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글로벌(김종훈 회장)은 개성과 특징이 뚜렷한 기업이다. 국내 최초로 건설사업관리(CM·Construction Management)라는 업종을 개척한 선구자라는 점이나, 이른바 ‘훌륭한 일터(GWP·Great Work Place)’ 만들기 운동을 마치 사명처럼 여기는 점만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기업이라는 것을 단박에 느끼게 된다. CM 전도사이자 GWP 신봉자로 유명한 김종훈 회장 스스로도 자신의 회사를 가리켜 이렇게 소개한다. “좀 독특한 회사죠. 구성원을 대하는 관점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주 독특합니다. 크지는 않지만 어쨌든 독특한 회사라고 할 수 있죠.” 사실 한미글로벌의 독특한 정체성은 전적으로 김종훈 회장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목표와 비전에서부터 기업문화와 핵심가치에 이르기까지, 한미글로벌의 모든 것이 그의 머리와 가슴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건설산업 선진화를 목표로 CM이라는 신세계에 깃발을 꽂았고, 그 목표를 함께 달성해나갈 구성원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솔선수범해서 신명을 다 바쳤다. 그러는 사이 김 회장과 구성원들은 일심동체가 됐고, 자연히 한미글로벌은 한국 CM업계 넘버원 기업, 국내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는 멋진 훈장을 달 수 있었다. 김종훈 회장은 2010년 말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는 그가 CM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도전하고 성취한 과정과 함께 ‘꿈의 직장’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아울러 기업가의 새로운 전형, 직장의 이상적인 모델에 대해 음미해볼 단서들이 곳곳에서 가슴을 파고든다. 그는 대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국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제목은 좀 과장된 면이 있겠죠. 하지만 제가 책에 쓴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천국 같은 직장을 향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국내 CM건설사업관리 시장 개척자에서 GWP일하기 좋은 일터 운동 선구자로

- 김종훈 회장(오른쪽)과 강석진 회장은 리더가 조직문화를 좌우한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나타냈다. 작은 사진은 김 회장의 저서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의 표지.
- 김종훈 회장(오른쪽)과 강석진 회장은 리더가 조직문화를 좌우한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나타냈다. 작은 사진은 김 회장의 저서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의 표지.

세상을 살다 보면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싹트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는 때도 적지 않다. 한미글로벌의 태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1995년 6월29일 오후 6시 무렵. 김종훈 당시 삼성건설 품질안전실장은 부산 연수원 구내식당에 저녁식사를 하러 들어섰다가 몸이 얼어붙는 듯한 쇼크를 받았다. 그 순간 TV 화면에서는 삼풍백화점이 마치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주저앉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나라 건설산업 전체가 무너졌구나….’ 김종훈 실장은 멍하니 TV를 보면서 절망적인 장탄식을 했다. 그랬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이 빚은 초대형 인재(人災)였고, 한국 건설산업의 위상이 곤두박질친 참담한 사건이었다. 건설인의 한 명으로서 자괴감과 책임감이 집채만한 파도처럼 그의 가슴을 때렸다.

김종훈 회장(이하 김 회장)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났을 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엄청난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당시 삼성그룹에는 삼성건설(현 삼성물산 건설부문),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 등 계열 건설사가 3곳 있었는데, 만약 이들 회사가 건설한 프로젝트가 삼풍처럼 무너진다면 그룹도 망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죠. 이 회장은 비서실에 특별조치를 취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주요 건설 프로젝트 50개를 선정해 외국인 감리 전문가를 투입하는 것이었어요. 그때 제가 비서실 산하조직 소속으로 그걸 총괄하는 책임자가 됐어요. 시간도 별로 안 주더라고요. 콩 볶듯이 빨리 진행하라고 해서 무려 60여명의 외국인 전문가들을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데려와서 프로젝트 현장에 투입했죠. 그 임무를 맡았을 때는 사장이고 뭐고 관계없었어요. 저희 팀이 ‘스톱’하라면 이유불문 스톱하고 ‘고’하라면 고했죠. 그 제도를 ‘외국인 감리 프로그램’이라고 불렀어요. 당시 언론에서도 많이 주목했는데, 어쨌든 삼성이 나름대로 건설에 대해 새로운 화두를 제공했던 셈이죠. 당시 삼성은 미국의 파슨스 등 외국 회사 3곳과 용역 계약을 맺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용역으로 하면 계약기간만 제대로 하는 척하다가 고무줄처럼 원상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좀 영구적, 지속적으로 외국인 전문가에 의해 건설산업, 건설환경, 건설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고민을 하다가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마침 투자를 하겠다는 곳(서영기술단)이 있어서 그곳과 조인트벤처를 하게 된 겁니다. 외국 파트너로는 여러 회사와 접촉한 끝에 의지가 강한 파슨스와 손잡게 됐어요. 그렇게 합작법인이 탄생했죠.

국내 최초의 CM 전문회사 한미글로벌은 1996년 6월18일 설립됐다. 당시 회사 이름은 한미건설기술. 서영기술단이 55%, 파슨스가 45%의 지분을 각각 보유했다. 김종훈 초대 대표이사 사장은 전혀 지분이 없었지만 실질적인 경영권을 부여받았다. 한국 건설업계에 CM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최적의 경영자라는 인정을 받은 셈이었다.

강석진 회장(이하 강 회장)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난 후 삼성이 위기를 느껴 추진한 외국인 감리 프로그램을 맡았던 게 CM 전문회사를 세우게 된 가장 결정적인 동기군요.

김 회장 | 제가 삼성에 그냥 있었으면 고위직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창업에 뛰어들어 CM이라는 걸 국내 최초로 시도했고 또 이렇게 회사를 잘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죠. 어떤 사람이든 일생 동안 여러 기회를 만나는데 그 기회를 잡으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죠. 제가 젊은이들에게 늘 말하는 게 평소 놀기도 하고 특색 있는 활동을 하더라도 기본기는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도 있지만 결국 기본기가 있어야 운도 자기 것이 되는 겁니다. 저는 나름대로 CM에 대해 열정도 있었고 굉장히 하고 싶었기 때문에 기회를 안 놓치고 잡을 수 있었던 거죠. 저는 1970년대 말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에서 선진회사들이 CM을 하는 걸 보고 반해서 영국 유학을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학비가 만만찮은 겁니다. 제가 당시 작은 집 한 채를 갖고 있었는데 그걸 팔아 모두 투자해야 할 것 같더군요. 그러다 가족도 딸려 있는 처지에 용기가 안 나 포기했는데, 어떻게 보면 유학을 안 간 게 지나고 보니 잘된 것도 같아요(웃음).

강 회장 | 한미글로벌이 국내에 CM을 도입한 지도 15년이 훌쩍 지났는데 건설시장에서 CM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지요.

김 회장 | 미국 같은 선진국은 CM을 적용하는 건설 프로젝트가 50% 이상으로 보편화된 상태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보편화 단계는 아니죠. 주된 이유는 우리나라 건설시장 구조가 건설회사 중심으로 돼 있다는 점이에요. 선진국은 설계, 엔지니어링, CM, PM(Program Management: 종합건설사업관리) 등 ‘소프트웨어적인’ 용역 중심으로 건설시장이 이뤄지고 ‘하드웨어적인’ 건설회사는 시장 구조상 하부에 위치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건설제도나 관행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일본 건설시장이 건설회사가 다 하는 구조거든요. 건설회사 중심의 시장과 제도에서는 CM이 비집고 들어가기에 한계가 있는 거죠. 그동안 우리 사회는 건설회사의 중요성은 알았지만 CM의 역할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않았죠. 하지만 CM은 굉장히 중요한 분야입니다. 건설산업의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어요. CM이나 설계, 엔지니어링처럼 건설산업의 소프트웨어가 ‘레벨업’돼야 전체 건설산업의 수준이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CM은 건설산업의 핵심 소프트웨어

강 회장 | 지금 국내 건설시장에서 CM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확실히 자리잡았습니까.

김 회장 | 그렇죠. 하지만 분야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SOC(사회간접자본) 토목공사에는 CM이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어요. 그 분야에서는 설계자가 토목 엔지니어링업체들인데, 그들은 ‘책임감리’라는 걸 하거든요. 설계한 사람들이 감리까지 하는 거죠. 어찌 보면 먹이사슬하고 연관돼 있어요. 우리나라는 국책사업을 할 때 정책 결정이나 사업 추진의 문제점 때문에 몇 조원짜리 프로젝트의 사업비가 두세 배 올라가는 일이 수두룩합니다. 경부고속철도 공사 같은 게 대표적 사례죠.

강 회장 | SOC 건설 프로젝트에서 예산이나 공사기간이 당초보다 몇 배나 늘어나는 일이 있어도 아무도 관리·감독하지 않는 게 더 문제인 것 같아요.

김 회장 | 선진국에서는 공공 건설사업이 끝나면 반드시 사업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발주자의 리더십이나 역할이 제대로 됐느냐, 설계자나 시공자가 제대로 임무를 수행했느냐, CM 업체가 있으면 그들의 역할은 제대로 됐느냐, 원가와 일정관리가 제대로 됐느냐를 살펴봅니다. 특히 발주자의 역할에 대한 평가를 아주 중요시합니다.

강 회장 |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CM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배경이 뭡니까.

김 회장 | 옛날에는 ‘마스터빌더(Master Builder)’라고 해서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이나 미켈란젤로처럼 설계, 시공 등 모든 걸 한 사람의 장인이 했죠. 그 후 사회가 발전하면서 업무가 많이 분화되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기게 됐어요. 일정이나 원가 측면에서 당초 계획을 심대하게 초과하는 프로젝트들이 자주 나온 겁니다. 이런 현상이 불신을 부르면서 발주자를 위한 가장 좋은 제도나 시스템이 뭐냐를 고민하다가 발주자 그룹이 만든 제도가 CM입니다. 역사적으로는 1940~50년대에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발주자가 CM으로 효과를 보게 되니까 금세 확산됐죠. 미국 같은 선진국은 특히 소프트웨어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문화 덕분에 CM이나 PM이 반드시 건설산업에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게 됐죠. 그러면서 벡텔이나 파슨스 같이 아주 크고 유명한 업체들이 탄생한 거죠.

강 회장 | 일반인들은 CM을 잘 모르는데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명해주신다면 어떨까요.

김 회장 | 요컨대 CM은 발주자가 건설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할 수 있도록 발주자를 대신하는 역할입니다. 건설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3요소가 사업비(원가), 일정, 품질·안전이거든요. 이 3가지를 발주자 대신 전문가 조직이 관리해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겁니다. 건설 프로젝트는 외부인들에게는 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하거든요. 발주자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의사가 돈을 벌어 클리닉 빌딩을 짓는다고 하면 자기 생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예요. 당초 생각했던 원가, 일정, 품질을 준수하면서 사업목표를 달성하는 게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발주자 입장에서 건설사업을 성공시켜주는 CM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한 겁니다.

CM은 언뜻 생각하면 건설감리와 헷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의 개념은 명백히 다르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감리는 설계가 끝난 후 공사를 진행할 때 검측하고 시방서나 도면대로 잘 되는지를 감독하는 사후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CM은 사전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습니다. 어떤 건설사업이든 계획이 매우 중요한데, 그 단계부터 설계, 시공, 원가, 일정, 발주 등 모든 측면에서 발주자를 대신해 종합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CM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 회장 | 무엇보다도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공공 발주 프로젝트에는 CM이 반드시 채택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공공 발주 프로젝트에 CM을 적용한다면 사업비나 공사기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요.

김 회장 | 국토해양부 장·차관을 비롯해 120~130명의 고위간부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우리나라 건설사업의 공기를 50%, 비용을 30% 정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다른 나라나 다른 산업의 사례를 들면서 말이죠. 예를 들어 PB상품은 브랜드 이름만 바꿔도 가격이 20~30% 인하되잖아요. 유통 혁신이거든요. 요즘 반값TV 같은 반값상품이 유행하는 것도 그런 사례죠. 여하튼 다른 산업이나 건설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감안하면 건설 비용을 30%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수조 원짜리 프로젝트에서 30%는 어마어마한 거예요.

강 회장 | 그렇다면 공공 건설 프로젝트에는 CM을 의무화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볼 때 투명성, 예산절감 측면에서 좋을 것 같습니다.

김 회장 | 저는 이해당사자이기는 하지만 법적으로 CM을 의무화하는 건 반대합니다. 왜냐면 좋은 취지로 하더라도 파생되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CM업체의 능력이 중요한데, 제대로 된 업체가 아니라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거죠. 가장 우선적인 해결과제는 공공 프로젝트 평가 시스템을 만드는 겁니다. 민간은 당연히 내부적인 평가 시스템을 갖고 있어요. 어떤 프로젝트가 끝나면 예산, 공사기간 등에 대해 따져보는 준공보고서를 책으로도 만들고 재무지표 등도 분석하죠. 그리곤 다음에는 어떻게 개선하겠다 하는 식으로 반성을 하죠. 그런데 공공 프로젝트는 구조적으로 그런 게 없어요. 왜냐면 장관, 관료 등 정책 담당자들이 수시로 바뀌고 시스템이 없는 거예요. 그게 참 문제입니다. 평가를 하고 데이터가 나와야 피드백도 되고 개선도 될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건설산업이 안 바뀌는 이유가 법이나 제도 등 여러 가지 있지만 평가 시스템 부재 문제도 큰 거예요. 평가만 제대로 된다면 그걸 (책임자들이) 견뎌내겠습니까?

공공 건설사업 ‘발주자 평가’ 필요

김종훈 회장은 공공 건설 프로젝트에 반드시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특히 발주자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 사례를 들기도 했다. “영국은 건설혁신의 모범국가입니다. 최근 15년 동안 지속적인 건설혁신 운동을 했는데 그 동기를 제공한 주역이 바로 공공 프로젝트 발주자들이었어요. 그들은 공공 건설사업 예산을 과거보다 10~20% 절약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30% 절감 목표를 갖고 있었어요. 그들의 캐치프레이즈가 ‘건설사업에서 부실이 생기면 그건 발주자의 거울이다’라는 내용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건설사업을 개선, 혁신할 수 있느냐를 스스로 반성하고 고민하는 운동이었죠. 공공 건설이 잘못되면 발주자 탓이라는 생각에서 혁신을 시작한 겁니다.”

몇 해 전 한미글로벌 부설 건설전략연구소는 <발주자가 변하지 않고는 건설산업의 미래는 없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붙인 책을 내기도 했다. 한국 건설산업의 혁신과 건설문화 선진화를 위해서는 공공 발주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갈파한 내용을 담았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 “책의 제목을 보면 굉장히 절망적인 외침이거든요. 발주자는 게임의 룰을 만들고 모든 관계자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주자가 잘못하면, 가령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얼마나 큰 폐해가 생깁니까? 공공 건설 프로젝트에서도 발주자 조직이 잘못하면 치명적으로 망가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발주자 평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강 회장 | 미국 파슨스와 합작해 회사를 설립했지만 이제는 독립한 상황이죠. 지난해에는 회사 이름도 한미파슨스에서 한미글로벌로 바꾸셨고요. 그런 과정을 좀 설명해주시죠.

김 회장 | 파슨스와의 전략적 제휴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한미글로벌로 이름을 바꿨는데, 그건 우리가 ‘오택’이라는 미국 엔지니어링업체를 인수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저희가 파슨스와 두 가지 계약관계를 맺어왔는데 하나는 전략적 제휴고, 다른 하나는 파슨스 이름을 사용하는 ‘네임 유스 어그리먼트(Name Use Agreement)’입니다. 이름 사용 계약 내용에는 우리가 어느 특정지역에 진출할 때 한미파슨스라는 이름을 쓰려면 파슨스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파슨스의 코앞에 있는 비슷한 업종의 회사를 인수하는데 승인 요청을 하나마나 거절당할 게 뻔해 저희가 먼저 이름 사용 계약을 정리하기로 결정한 거죠. 그 전에도 저희가 중동에 진출할 때 한미파슨스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니까 파슨스와 다소간 갈등이 있었죠. 파슨스는 중동지역에 상당한 존재감을 갖고 활동하는데 알게 모르게 저희 활동이 모니터링되니까 서로간에 불편함이 생겼죠. 아무래도 저희는 파슨스 이름을 빌려 쓰고 있으니까 장기적인 측면에서 자체 브랜드를 가지는 게 필요하다 판단해서 이름을 바꾼 거죠. 또 저희가 파슨스와 분리하는 과정에서도 해외 사업 관련 이슈가 있었어요. 2006년에 파슨스 지분 전체를 저희 구성원들이 인수했는데, 그때 이슈도 해외 사업이었죠. 저희가 2002년부터 해외에 독자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파슨스 측에서는 가급적 해외사업은 하지 말고 국내에 집중하라는 요구를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회사가 성장하려면 국내의 좁은 시장에 안주하고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결국 파슨스가 모든 지분을 우리 구성원들에게 팔고 철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죠.

강 회장 | 한미글로벌은 국내 CM 시장을 개척해오면서 큰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했었죠. 상암동 월드컵 주경기장도 한미글로벌 작품이죠. 그간 수행한 주요 프로젝트를 좀 소개해주시죠.

김 회장 | 저희가 지금까지 1000여개의 CM 프로젝트를 했거든요. 국내에서는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평창 알펜시아, 타워팰리스 1~3차, 과천과학관 등등 많습니다. 해외 실적도 적지 않습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ITCC’라고 20만평 규모의 IT단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삼성코닝 중국 심천공장도 저희가 했죠.

강 회장 | 그 중에서도 회장님의 경영자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뿌듯했던 프로젝트는 무엇인지요.

김 회장 | 그건 규모에 상관없이 월드컵 경기장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당시는 IMF 외환위기 상황이라서 월드컵 메인스타디움을 지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논란으로 시간을 많이 허송했죠. 1998년 3월쯤 뒤늦게 건설 결정이 났죠. 그때 제가 서울 상암동에 경기장을 건설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죠. 그리고 저희가 CM을 수주했고, CM을 통해 공공 건설에서 CM의 진가를 보여준 최초의 사례였죠. 당초 공사기간도 부족했는데 거기서 3개월을 단축하고 예산도 절감하고 잡음도 하나 없이 끝냈습니다. 공사과정이 아주 투명했어요. 그렇게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기여했던 거죠. 특히 전국에서 유일하게 흑자가 나는 축구경기장을 만들었다는 점에도 자부심이 있습니다.

한미글로벌은 한국의 대표적인 ‘훌륭한 일터(GWP·Great Work Place)’로 소문난 기업이다. GWP코리아가 유력 언론사와 공동으로 주관하는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 연속으로 선정된 기록은 부수적인 영광이다. 특히 최근 4년간 대상을 잇달아 수상하면서 한국 최고의 GWP 기업으로 공인을 받았다. GWP는 요컨대 조직 구성원이 서로 신뢰(Trust)하고, 회사 및 업무에 대해 강한 자부심(Pride)을 갖고 있으며, 즐겁고 보람 있게(Fun) 일하는 문화가 구축된 일터를 말한다. 경영컨설턴트인 로버트 레버링 박사가 고안해낸 개념으로 현재 미국, 유럽에서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일터로서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가장 권위 있는 지표로 통용되고 있다. 레버링 박사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매년 발표하는 ‘일하기 훌륭한 포춘 100대 기업’의 선정을 주관하고 있기도 하다.

강 회장 | 한미글로벌은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유명한데요. 이 분야에서 상도 여러 차례 받으셨죠. 회장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훌륭한 일터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게 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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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글로벌의 ‘베스트 프랙티스’로 꼽히는 상암동 월드컵 주경기장(위)과 해운대 아이파크.

 ‘한국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 명성

김 회장 | 삼성건설 근무 시절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높이 452m의 초고층 빌딩. 2003년 대만 타이베이101 빌딩 준공 전까지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다) 건설현장 책임자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제 아이들이 방학을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고 개학을 하니까 좋아하는 아주 특별한 모습을 목격했어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 현상이잖아요. 이유를 알아보니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너무 재미있고 인간적으로 아이들을 대해주는 곳이더군요. 학비는 좀 비쌌죠(웃음). 그 후 회사 창립 과정에서 불현듯 ‘직장도 직장인들이 정말 가고 싶어 안달 나는 곳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주제로 직원들과 논의하면서 우리의 큰 경영기조로서 ‘구성원 중심 경영철학’을 세웠습니다. 또 하나의 기조가 우리 비즈니스를 통해 건설산업 선진화에 기여한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기조가 기업의 사회적 사명 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3가지 경영기조를 설정한 뒤에 회사를 설립했던 거죠. 사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천국 같은 직장을 만드는 데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신입사원이나 중간간부 시절부터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왔죠. 그러니까 훌륭한 일터 운동이 하루아침에 나온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 이상적인 직장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해왔던 거죠. 그야말로 가정과 같은 직장, 구성원들이 정말 출근하고 싶은 직장, 동료애로 뭉쳐 동지관계가 될 수 있는 직장을 구현해보겠다는 생각을 오래 했죠. 그러다가 ‘GWP’라는 개념을 10년 전쯤 알게 됐어요. 그 개념을 알고 저는 ‘감전’된 것 같았어요. 우리가 추구하던 가치가 바로 이거다, 라고 무릎을 쳤죠.

강 회장 | ‘일하기 좋은 직장’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김 회장 | 세 가지죠. 신뢰, 자부심, 동료애로 뭉쳐 재미나게 일하는 것이죠. 그게 바로 GWP 개념입니다. 그게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구성원들이 출근하고 싶어하는 직장이죠. 그리고 회사 운영의 기틀은 구성원 중심 경영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거죠.

강 회장 | 회장님께서 추진해온 ‘천국 같은 직장’과 GWP의 개념이 비슷한 겁니까.

김 회장 | 거의 같은 개념이죠. 저희는 크게는 조직문화 운동이라고 얘기합니다. 조직문화 운동 중에서도 인간관계를 다루는 게 GWP 운동입니다. 잭 웰치 전 GE 회장도 조직문화에 대해 얼마나 강조했습니까. 업무 성과와 조직문화 부응 두 가지를 갖고 구성원을 네 가지 부류로 나눠 판정하잖아요. 성과도 나쁘면서 조직의 방향에도 부응하지 않는 사람은 자명한 거죠. 그런데 성과는 탁월한데 조직문화에 부응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건 CEO로서 쉽지 않은 문제이거든요. 잭 웰치의 선택은 과감하게 그 사람을 내보내라, 결국에는 조직에 해를 끼칠 사람이라는 판단에서죠. 반면 성과는 좀 떨어지지만 조직문화에 잘 부응하는 사람에게는 교육을 시키고 보직을 바꿔주는 등 기회를 줬죠.

 Tip l 한미글로벌의 야심찬 도전

“2015년 세계 톱10 CM기업 된다”

한미글로벌은 명실상부한 국내 CM 분야 1위 기업이다. 세계적으로도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미국 건설 전문지 <ENR(Engineering News Record)>의 발표에 따르면 한미글로벌은 세계 CM업계(미국 CM업체 제외) 16위에 올라 있다. CM 분야의 강국인 미국의 CM업체들을 모두 포함하면 40위 정도라는 게 김종훈 회장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06년 회사 창립 10주년을 맞아 ‘2015년 세계 톱10 CM회사’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이후 기업공개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국내외 알짜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특히 중동,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해외시장 공략에 많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11년에는 미국의 토목엔지니어링 전문업체 오택(OTAK)을 인수하면서 신도시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를 확보하는 데 성공해 눈길을 끌었다. 오택은 향후 해외시장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든든한 선봉장이 될 전망이다.

한미글로벌은 기존의 용역형 CM 사업 분야를 넘어 사업다각화도 적극 추진 중이다. 일례로 직접 자본을 투자해 도심형 생활주택, 비즈니스호텔, 오피스텔 등을 짓는 개발사업을 새로운 핵심사업으로 키우고 있기도 하다. 김 회장은 “한미글로벌의 미래 사업모델은 건설시장의 ‘토털 솔루션 프로바이더(Total Solution Provider)’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기업문화 혹은 조직문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김 회장은 ‘리더십’을 으뜸으로 꼽았다. “조직문화는 리더십과 관계가 깊습니다. 리더십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누가 리더가 되든 그가 철학을 갖고 일하기 좋은 직장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바람직한 조직문화가 형성됩니다. 가장 중요한 게 리더의 역할이죠. 특히 리더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구성원과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리더십)’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기는 말만 하고 행동은 달리하면 안됩니다. 리더가 솔선수범하면서 구성원과 호흡을 맞추는 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강 회장 | 조직문화는 리더의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결정적으로 좌우됩니다. 조직문화와 리더십의 세계적 대가인 에드거 샤인 MIT대 교수도 조직문화가 리더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어요. 특히 조직의 리더가 창업자나 지배주주인 경우 압도적인 영향을 받죠. 그래서 리더의 리더십 스타일이 ‘사람 중심’이냐 아니냐에 따라 조직문화가 크게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 결국 일하기 좋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은 리더에 달려 있는 거죠.

김 회장 | 리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느 쪽을 가리키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리더가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스마트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을 잘하려면 일만 해서는 안됩니다. 스마트하게 일하고 잘 쉬고 잘 놀아야 해요. 그래서 저희가 안식휴가 제도를 도입했죠. 2006년 초 제가 제일 처음 솔선수범해서 두 달 동안 ‘부재경영(Absence Management: 리더가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도 조직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했어요. 간섭이나 지시도 일절 안 하고 보고도 안 받고 회사를 팽개치다시피 내버려뒀는데도 부재경영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휴가를 가니까 임직원들도 따라 갈 수 있는 거죠. (흐뭇한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사실은 제가 내일부터 2개월간 안식휴가를 갑니다. 산에 갈 건데, 그야말로 속세와 절연하고 지낼 겁니다.

강 회장 | 마침 부재경영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한미글로벌의 미래를 책임질 경영 후계자를 내부에서 발탁하셨지요. 일반적으로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한국 기업 풍토에서는 참으로 놀라운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미글로벌의 경영권 승계 제도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시죠.

김 회장 | 곧이곧대로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회사가 내 개인 회사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지금도 30% 지분을 갖고 있는 최대주주이지만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까 구성원 중심 경영 개념을 말씀드렸지만 회사는 구성원의 총합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후계구도와 관련해 가족을 고려한 적도 없고 아예 상의한 적도 없어요. 그래서 7, 8년 전부터 후계자 선정 준비를 했죠. 처음에는 회사 안팎에서 40여명의 후보군을 추린 다음 계속 압축해나갔습니다. 테스트도 당연히 했죠. 그런데 아무래도 외부인은 우리 비즈니스와 문화를 잘 모르니까 내부 구성원 중에서 후계자를 선정하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종훈 회장은 2009년 말 사외이사와 외부인사로 구성된 ‘차기 CEO 선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최종 단계까지 올라온 후보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후계자를 낙점했다. 김 회장은 구성원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위원회에 참고자료로 제공했을 뿐, 선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이순광 사장이 김 회장의 후계자로 발탁됐다.

 내부 발탁 CEO에게 경영권 승계 ‘파격’

- 한미글로벌이 CM을 수행한 프로젝트 현장 사진이 걸려있는 벽면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종훈 회장.
- 한미글로벌이 CM을 수행한 프로젝트 현장 사진이 걸려있는 벽면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종훈 회장.

Tip l 한미글로벌의 아름다운 목표

“월드베스트 행복한 일터 만들겠다”

한미글로벌의 GWP 운동은 GWP의 3대 핵심가치인 신뢰, 자부심, 재미를 조직 전체에 불어넣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아울러 리더의 솔선수범, 구성원의 열정, 조직의 배려라는 3대 행동원칙이 자리잡고 있다. 국내 최고 GWP 기업을 넘어 ‘월드 베스트 GWP 기업’이 되는 게 한미글로벌의 목표다.

GWP 프로그램은 크게 휴식 및 단합, 자기개발, 배려의 3갈래로 나눠져 운영된다. 특히 2개월간의 유급 안식휴가 제도는 매우 파격적인 프로그램이다. 김종훈 회장은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에서 일에 대한 열정과 창의성이 샘솟는다는 철학에 따라 이 제도를 도입했다. 또 구성원들의 역량 향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 지원, 커리어 카운슬링, 자기개발의 날과 특강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구성원의 가족을 위한 제도도 눈길을 끈다. 매년 배우자 정밀건강진단 실시, 자녀수(입양자녀 포함)에 관계없이 학자금 지원, 출산 축하금 지급 등의 제도는 가족친화기업의 대표주자 명성을 안겨줬다. 김 회장은 특히 저출산 고령화라는 암울한 사회현상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라고 기여하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다(多)출산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사원 면접을 볼 때도 자녀 계획을 물어요. 언젠가 한 지원자에게 자녀 몇 명을 낳을 거냐고 물었더니 손바닥을 펼치며 다섯 명이라고 하더군요. 바로 합격시켰죠(웃음).”

김 회장 | 저는 기본적으로 만 65세가 되면 회사에서 은퇴할 생각을 갖고 있어요. 좀 늦춰지거나 앞당겨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65세가 가이드라인입니다.

강 회장 | 한미글로벌의 후계자 승계 구도를 생각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혹시 선진 사례를 벤치마킹하셨는지요.

김 회장 | 저희 비즈니스가 특수한 분야라서 한미글로벌의 리더는 특별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비즈니스도 잘 알아야 하고 글로벌한 안목과 전략도 필수적이죠. 그런데 제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영권을 물려받게 된다면 회사가 오래가지 못할 수 있죠. 저희가 ‘회사가 망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는 워크숍을 재작년, 작년 두 차례 열기도 했습니다. 그때 후계자를 잘못 뽑는 것이 회사의 영속성에 가장 위험한 요인이라는 공감대를 얻었죠. 한국 기업들처럼 단지 혈연이라는 이유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볼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회사 내부에서 후계자를 발탁하기로 마음먹은 뒤에 국내외 기업 사례를 두루 살펴봤는데, 큰 틀에서 보면 GE의 후계자 승계 제도가 제 구상과 유사하더군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그런 사례가 거의 없더군요.

강 회장 | 지금 국내 기업들의 문제 중 하나가 CEO들이 자기 자리가 오래 못 갈까봐 후계자를 안 키우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러다가 후계자와 관련된 문제가 터지고 당사자의 명예가 손상되는 사례도 나오지 않습니까. 회장님의 65세 가이드라인은 GE와 비슷합니다. GE는 룰은 없지만 전통적으로 65세가 되면 무조건 후계자에게 바통을 물려줍니다. 일종의 불문율이죠. 그 이유는 CEO가 되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해서 65세쯤 되면 진이 빠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은퇴하기 여러 해 전부터 사람을 키워 반드시 몇 명의 후보자를 만들어놓고 이사회가 선정하도록 하는 거죠.

김 회장 | 제가 65세를 은퇴 시점으로 염두에 두는 것은 한적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찾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인생의 두 번째 사명을 사회공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공헌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65세쯤 은퇴하려고 하는 거예요.

물론 김종훈 회장은 지금도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그는 전사적이고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회사 내에 사회공헌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했다. 매달 넷째 주 토요일로 정해진 ‘사회봉사의 날’에는 전체 임직원이 함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있다. 김 회장은 또 장애인을 돌보는 데 초점을 맞춘 사회복지법인 ‘따뜻한 동행’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전·현직 CEO들이 모여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는 재능기부단체 ‘CEO지식나눔’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강 회장 | 회장님께서는 ‘천국 같은 일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도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이른바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모습인데요.

김 회장 | 회사 창립 때 3가지 경영기조를 정했다고 말씀드렸죠. 그게 결국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맥락이죠. 저희가 좀 일찍이 그런 생각을 한 거죠. 한미글로벌은 설립 후 16년간 매달 한 번도 빠짐없이 전 구성원이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아마 그런 회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없을 겁니다. 또 저희 구성원들은 급여 1%를 사회공헌기금으로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그 금액에 대해 1대2 비율의 ‘더블 매칭 그랜트’ 방식으로 기금을 적립하고 있죠.

김종훈 회장은 기업들이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신념이 대단하다. 한국적 기업 풍토를 감안할 때, 어찌 보면 그는 기업가를 넘어 사회운동가에 가까워 보인다. 그의 신념과 열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눔은 모두의 축복’이라는 기본 철학에서 단초를 엿볼 수 있다. 그는 한미글로벌 차원을 넘어 여러 기업들이 뜻을 함께하는 ‘기업연합복지재단’ 건설의 구상도 갖고 있을 정도다.

“기업의 힘이 굉장히 커졌어요. 재벌그룹은 규모가 어마어마하잖아요. 지금은 정부보다 기업의 힘이 크다고 봅니다. 따라서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기업들이 사회의 그늘진 곳도 살펴보고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는 데도 기여하고 고용확대도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해요. 나아가 한국에서도 기업주들이 자기 재산 절반을 기부하는 운동 같은 게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주도하는 기부운동에 미국 부자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그런 부자가 별로 없다는 게 좀 아쉬워요. 기업이나 기업주가 돈을 버는 게 따지고 보면 자기가 잘나서만은 아니거든요. 사회적, 국가적인 결합체로서 부가 창출된 것이거든요. 정부가 무슨 위원회를 만들어 강압적으로 하기보다는 기업주들이 스스로 나눔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누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한국 기업가들도 나눔의 즐거움을 체득했으면 합니다. 그것과 좀 연관성이 있는 일인데 ‘유서 미리 쓰기’ 운동을 벌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잖아요. 유서를 쓰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다 보면 재물에도 초연해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기회가 되면 그 운동을 할까 생각 중입니다.”

김종훈 회장은…

1949년 경남 거창 출생 / 1968년 서울사대부고 졸업 / 1973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 1973년 한샘건축연구소 / 1977년 한라건설 / 1979년 (주)한양 / 1984년 삼성물산 건설부문 / 1996년 한미글로벌 대표이사 사장 / 2001년 서강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 2006년 서울대 건축학과 박사과정 수료 / 2009년 한미글로벌 대표이사 회장 / 건설산업비전포럼 공동대표 / 공학한림원 정회원 / 국토해양부 장관 정책자문위원 / 사회복지법인 ‘따뜻한 동행’ 이사장

강석진 회장은…

연세대 대학원(공업경영학 석사)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30여년 간 제너럴일렉트릭(GE)에 몸담았고, 그중 20년은 GE코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 전문경영인학회 이사장, 서강대·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CEO컨설팅그룹 회장이다. 서양화가로도 활동해 세계미술문화진흥회 이사장과 한·일 서양화 교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역서: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라>, <GE 신화의 비밀>, <잭 웰치와 GE방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