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팬택(www.pantech.co.kr)에 중요한 해다. 지난 연말 4년8개월 동안 달고 있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제2의 도약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팬택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은 지난 2007년 4월. 외부에선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팬택은 보란 듯이 다시 일어났다. 거듭된 혁신 끝에 넘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단단해졌다. 이러한 팬택의 경영정상화와 부활의 중심에 ‘승부사 박병엽’이 있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박병엽 팬택 부회장을 지난 1월6일 오후 서울 상암동 팬택 본사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채권단들 워크아웃 결정 주저해

  

 승부수 던졌죠…

    

 올 중순쯤 팬택 되찾을 겁니다”

회색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양복을 입고 출근해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고 했다. 얼굴은 밝았고, 웃음이 넘쳤다. 목소리는 기운찼다. 예전과 다름없이 의욕이 넘쳤다. 집무실 안쪽으로 길게 들어오는 겨울 햇빛을 막기 위해 세워둔 화이트보드에는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해외시장 확대’라는 팬택의 올해 목표를 상징하는 듯했다.

오직 팬택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미친 듯이 일만 한 그는 얼마나 홀가분할까. 의외로 그는 덤덤하다고 했다. 오히려 긴장의 끈을 더욱 조이고 있었다. 그는 “워크아웃 졸업과 관련된 어떤 축하 행사도 하지 않고 조용히 보냈다”며 “예전처럼 새벽같이 출근하고, 주말을 반납한 채 일에 열중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오전에는 김포공장에서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왔다고 했다. 올해 경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2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워크아웃 졸업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기초와 기본부터 다져야죠. 일상적인 업무라고 대충 넘어가거나 자기만족에 취해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다 잡고 있습니다.”

솔선수범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는 제2의 도약을 앞둔 지금, 늘 그래왔듯이 먼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또 생과 사를 넘나드는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시련을 이겨내고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은 팬택인의 근성과 도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임직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덤덤했지만 5년 동안 검게 탄 속내를 잠시 내비치기도 했다. “그동안 엄청 힘들었어요. 정말로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싶었어요. 워크아웃 중에는 투자가 제한적입니다.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죠. 누가 워크아웃기업에 돈을 꿔 주겠어요. 그동안 버는 족족 기술개발에 투자했어요. 허리띠를 졸라맸지요. 당연히 워크아웃 졸업에 목 맬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신인도가 높아졌으니 금융권에서 대출도 해주지 않겠냐며 웃었다. 판매도 더 늘지 않겠냐는 판단에 따라 올 경영목표는 공격적으로 잡았다. 그는 “이제는 기술개발 등에 더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해졌다”며 “올해에는 1300만대를 팔아 4조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목표는 노키아나 삼성, LG가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도요타가 생산과 판매량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1위라고 하지만 벤츠나 BMW 역시 나름의 가치를 가진 1등 기업입니다. 팬택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기술력과 가치를 지닌 BMW나 애플과 같은 기업이 되는 겁니다. 비록 시장점유율에서는 삼성에 뒤질지 모르지만 고객이 평가하는 제품의 가치는 1위인 제품을 꾸준히 만드는 게 저의 꿈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위기는 정면 돌파

박 부회장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지난 20년간 그는 생존과 발전을 위한 전략적 선택의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도전’을 택했다. 위기는 정면으로 돌파했다. 도전정신과 산업의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내고 신속히 대응하는 판단력, 실행력은 그만의 DNA라고 할 만하다.

박 부회장은 1991년 서울 신월동 단칸 사무실에서 팬택을 창업했다. 창업자금은 단 4000만원. 그것도 33㎡(1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장만했다. 무선호출기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매출이 연평균 50%씩 늘었다.

1997년 그는 일생일대의 도전에 나섰다. 휴대전화로 사업을 확장한 것이다. 휴대전화가 미래 이동통신의 신성장 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 예측하고 과감하게 뛰어든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모토로라와 1500만 달러 외자유치 및 전략적 제휴계약을 이끌어냈다. 모토로라가 박 부회장에게 팬택의 인수를 제안했으나 역으로 모토로라의 투자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를 통해 팬택은 연간 3억달러 어치의 단말기를 수출할 수 있는 길을 보장받았으며, 기술력을 세계시장에 알릴 기회가 됐다.

2001년에는 당시 매출 규모 1조원에 이르는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며 또 한번 도약했다. 인수를 통해 팬택은 R&D인력 650명을 확보해 연간 40개 이상의 독자 모델 개발, 생산대수 1200만대 이상, 달러 매출액 기준 50대 기업의 거대 단말기업체로 변신했다.

6명으로 시작한 팬택은 창업 10년 만에 직원 2000여명, 연매출 1조원의 명실상부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 이후 창업해 조 단위 기업으로 성장한 제조업체로는 유일했다. 삼성전자가 창업 후 매출 1조원을 달성하기까지 15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팬택의 성장 속도는 엄청난 것이다.

2005년 박 부회장은 세계 휴대폰 시장 ‘빅5’를 향한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진다. 스카이 브랜드로 유명한 SK텔레텍을 인수한 것이다. 이를 통해 팬택은 매출 3조원, 종업원 수 4500여명(연구인력 2500여명)의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 이후 15년 동안 팬택의 연평균 성장률은 56%에 육박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기 마련. 위기가 닥쳤다. 2006년부터 불기 시작한 모토로라의 ‘레이저’ 쓰나미로 인해 팬택은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박 부회장은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고 전국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채권단을 찾아갔다. “나는 죽어도 좋지만 회사만 살려 달라”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2007년 4월 채권단의 합의로 팬택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는 백의종군했다. 창업주로서의 모든 권리와 지분 4000여억원도 포기했다.

위기 이후 팬택은 빠르게 회복했다. 국내에서는 시장의 변화를 예측한 다양한 3G폰을 출시해 내수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해외에서도 혁신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반을 다져 나갔다. 2009년에는 퀄컴과 7600만달러 출자전환을 통한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채권자를 투자자로 돌린 것이다. 치밀하고 전략적인 박 부회장의 승부수가 주효했기 때문이다. 이는 팬택의 기술력이 세계적인 브랜드와 경쟁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

팬택의 실적이 호전되면서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도 확산됐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자의로 회사를 떠났던 연구원들이 되돌아 왔다. 또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자발적인 토론과 연구문화도 정착됐다.

박 부회장도 직원들과의 소통에 앞장섰다. 자신의 개인 월급에서 수시로 직원들에게 격려금을 지급하고, 강원도 농장에서 토마토를 구입해 나눠주기도 했다. 요즘도 그는 매일 직원들이 보낸 100여 통의 이메일에 직접 답장을 보낸다.

그는 “오는 설 명절에는 지난 2년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미국에서 테스트 등을 위해 체류하는 연구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 박병엽 부회장은 스마트폰 열풍이 불어닥친 2010년 '스마트폰 올인'을 선언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는 팬택이 LG전자를 제치고 스마트폰 시장 2위에 오르는 기반이 됐다.

스마트폰·LTE폰 올인 모험

2010년에는 국내에 불어닥친 스마트폰 열풍은 팬택의 새로운 동력이 됐다. 국내 최초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리우스’ 출시를 시작으로 내수시장에서 스마트폰만 100만대를 판매하며 스마트폰 2위 자리에 올랐다.

박 부회장은 또 다시 승부수를 띄웠다. 여세를 몰아 ‘스마트폰 올인’을 선언한 것이다. 팬택은 2011년에만 300만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판매, 2010년 대비 약 200% 이상 성장했다. 지금까지 출시한 스마트폰은 12종 18개 모델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LG전자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또 하나의 모험을 감행했다. 바로 LTE 스마트폰 올인 전략을 발표한 것이다. 그는 “피처폰을 포기하고 스마트폰에 올인한다고 했을 때도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않았냐”며 “시장을 선점하고 주도하려면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도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10년 말 일본 KDDI에 스마트폰을 공급했으며, 미국 최대 이통사 버라이즌을 통해 LTE 데이터카드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2011년에는 해외 주력시장인 북미, 일본에 4종의 스마트폰을 연이어 출시, 글로벌 스마트 플레이어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위기 후 이러한 빠른 성장은 지속적인 R&D에 대한 투자가 기반이 됐다. 워크아웃 중에도 연매출의 약 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최근 5년간 R&D 투자액만도 1조원이 넘는다. 팬택이 현재 보유한 국내외 특허는 3400여건에 달한다. 팬택은 워크아웃 개시 이후 2007년 3분기부터 2011년 말까지 18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 누적 매출 9조1745억원, 영업이익 6166억원을 기록했다.

‘부실기업’이란 꼬리표를 떼는 과정은 박 부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이 빛을 발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워크아웃 졸업을 앞둔 2011년 12월6일 그는 돌연 사퇴를 발표했다. “쉬고 싶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사퇴라는 배수의 진을 친 다른 이유가 있었다.

“팬택의 모든 구성원들이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 5년 동안 죽기 살기로 일했어요. 워크아웃을 개시한 이후 18분기 동안 흑자를 기록했잖아요. 그런데 채권단은 결정을 주저하고 있는 겁니다. 90%는 결단을 내렸는데, 마지막 10% 정도가 진척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잘못하다간 워크아웃 졸업이 흐지부지 될 것 같았죠.”

‘사퇴’ 초강수로 채권단 움직여

박 부회장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그가 사퇴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 채권단은 팬택의 워크아웃 졸업을 공식화했다. 팬택은 지난해 12월28일 자산유동화증권(ABCP)을 발행해 약 2300억원의 비협약채권을 상환했다. 또 협약채권에 해당하는 2200억원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공동대출(신디케이트론)로 전환하는 데 동의했다. 박 부회장의 ‘승부수’가 제대로 통하면서 팬택이 경영 정상화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약간 흥분했다. 워크아웃 졸업과 관련해 채권단에 상당한 불만이 있었던 듯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들과 협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의식해서인지 높아지던 목소리 톤을 애써 낮췄다.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워크아웃의 굴레를 벗었으니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겠죠. 대규모 투자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고요. 제가 워크아웃 졸업에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글로벌 경기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쉽지 않고, 삼성전자·애플과 같은 공룡기업들과 싸워야 한다. 올해 그의 경영 목표는 ‘성장과 발전을 한 축으로 삼는 동시에 내실경영으로 기초체력을 더욱 튼튼히 다지는 것’이다. 해외 시장도 확대할 계획이다. 연착륙 중인 미국, 일본에 이어 유럽 등 다른 시장 2~3곳도 집중 공략한다.

2011년 스마트폰 시장에서 구축한 2위 자리도 굳건하게 지킬 계획이다. 2015년에는 매출 10조원의 글로벌 스마트기기 전문업체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IT산업 지형도는 거칠게 변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움츠러들진 않을 겁니다. 지난 5년 동안 팬택은 아픈 만큼 성숙해졌어요. 약점은 보완했고, 강점은 더욱 강하게 만들었죠. 한 번 무너졌다가 살아난 기업이 흔치 않은 만큼 꼭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 박병엽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사의를 표명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팬택의 경영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그는 주식을 우선적으로 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채권단은 팬택 정상화를 위해 불철주야 뛴 그의 공로를 인정해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 48%를 우선적으로 되사들일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박 부회장이 원한다면 채권단이 보유한 채권을 되사들여 예전처럼 팬택 오너가 될 수 있다.

현재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3000억원을 넘는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는다면 그가 조달해야 할 돈은 수천억원에 달한다. 박 부회장은 “M&A가 진행되면 올 중순에는 회사를 다시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어떤 재무적 투자자와 파트너십을 맺을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의 머릿속에 이미 큰 그림은 그려져 있을 것이다. 아마 팬택을 되찾는 것에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지 않을까.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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