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로 1조원을 번 사람이 있다. 장난감 전문업체 손오공 최신규 대표다. 그가 개발한 ‘탑블레이드’ 팽이는 전 세계 매출 1조원을 기록하며 국내 완구업계의 신화를 창조했다.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장난감을 척척 만들어내 업계에선 ‘장난감 대통령’으로 통한다. 최 대표는 국내 문화콘텐츠 산업을 개척해온 1세대 콘텐츠 리더이기도 하다. 완구제작과 더불어 <탑블레이드> <하얀마음 백구> 등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힘써왔다. 최근 그가 자서전 <멈추지 않는 팽이>를 출간했다. 초등학교 중퇴 후 수많은 히트작을 낸 장난감 회사를 세우기까지 드라마 같았던 그의 인생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봤다.

팽이 하나로 매출 1조원 달성 …

   

“콘텐츠 융합 아이디어로 대박 냈죠”



- 최신규 대표가 유리판 위에 미출시 제품 ‘마그나렉스 팽이’를 돌리고 있다.

 “이것이 앞으로 출시될 차세대 팽이 ‘마그나렉스’입니다.”  

최신규 대표가 은색 철제가방 속에서 작은 우산처럼 생긴 팽이를 꺼내 들었다. ‘촤아~’ 경쾌한 소리를 내며 팽이가 돌았다. 회전하는 팽이를 집게로 집어 손목에 차고 있던 작은 판에 올려놓자. 팽이는 여전히 힘차게 돌아갔다. 그야말로 ‘멈추지 않는 팽이’였다.  



전 세계 어린이들을 열광시킨 ‘탑블레이드 팽이’를 아시는지. 용 캐릭터가 그려진 작은 플라스틱 팽이는 2001년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탑블레이드>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대박을 친 장난감이다. <탑블레이드>는 최 대표가 추진한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으로, 주인공 소년이 팽이 배틀(Battle)을 벌이며 최고의 ‘블레이더(Blader)’가 된다는 내용의 성장물이다. 2001년 4월 일본에서 먼저 방송했고 같은 해 9월 SBS에서 방영했다. 최 대표는 “애니메이션 방영 후 한·일 양국에서 탑블레이드 팽이 품절 사태가 벌어졌다”며 “완구와 애니메이션의 시너지 효과가 폭발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일본 시장에서 탑블레이드 팽이의 인기는 ‘이성을 잃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였다고 한다. 최 대표는 “일본의 탑블레이드 판매 매장에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나중에는 웃돈을 주고도 못 살 지경이 되자, 일본 상인들이 한국에 건너와 팽이를 싹쓸이해 갔다”고 회상했다. 이후 애니메이션이 미국, 캐나다, 유럽 등에 방영되며 팽이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손오공은 2001~2002년 탑블레이드 팽이 하나로 전 세계 매출 1조원에 달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다.



- 탑블레이드 팽이

팽이 게임의 판도를 바꾸다

왜 하필 팽이였을까. 팽이돌리기는 당시 국내 어린이들도 자주 하던 놀이가 아니었다. 최 대표는 팽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고 전했다.



“어릴 적 동네에서 팽이싸움, 딱지치기, 구슬치기는 모두 제가 대장이었습니다. 재미있게 놀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요즘 아이들에게도 팽이싸움은 좋은 놀이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여럿이 함께 어울리며 서로 대결하는 배틀 놀이를 좋아해요. 이런 면에서 좁은 공간에서도 즐길 수 있는 팽이싸움은 놀이문화로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단, 팽이의 콘텐츠를 현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했죠.”



최 대표는 우선 팽이 돌리는 방식을 바꿨다. 탑블레이드 팽이는 줄이 아닌 기어를 사용해 회전시킨다. 팽이에 가는 톱니바퀴 모양의 날이 달린 플라스틱 막대기를 꽂고 잡아당기면 순간적인 마찰력에 의해 동력이 발생하는 방식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넓은 마당에서 뛰놀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파트화가 되면서 놀이 공간이 좁아졌죠. 이 때문에 팽이에 줄을 없애고 기어를 사용한 겁니다. 팔 동작을 크게 하지 않아도 팽이를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부딪칠 염려 없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만들었죠.”



그는 ‘상상력’이란 키워드에도 주목했다. 팽이를 소재로 TV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놀이에 상상력을 불어넣자는 것이었다.



“<탑블레이드>를 보면 주인공 소년이 팽이 배틀을 벌일 때 용이 등장한다거나 팽이를 돌리면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다른 팽이들을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아이들이 실제 팽이 배틀 시 상상력을 동원해 더욱 재미있게 놀 수 있어요.”



최 대표는 처음에 팽이를 함께 개발한 일본 완구업체 다카라에게 TV애니메이션을 공동 제작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성공을 확신했던 최 대표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일본 미쓰비시그룹을 찾아갔다. 그는 손오공이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젝트 비용의 30%를 부담하겠다는 과감한 제안을 해 미쓰비시와의 제휴를 성사시켰다.



“투자금은 22억원이지만 마케팅비와 금형 제작비를 합하면 30억원이 훨씬 넘는 비용이었습니다. 큰 부담이었지만 완구의 특성상 TV애니메이션이 뒷받침돼야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특히 일본이 애니메이션 제작이나 마케팅 노하우가 많기 때문에 협업이 꼭 필요했죠.”



일본과 공동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우여곡절도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일본 성향이 뚜렷해야 자국 내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일본 측이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에게 기모노를 입히고 배경도 일본풍으로 설정하자고 주장한 것. 이에 최 대표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일본풍으로 만들어서는 세계적인 콘텐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당시로선 주인공이 기모노를 입은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방송심의 통과도 안 됐습니다.”



결국 최 대표의 의견대로 애니메이션은 현대적인 도심을 배경으로 설정됐고 탑블레이드는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 올라섰다. 탑블레이드 팽이의 신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9년 탑블레이드 후속작인 ‘메탈 베이블레이드’ 시리즈가 출시되며 전작에 버금가는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본, 홍콩, 미국 등 전 세계로 애니메이션과 완구제품이 수출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장난감이 출시되는 요즘, 손오공의 팽이가 무려 10년간이나 인기를 끌고 있는 점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손오공의 지난해 매출은 720억원이다. 매출액 규모로는 국내 완구업계 1위다. 최 대표가 손오공을 세우기까지 그의 인생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어릴 적 최 대표는 행상을 하시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각종 상장을 휩쓸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중퇴했다. 그래서 그는 무학이다. 13살 무렵 그는 금은방에서 일을 시작하며 금세공술을 배웠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 ‘꼬마’란 별명으로 통한 그는 결근 한번 안 할 정도로 성실히 일했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업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금세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가루가 없어지는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가장 일찍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한다’는 이유로 최 대표가 도둑으로 몰렸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그는 충격을 받아 한동안 방황의 길을 걸었다.



- 팽이를 은색 철제가방에 넣어 보물처럼 보관하는 최 대표

첫 히트작은 ‘끈끈이’ 장난감

1974년 그의 나이 19살에 친형과 함께 협성금속이라는 주물공장을 차렸다. 재래식 공장이라 비가 오면 용광로 밑에 고인 물을 퍼내야 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수도꼭지 하나를 만들어 팔면 그 돈으로 다시 주물재료를 사는 방식으로 공장을 키워갔다. 그는 완성된 수도꼭지를 자전거에 싣고 영업도 직접 뛰었다. 안정을 찾아가던 무렵,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정부 정책으로 서울 시내 가내공업 회사는 1980년까지 반월공단 등 지정된 장소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경제 한파가 몰아치며 그는 아예 일할 터전을 잃었다. 강제 이전만 있고 정부 지원은 없었기 때문이다. 1년을 쉰 후 그는 형과 따로 회사를 차렸다.



“저는 업종을 바꿔 플라스틱 완제품을 만들었어요. 당시 형제들이 같은 업종을 하다 크게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거든요.”



1983년 한 업자에게 완구 자동판매기 부품을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최 대표는 며칠 밤을 설치며 매달린 끝에 부품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장난감 제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얼마 후 유리창에 던지면 달라붙은 뒤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오는 ‘끈끈이’ 장난감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장난감이 인체에 유해한 성분으로 만들어져 독성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최 대표는 ‘이거다’ 싶었다. 1986년 손오공의 전신인 서울화학을 설립하고 인체에 무해한 끈끈이 개발에 몰두했다. 사글셋방 부엌에서 연탄불에 재료를 녹여가며 수없이 실험을 거듭했다.



“화학재료가 튀면서 운동화에 구멍이 나고, 냄비에 불이 확 붙어 큰일 날 뻔하기도 했죠. 독한 냄새를 풍기는 바람에 동네에서 항의가 들어와 셋방에서 쫓겨날 위기도 겪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는 독성이 없고 자국도 안 남는 끈끈이를 개발했고, 이 제품은 시장에 내놓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최 대표의 첫 히트작이었다.

완구, 애니메이션, 게임을 하나로

최 대표는 ‘손오공은 완구, 애니메이션, 온라인 게임을 같이 하는 세계 유일의 회사’라고 자부한다. 손오공은 단순한 완구제조사가 아니다.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산업을 연계해 캐릭터를 개발하고, 팬시, 가방, 의류 등 다양한 캐릭터 제품도 생산한다. 나아가 PC게임까지 제작 ∙ 유통하고 있다. 탑블레이드의 경우도 애니메이션 스토리로 재구성한 PC게임을 출시한 상태다.



“앞으로 완구, 애니메이션, 온라인 게임의 융합만이 살 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가 부족합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콘텐츠를 잡으면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하나의 콘텐츠로 완구,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 판매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거죠.”



그동안 최 대표가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게임 사업을 놓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2001년부터 게임에 투자한 그는 연달아 실패하다 2003년 자비로 게임전문회사 ‘초이락게임즈’를 따로 설립했다. 칠전팔기로 출시한 온라인 게임 ‘샤이아’가 호응을 얻으며, 현재 순조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 대표가 손목에 굳은 살이 생길 정도로 온라인 게임을 직접 해보며 개발에 참여한 결과다. 그의 게임 아이디는 ‘빙초산’이다.



“제가 쉰살이 넘었어도 온라인 게임에 해박합니다. 샤이아뿐 아니라 와우, 서든어택 등 잘 나가는 최신 게임은 다 합니다.” 



초이락게임즈는 최근 ‘슈퍼스타K 온라인’ 게임과 FPS게임(1인칭 시점의 전투게임) ‘머큐리: 레드’를 출시하며 대박을 노리고 있다. ‘슈퍼스타K 온라인’은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과 함께 즐기는 노래 경연 게임이다. 방음 마이크를 이용해 직접 노래를 부르고 키보드로 아바타를 조작해 춤도 춘다.



“다양한 놀이를 융합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건전한 게임과 제품이 만들어집니다. 최근 출시한 ‘슈퍼스타K 온라인’ 게임도 노래, 춤 등 다양한 놀이가 섞여 있습니다. 게임을 중독이 아닌 놀이문화로 즐길 수 있게 된 거죠.”



현재 최 대표는 놀이문화의 융합을 꿈꾸며 게임 개발에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가장 즐기는 것은 완구 개발이다. 새로 개발한 ‘마그나렉스’ 팽이를 은색 철제가방에 넣어두고 틈날 때마다 살펴볼 정도로 장난감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저는 아직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서전 제목도 출판사에서 ‘세계를 제패한 팽이’를 제안했지만 제가 ‘멈추지 않는 팽이’로 하자고 했습니다. 제 스스로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꿈이 동화 <피노키오> 속 제페토 할아버지처럼 평생 완구 개발하며 사는 겁니다. 돈 많이 버는 사업가보다는 창조적인 기업가로 살고 싶네요.”

 

  손오공의 주요 사업 연혁 

2000년 <하얀마음 백구> 대한민국 영상 만화대상 수상

2001년 <탑블레이드> 게임 ∙ 캐릭터 완구 ∙ 애니메이션 출시

2003년 ‘워크래프트3 프로즌쓰론’ 국내 유통계약 체결

2004년 <배틀비드맨> 완구 ∙ 애니메이션 출시

2005년 <파이어비드맨> 완구 ∙ 애니메이션 출시. WOW PC방 유통사업 시작

2006년 <마법전사 유캔도> 완구 ∙ 애니메이션 출시

2007년 <마법전사 유캔도2> <슈팅바쿠간> 완구 ∙ 애니메이션 출시

2008년 <슈팅바쿠간2> <출동 레스큐포스> 완구 ∙ 애니메이션 출시 

2009년 <메탈베이블레이드> <천하무적 아머히어로> <이겨라! 얏타맨> <듀얼레전드> 완구 ∙ 애니메이션 출시

2010년 <메탈베이블레이드2> <마법전사 유캔도2> <듀얼레전드2> 완구 ∙ 애니메이션 출시

2011년 <메탈베이블레이드3> <슈팅바쿠간2> 완구 ∙ 애니메이션 출시

 

■  최신규 대표는 … 

1956년생 / 1974년 협성공업사 창립 / 1986년 서울화학 창립 / 1996년 서울화학에서 손오공으로 법인전환 / 2003년 중소기업청 신지식인 선정 / 2004년 한양대 경영학 명예박사 / 2006년 문화관광부 대한민국 애니메이션(장금이의 꿈) 대상

이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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