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초 KT(이석채 회장)는 ‘DJSI(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월드’ 통신 분야의 ‘글로벌 슈퍼섹터(Supersector) 리더’로 선정되는 경사를 맞았다. 슈퍼섹터 리더는 모든 산업을 크게 19개 업종으로 분류해 각 업종별로 지속가능경영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업에게 부여하는 영예다. KT는 보다폰, 텔레포니카, 차이나모바일 등 세계 유수 통신업체들을 제치고 당당히 통신 분야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DJSI 월드’는 전 세계 2500여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재무적 성과와 비재무적 요소를 종합 평가해 지속가능성을 측정하는 세계적 권위의 기업평가 지수다. 미국의 금융정보 및 언론서비스 업체인 다우존스와 스위스의 투자평가사인 샘(SAM)이 공동으로 평가를 실시한다. 2011년 슈퍼섹터 리더에는 BMW(자동차), 로슈(제약), 펩시(식음료)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이 각 업종을 대표하는 지속가능경영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KT가 이런 세계적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KT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낡고, 굼뜨고, 정체된’ 기업이었다. 과거 공기업 시절의 체질을 버리지 못해 관료주의와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했을 뿐 아니라 주력사업인 유선통신 분야는 성장 한계를 넘어 쇠락 국면에 봉착해 있었다. 당시 KT의 처지는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비운을 맞은 공룡과 아주 흡사했다. 풍전등화의 위기가 코앞에 닥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KT가 일약 세계 통신 산업의 리더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환골탈태’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쓰는 말이 아닐까. KT의 변신은 한 사람의 풍운아가 일으킨 메가톤급 혁신 태풍에서 비롯됐다. 이석채 회장이 주인공이다. 이 회장은 2009년 초 KT의 CEO로 취임하자마자 ‘올 뉴 KT(All New KT)’의 기치를 내걸고 대대적인 조직 혁신에 나섰다. 과거 KT를 거쳐간 어떤 CEO도 제대로 시도하지 못한 과업에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사업 구조와 전략도 확 바꿨다. 그가 던진 KT의 미래 비즈니스 화두는 ‘컨버전스(Convergence: 융합)’였다. 그 직후 KT와 KTF를 전격적으로 합병했다. 컨버전스 시대에 걸맞은 유무선 통합 서비스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 회장의 혁신 바람몰이는 KT 안팎을 거세게 휘감았다. 세간에서는 ‘KT가 달라졌다’, ‘역시 이석채’라는 등의 평가가 쏟아졌다. 이 회장은 엘리트 경제관료 출신으로 공직 재임 당시 대단한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뽐낸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무대와 역할이 달라졌지만, 그는 CEO로서도 유감없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입증해나가고 있다.

‘IT 풍운아’ 이석채 KT 회장

대한민국 IT판을 뒤집다

‘굼뜬  공룡’ KT 역동적 조직 변모시켜 IT 패러다임 변화 주도

- 이석채 회장과 강석진 회장은 IT 패러다임 변화가 가져올 미래상에 대해 진지한 의견을 교환했다.
- 이석채 회장과 강석진 회장은 IT 패러다임 변화가 가져올 미래상에 대해 진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석채 회장과 강석진 회장의 대담은 지난 9월15일 서울 서초구 지하철 2호선 교대역 바로 앞에 위치한 ‘올레(olleh)캠퍼스’ 19층 접견실에서 이뤄졌다. KT 본사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지만, 이 회장은 주로 올레캠퍼스에서 집무를 본다. 올레캠퍼스는 KT의 전략 기능이 집결해 있는 컨트롤타워다. 수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업체의 사옥이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문제라고 판단한 이 회장의 지시로 마련됐다. 그는 “통신업체는 항상 고객과 ‘스킨터치’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사옥도 소비자들과 항상 접촉할 수 있는 중심가에 있어야죠”라고 말했다.

올레캠퍼스는 이름 그대로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풍겼다. 이 회장 역시 노타이 차림의 경쾌한 패션이었다. 이날 대담은 샌드위치를 메뉴로 한 가벼운 점심 식사를 겸해 진행됐다. 이 회장의 업무 일정이 워낙 빼곡하다 보니 시간을 좀 아끼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대담은 당초 예정된 2시간을 훌쩍 넘어 약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이 회장이 준비한 이야기 보따리는 아주 커 보였다. 그는 대담 내내 KT의 혁신 과정을 비롯해 IT·통신산업의 판도 변화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거침없이 생각과 소신을 펼쳐 보였다.

강석진 회장(이하 강 회장) | 이번에 KT가 DJSI 평가에서 유무선 통신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DJSI 평가 결과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석채 회장(이하 이 회장) | 외국에 나가서 글로벌 경영자들을 많이 만나곤 하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KT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더군요.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에서 왜 나를 인터뷰하고 사진도 싣는가 궁금했는데, 이 사람들은 KT가 신기한 거예요. 글로벌 통신업체들은 통신사업으로 성장할 여지가 많은 회사들입니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있으니까 그쪽 인구가 늘어나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거죠. 하지만 우리는 그게 봉쇄돼 있었어요. 그런데 성장을 안 할 수는 없고, 유선통신 시장은 세계적으로 가라앉고 있고, 이런 상황을 딛고 일어나야 하니까 우리의 몸부림과 투쟁이 아주 거셌을 것 아닙니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생각하고 시도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우리도 모르게 실력도 올라가고 명성도 높아진 겁니다. 물론 내 눈에는 아직 턱도 없지만, 제3자들의 눈에는 대단하게 보이나 봐요.

“한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비즈니스 리더”

세계적인 권위와 명성을 가진 영국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는 2010년 3월 이석채 회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기사에서 이 회장을 가리켜 “현재 한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비즈니스 리더로 손꼽힌다. 당초 기대보다 훨씬 급진적인 비즈니스 리더이며, 애플 아이폰 도입 등으로 한국 통신시장을 뒤흔들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석채 회장의 혁신 드라이브 덕분에 세계가 KT의 행보를 주목하게 된 셈이다.

그는 유럽에서 열린 어떤 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예전에 구라파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당연히 주제는 통신회사들이 이대로 성장할 수 있겠느냐 하는 거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DNA가 우리에게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나오는 거예요. 저는 없다고 했죠. 왜냐면 과거에는 통신사업을 너무 쉽게 해왔잖아요. 그래서 KT는 전체 직원의 16%인 6000명의 직원을 내보냈고 새로운 직원을 매년 1000명씩 뽑고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인도의 락시미 미탈(세계 최대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 회장)이 ‘그런 짓을 하니까 당신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일동 웃음). 그들은 우리의 몸부림이 새로운 트렌드를 열고 있다고 본 거 같아요.”

강 회장 | 왜 그렇게 KT는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까?

이 회장 | 자명하지요. 제가 여기 CEO로 왔을 때는 그 잘나가던 KT의 주력 비즈니스 모델이 완벽하게 무너지고 있었거든요. 집전화, 인터넷 두 가지가 주력 사업이었잖아요. 그런데 인터넷은 시장포화와 과당경쟁으로 단가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고, 집전화는 사람들이 휴대전화와 인터넷전화를 사용하면서 완벽하게 허물어지고 있고, 그 때문에 1년에 매출액이 10%씩 빠지는 회사가 된 거예요. 그냥 빠지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교각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까지 온 겁니다. 당시 KT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뭐랄까, 냄비 속에 들어간 개구리가 물은 뜨거워지는데 어쩔 줄 모르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어요.

이석채 회장이 표현한 ‘몸부림’은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냥 있다가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을 KT는 어떻게든 탈출해야만 했다. 물론 이 회장 부임 전에도 여러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도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회장 | KT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유무선 통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저항에 부닥쳐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었고, 새로운 비즈니스로 콘텐츠 사업을 해보겠다며 IPTV를 시작했는데 케이블업체가 콘텐츠 공급을 가로막아버리니까 IPTV를 팔 수도 없었어요. 처음엔 ‘억지로’ 팔았지요. 처음 IPTV 사업을 시작한 2008년에 250만대를 팔았는데 마지막(이 회장 부임 직전)에 남은 가입자는 70만이고 그 얼마 뒤에는 40만으로 떨어졌어요. IPTV를 억지로 갖다 놓아도 누가 봅니까? 볼 게 없는데. 그러니 IPTV를 콘텐츠로 채우면 돈 벌겠다고 ‘올리브나인’이나 ‘싸이더스’ 같은 회사를 샀는데 그건 적자만 내고 있었죠. 교육도 콘텐츠 사업이라고 해서 150억원 정도를 투자해 회사를 만들었는데 ‘입시경쟁 회사’ 만들어서 그게 됩니까? 그 무렵 KT는 기존 비즈니스가 무너지고, 사람은 많고, 새로운 비즈니스는 하는 것마다 실패하고, 유일한 희망인 유무선 통합은 아예 명함도 못 내밀고 좌절되고, 뭐 하나 되는 게 없었습니다.

이석채 회장은 KT가 침몰해가는 최악의 위기에 선장으로 긴급 투입된 셈이었다. 그는 CEO 선임 소식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느냐고 묻자 “팔자소관이죠”라고 말했다. 그게 운명이라면 담담하게 헤쳐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이 들었다는 뜻일 게다. 그는 앞날이 깜깜한 ‘공룡기업’을 맡아 혁신과 회생을 이뤄낼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을까?

이 회장 |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KT가 엉망이라는 게 유일한 희망이다”라고 말이죠. 엉망인 상태를 고쳐나가는 것 자체가 생산성으로 연결될 테니까 그게 유일한 희망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다만 그 희망만 갖고 살 수는 없고 현실적으로 회사가 이익을 내야 하잖아요. 당시로선 유일한 방법이 비용절감이었습니다. 새로운 비즈니스로 돈을 벌려면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거고, 쉽지도 않을 거니까 말이에요. 저는 무엇보다 우리 직원들한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데 초점을 맞췄죠. 그래서 시도한 게 KT와 KTF의 통합입니다.

강 회장 | 회장님께서는 CEO로 취임하자마자 곧장 KT와 KTF의 합병을 강력하게 추진해 결국 성사시켰지요. 그러면서 KT는 국내 최초로 유무선 통신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회사로 거듭났습니다. 합병 이후 매출액과 수익성도 많이 좋아졌더군요. 합병 결정에 앞서 어떤 비전과 계획을 갖고 계셨는지요?

이 회장 | 제대로 싸움을 하려면 우리도 전 직원을 동원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삼국지를 읽어보면 ‘출기불의(出其不意)’라고 나오잖아요. 나갈 때는 상대가 전혀 예기치 못한 때에 나간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이 합병 시도를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시점에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정부 경제정책의 ‘메인스트림’에 있었잖아요. 그것도 제게 무기가 됐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경제와 사회의 니드와 KT의 합병 필요성을 완벽하게 일치시키는 논리를 개발한 거예요. 이제껏 합병을 반대하는 논리가 많았는데, 그걸 일일이 반박하는 게 아니라 전연 다른 논리로 합병의 실리와 명분을 강조한 겁니다. 왜 합병이 필요하냐, 그건 바로 우리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다, 그걸 주장하기 시작했죠. 저는 지금은 ‘컨버전스’ 시대다, 우리 IT산업은 엄청난 가능성을 가졌는데 지금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새로운 시대조류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포문’을 열었던 겁니다. 마침 방통위(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저와 생각을 같이 하고 적극 도와줘서 KT가 정해진 날짜에 정확하게 합병할 수 있었어요.

Tip | 통합 KT 출범 2년의 성과

성장성·수익성 두 마리 토끼 잡았다

●● KT는 지난 2년간 국내 IT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해왔다. 2009년 KT-KTF의 유무선 합병을 통해 컨버전스 서비스를 출시하고 아이폰을 도입하면서 한국의 스마트 혁명에 불을 댕겼다. 이 과정에서 KT는 와이브로 사업 및 투자를 활성화하고 IPTV 200만 돌파를 이뤄냈다.

아울러 KT는 오픈 에코시스템과 중소기업 동반성장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 한국 IT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토대 마련에 기여했다.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들에게 개발공간과 기술을 지원하는 ‘에코노베이션(Econovation) 센터’를 개설하는 한편 앱개발 경진대회, 벤처어워드, 오픈IPTV 등을 통해 소프트웨어 산업 활성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KT는 2010년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 20조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13% 증가한 2조533억원을 기록하는 등 성장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도 성공했다.

‘출기불의’ 전술로 KT·KTF 전격 합병

‘출기불의(出其不意)’는 제갈량이 북벌에 나서 난공불락이던 진창성을 함락할 때 썼던 병법이다. 제갈량은 진창성을 손에 넣은 후 ‘출기불의, 공기무비(出其不意 攻其無備)’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상대가 전혀 생각지 못한 때에 출병하고, 상대가 전혀 방비를 갖추지 못한 곳을 공격한다는 뜻이다.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전략·전술의 오랜 교범이다. 이석채 회장은 <삼국지>, <손자병법> 등의 고전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한다.

그의 의도대로 KT와 KTF의 합병은 전격적이면서도 전광석화처럼 추진됐다. 2009년 1월14일 CEO에 취임한 그는 불과 6일 뒤(1월20일) 열린 이사회에서 KT와 KTF의 합병 결의를 이끌어내고, 두 달 뒤(3월18일)에는 방통위의 합병 승인을 받아낸 데 이어, 다시 두 달 열흘여 만에(6월1일) KT와 KTF의 통합법인을 출범시켰다. 그를 반대했던 쪽도, 지지했던 쪽도 혀를 내두르기는 마찬가지일 정도로 과감하고 신속한 결행이었다.

이석채 회장은 정부에서 경제관료로 일하던 시절 추진력과 저돌성의 대명사 같은 인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대중에게 비친 이미지도 왠지 날카롭고 차가운 승부사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런 평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를 저돌적인 사람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아닙니다. 다만 나는 무슨 일을 도모할 때든지 먼저 철저한 정세분석을 하고, 어떤 방법과 코스로 돌파할 것인가를 면밀히 따져본 연후에 실행에 나섭니다. 이를테면 ‘전쟁수행계획’이 완벽하게 수립됐을 때 일을 시작하니까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겁니다.”

합병은 이 회장의 첫 번째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진정한 전쟁은 세계적 메가트렌드로 부상한 컨버전스 시대에 한국 IT·통신산업이 어떻게 하면 살아남느냐, 어떻게 하면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잡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합병 추진을 선언할 무렵 “합병을 통해 국내 IT산업의 르네상스를 불러오겠다”고 공언하고 다짐한 바 있다.

이 회장이 KT에 부임할 무렵 국내 통신시장은 유선과 무선으로 철저하게 분리돼 있었고, 3G(3세대) 음성통화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게다가 무선 데이터통신 시장의 성장률은 사실상 ‘제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유선과 무선의 통합, 무선 데이터통신 요금 구조 혁신이 절실했다. 그는 스마트폰 시장 확산을 카드로 꺼냈다.

강 회장 | 애플 아이폰의 등장 이후 이른바 ‘스마트 혁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KT가 아이폰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것이 결국 국내 모바일 시장의 변화에 불을 댕겼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쇼크를 받았었는데 어쨌든 KT가 아이폰을 그때 내놓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삼성이나 LG가 한 1년 늦게 대응에 나섰더라면 노키아처럼 막 무너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 회장 | 제가 KT를 맡으면서 가졌던 생각은 컨버전스 시대를 잘 활용하면 KT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한국 IT도 부활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컨버전스를 이용하면 스마트폰 시대가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애플 아이폰이 어느 정도 위력이 있을지는 몰랐습니다. 당시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림(Rim)사의 블랙베리가 압도적인 1위였잖아요. 어쨌든 KTF(합병 전) 직원들에게 SK텔레콤은 림을 가져온다는데 당신들은 어떤 복안을 갖고 있냐고 물으니까 애플 아이폰을 가져오기로 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이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니 위력이 대단하다는 거예요. 그럼 가져오자 했죠. 하지만 국내에서 저항이 있었지요. 하여튼 힘들게 아이폰을 들여왔죠. 그런데 아이폰 자체는 물론 대단한 쇼크였지만 KTF가 가져왔더라면 그렇게 임팩트가 크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KT가 데이터 요금을 거의 90%(88%)나 대폭 끌어내렸던 결정이었어요.

- KT·차이나모바일·NTT도코모 3사의 전략적 제휴 협정 체결식(왼쪽). 이석채 회장이 클라우드 사업 파트너 관계를 맺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KT·차이나모바일·NTT도코모 3사의 전략적 제휴 협정 체결식(왼쪽). 이석채 회장이 클라우드 사업 파트너 관계를 맺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KT의 데이터 요금 대폭 인하는 ‘데이터 익스플로전(Data Explosion: 데이터 사용량의 폭발적인 증가)’ 시대의 도래를 앞장서 준비한 이석채 회장의 결단이었다. 그는 BT(브리티시텔레콤)에서 영입한 핵심 참모인 영 킴 부사장의 조언을 받아들인 조치였다고 소개했다.

“영 킴 부사장이 데이터 익스플로전이 미래라면서 데이터 익스플로전을 시키려면 데이터 요금을 크게 떨어뜨려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한국은 데이터 요금이 너무 높아 안 된다는 거예요.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면 몇백만원씩 요금을 냈잖아요. 그러면 데이터 익스플로전이 안 된다는 거예요. 전적으로 공감이 가더군요. 그래서 데이터 요금을 떨어뜨리라는 지시를 했죠. 우리가 데이터 익스플로전 시대를 맞아야 변화를 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찬반양론이 뜨거웠습니다. 당연히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죠. 결국 제가 결정했습니다. 떨어뜨리려면 과감하게, 세계 최저로 떨어뜨리라고 한 거죠.”

당시 이 회장의 결정은 당장의 수익은 포기하더라도 데이터 익스플로전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확신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게 과감한 데이터 요금 인하를 단행하자 애플 아이폰의 위력과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엄청난 변화의 태풍이 몰아쳤다. 스마트폰 혁명이었다.

이 회장 | 사실 (아이폰의 위력을) 우리도 몰랐고 삼성도 몰랐고 모두 몰랐던 겁니다. 그 즈음 삼성전자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엄청나게 미울 거다. 그런데 내가 애플을 데려오면서 (삼성전자가) 명나라 조정처럼 되는 걸 면하게 했다. 명나라 북경에서는 여진족(청나라 건국)이 만주에서 발호할 때도 야만인들이 별 거 있느냐며 방관하다가 결국 망하지 않았나. 삼성은 1년에 휴대폰 2억5000만대를 팔고 애플은 기껏해야 1000만대를 판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겠지만 막상 아이폰을 보니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당신들도 실감했고 정신도 바짝 차리게 되지 않았나. 그러니까 날 미워하지 말라. 나는 어떻게 보면 명나라 조정을 살린 사람 아니냐.”(웃음) 물론 데이터 요금이 그렇게 내려가지 않았으면 아이폰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을 겁니다. 일부 소수만 사용할 뿐, 그 진정한 힘을 몰랐을 겁니다. 그런데 KT는 상상도 못할 수준의 데이터 요금 인하를 한 거죠. 88% 인하라면 옷을 다 벗은 겁니다. 역발상이죠. 그래서 경쟁사들은 저를 일종의 파괴자로 보는 겁니다. 황금알을 낳는 3G 네트워크의 미래가 아직 창창한데 요금을 그렇게 깎아버렸으니까 자기 수익원을 고갈시켰다고 보는 거죠. 역발상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KT는 스마트폰 시대를 열면서 버려놓다시피 했던 와이브로(휴대인터넷), 와이파이(무선랜)를 둘 다 되살렸죠.

데이터 폭발 시대 앞서 준비한 ‘역발상’

강 회장 | KT가 아이폰을 한국에 들여오면서 그간 하드웨어 위주로 집중했던 국내 IT 기업들이 이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를 안 하면 끝이구나 하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 것 같습니다.

이 회장 | 사실 아이폰이 아니더라도 (콘텐츠 및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다 알고 있었죠. 제가 느낀 건 역시 우리가 서구 문명과 완전히 문호를 열고 교류하는 게 아니구나, 한국은 아직 상당히 폐쇄적이구나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스마트폰 시대가 왔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 외국에선 자연스레 다 알고 있었는데도, 한국에선 국내 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목 하에 눈에 보이지 않는 차단막을 만들어놓다 보니 내가 왕인 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의 희망은 사실 아이폰을 키우는 게 아니라 한국 스마트폰이 크기를 바랐던 겁니다. 특히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서) 저 같은 경우는 더하죠.

2009년 11월 KT가 아이폰을 국내에 도입하자마자 순식간에 스마트폰 태풍이 한국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2009년 말 80만명에 불과했지만 지난 7월에는 1500만명을 넘어섰으며 올 연말까지는 2000만명 고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초고속 확산이다. 또한 한국 휴대전화 제조사들도 아이폰 출시 후 기존 제품 라인업을 스마트폰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세계 모바일 단말기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전자 갤럭시S 시리즈는 아이폰과 자웅을 겨룰 만한 대항마로 부상했다.

강 회장 | KT는 ‘세계 최고의 모바일 원더랜드(Mobile Wonderland)’ 구현을 목표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회장님께서 꿈꾸시는 ‘모바일 원더랜드’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요?

이 회장 | 지금까지 피처폰에서는 유선망이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었어요. 2G든 3G든 모바일 네트워크만 있으면 음성과 데이터를 보낼 수 있었거든요. 비싸서 탈이지만 인터넷도 됐죠. 그런데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KT가 확실하게 보여준 게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컴퓨터를 쓰려면 모바일 네트워크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뒤에서 강력한 유선 네트워크가 백업을 해줘야만 막대한 통신량을 처리할 수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유선 자체로는 무선과 연결이 안되잖아요. 그걸 연결하는 고리가 와이파이죠. 그러니까 유선과 와이파이, 모바일이 연결되면서 모든 데이터 처리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너무나 천국이거든요. 와이브로 덕분에 달리는 차 안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잖아요. KT가 그걸 보여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모바일 원더랜드죠. 어느 나라도 이런 곳이 없습니다. 한국은 1인당 데이터 사용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랍니다. 두 번째 많은 나라인 프랑스보다도 2배나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데이터를 많이 쓰는지 생각해보세요. 지금은 주로 ‘펀(fun)’ 용도로 많이 쓰지만 곧 비즈니스용이나 교육용으로 쓰게 될 겁니다. 중요한 사실은 어디서나 모바일이 되는 모바일 원더랜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유선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모바일 원더랜드의 요지는 무선에서도 유선과 똑같은 속도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컨버전스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KT는 통신사업자들이 금기시하는 와이파이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10만 개소에 와이파이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기존 3G보다 3배 이상 빠른 와이브로 4G 전국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했다. 전국 82개 도시, 전체 인구 중 85%가 혜택을 볼 수 있을 만큼 커버리지 범위가 넓다는 설명이다. 덕분에 국내 데이터 트래픽(사용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강 회장 | 세계적으로 KT 외에는 유무선을 함께 가지고 있는 회사가 없습니까?

이 회장 | 아닙니다. 텔레포니카, 차이나모바일, NTT, 소프트뱅크 등 많은 회사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KT처럼 유무선을 완벽하게 통합해 바늘과 실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회사는 아직 없습니다. 그게 KT의 ‘뉴 리더십’이죠.

강 회장 | 통신업체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건 사업 특성상 쉽지 않습니다만, KT는 여러 가지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KT의 글로벌 사업을 어떻게 성장시킬 구상이신지요?

- 신입사원들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이석채 회장(위). 젊은 직원들과의 회의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석채 회장.
- 신입사원들과 함께 스마트폰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이석채 회장(위). 젊은 직원들과의 회의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석채 회장.

이 회장 | 전통적으로 볼 때 통신회사가 글로벌화한다는 건 다른 나라에 가서 무선 주파수를 사거나 혹은 통신사를 인수하거나 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KT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KT가 공을 들여온 솔루션이나 애플리케이션, 혹은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Business Transformation: 사업 전환)’ 모델을 다른 나라에 팔 겁니다. KT는 지금껏 해오던 비즈니스 전체를 전환시키고 있잖아요. 이 모델을 외국에 파는 겁니다. 우리가 외국에 가서 그 나라 통신업체의 밸류를 높여주고 경쟁력을 제고해주는 식의 모델이 될 겁니다.

강 회장 | 그렇게 되면 다른 나라 통신업체와 전략적 제휴도 하게 됩니까?

이 회장 | 맞습니다. 서로 윈윈 모델이 되는 거죠. KT와 전략적 제휴를 원하는 회사들도 많습니다. 특히 KT가 갖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능력은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할 겁니다.

강 회장 | 언젠가 KT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여러 나라의 개발자들이 만든 콘텐츠들을 온 사방으로 유통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는 건 아닙니까? 구글이나 애플처럼 말입니다.

‘버추얼 구즈’ 시장의 플랫폼 역할 할 것

이 회장 | (웃으며)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네트워크와 다른 나라 네트워크가 결합돼 하나의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하나의 시장을 형성해 그 속에서 콘텐츠나 앱을 거래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그걸 ‘버추얼 구즈(Virtual Goods: 가상상품)’라고 부릅니다. 그 시장의 특징은 가트(GATT) 같은 무역체제가 필요 없다는 겁니다. 아무런 제약 없이 거래와 유통이 이뤄질 겁니다. 그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는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계 시장이 하나로 단일화하면서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빨리 ‘리얼 구즈(Real Goods: 실물상품)’ 교역량이 커졌잖아요.  ‘버추얼 구즈’ 시장도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런 시대에 KT는 전 세계와 연결하는 고리가 될 겁니다. 한국인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플랫폼 역할을 할 거라는 얘기입니다.

현재 KT는 중남미, CIS(독립국가연합), 아프리카 등 신흥 경제권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글로벌 사업 제휴를 통한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클라우드 컴퓨팅, U-시티 플랫폼, 모바일 오피스 등 컨버전스 솔루션 성공사례를 무기로 글로벌 시장 공략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중국 및 일본 통신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도 눈길을 끈다. KT는 한·중·일 스마트벨트 구축을 통해 동북아 3국간에 통신요금 장벽을 허무는 ‘동북아 FRA(Free Roaming Area: 자유로밍지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차이나모바일(중국)과 NTT도코모(일본)가 사업 파트너다. 또 한·중·일 3국의 모바일 앱을 공유할 수 있는 ‘아시아 앱스토어’를 만들어 세 나라 개발자들이 ‘글로벌 앱스토어(WAC·Wholesale Applications Community: 세계 이동통신사들의 앱스토어로 현재 60개 통신사가 가입)’로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Tip | IT서비스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KT

‘클라우드 컴퓨팅’ 신성장동력 장착

●● KT는 현재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의 IT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해 나가고 있다. 스마트 시대의 환경 변화에 맞춰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하고 기업용 IT 솔루션을 제공해 기업고객 시장을 확장해나갈 방침이다.

KT는 클라우드 컴퓨팅 역량 강화를 위해 전략적 제휴와 유망기업 인수 등 다각적인 행보를 해나가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 가상화 솔루션 시장의 강자인 ‘시트릭스’와 제휴를 맺은 데 이어, 대용량 분산저장·처리 원천기술을 보유한 ‘넥스알’을 인수했다. 대용량 분산저장·처리 기술은 가상화 기술과 더불어 클라우드 컴퓨팅의 핵심기술 중 하나다. 넥스알은 분산저장·처리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다.

이밖에 KT는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구축을 완료해 인프라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유클라우드’라는 브랜드로 개인·기업용 서비스 라인업을 구성했다.

강 회장 | 한국 IT산업이 위기를 맞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한국 IT산업 초창기에 역할을 했던 분으로서, 또한 현재 한국 대표 통신업체 CEO로서 한국 IT산업에 대한 진단과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이런 국면에서 KT는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지요?

이 회장 | 요즘 한국 IT가 위기란 것은 애플이나 구글의 행보 때문에 우리 주력 수출품인 모바일폰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걱정하는 것 아닙니까. 스마트폰은 모바일 컴퓨터입니다. 그건 불가피하게 모바일에 맞는 소프트웨어가 나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모바일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소프트웨어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필요를 느끼면서도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는 환경과 정책을 만들어가고 있느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KT가 조만간 중요한 발표를 할 겁니다. 우리 IT산업의 전진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쳐나가는 일이 될 겁니다. 게임의 룰을 바꾸는 시도가 될 거예요. KT가 지금껏 게임의 룰을 바꾼 걸 보세요. 컨버전스가 뭔지도 보여줬고, 스마트폰이 뭔지도 보여줬고, 요금을 낮춰야 하는 이유도 보여줬잖아요. 물론 스마트폰도 잘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복하고 도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세계는 굉장히 넓습니다. 모바일 컨버전스 시대에는 모바일폰 OS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사업 영역이 펼쳐질 겁니다. 콘텐츠도 팔 수 있고, 게임도 팔 수 있고, 앱도 팔 수 있죠. 우리는 스마트폰 시대에 새로 부상하는 영역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포지셔닝할지를 고민해서 거기에 맞게 나가면 됩니다.

강 회장 | KT의 전체 사업 구조로 볼 때 앞으로 어떤 기업들이 경쟁자가 될까요.

이 회장 | 굉장히 많죠. 통신사업을 하지 않는 비(非) 통신사업자도 전부 경쟁자가 됩니다. 콘텐츠나 미디어 분야에서는 그쪽 전문업체가 경쟁자가 될 수 있고, 심지어 전자업체가 경쟁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구글도 경쟁자가 될 수 있죠. 컨버전스 시대에는 누가 우리 경쟁자라고 뚜렷이 말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창출해야만 승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이석채 회장은 대담 내내 IT·통신산업 전반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을 드러내 보였다. KT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명쾌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문민정부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후 KT의 CEO로 부임하기까지 짧지 않은 ‘야인’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왕성한 열정과 치열한 현실인식이 인상적이었다.

강 회장 | 참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장관도 하시고 대통령 경제브레인 역할도 하셨지만 기업 경영은 처음 하시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처럼 평생 경영을 한 사람이 보기에도 이미 오래 전부터 경영 마인드를 갖추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언제 따로 경영을 공부하신 겁니까?

이 회장 | 1960~70년대 이후 공직, 특히 경제기획원 같은 데 있었던 사람들의 평생의 꿈은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 국가건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평소에도 늘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골똘히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하나의 기업에 와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를 아는 건 오히려 쉽지요(웃음). 서로 추구하는 목적함수가 달라서 그렇지, 조직을 목표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건 공(公)이나 사(私)가 차이가 없지요. 저는 제가 시작한 KT의 트랜스포메이션을 완성하는 게 훗날 생각해도 가장 보람 있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KT 임직원과 주주에 대한 보답이 되겠죠.

이석채 회장은… 

1945  경북 성주 출생 / 1964  서울 경복고 졸업 / 1968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 1982  미국 보스턴대 경제학 박사 / 1969  제7회 행정고시 합격 / 1984~1988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 / 1992~1993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 1995  재정경제원 차관 / 1996  정보통신부 장관 / 1996~1997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 1998~2000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NTT 초빙교수 / 2003~2008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 2008~2008 BT(British Telecom) 고문 / 2008~2009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자문위원 / 2009~현재  KT 대표이사 회장

강석진 회장은… 

연세대 대학원(공업경영학 석사)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30여년 간 제너럴일렉트릭(GE)에 몸담았고, 그중 20년은 GE코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 전문경영인학회 이사장, 서강대·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CEO컨설팅그룹 회장이다. 서양화가로도 활동해 세계미술문화진흥회 이사장과 한·일 서양화 교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역서: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라>, , <잭 웰치와 GE방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