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종로5가 보령약국에서 출발한 보령제약이 지난해 큰 사고(?)를 쳤다. 2010년 국내 제약사상 15번째로 신약 ‘카나브 정’을 개발하더니 지난해에는 지식경제부가 주는 2011 대한민국 기술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이다. 국내 신약사에서 전인미답의 일이다. 고혈압 신약 카나브 정은 세계 제약시장에서 획기적인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 것보다 20% 이상 혈압을 낮추는 효능을 갖고 있어 해외 제약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태세다. 보령제약을 ‘한국의 화이자’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갖고 있는 김광호 사장은 “고령화라는 글로벌 트렌드로 볼 때 카나브의 시장성은 무궁무진하며 2019년 매출 3000억원 달성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카나브가 지난해 받은 대한민국 기술대상은 국내 기술 분야에서 최고로 꼽는 상이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공동으로 수여하는 이 상은 기술개발이 완료돼 상용화에 성공한 모든 산업기술 분야를 대상으로 심사를 벌여 기술적 성과가 뛰어나고 산업계에 주는 파급효과가 큰 신기술을 선정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상이다. 이번에 카나브는 최고 영예인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제약, 바이오 신기술이 대상을 수상한 것은 1994년 상 제정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정부가 카나브의 기술적 위상은 물론 국내 제약산업의 파급력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금상(국무총리상)과 은상(지식경제부 장관상)까지 합쳐 총 10개 수상업체가 SK이노베이션, LG화학,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하나같이 대기업 일색인 걸 감안할 때 중견 제약회사인 보령제약의 이번 수상은 큰 화제임에 틀림없다.

지난 1월9일 서울시 원남동 보령제약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소감을 묻자 김광호  사장은 “이번 수상은 정부가 드디어 바이오, 제약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 2011 대한민국 기술대상 시상식에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으로부터 대상(대통령상)을 받고있는 김광호 사장(위). 국내 최초의 고혈압 신약 카나브.



고혈압 신약 ‘카나브’, 효능에서 경쟁업체보다 탁월

카나브는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한 국내 최초, 세계 8번째 고혈압 신약이다. 무엇보다 카나브는 효능 부분에서 경쟁업체에 한발 앞서 있다. 임상실험 결과 카나브는 경쟁제품인 로살탄(제품명 코자, 제조사 MSD), 발살탄(제품명 디오반, 제조사 노바티스)에 비해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20% 이상 높은 것으로 판명됐다. 

“카나브는 글로벌 제약 시장의 본선에 도전장을 내민 신약이에요. 카나브 이전에 출시된 신약들은 상당수가 항암제, 항균제, 발기부전 치료제 등으로 수요가 한정돼 있어 시장성에 한계가 있었죠. 그러니 매출도 작을 수밖에요. 그런데 우리 제품은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인 인구 고령화의 수혜를 받게 돼 있어요. 글로벌 제약시장이 800조원쯤 되는데 이 중 고혈압 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42조원 가량 돼요. 그중에서 카나브와 같은 ARB(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 계열 제품이 30조원에 이를 정도로 시장 규모가 어마어마해요. 국내만 해도 전체 고혈압 시장은 1조5000억원 규모인데 이 중 ARB계열만 8000억원에 달합니다. 그러니 글로벌 제약사들이 사활을 걸고 덤벼들 수밖에 없어요.”

현재 고혈압과 관련된 약품은 이뇨제(소변을 촉진시키는 의약품)와 CCB(칼슘채널억제), 그리고 혈압을 끌어올리는 안지오텐신이라는 물질이 배출되는 것을 억제시키는 ARB계열 등 5가지 계열이다. 이 중 시장이 가장 큰 부분은 ARB계열 의약품이다. 물론 현재 시판되는 제품들은 하나같이 다국적 제약회사 차지다.

“국내 제약산업 여건상 신약을 개발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전 임상을 통과한 후 1, 2, 3상을 거쳐야 비로소 제품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도 이 약(카나브) 개발에 착수한 게 1997년인데 지금까지 투입된 개발비만 500억원에 달합니다. 그런데 돈은 둘째치고 우리 가슴을 짓누른 건 ‘지금 우리가 제대로 하는 건가’, ‘혹시 (진행)하다가 중단되는 게 아닌가’ 등이었어요. 저야 2005년 사장에 취임해 개발초기부터 함께 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부담감은 전 개발 과정에 함께했었죠. 누구도 하지 않은 걸 하니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식으로 할 수밖에요.”

물론 카나브에도 개발 과정에서 위기는 있었다. 개발 초기부터 카나브는 혈압 강하 효과가 동종 제품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그러나 효과에 비해 약효가 오래가지 못했다는 게 단점이었다. 4~5시간 후면 다시 혈압이 높아지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혈압약은 약효도 중요하지만 떨어진 혈압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게 중요하다. 지속성을 해결하지 못해 소비자에게 약을 하루에 두 번 먹도록 하는 것은 경제성 면에서 실패다. 때마침 찾아온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과 맞물리면서 결국 보령제약 경영진은 개발 중단을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연구소장이었던 김상린 현 보령제약 고문이 수차례 경영진을 설득해 3개월 조건부 연구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고 3가지 구조 물질을 여러 차례 배합한 결과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카나브는 2010년 9월 식약청으로부터 신약 허가를 받고 지난해 3월 국내 시판에 돌입했다.

김 사장은 이 밖에 카나브 개발의 의의로 약가 및 보험재정 절감효과를 들었다. 카나브의 평균 제품가는 700원으로 동종 제품 평균가(900원)보다 20% 이상 싸다. 10억정(개) 팔리면 산술적으로 2000억원의 가격 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존 제품들이 다국적 제약사가 제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체사용으로 인한 외화절감은 부수적인 효과다.

김 대표는 국내 대표적인 제약 마케팅 출신의 최고경영자(CEO)다. 건국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그의 첫 직장은 독일에 본사를 둔 바이엘이었다. 한국법인인 바이엘코리아에서 전무이사를 지낸 뒤 바이엘USA 극동담당 매니저, 사노피 신데라보 코리아 부사장을 역임할 때까지 30년 동안 그는 주로 다국적 제약회사에 근무했다. 김 사장은 1996년 입사 당시 연매출 100억원으로 업계 순위 100위권에 머물러 있던 사노피 신데라보를 8년 뒤인 2004년 매출 1640억원, 업계 순위 10위권 기업으로 키워냈다. 보령제약 사장으로는 2005년에 자리를 옮겼다.

제약업계에서는 김 사장을 가리켜 ‘사람을 사랑하는 경영자’라고 말한다. 그 역시 이 같은 주위의 평가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한다. 지난 2005년 펴낸 자서전 제목을 <사람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정한 것도 뿌리 깊은 인애(仁愛)정신에서 비롯됐다. 노조와 극심하게 대립하던 바이엘코리아와 사노피코리아가 그가 자리를 옮긴 뒤 전혀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 것도 그의 수평적인 리더십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4일 보령제약은 김 사장과 노조위원장 등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결의대회’를 가졌다. 참고로 보령제약은 2008년 노사문화 우수기업에 선정됐고 2008년과 2009년 연속 서울지방노동청 주관 노사화합선언 우수사업장으로 지정됐다.

김 사장 집무실은 여느 기업 CEO 방과는 다르게 규모도 작을뿐더러 별다른 가구도 없다. 커다란 탁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책상 겸 회의 탁자로 활용하고 있다. 오랜 기간 외국계 기업에서 생활한 덕분에 겉치레보다는 내실이나 효율성을 강조하는 게 그만의 경영스타일이다. 방문은 24시간 늘 열려 있으며 비서도 없다. “사장님 방 치고는 굉장히 작다”고 말하자 김 사장은 “그래요? 그럼 이거 (기사에) 써주세요. 사실 사장 방이라는 게 뭐 별거 있겠습니까. 컴퓨터에 전화기 하나면 되죠”라고 말했다. 

멕시코·터키 등 해외 주문 줄이어

보령제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흔들어도 소리가 안난다’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용각산과 국민 위장약 겔포스다. 종로5가에 위치한 보령약국에서 출발한 탓에 딱 떠오르는 기업이미지가 신약개발 회사와는 다소 동떨어질 수 있다.

“그게 걱정이에요. 그래서 제가 시간 날 때마다 회장님(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께 이미지를 개선시켜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아직도 사람들은 보령제약 하면 용각산, 겔포스만 떠올리는데 우리는 이제 세계 최고의 혈압약 카나브를 만드는 바이오 회사예요. 지금 후속 약품을 꾸준하게 준비하고 있는데 계획대로라면 ‘한국의 화이자’(글로벌 제약회사)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에요.”

야심작 카나브는 출발이 좋다. 발매 6개월 만에 월 처방액 10억원을 돌파하며 첫해 누적매출 100억원을 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10월에는 멕시코 의약전문 기업인 스텐달(Stendhal)사와 멕시코를 비롯한 콜롬비아, 파나마 등 중남미 13개국에 총 3000만달러의 단일제 독점 판매 및 완제품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12월에는 터키 의약전문 기업인 압디 (Abdi ibrahim)사와 4580만달러짜리 수출협약(MOU)를 맺었다. 김 사장은 “제품의 효능으로 볼 때 수출선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속도라면 2019년 국내 매출 2000억원, 해외매출 1000억원 달성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1상을 영국에서 받았기 때문에 해외시장 진출에도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이 밖에도 보령제약은 카나브의 성분명인 피마살탄을 2006년 1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일반명(INN) 리스트에 올렸다. 또 카나브와 관련해 2001년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호주, 유럽 6개국, 멕시코, 러시아 등 현재 17개국 32개의 물질특허와 제법 특허를 갖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EPO(적혈구 생성 촉진제) 관련 의약품과 천식, 류마티스 등을 예방, 치료할 수 있는 HRF계열 제품도 준비 중이다. 2013년까지 기존 카나브에 이뇨제 효능을 결합시킨 제품을, 2014년에는 CCB계열 결합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BMS가 제조하는 신경안정제 부스파는 안전성과 효능을 이미 검증받는 제품인데 브랜드를 우리가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암환자 등의 식욕촉진을 돕는 매게이스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이들 브랜드 사용은 국내에서만 한정돼 있는 겁니다. 브랜드 사용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제품을 액상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별도의 로열티를 주지 않기 때문에 외화 절감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김광호 대표는…

1947년 충남 보령 생으로 건국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받았다. 1975년 바이엘코리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바이엘코리아 전무, 바이엘USA 극동담당매니저, 사노피 신데라보코리아 부사장을 역임했다. 보령제약 대표이사 사장에는 지난 2005년 취임했다. 현재 건국대 수의과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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