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해커에서 스타 벤처기업가로…. 여기에 건강한 벤처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벤처엔젤투자자까지.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가 걸어온 인생은 이처럼 굴곡이 많다. 기업공개(IPO), 기업 인수·합병(M&A), 그리고 처절한 실패까지.
그는 벤처업계 그랜드슬램으로 불리는 3가지를 모두 경험한 국내 몇 안 되는 기업인이다. 최근 예비 벤처기업인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설파하고 다니며 건강한 생태계 조성에 나선 노 대표를 서울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면 1

2006년 4월6일 아침. 포스텍(포항공대)은 학교 전체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국내 최고 수준으로 관리된다고 자부해온 전기전자공학과 전산시스템이 속수무책으로 뚫린 것이다. 당시 포항공대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교직원 연구 자료와 학생 과제물 등 모든 전산자료가 삭제된 것은 둘째치고, 과연 국내 누가 이토록 대담하게 포항공대 전산망을 뚫었는지가 초미의 관심이었다. 그러나 이는 검찰 수사로 밝혀진 전모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했다. 범인은 노정석이라는 당시 카이스트 3학년생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두 학교 사이에는 최고 공대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있었는데 카이스트 학생동아리 쿠스(KUS) 회장인 노군이 해킹에 성공하면서 보기 좋게 한 방을 먹인 꼴이 됐다. 나중에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지만 지금도 인터넷 포털에서 ‘노정석’이라는 단어를 치면 가장 많이 검색되는 것이 당시 정보기술(IT)업계 빅 뉴스였던 사과전쟁(포스텍 해킹사건)이다.

  장면 2 

2008년 9월 글로벌 IT강자 구글은 블로그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 신생 벤처기업을 인수했다. 주인공은 설치형 블로그 툴(Tool)인 텍스트큐브를 개발하는 태터앤컴퍼니. 구글이 국내 기업을 인수한 것은 지금까지 태터앤컴퍼니가 유일하다. 태터앤컴퍼니는 노정석 대표가 2005년 9월 설립한 회사로 태터툴즈와 티스토리 등 블로그 서비스 프로그램을 개발한 회사다. 노 대표는 당시 구글에 회사를 매각하면서 성공한 벤처기업가 반열에 오르게 된다.

  장면 3 

지난해 8월 국내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가 세계 2위 소셜커머스 회사 ‘리빙소셜’에 매각됐다. 티켓몬스터가 비약적인 성장 끝에 리빙소셜에 팔릴 수 있었던 것은 유망 벤처회사들에 관심을 기울인 노정석 대표가 투자한 덕택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처럼 노 대표가 자금을 투입한 후 티켓몬스터는 스톤브릿지캐피탈,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와 같은 대형 벤처캐피탈회사로부터 연달아 투자를 유치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갔다.

국내 벤처업계에서 노정석 대표는 ‘5툴 플레이어(Tool Player)’로 통한다.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기술개발 △회사경영 △신규 투자 유치 △중장기 비전 수립은 기본이다. 여기에 그는 최근 제대로 된 벤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벤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같은 벤처 1세대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이해진 NHN 창업주도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이다. 35세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노 대표가 생각하는 벤처기업은 우리 경제의 끊이지 않는 기술첨병과 같다. 그가 꿈꾸는 벤처기업은 끊임없이 활력소를 불어넣는 화수분과 같은 역할이다.

“제가 이래봬도 벤처기업을 경영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3가지, 즉 IPO, M&A, 실패를 모두 해본 사람입니다. 3가지를 다 경험하는 걸 그랜드슬램이라고 하는데, 아마 국내에서는 저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제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앙트러프로넌십(entrepreneurship), 우리말로 기업가 정신이라는 말을 제가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걸 실천할 뿐이죠.”

국내 벤처업계 대표 ‘5툴 플레이어’

기업가 정신은 노 대표 인생을 함축하는 단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노 대표가 문을 두드린 곳은 코스닥 보안업체 ‘인젠’에 엔지니어로서 참여한 것이었다. 당시 인젠에서 그의 직책은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해킹 노하우를 토대로 최고 보안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첫 임무였던 것이다. 인젠이 2002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그는 벤처성공의 화려한 단면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너무 일찍 성공을 경험해서였을까. 인젠을 그만둔 그는 2002년 곧장 젠터스라는 보안업체를 설립했다.

“엔지니어로 활동하면서 곁에서 보니 회사경영이라는 게 별 대수롭지 않게 보였어요. 기술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IT 본고장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었죠. 미 국방부에 제안서를 낼 만큼 패기 하나는 끝내줬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막상 회사를 경영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결국 차린 지 1년 만에 젠터스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노 대표를 벤처업계 신데렐라로 만든 태터앤컴퍼니 성공은 젠터스 실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태터앤컴퍼니가 2008년 구글에 인수되면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2010년 9월 아블라컴퍼니를 차리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미국 구글 본사 근무를 뒤로하고 냉혹한 창업세계로 돌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구내식당인 구글플렉스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글캠퍼스에서 일하니까 더욱 그런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이렇게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 말입니다.”

그의 세 번째 창업기업인 아블라컴퍼니는 지역기반 모바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저스팟(Juspot)과 매장 예약 및 고객관리 솔루션인 포잉(Poing)을 주로 개발하고 있다. 저스팟은 예를 들어 사용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면 현재 자신이 있는 위치 태그가 자동으로 붙어, 인근에 있는 사람들끼리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포잉은 애플리케이션을 켜 예약이 가능한 주변 매장을 고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쌍방향 네트워크 솔루션이다. 노 대표는 두 서비스를 미국 뉴욕에다 선보이기 위해 상반기 내 미국 법인 설립을 준비 중이다.



- 굿닥 전략회의 모습. 사진 맨 왼쪽이 노정석 대표, 그 옆이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다.

“국내 전도유망 벤처기업 발굴·육성할 터”

아블라컴퍼니 경영과 함께 그가 요즘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을 발굴, 육성하는 일이다. 구글에 회사를 판 2008년부터 그는 개인적으로 엔젤 투자 사업을 시작했다. 플라이팬(소셜커머스), 파프리카랩, 라이포인터랙티브, 울트라캡숑과 같은 국내 기업과 미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재미교포가 창업한 스타일세이즈, 눔 등 10곳은 그가 5000만~2억원씩 투자한 회사들이다. 

“모든 회사가 그렇겠지만 기업의 성장은 크게 3가지 모멘텀이 필요해요. 기발한 아이디어로 시작해 벤처캐피탈업체 투자까지 이끌어내는 단계가 1단계라면, 2단계는 이런 기업을 IPO나 큰 기업에 매각시키는 겁니다. 3단계는 안정적인 성장을 이뤄나가는 단계죠.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제가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1단계예요. 이 단계에서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이 성공이냐 실패냐가 판가름나는데, 이 때 정말 중요한 게 경험자 조언이죠.”

구글 본사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노 대표는 유망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분들은 미국 실리콘밸리는 실패를 하더라도 재기의 기회를 주기 때문에 우리보다 생태계가 더 건강하다고 말씀하는데요. 그건 실리콘밸리 생리를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실리콘밸리는 실패한 모든 기업에게 기회를 주지 않아요. 제대로 된, 그리고 가능성 있는 기업에게만 기회를 주죠.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보다 더 냉혹한 곳이 실리콘밸리예요. 우리처럼 정부가 창업지원금을 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노 대표는 실리콘밸리가 IT산업 아이콘으로 떠오른 비결을 “워낙 많은 사람들이 도전에 나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00명이 도전해 1~2개 경우만이 성공하게 되는데 이들의 성공노하우가 도전이라는 거대한 에너지로 탈바꿈하면서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성공을 꿈꾸며 실리콘밸리로 몰리고 있다는 게 노 대표가 말하는 미국 벤처산업 경쟁력이다. 

“우리는 시도가 없으니 성공이 없을 수밖에요. 저는 우리나라처럼 벤처 창업하기에 좋은 나라도 없다고 봐요.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 보세요. 미국에서 구상한 것을 한국에 가져와 성공한 케이스잖아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신 대표가 그러더군요. 한국처럼 사업하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요. 신 대표는 두 나라 기업 환경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겁니다.”

유망한 벤처기업을 발굴한다는 소식에 요즘 노 대표는 투자를 요청하는 신생 벤처기업가들과 만나는 일이 잦다. 그때마다 그가 내세우는 투자 기준은 뭘까.

“아무리 IT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벤처기업 역시 기업이다 보니 사람이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우선 리더의 열정을 보고 이것이 전체 직원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죠. 다른 말로 팀워크죠. 티켓몬스터가 딱 이런 경우였어요.”



- 세번째로 창업한 아블라컴퍼니는 현재 지역기반 SNS 저스팟과 매장관리 솔루션 포잉을 개발하고 있다.

“창업 노하우 전수…건전한 생태계 키워야”

노 대표는 보다 적극적으로 벤처산업을 키워내기 위해 올 초 티켓몬스터 신현성 대표, 스톤브릿지캐피탈,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 등과 공동으로 벤처 인큐베이팅 회사 패스트트랙아시아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여느 곳과 다른 점은 사업성만을 평가해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정석 대표, 신현성 대표가 투자 기업 멘토 역할을 해주는 것은 물론 자금조달, 해외진출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 준다. 본사 내 개발팀, HR(인재관리), 홍보, 마케팅, 재무 지원 조직을 꾸려 창업자는 기술개발에만 전력할 수 있도록 했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지난 3월 중순 첫 지원 사례로 의사정보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굿닥을 선정했다.

“저나 신현성 대표는 소위 총 맞고 피흘려가며 야전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에요. 돈을 대주는 단순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가 편에 서서 기업가 정신을 북돋도록 모든 것을 지원해 주는 게 패스트트랙아시아 설립 취지라고 할 수 있죠.”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예비 벤처 기업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어봤다. 그러자 벤처 전도사답게 대번 나오는 말은 다름 아닌 ‘도전’이었다.

“너무 잴 필요가 없어요. 일단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예비 창업가들과 만나는 시간이 있는데 그 때마다 제가 강조하는 말이 ‘뜻이 섰다면 시작하라ʼ는 거예요. 누구는 우리나라를 가리켜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글로벌 기준으로 볼 때 우리는 IT 변방이에요. 반대로 성공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많죠. 앞으로는 콘텐츠, 커뮤니케이션, 커머스로 대표되는 3C산업이 모바일과 결합되면서 엄청난 부를 만들 겁니다. 다음, NHN과 맞먹을 차세대 거대 IT기업도 여기에서 탄생할 거고요. 저와 신현성 대표가 창업해서 번 돈으로 주식, 부동산 분야가 아니라 벤처산업 육성에 재투자하는 것도 우릴 믿고 투자해준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봐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인터뷰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복기해보니 아마도 그가 대화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를 꼽는다면 도전과 기업가 정신이었다. 성공, 돈 등이 사용된 빈도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는 여전히 ‘한국 벤처 한계’라는 방화벽을 뚫으려 예전 포항공대 홈페이지를 해킹하기 위해 36시간을 꼬박 새워가며 프로그래밍하는 영락없는 그때 그 모습이다.

 

▒ 노정석 대표 …

1976년 전주 출생, 94년 전북 과학고, 2004년 카이스트 경영공학과 졸업, 2002년 젠터스 창업, 2005년 태터앤컴퍼니 창업, 2008년 구글코리아 프로덕트 매니저, 2010년~현재 아블라컴퍼니 대표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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