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 금융의 심장부인 뉴욕 월가에서 벌어진 반(反)금융자본 시위는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이 시위는 82개국, 951개의 도시로 번져 동시다발로 이뤄지고 있다.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그리스의 디폴트(국가채무불이행·default)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국제신용평가사인 S&P는 지난 10월14일,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떨어뜨렸다. 전 세계의 동반 ‘더블딥’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코노미플러스>는 창간 7주년을 맞아 ‘세계화이론’의 대가인 미 버클리대 경영대학원의 폴 티파니 교수를 특별인터뷰했다. 티파니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스탠포드대, 인시아드(INSEAD), 와튼스쿨을 거쳐 버클리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티파니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2009년 4월(2009년 5월호 해외석학 인터뷰 참조), 2009년 11월(2010년 1월호 인터뷰 참조)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는 지난 두 번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경기는 더욱 나빠질 것이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좋아질 듯하던 세계 경제는 점점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이병서 A.T.커니 이사가 이메일을 통해 진행했다. 그에게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가 시위’에서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에도 시장의 반응은 왜 냉담한지, 유럽 재정위기는 1년 반이 지나도록 왜 해결되지 않는지 그리고 향후 글로벌 경제는 어떻게 풀릴 것인지 등을 들어봤다.

“EU는 산산조각나고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아

 세계 경제 회복 힘들다 ”

월가에서 해고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시위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습니다. 사상 유례 없는 시위를 어떻게 보십니까.

“은행 산업과 월가에 대한 반감은 2008년의 ‘미국발 경제위기’와 연결돼 있습니다. 경제위기를 발생시킨 장본인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점점 많은 미국인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시위에 나선 사람들은 월가에서 일한 사람들인데, 정부에 의해 금융기관이 구제되고 그들의 고위임원들이 벌을 받기는커녕 그 돈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보너스가 바로 납세자들의 돈에서 나온 정부의 재정보조금이었죠. 월가를 점령한 시위자들과 그들의 분노는 3년 전 금융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문제는 이 움직임이 특정계층뿐 아니라 다양하게 확대된다는 점입니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사실 월가를 점령하는 것은 이념적으로 가장 좌파적인 이슈입니다. 따라서 좌파 성향의 민주당원들이 월가를 점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여기에 우파인 ‘티 파티(tea party)’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티 파티’는 정부의 재정운용에 대해 세금 감시 운동을 벌이는 신생 보수단체입니다. 보수단체들이 민주당원들과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월가 현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죠.”

대출하라고 은행에 보조했는데

오히려 대출문턱 높여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미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조차 말이죠. 은행들은 장부에 적힌, 언제 지급불능 상태가 될지 모르는 수십억 달러의 모기지 대출에 대해 걱정이 커졌습니다. 그렇다보니 대출금의 수급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해 잠재적 손실이 야기되는 것을 대비해 한쪽에 자금을 쌓아둬야 합니다. 따라서 은행은 대출을 재연장하거나 신규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엄격한 대출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가 은행들에 재정보조를 했을 때는 이런 식의 해법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은행이 대출을 시작하고, 그것이 소비심리를 자극해 경제공황을 극복하기를 기대했는데, 은행이 대출을 하기는커녕 부실에 대비하는 자금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의회의 기대와 정반대 결과가 나왔군요.

“그렇습니다. 부동산 산업은 미국 경제의 핵심 분야이고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이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문제가 풀리려면 임차인들이 새로운 주택담보로 그들의 집에 어떤 식으로든 남아 있고, 임대인들은 그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의 경기부양정책은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치권의 시각이 워낙 달라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 못할 겁니다.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몇몇 은행은 도산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문제 해결에 실패한

오바마 행정부



정치권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년에 대선이 있습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선거를 치르느라 부동산 해법을 내놓지 않을 겁니다. 미국 공화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티 파티’그룹은 서브프라임 위기에 깊게 관여한 기관이나 은행의 규제 요청에 소극적입니다. 티 파티는 보수주의자, 백인, 미국 남자들로 구성돼 있죠. 이들의 대다수는 정부의 구제정책이 민주당에 의해 강제로 추진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을 제공한다는 명목하에 자격이 안되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했다는 거죠. 티 파티는 부실한 담보를 허용한 은행들이 파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재정보조를 한 것에 매우 분노합니다. 일반 납세자들은 정부의 재정보조 비용으로 인한 세수 증가로 옴짝달싹 못하게 됐지만, 정작 은행들은 그들의 직장에 남아서 높은 연봉과 보너스를 받았습니다.”

오바마 정부의 경제문제에 대한 해결이 효율적이지 않았다는 얘기군요.

“촉매 정책들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습니다. 충분치는 않았죠. 2007~2008년에 일어났던 엄청난 규모의 붕괴에 대해 투입한 8000억달러도 그 당시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몇몇 경제학자는 적어도 2배는 투입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당시에 그들의 데이터 자료가 포괄적이지 않았고 실제 일어나는 경제붕괴의 진정한 깊이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변명했습니다. 8000억달러가 ‘추측’에 의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경제관료팀이 비난받을 만하죠. 물론 그들은 오늘의 위기가 전임 대통령인 부시 2세 정부 때 발생한 것이라고 변명할 겁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오바마 정부의 문제 접근방식은 국민을 실망시켰고 명확한 목표의식이 없어 보입니다. 제 사견이기는 하나 오바마 대통령은 직면한 막대한 경제위기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건강보험개혁 같은 것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경제적인 현안들은 해결하지 못한 것이죠."

2010년 대선에 발목 잡혀

아무 대책도 못 내는 워싱턴

유럽발 경제위기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의 몰락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유럽 경제위기의 잠재력은 실로 막대합니다. 사실 유럽의 위기는 2007년 전후에 점쳐졌지만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습니다. 유럽 은행 붕괴의 문제점은 누구도, 얼마나 유럽 밖의 은행들이 이로 인해 붕괴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데이터가 없을 정도로 연결돼 있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최근에 문제가 부각된 국가의 은행에 대한 해결 움직임이 더딥니다. 유럽 국가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국가 간 협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유럽의 은행이 무너진다면 미국의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겁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국면에 있는 중국에서 발생하는 경기둔화 역시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겁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공황 때보다 더 깊고 오래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930년대에 경기침체가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끝낼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경제학자인 케인즈가 상황을 연구했지만 별수 없었죠. 그의 책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이 나온 것이 1936년입니다. 케인즈는 본질적으로 거시경제를 발명하고,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공공부문의 간섭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가 탈출구와 해법을 내놨습니다. 1930년 대공황 때 아무 정보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적어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차원에서는 대공황 때보다 낫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문제는 미국 정부가 의사결정을 할 때 이 원리를 따라갈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미국 정부가 경제를 부양하고 작금의 상황을 탈피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중앙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 때 직접적인 힘을 가지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약한 주정부(weak state nation)’라고 부릅니다. 대신에 그 힘이 행정, 입법, 사법부에 나눠져 있어 모든 분야에서 합의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날처럼 독이 퍼진 정치적 상황에서 어떤 합의가 성사될 리 만무합니다.”

미국의 현재 정치상황이 그렇게 악화돼 있습니까.

“하원을 장악하고 상원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야당 공화당 의원들은 경제회복을 위해 그 어떤 조치도 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를 야기한 것이 부시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이 이를 잊고 단순히 모든 문제를 오바마 대통령 탓으로 돌리기를 바랍니다. 내년 대통령 재선 투표에서 이기고자 하는 그들의 바람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2012년 12월 전까지 경기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어떤 형태의 입법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2013년까지는 회복이 되지 않겠지요. 현재 경제는 전혀 회복되고 있는 과정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공조체계만이

현재의 위기 극복할  수 있어

미국의 실업률이 9%대에서 떨어지지 않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은 심각한 고민입니다. 미 연방이 성장을 촉진시키는 전략, 가령 금리인하나 양적공조 같은 것을 더 이상 내놓지 못할지라도 정부와 의회는 성장촉진을 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 기반시설의 개발과 개·보수처럼 특정 부양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소비자들은 더 심각할지 모르는 다른 경제공황에 대해 우려하고, 소비하지 않습니다. 몇몇 민주당원은 규제와 높은 세금 때문에 기업들이 고용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기업들은 고용하고 있지 않지만, 동시에 성장이 멈췄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업의 제품을 살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전체 공급을 자극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오직 연방정부가 더 넓고, 더 많은 촉진정책을 시행할 때 가능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년 동안, 예상보다 훨씬 오래 경기공황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아마 일본이 1990년대에 경험했던 ‘잃어버린 10년’을 미국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일부에서는 유럽의 위기, 중국 역량의 제한 속에서 미국의 경제자극(economic stimulus)이 실패해 세계의 더블딥을 우려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번 사태에는 경제와 함께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지금 현실을 보십시오. 오바마 대통령의 문제점은 앞서 지적했고, 유럽연합체제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독일의 메르켈, 프랑스의 사르코지는 아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는 나쁜 농담만 했고, 영국 카메론은 1950년대의 보수정치를 재유행시켰을 뿐입니다. 중국의 후진타오는 내부문제를 극복하는 데만 힘쓰고 있습니다. 세계경제를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세계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국은 내부만을 응시하던 시선을 벗고 그들의 에너지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세계경제 리더 역할을 맡아야죠. 이를 위해서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은 중국의 행동을 북돋우고, 그런 발전을 위해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시작점은 세계 적립기금으로 대체된 새로운 ‘브레튼우즈 동의’를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중국과 부유하는 위안화를 포함해, 미국 달러나 영국 파운드, 일본 엔화를 즉시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이 이것들을 도입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 같은 강대국이 반드시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하고요. 세계 경제위기가 오늘날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연결돼 있다는 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폴 티파니(Paul A. Tiffany) 교수는…  

로욜라대학교 학사, 하버드대학교 경영학 석사, 버클리대학교 경영학 박사, 1994~현재 버클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맥도널드 경영컨설턴트 역임. 저서 <Business Plans for Dummies>, <The American Steel Industry>, <Corporate Culture and Corporate Change>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