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느는 코치, 버버리, 도나카렌뉴욕(DKNY), 마이클 코어스, 마크 제이콥스 등 20여개 명품 브랜드의 핸드백을 만드는 제조자개발생산(ODM)업체다. 전 세계 명품 핸드백의 10% 가량이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5500억원. 명품 핸드백시장이라는 무대 뒤의 주역인 셈이다. 지금까지 무대 뒤에 있던 시몬느가 이제 무대 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했다. 박은관 시몬느 회장을 만나 무대 뒤에서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의 얘기를 들었다.

박은관 회장은 지난 7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세계 최초의 사설 핸드백 박물관인 ‘백스테이지(Bagstage)’를 오픈했다.

지상 5층, 지하 5층으로 이뤄진 백스테이지에서는 그야말로 핸드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다. 4층 역사관에는 16~19세기 작품들이 전시돼 있고, 3층 전시관에는 20~21세기 핸드백이 모여 있다. 1층엔 시몬느의 자체 브랜드인 0914 매장이 있다. 지하엔 신진 가방 디자이너들을 위한 창작 스튜디오와 매장이 들어서 있다. 또 핸드백 제작 체험공간도 있으며, 시몬느가 개발한 500여종의 가죽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돼 있다.

“거래처나 지인을 만나면 내게 물어봐요. 핸드백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왜 여자들은 열광하는지 등을요. 그때 이런 걸 체계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박물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3년 전, 지금의 박물관을 구상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박물관을 채울 핸드백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찾은 전문가가 주디스 클라크다. 영국 런던예술대 산하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에서 패션 기획을 가르치고 있는 클라크 교수는 복식사와 박물관학 전문가다. 클라크 교수는 전시기획을 맡은 뒤 350여점의 작품을 수집했다. 작품값만 100만파운드(약 18억원)에 달한다.

전시작품 중에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버킨백’이 눈길을 끈다. 빨간색 악어가죽으로 만든 이 백의 가격은 1억원을 넘는다. 작고한 에르메스의 5대손 장 루이 뒤마가 가수 제인 버킨을 위해 디자인한 것으로, 최고급 핸드백의 대명사로 통한다.

백스테이지는 학술적 측면에서도 높은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미 예일대에서 박물관을 개관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은 <핸드백, 박물관이 되기까지>라는 책을 발간했다.

“누구든 박물관에서 머물다 나올 땐 머리에, 가슴에, 손에 핸드백을 하나씩 들고 나갔으면 합니다. 작품을 둘러보며 핸드백의 역사나 지식을 머리에 담거나, 체험이나 신진 디자이너를 보고 핸드백에 대한 꿈과 열정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마음에 드는 가방을 사든지요(웃음).”

연간 1300만개 핸드백·지갑 수출

그의 집무실 바닥엔 핸드백이 널려 있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견본제품이다. 매주 수십개의 핸드백이 쌓였다 치워진다.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핸드백은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그는 1년에 4~5개월을 해외에서 보낸다. 지난 33년 동안 뉴욕을 방문한 횟수는 230번에 달한다. 30여년 동안 4년6개월을 뉴욕에 머문 셈이다. 하늘에서 보낸 시간만 1년이 넘는다.

그는 해외 출장을 가면 반드시 4~5개의 핸드백을 사온다. 유명 백화점이나 명품매장뿐 아니라 어느 이름 모를 구석진 공방에서 사기도 한다. 5만원짜리도 있고, 5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처음 보는 형태거나 특이한 디자인의 핸드백은 무조건 삽니다. 이리저리 뜯어보고 우리가 배울 게 뭐가 있나 살펴보는 거죠.”

박은관 회장은 대학 졸업 후 중저가 핸드백 제조업체인 ‘청산’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며 핸드백과 인연을 맺었다. 전 세계에서 명품의 위력을 본 그는 10년 넘게 핸드백을 만든 장인 15명과 함께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다. 당시만 해도 명품 제조는 유럽, 그것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도에서만 이뤄졌다. 그는 샘플 30개를 들고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인 DKNY 본사를 무작정 찾았다. 이름 없는 한국의 조그만 기업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들에게 “아시아에서 고급 핸드백 생산을 기획한 선구자가 되지 않겠냐”고 설득해 겨우 240개의 주문을 받아왔다. 시몬느가 만든 핸드백은 불티나게 팔렸다. 이후 주문량은 600개, 1200개로 늘더니 다음해에는 핸드백 전체 물량의 60%를 맡았다. 이후부터는 탄탄대로였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먼저 연락을 해 온 것이다.

2000년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럽의 명품업체에 핸드백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현재 시몬느는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에 있는 5개 공장에서 연간 1300만개의 핸드백과 지갑을 만들고 있다.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이후에도 시몬느는 매년 20~25% 이상 성장하고 있다.

- 그의 집무실 바닥엔 핸드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 그의 집무실 바닥엔 핸드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시몬느만의 독창적인 핸드백 만들 것

아시아를 명품시장의 새로운 제조기지로 만든 박 회장이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백스테이지를 개관하면서 자체 브랜드 ‘0914(onineonefour)’를 선보인 것이다.

“시몬느는 연극 무대로 치면 희곡도 쓰고, 조명과 의상을 준비해 핸드백이란 작품을 만든 ‘무대 뒤’의 주역입니다. 백스테이지는 핸드백이 주인공인 무대(Bagstage)이기도 하고, 그동안 시몬느가 걸어 왔던 무대 뒤(Backstage)를 보여주는 또 다른 무대입니다. 남의 브랜드 핸드백만 25년을 만들었어요. 이젠 ‘시몬느’만의 가방을 만들 때가 됐지요.”

그는 0914를 ‘Back to On’ 브랜드라고 부른다. 백스테이지와 마찬가지로 무대 뒤(Back)에서 쌓은 기술력과 문화적 역량을 통해 이제 무대 위(On)에 오르겠다는 뜻이다.

0914는 그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회사 이름인 시몬느는 제가 아내를 부르는 애칭입니다. 0914도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날인 9월14일에서 따 왔어요. 집사람을 대학 때부터 사귀다 헤어진 적이 있어요. 헤어진지 2년쯤 되던 1984년 9월13일 밤에 다시 만나는 꿈을 꾸고, 다음 날 오후 울적한 마음에 데이트할 때 자주 갔던 경북궁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집사람이 나타난 겁니다. 집사람 역시 전날 밤 같은 꿈을 꾼 겁니다. 그렇게 다시 만나 결혼을 하게 됐어요.”

박 회장은 0914를 한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담은 브랜드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내놓은 독자 브랜드의 핸드백과 지갑은 80여종이다. 모두 화학염료 대신 식물염료로 처리한 가죽을 사용하는 등 자연의 순수 소재를 이용했다. 또 엮거나 꼬는 수작업을 통해 ‘손 정성’이 많이 들어가도록 했다. 이를 통해 정제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표현했다.

0914를 내놓기까지 근 2년이 걸렸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를 포함해 6명의 디자이너가 동원됐다. 제품마다 거의 5~6개의 시제품이 만들어졌다. 그는 디자이너들이 가지고 온 시제품을 퇴짜놓기 에 바빴다.

“가장 어려운 것이 독창성이었어요. 시몬느는 20여개 명품 브랜드의 핸드백, 14만5000여 스타일을 만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이들과 비슷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는 그동안 남의 핸드백을 만들면서 독자 브랜드 출시의 꿈을 잊은 적이 없다. “10년, 15년 전에도 독자 브랜드를 꿈 꿨어요. 하지만 그땐 역량이 부족했죠. 디자인이나 마케팅, 제조능력 등 모든 것이 모자랐어요. 돈도 없었고요.”

물론 10년 전 모든 것을 갖췄더라도 독자 브랜드를 출시하진 못했을 거다. 명품이라는 것이 기술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명품이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명품은 제품력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국격과 문화적 성숙도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명품으로 인정해주지 않았죠.”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는 것이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기술력, 음악 등 문화에서의 한류 바람, 김연아 선수와 같은 글로벌 스타의 탄생, G20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격도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거기다 인재풀도 충분합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세계적인 디자인 스쿨의 학생 중 25%가 한국인이었어요. 외국 패션기업에 가보면 한국 디자이너가 3~4명은 꼭 있어요.”

또 소재, 디자인, 제조 면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탁월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M&A를 통한 명품시장 진출을 마다하고 가시밭길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몬느에서 일하는 핸드백 장인들의 경력을 모두 합치면 3000년이 넘습니다. 서로 다른 수십개 브랜드의 가방을 만들었으니, 소재에 대한 노하우와 디자인 실력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최근 분화되고 있는 명품시장 트렌드도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선진 명품 시장에서는 진정한 가치, 정직한 소비를 추구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명품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겁니다. 제품력으로 승부하는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 시몬느가 지난 7월 오픈한 ‘백스테이지’(왼쪽)와 전시작품
- 시몬느가 지난 7월 오픈한 ‘백스테이지’(왼쪽)와 전시작품

천천히,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하지만 그에게서 0914를 당장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꽃 피우겠다는 욕심을 찾아볼 수 없었다. 20년 뒤에 싹이 날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2년 후 강남 도산공원 앞에 플래그십스토어를 내면서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계획이다.

앞으로의 2년은 필드 테스트 기간인 셈이다. 그때까지 론칭은 백스테이지 한 곳에서만 하고, 특별한 마케팅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유명 연예인을 통한 광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천천히,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가 모토입니다. 어느 브랜드에서도 보지 않은 독창적인 제품을 제공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오도록 할 것입니다.”

 

 

▒ 박은관 회장은…

1955년 출생. 80년 연세대 독문과 졸업, 80~87년 청산, 87년~현재 시몬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