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로 취임 2년째인 이인재 파주시장은 시민과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기초자치단체장 중 한 명이다. 그는 비범한 아이디어와 과감한 실행력으로 차별화된 단체장으로 평가된다. 이 시장을 만나 파주시의 미래 등을 들어봤다.

지난 8월2일부터 2일간 통일부가 만든 제1기 어린이 기자단의 DMZ 체험캠프(제1회 통일미래 힐링캠프)가 열렸다. 이인재 파주시장도 모습을 보였다. 어린이 기자단이 방문하게 될 DMZ 판문점과 제3땅굴, 도라전망대, 통일촌 마을 등이 모두 군사접경도시인 파주시 관할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이 캠프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함과 동시에 전국에서 모인 어린이 기자단과 학부모들에게 파주시를 알리는 데 열심이었다. 안보관광지라는 특성상 매일 방문단이 끊이지 않지만, 파주시를 홍보하는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시장의 열성이 반영된 결과였다.

‘거지 시장’도 좋고 ‘앵벌이 시장’도 좋아

이 시장의 닉네임 중 하나는 ‘거지 시장’이다. 국비와 도비를 얻어내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벌리고 다닌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일견 시장으로서는 격이 떨어지는 별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이 시장은 이 별명이 시정 보도자료에 나가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오히려 더 반기는 분위기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국세와 지방세의 배분 구조는 아직 8대 2 수준입니다. 그래서 ‘2할 정치’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겨났죠. 이렇게 지자체 세수가 미미한데도 종전에 단체장들은 현실을 애써 감추고 단기업적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했어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부도위기 운운할 정도로 부실해지는 원인이었죠. 시장은 시의 재정상황을 솔직하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만날 빚 얘기만 한다고 핀잔주는 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현실을 이해하고 함께 노력해주십니다.”

파주는 이른바 ‘개발도시’다. 타 지자체에 비해 도로를 놓거나 주민편의시설을 만드는 등 인프라 구축에 많은 돈이 드는 도시라는 뜻이다. 쓸 돈은 많은데 자체 예산이 부족하니 지방채를 많이 발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취임할 당시 예산 대비 채무비율은 17.5%. 경기도 내 31개 자치단체 중 네 번째로 높았다.

눈 딱 감고 지방채를 추가 발행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달랐다. 지방채 발행을 일절 중단하고 ‘재정 다이어트’를 선언했다. 직원들의 경상경비를 절감하는 등 자구노력으로 2011년에 203억원, 올해는 244억원의 빚을 상환했다. 채무비율이 14.3%로 낮아졌고 2년 만에 재정건전 자치단체로 거듭났다. 

이 시장의 발군의 능력은 자구노력으로 빚을 줄인 것은 물론 외조를 끌어내는 아이디어와 끈기에서 더 빛을 발했다.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는 대안은 국도비(국비와 도비)라고 판단한 그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수해복구사업 등에 국도비 보조금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560억원의 국도비를 확보해 전국 1위(국도비 증가율)를 기록했다.

“비결이라면 한 마디로 열정과 끈기죠. 중앙정부나 도 관계자들을 찾아가 만나줄 때까지 기다리고 끊임없이 드나들었습니다. 치밀하게 자료를 만들어 예산이 필요한 이유를 질기게 설득했어요. 그러다가 ‘거지 시장’이라는 닉네임이 붙었죠.”

체면이나 권위보다는 실속을 생각한다는 이 시장. 그래서 일단 벌인 일은 남의 눈치 안 보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거지 시장’이라는 별명은 듣기 껄끄러운 듯해 차라리 ‘앵벌이 시장’이 어떠냐고 농담 삼아 던졌다. 귀가 번쩍 뜨인 그의 경쾌한 화답.

“아! 그거 좋다. 정말 의미가 확실하네요(웃음).”

곧바로 메모지에 적힌 다섯 글자. 그는 그 자리에서 ‘앵벌이 시장’이 되었다.

- 군사분계선 철책선의 녹슨 철조망으로 만든 관광상품. 10cm 남짓한 철사줄 한 가닥으로 세계인들에게 파주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확실하게 알리고 있다(왼쪽). -
- 군사분계선 철책선의 녹슨 철조망으로 만든 관광상품. 10cm 남짓한 철사줄 한 가닥으로 세계인들에게 파주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확실하게 알리고 있다(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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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부터 30년 공무원 생활 동안 늘 책을 놓지 않은 이 시장은 특히 한시(漢詩)에 유별난 욕심이 있다. 틈틈이 써온 한시공부 노트가 십수 권에 이른다.

“7대 분야 실천과제, 가랑이가 찢어져도 다 해내고 말 것”

그가 목표로 하는 파주시의 실천과제는 7대 분야에 걸쳐 있다. 지역균형발전, 명품교육도시, 교통선진도시, 일류경제도시, 희망복지도시, 고품격 문화환경도시, 시민만족시정이 그것. 그 가운데 후보시절과 취임 초기에 가장 신경 쓰였던 점은 교육부문이었다.

“후보시절에 교육 때문에 파주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교육이 살아야 파주가 산다고 생각하고 교육투자를 늘렸죠. 71억원이던 교육예산을 3배로 올리고(2년간 360억원) 학교환경을 개선했습니다. 학력수준이 도내 꼴찌 수준인 30위였는데 14위까지 끌어올리게 됐어요.”

성과 면에서 두드러진 부문은 경제부문으로, 특히 일자리 창출에 큰 실적을 냈다. 올해에도 향후 투자금액까지 합치면 1조8000억원의 외자 유치에 성공했다. 일본의 유기발광다이오드업체 이데미쯔코산과 반도체조립 테스트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대만의 ASE, 세계 3위의 LCD용 유리제조사인 일본전기초자(NEG) 등이다. 이로써 새로운 일자리가 2900개나 생기게 된다. 국내기업 투자로 활성화돼 파주에는 현재 대기업 8개, 중소기업 3200여개 등 총 3291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고용인원만 6만8500명에 이른다. 여기에 1조2000억원 규모의 복합화력발전소와 SK E&S 연구소 등이 입주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파주시는 통일로·자유로·제2자유로(서울~문산 고속도로)와 함께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 등으로 이어지는 교통 인프라로 물류수송의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더불어 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 서비스도 기업의 투자의욕을 높이고 있다. 파주시는 기업들의 애로사항 해결을 위해 ‘기업 SOS시스템’을 도입했다. 운영자금 지원과 특례보증, 특허비용 및 디자인 개발비용 지원 등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오는 9월엔 기업들의 지역교류 확대와 판로개척을 위해 ‘2012 파주상공엑스포’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 시장은 시민이 만족하는 시정을 위해 이채로운 행보도 걷고 있다. 지난 2월부터 ‘현장 속으로’라는 시책의 일환으로 시장은 물론 각국 과장들까지 매달 100곳이 넘는 현장을 발로 뛰며 귀를 여는가 하면, 시민배심원제를 운영하기도 한다. 지난 7월엔 파주시민 200인 원탁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분야별 대표를 선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무작위로 뽑은 시민을 대상으로 한 소통의 장이어서 더 뜻 깊고 실효성 있었다는 후문. 시청사 안이나 밖이나 ‘현장’이 열려 있는 셈이다.

“지금 파주시에서 추진하는 사업들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모든 사업들을 유기적으로 균형 있게 추진하는 수밖에 없어요. 통일중심도시 파주의 큰 그림을 완성하자는 주민들의 열의가 어느 때보다 강하기 때문에 저도 힘들지만 흥이 납니다.”

파주는 예로부터 율곡 이이, 황희 정승 등의 인물을 배출한 예향이었다. 이 뜻을 되새기며 문화예술인들이 헤이리와 출판도시라는 명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역사 유적인 왕릉이 많은 데다 세계 유일의 안보관광지라는 이점까지 활용하면 파주가 세계적인 문화예술도시로 발돋움할 여건은 충분하다고 이 시장은 말한다.

경기도 문화관광국장 재직 시절부터, 그는 몇 가지 사고(?)를 치면서 문화 CEO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시장은 세계 도자기 엑스포를 처음 만들었고, 백남준 미술관 건립을 앞서서 추진했던 ‘공무원’이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마라토너 황영조 동상을 세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물론 민간이 아닌 공직자인지라 그 모든 것에 생색을 낼 일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과제를 맡겨준 옛 상급자와 함께 수고한 동료 공무원들에게 공을 돌리는 이 시장. 그래도 황영조 동상 건만은 수고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 그의 아내가 혁혁한(?) 공을 세운 결과였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 남의 나라 마라토너 동상을 세운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죠. 게다가 생존인물이고 몬주익 언덕이 우리로 치면 경복궁 같은 곳인데. 우리로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년)에서 세계를 제패한 황영조를 길이 기리자는 뜻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미친 소리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포기할 순 없었고, 결국 스페인 출장을 2년 동안 27번이나 가는 사투 끝에 허락을 얻어냈죠. 그때 스페인 관리들의 마음을 산 것이 아내가 만든 십자수 선물이었습니다. 이거 먹힌다 싶어서 출장 갈 때마다 수십 개씩 만들어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밤을 새워 손이 붓도록 십자수를 만들어낸 아내. 그 덕에 동상이 세워지게 됐고 그는 스페인과 대한민국 양국에서 훈장을 받았다.

- 파주지역 특산물인 장단콩을 들어 보이고 있는 이인재 시장. 전국의 지역축제들이 타산성 등을 이유로 축소되고 있지만 장단콩 축제(11월16~18일)와 파주개성인삼축제(10월 20~21일) 등 파주시의 축제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 파주지역 특산물인 장단콩을 들어 보이고 있는 이인재 시장. 전국의 지역축제들이 타산성 등을 이유로 축소되고 있지만 장단콩 축제(11월16~18일)와 파주개성인삼축제(10월 20~21일) 등 파주시의 축제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공무원답지 않은 공무원? 그래도 나는 공무원이다”

2년간의 각고의 노력 중엔 차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전해진다. 담당 과장과 함께 수없이 스페인을 드나드는 동안 막바지에는 어느 도인의 엉뚱한 권유로 팬티 안에다 부적을 붙이고 다녔다. 팬티를 갈아입을 때마다 남몰래 옷핀으로 부적을 옮겨 달았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창피스러워 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동상 건립이 결정돼 당시 임창열 경기지사를 수행하고 스페인으로 향하던 날이었다. 일행이 공항에 모두 도착해 출발하기 직전, 임 지사가 갑자기 황영조 선수도 데려가자고 즉석에서 지시했다고 한다. 집에서 잠을 자던 황영조 선수를 깨워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를 곧바로 비행기에 태웠다. 착륙하자마자 조인식 행사장에 참석해야 했던 대표단 일행은 급한 대로 백화점으로 뛰었다. 황 선수가 갈아입을 옷을 구해야 했기 때문. 우여곡절 끝에 아동복 코너에서 특대 사이즈 옷을 구해 입혔는데 그 우스운 상황에도 전혀 웃음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하고 긴장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밖에도 일산의 노래하는 분수대, 경기도 수원 화성과 남한산성 복원, 명성황후 생가 복원, 제3땅굴 모노레일 사업, 경기도립국악당 설립 등 그가 손을 뻗친 문화사업은 여러 가지에 이른다. 일산구청장과 경기도 문화관광국장, 파주 부시장 시절에 일궈낸 실적들. 지방재정에 대한 고민 탓에 ‘거지 시장’이라는 닉네임을 얻기 전, 그는 ‘컬처 CEO’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의 문화적 소양은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다독 다상량하는 습관과 십수년간 써온 한시(漢詩)일기, 딸에게 써준 공부일기에서 보듯 배움과 연구에 꾸준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30년 가까운 공무원 생활 동안 ‘공무원답지 않은 공무원’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민간 기업인 못지않은 혁신경영, 뚝심행정을 이어왔기 때문. ‘공무원’ 하면 연상하는 부정적 표현들. 타성과 태만, 복지부동, 부정부패, 구조조정의 대상…. 평생 공무원으로만 살아온 그도 공무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는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공무원들의 자질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정가임에도 인문학과 문화예술을 몸과 마음으로 따르는 그는, 시청 공무원들 사이에 기지와 유머가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방송 출연으로 유명해진 한의사 이경제씨에 버금가는 유머코드를 가진 듯 보인다. 군법무관이던 아버지가 지방 이곳저곳으로 부임하다 강원도 인제에서 이 시장을 낳았다고 ‘인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후 둘째아들은 서울 근무 시절에 태어나 ‘경재(‘경제’는 필명)’가 되었다는 설(?)에 웃음이 절로 난다. 날카로운 아이디어로 일을 몰아붙일 때는 무섭기도 하지만, 대체로 유연하고 느긋하다는 평. 여느 시장님이 그렇듯 새벽부터 출근해 유난스럽게 조직을 흔들지도 않는다. 능력 있는 직원들이 스스로 일하도록 만든다. ‘함께 일하는’ 분위기를 위해서다.

 

 

▒ 이인재 파주시장은…

1960년 강원도 인제 출생. 82년 연세대 법과대학 졸업, 2000년 연세대 법학대학원 박사. 82년 26회 행정고시 합격, 95~96년 내무부 행정담당 서기관, 96~98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청장, 98년~2002년 경기도 문화관광국장, 2002~2003년 경기도 파주시 부시장, 2004~2005년 경기도 공무원교육원장, 2005~2006년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 2007년 행정자치부 수도권교통본부장. 2010년~현재 파주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