뜻을 모아 1000억 엔젤클럽을 결성했다. 청년창업가에게 자금은 물론 꾸준히 멘토링하겠다는 생각에 지난해에는 황 회장과 함께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의 성공 역시 실패가 자양분이 됐다. 그는 자신을 4전5기의 오뚝이라고 불렀다. 창업한지 19년째를 맞는 그는 4번의 심각한 위기를 딛고 회사를 글로벌 회사로 성장시킨 불굴의 기업가다.

다산네트웍스는 라우터 등 국내 네트워크 장비의 1세대 기업이다. 2000년 이후 국내 유무선 통신 시장을 선도해 왔으며, 지금은 글로벌 통신장비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2011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컨벤션’ 전시회에서는 삼성, LG 등의 대기업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표 중견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남민우 대표는 그동안 4번의 심각한 위기를 겪었지만 이를 모두 정면돌파했다고 말했다.

4번의 심각한 위기 정면으로 돌파

이 회사의 사무실이나 회의실에는 이런 글귀가 걸려있다. ‘하고자 하는 자는 방법을 찾고 하기 싫어하는 자는 핑계를 찾는다’. 하고자 하면 하지 못할 것이 없고, 하기 싫어한다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의미다. 그가 4번의 위기를 헤쳐 나온 방식도 이랬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1983년 말 대우자동차 연구소에 입사,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자동차에 필요한 각종 전자, 계측, 제어장비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6년 만에 그곳을 뛰쳐나왔다. 실력보다는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이 출세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마침 한 중소기업에서 러브콜이 왔다.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마음껏 연구개발에 전념할 줄 알았던 그 중소기업에서 그가 한 일은 해외에서 장비를 사다 파는 일에 불과했다. 직장 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회사를 차리는 게 낫다 싶었다. 1991년 미국 업체의 전전자교환기(TDX)개발용 소프트웨어를 사서 대기업에 납품하는 코리아 레디시스템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총 4명의 직원이 2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자본금 3000만원은 은행에서 빌렸다. 한 달 경비가 500만원 정도 들었기 때문에, 6개월 안에 생존 여부가 결정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첫 해부터 흑자를 기록하고, 시장에 바로 안착할 수 있었다. 1993년에는 다산네트웍스의 전신인 다산기연을 별도로 설립, 자동화 장비 개발이라는 시스템 사업으로 확장했다.

회사는 순조롭게 성장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직원수는 30명으로 증가했고, 매출은 50억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1997년 12월말 환율이 2배 이상 폭등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한 달 전만 해도 8억원에 불과했던 부채가 18억원으로 불어 난 것이다. 그에게 닥친 첫 번째 위기였다.

부채를 갚으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했다.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미국 업체와 담판을 지었죠. 지급기한을 6개월만 유예해 달라고 했어요. 외환위기는 천재지변이라며 떼를 썼죠. 의외로 쉽게 받아주더군요.”

당시 실리콘밸리의 인터넷 비즈니스는 최고의 활황을 누리고 있던 시기였다. 일은 넘쳐나는데 엔지니어는 태부족이었다. 그는 아예 실리콘밸리에 눌러앉아 돈을 벌기로 했다. 한국에 있는 12명의 엔지니어를 불러 지독하게 일했다. 1년 만에 부채를 모두 상환했다.

미국의 IT산업을 경험한 그에게 네트워크 장비와 인터넷 비즈니스는 무조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네트워크 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2000년에는 매출이 200억원을 돌파하며, 코스닥에도 입성했다. 이 때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국내 IT경기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벤처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다산도 2001년부터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그 당시 많은 기업들이 분식회계의 유혹에 빠졌어요. 저도  갈등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정직하게 공개했지요. 그 때 투명한 것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멘스 계열사 편입 후 아시아 태평양 지역 컨퍼런스에 참여할 때의 모습(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남 대표)

위기가 1위 자리매김하는 기반

이러한 고통의 쓴 맛은 다산이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을 제치고 초고속 인터넷 장비 시장의 1인자로 자리매김하는 기반이 됐다. 지금의 사명으로 바꾼 2002년 이후 외형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다산은 다시 위기에 빠진다. 매출이 늘어나면서 외형은 커지는데, 현금은 계속 줄어들었고 부실도 쌓여갔다. R&D에만 4년 동안 500억원을 쏟아 부은 것이 화근이었다. 운영자금은 몇 달 후면 바닥이 날 상황이었다. 세 번째 위기였다. 그의 표현대로 하면 말라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위기는 우연찮은 기회를 과감하게 활용해 해결할 수 있었다.

“2003년 말 지멘스코리아 사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어요. 점심이나 하자는 거였죠. 별 생각없이 만나, 통신장비 시장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나눴어요.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와서는 독일에 가 지멘스 경영진을 같이 만나자고 하더군요. 피할 이유가 없었죠.”

지멘스 측은 다산과 합작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다산의 통신장비 기술력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그는 지멘스가 다산의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오히려 1억달러만 투자한다면 최대주주 자리를 내놓겠다고 역제안했다. 이후 M&A전담팀이 투입돼 3개월 만에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지멘스 사상 유례없는 초고속 딜이 성사됐다. 그는 전문경영인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2007년 다산네트웍스는 노키아가 지멘스의 통신사업을 합병하면서 설립된 노키아지멘스네트웍스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2008년 노키아지멘스 측으로부터 회사를 되사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사실 그 때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좋은 기회였어요. 고민 끝에 인수를 했죠.”

그가 다산네트웍스 재인수 결정을 내린 것은 2008년 8월. 그런데 한 달 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쳤다. 그의 네 번째 위기다. 그는 휴직 프로그램 가동, 인원 감축, 임금 반납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편으론 기존 사업 강화와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한 성장전략을 추진했다. 다산네트웍스는 2010년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두며 국내 유선통신장비 1위 자리를 확고히 했다. 지금은 자회사 5개와 계열사 6개를 보유하며 일본, 인도, 미국 등지로 해외 판로를 넓혀가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 찾아 도전

“실패는 기업 경영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실패라는 결과보다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하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바로 기업가정신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을 해야죠. 도전하지 않는 기업이 망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는 “다산네트웍스의 올해 성장전략은 일본, 미국,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시장과 국내 공공시장의 확대”라며 “특히 해외시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글로벌 경영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 남민우 사장은…

1962년 생. 1984년 서울대 졸. 1993년 다산기연(다산네트웍스 전신) 창업. 2000년 코스닥 등록. 2010년 글로벌중견벤처포럼 의장. 2011년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 2012년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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