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자동차 푸조, 시트로앵을 독점 수입, 판매하는 송승철 한불모터스 사장에게 야구는 학창시절부터 늘 함께 한 스포츠다. 무엇 하나 풍족하지 않던 시절, 제대로 된 배트 하나 살 돈이 없어 나무막대기로 공을 치던 그가 대학에 입학하자 동네 친구들과 함께 팀을 결성한 것도 순전히 “원 없이 제대로 야구 해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5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도 야구는 여전히 삶의 활력소다. 송 사장은 해외 출장 등의 이유로 자주 출전하지 못하지만 이따금씩 묵직한 배트의 ‘손맛’을 느끼고 싶어 근질거린다는 진짜 야구 마니아다.

1800년대 초반,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 낯선 미국 땅에서 만들어낸 스포츠 야구. 초창기 크리켓, 라운더스, 캣앤독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야구는 1845년 뉴욕의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니커보커룰’이라는 규칙을 만들면서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 야구는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로 성장했다. 그래서 마지막 메이저리그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야구공을 때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다”고 말한 것일까.

한불모터스 송승철 사장에게 야구가 그런 존재다. 하면 할수록 끝을 모르는 매력을 지닌 스포츠다. 수입차 사장이지만 그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필수 스포츠인 골프는 일절 치지 않는다. 움직이는 공을 치다보니 정지된 볼을 치는 골프가 영 성이 안찬다는 게 그가 말하는 야구 예찬 이유다.

 어릴 적부터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야구사랑은 야구 명문 중앙고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1908년 설립된 중앙고는 1911년 야구단을 창단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선수를 길러낸 최장수 고교 야구팀이다. 이광환, 계형철, 이숭용, 홍성흔 등이 중앙고 출신 야구선수다.

“1975년 황금사자기에서 준우승했는데, 대입을 앞둔 고3이라 현장에서 직접 결승전을 못본 게 얼마나 아쉬운지 몰라요. 아마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야구팀을 결성했는지 모릅니다.”

 197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하자마자 그는 동네 친구들과 뜻을 모아 사회인 야구팀 ‘마포 그랜드슬램’을 결성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기업, 지역별로 막 사회인 야구팀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전국적으로 10여개에 불과하던 시절 마포 그랜드슬램 선수들은 창동 제일은행(SC은행 전신) 구장, 구리 상업은행(우리은행 전신) 구장, 배명고, 휘문고 운동장에서 리그전을 벌였다.

“지금이야 국내 사회인 야구리그가 A~C등급으로 나뉠 만큼 체계를 갖췄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래도 수준은 꽤 높았죠. 실업팀에 가지 못한 선수들이 일반 기업에 입사해 선수로 뛰던 게 일반적이었으니까요. 주로 옷을 만들어 수출하던 삼도물산이라는 회사는 전직 야구선수를 일부러 채용해 선수로 뛰게 했을 정도였죠. 대학을 졸업하고 코오롱상사에 입사했는데 우리 회사에도 실업야구 스타 박해종이 선수로 뛰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그는 마포 그랜드슬램에서 1977년 창단부터 활동해 1990년까지 1번 타자 겸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

“학교 다닐 때는 힘든 걸 몰랐는데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구장도 대부분 서울 외곽에 있어 오가는 것도 힘들었고요. 1980년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코오롱상사에 야구팀이 있었던 것도 마포 그랜드슬램과의 관계가 시들해진 이유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직장 동료들 게임에 참가한 그는 단 한번의 시합을 뛰고 바로 사내 주전 선수로 발탁됐다.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탓에 이듬해 사내 선수들을 4팀으로 나눠 가진 친선경기에서 그는 최우수선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가 지난 2010년 한불모터스에다 사내 야구팀을 꾸린 것도 학창시절, 직장 초년병 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해서다. 그런 면에서 그에게 야구는 친구, 동료와의 소통채널이다. “조사해보니 우리 회사에 야구 좋아하는 직원들이 꽤 많더라고요. 축구에 비해 다칠 염려도 적어 괜찮다 싶었죠.”

 야구는 철저한 팀 스포츠다. 특출난 선수 한 명이 있다고 해서 승리를 보장받지 않는다. 9명이 똘똘 뭉쳐야만 이길 수 있는 게 야구다. 

“경영이나 야구나 결국 본질은 같아요. 얼마나 하나를 이뤄내느냐가 관건인데, 야구를 하다 보면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할까요. 그리고 비록 8회까지 3, 4점 차이로 뒤지고 있을지라도 막판에 집중력을 발휘하면 얼마든지 역전할 수 있는 것도 야구의 묘미죠.”



 한불모터스 야구팀 이름은 푸조를 상징하는 공식엠블렘 블루 리옹(푸른 사자)이다. 블루리옹은 본사 직원 30명과 서울 지역 딜러사 직원 10명 등 총 40명으로 구성됐다. 팀에서 그는 단장 겸 주전 2루수다. 신설된 지 이제 2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은 C군이지만 지난해 10여 팀으로 구성된 영등포리그에서 블루리옹은 9승5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 푸조 불루리옹은 지난해 영등포리그에서 9승5패를 기록했다. 오른쪽은 대학시절 같은 과 후배였던 최동원.

대학 후배 최동원, 날카로운 눈빛 잊을 수 없어

 ‘한국시리즈 4전 전승’이라는 전인미답의 성적을 기록한 최동원은 그에겐 아련한 추억이다.

“제가 76학번, 그 친구(최동원)가 77학번이었고 과도 같은 경영학과였어요. 학교 다닐 때 몇 번 봤는데, 금테안경 속 날카로운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포스(기운)가 대단한 친구라는 걸 단번에 알겠더라고요. 경남고 시절부터 워낙 유명한 선수여서 입학 때부터 엄청난 화제였죠. 그리고 1977년 니카라과에서 열린 세계야구대회에서 우승까지 거뒀으니 대단한 선수였던 것만은 틀림없어요.”

송 사장은 자신의 학창시절 연세대 야구부야말로 국내 최강자로 꼽혔다고 설명했다. 투수 최동원, 포수 박해종(전 OB베어스 선수)을 비롯해 이광은, 이순철로 이어지는 라인업으로 연세대는 1977년 대학야구, 춘계야구 연맹전 등을 싹쓸이했다. 4월 대학야구 결승전에서 최동원은 성균관대를 상대로 삼진 16개를 곁들이며 완봉승을 거뒀다.

“지금도 생생해요.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한해 전에 열린 1978년 연·고전은 제 인생에 잊지 못할 빅 경기였던 거 같아요. 한해 전 우리(연세대)가 우승을 싹쓸이하자 맞수인 고려대에는 박종훈(전 LG 감독), 김경문(창원NC 감독) 등이 가세하면서 막상막하를 벌였던 기억이 납니다.”

송 사장은 국내 대표적인 수입차 딜러다. 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한국수입자동차협회장),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 등과 함께 국내 수입차 시장의 역사를 써온 이가 바로 송 사장이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동안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을 맡았다. 1986년 코오롱상사 자동차사업부 시절 송 사장은 판매에 고전하던 사브9000모델을 단일모델 1위로 만들었다. 이 같은 열정을 높이 사 프랑스 푸조-시트로앵그룹은 한국 내 총판권을 대기업이 아닌 한불모터스에 맡겼다. 그는 올 상반기 선보일 시트로앵에 큰 기대를 걸었다.

“시트로앵은 프랑스 자동차 기술의 집약체입니다. 세계 최초로 디젤차를 개발한 것이나 양산차를 처음 생산해낸 것이 모두 시트로앵이죠. 1990년대 삼환기업이 수입해오다 2001년 판매가 중단된 지 꼭 10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것이라 다소 부담도 되지만 워낙 기술력이 뛰어난 차라 금방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불모터스가 이번에 선보일 모델은 최신형 세단 DS3, DS4다. 그는 올 판매목표를 푸조 3500대, 시트로앵 1500대로 잡았다.

“야구장에서 보여주는 직원들의 단합된 열정만 있다면 목표 달성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년에는 시트로앵 판매와 관련해 회사 일로 바빠 야구장을 찾는 일이 많지 않았지만 올해부터는 경기에 좀더 많이 참가할 생각입니다. 제가 한번 재미를 붙이면 몰입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당구도 입문한 지 6개월 만에 400을 넘겼고 볼링도 3~4개월 만에 에버리지(평균 스코어)가 200점이었으니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촬영을 요구하자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 포즈를 취한 모습이 거포스타일의 슬러거보다는 출루를 통해 내야진의 혼을 빼놓는 영락없는 1번 선두타자다.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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