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고대 유적지 여행을 즐기며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시계와 칼로 박물관까지 설립한 이가 있다. 세라믹 성형품 제조업체 ‘희택’ 이동진(65) 대표다. 지난 40여년간 수집한 시계와 칼은 박물관에 전시한 것만 1000점이 넘는다. 그는 “에베레스트산을 세계 최초로 등반한 에드먼드 힐러리경의 ‘산이 있었기 때문에 올랐다’는 말처럼 시계와 칼 수집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말한다. 이 대표만의 특별한 시계와 칼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계 곳곳 돌아다니며 ‘유물급’ 수집…       

 “시계·칼에는 인류 역사가 담겼죠”



시계 수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동진 대표.

지난 2월4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마을에 위치한 타임앤블레이드(TIME&BLADE) 박물관을 찾았다. 타임앤블레이드는 1층에 시계, 2층에는 칼을 전시해 놓은 시계·칼 전문 박물관이다.‘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가득할 거란 상상과 달리, 박물관 안은 시간이 멈춘 듯 조용했다. 이곳에 전시된 시계들은 주로 유럽과 이슬람 문화권에서 가져온 중세 시대 유물이다. 이동진 대표가 유리 진열장 안에서 회중시계 하나를 꺼내 태엽을 감자, 시계 바늘이 경쾌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기 전시된 시계들은 기계식 시계로 밥을 줘야 움직입니다. 전시용 골동품이 아니라 지금도 태엽을 감아주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시계죠.”

시계 수집가인 그는 특히 기계식 시계 마니아다. 갈라파고스의 거북이 등뼈로 케이스를 만든 18세기 ‘파텍필립’ 회중시계부터 19세기초 프랑스의 백옥 사자상 탁상시계까지 다양한 기계식 시계를 수집해왔다. 심지어 중세 스위스 시계공들이 사용했던 시계 제작 공구까지 사와 박물관 내 공방을 재현해 놓았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수집품을 보여주기 전, 기계식 시계에 관한 역사부터 술술 풀어놨다.

“기계식 시계의 역사는 3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태엽으로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는 프랑스와 독일의 시계기술자들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어요. 그들은 칼뱅파 신교들이었는데 구교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지대인 쥐라산맥을 넘어 스위스에 정착했죠. 이들이 소규모 공방을 만들고 시계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1. 가열로에서 붉게 달궈진 칼을 꺼내고 있는 이 대표.

2. 스위스 명품 브랜드 ‘브레게’의 달의 변화로 시간을 알려주는 19세기 문페이즈 회중시계.

3. 초침에 맞춰 장식품 안의 남녀가 움직이는 중세 ‘에로틱 시계’.

4. 시계 탈부착이 가능한 19세기 오스만 제국시대 근위대의 권총.

고가의 명품 시계도 50점 보유

오늘날 스위스는 명품 시계의 본거지로 대표된다. 제네바에서 바젤로 이어지는 쥐라산맥 일대는 ‘워치밸리(Watch Valley)’라 불리며 전 세계 시계회사의 70% 이상이 모여 있다. 이 대표는 신혼여행도 워치밸리로 다녀왔을 만큼 스위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매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시계박람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주변의 미혼들에게 신혼여행은 꼭 스위스 워치밸리로 가라고 적극 권유할 정도다. 그의 수집품에도 스위스 시계가 상당히 많다. 파텍필립, 브레게, 블랑팡, 오데마피게, 오메가 등 고가의 명품 시계도 50여점 보유하고 있어 관람객들이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는 현재 세라믹 성형품 제조업체 ‘희택’ 대표다. 제철, 석유화학, 반도체 등 전 산업의 열설비 분야에 사용되는 공업용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도자기 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 1985년 해외 선진 기술을 도입해 지금의 희택을 설립했다.

수집광은 196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박물관에서 빈티지 시계 2개를 구입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시계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 작동 원리를 알아가며 시계에 매료된 그는 틈날 때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시계를 모았다. 그는 “시계 수집은 내 삶에 긍정적인 열정을 가져다줬다”며 “수집 여행을 통해 수많은 인종들과 만나고 감정을 공유하며 그들과 하나 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특히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모두 돌아봤을 정도로 유달리 고대 유적지 여행을 좋아했던 그는 역사와 문화가 담긴 시계들을 수집했다. 보수적이었던 중세 구교 시절 한 시계공이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한 시계를 만들었다가 감옥에 갈 뻔했던 ‘에로틱 시계’, 과거 스위스 여성들이 결혼할 때 오르골이 달린 시계를 예물로 들고 갔다는 ‘뮤직 시계’,  오후 4시 티타임이 되면 벨이 울리는 영국의 ‘티 시계’ 등 그가 수집한 시계에는 저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가득하다. 이 밖에 인류 최초 달 착륙 시 가져갔던 오메가 시계, 고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쓰던 탁상용 시계 등 깜짝 놀랄 만한 역사가 담긴 시계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그 시계는 아니다. 스위스 시계회사가 마케팅 차원에서 한정판으로 제조·판매한 제품이란다.

칼 수집은 물론 직접 만들기도

그는 또한 칼 마니아다. 중세 십자군전쟁 시 이슬람군에 승리를 가져다준 명검 ‘다마스쿠스 칼’,  말을 타고 이동이 많아 칼집에 젓가락을 꽂고 다닌 칭기즈칸 병사들의 단검 등 역사가 담긴 다양한 칼을 수집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만들기까지 한다. 그는 전 세계 칼 동호회 모임 ‘블레이드클럽’ 회원이다.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정기모임에 참석해 자신이 만든 칼을 선보이고 있다. 10년 전 시리아에서 열흘간 직접 칼 제조법을 배워온 그는 박물관 지하 1층에 칼 제조 시설을 모두 갖춰 놓았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시계와 칼,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그는 시계와 칼은 공통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칼과 시계는 둘 다 철로 만드는데 열에 강해야 하고 녹이 슬면 안 돼요. 달나라에 오메가 시계를 차고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금속 제조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계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어요. 이처럼 칼과 시계는 인류의 철제 기술 발전과 함께해온 소중한 역사적 산물입니다.”

이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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