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4월 정부가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연구개발(R&D)에 승부수를 던졌다. 누군가는 이를 밀어붙여야 했다. 어쩌면 칭찬보다는 비판을 많이 받을 자리였다. 누가 적임일까. 잘 모르는 사람이 나서면 부작용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았다. 소신이 있어야 했고, 그걸 뒷받침할 전문성을 갖춰야 했다. 스타CEO였던 황창규 단장이 영입됐다. 산업계에선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국 반도체의 성공신화를 쓴 황 단장의 부임에 적잖은 기대를 걸었다. 1년 반 동안 정부의 굵직한 연구개발(R&D)을 직접 총괄한 그에게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계획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2011년 12월15일 서울 역삼동에 있는 R&D전략기획단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2010년 출범한 지식경제 R&D전략기획단은 지식경제부의 연구개발 전략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다. 우리나라가 향후 먹고 살아야 할 미래 선도산업을 발굴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기술과 비전을 장기적인 시각에서 찾는 곳이다.

“그동안 우리를 먹여 살린 반도체나 조선산업 등이 5년, 10년 후에는 어떻게 펼쳐질지 모릅니다. 앞으로 3~4년 동안은 그나마 관성으로 인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반도체 신’으로 불렸던 황 단장이 한 말이기에 더욱 의미심장했다. 그의 말에는 우리의 미래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차세대 성장동력이 아직은 확실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위기감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배어났다.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전환해야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위기 진단만큼 그의 해법도 단호했다.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로 빨리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미 형성돼 있는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파이를 나눠먹는, 즉 선진국을 ‘패스트 팔로잉’하는 과거의 패턴을 답습해선 안 됩니다. 아직 시장이 없지만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술로 ‘먼저 치고 나가’ 시장을 만들고, 이를 선점하는 ‘퍼스트 무빙’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고 미래 성장동력이 반드시 최첨단 기술일 필요는 없다. 전통 기술로도 얼마든지 혁신적인 차세대 먹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미래 성장동력은 결국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사람 중심의 기술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만의 테마와 스토리가 있는, 그리고 대한민국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술이 우리를 먹여 살릴 겁니다.”

결국 우리가 잘 하는 기술에 창의성과 신기술을 얹어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이 크다고, 기술이 최첨단이라고 무작정 뛰어 들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는 IT분야를 예로 들었다.

그는 “IT산업 내에서는 시스템, 부품·소재, 플랫폼을 융합 관점에서 접근해 파급효과가 크면서도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해야 한다”며 “‘IT+주력산업’, ‘IT+서비스’ 등 융합을 통한 미래 먹거리 발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국가의 R&D 컨트롤 타워에서 하기 힘든 것을 하자고 하는 용기는 무엇에 근거하고 있을까. “우리의 강점을 살리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한국은 지금까지 하드웨어로 잘해 왔어요. 반도체, 자동차, 조선, TV, 휴대폰 등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주력산업들 덕분에 세계 7대 수출국이 됐어요. 다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따로 따로 놀았다는 게 문제죠. 하지만 이게 우리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겁니다. 우리가 갖춘 하드웨어의 경쟁력이 소프트웨어를 잘할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죠.”

관건은 미래 선도 기술을 키우기 위한 실행파일을 만들 수 있느냐다. 그러기에는 현실 장벽이 너무 높다.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그조차도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의 혁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1년 반 전 기획단장 자리를 제의받았을 때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계속된 정부의 간곡한 요청에 그는 ‘그래 우리도 한번 해보자’며 시작했다.

“우리 기업들이 잘하는 분야에 누가,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몰라요. 10년, 20년 후에도 잘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데, 막상 와서 보니 현실은 다르더군요. 미래 성장동력 관련 회의에 가면 모두 선진국이 하는 걸 하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선 절대 시장을 선도할 수 없어요.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책상 위에서 미래를 그려선 안 됩니다.”

그는 한국만의 테마를 담고 있는 미래 선도 산업을 발굴하기 위해 그동안 치열하게 고민했다. 벤치마킹 모델로 엄선한 전 세계 60여개 기관을 직접 찾았다. 또 전략기획단 소속의 해외자문단 등 세계적인 석학들의 고견, 그리고 수백명에 달하는 국내 R&D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조급하게 성과를 추구하기보다는 우리나라 산업 R&D의 기틀을 다지는 데 역점을 뒀다. 일부 가시적인 성과도 일궜다. 기획단이 발굴한 미래 먹거리, 즉 11개 미래산업 선도기술 중 8개가 현재 진행 중이다.

차세대 전기차 기반의 그린수송시스템, IT 융·복합 기기용 핵심 시스템반도체, 전기를 포함한 물과 열을 아우르는 K-MEG(Korea Micro Energy Grid), 고효율 대면적 박막태양전지, 천연물 소재 신약 등은 이미 사업화에 착수했다. 해양 플랜트, 투명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인쇄전자 등은 2012년 초에, 그래핀·소형 모듈 원자로 등은 2013년 초에 사업 착수를 준비 중이다.

위험 감수하지 않으면 세계시장 선도할 수 없어

그동안의 성과에 보람도 느끼지만 아쉬움도 많다. 2011년 말 지식경제부 등이 내놓은 미래선도 산업기술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결과가 그렇다. 전략기획단이 야심차게 추진한 6대 R&D 선도기술 가운데 그래핀, 소형 원자로, 뉴로 툴 등은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했다. 시장성겭獰太봉?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머지 3개 분야에서 신청한 389억원의 예산도 90억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를 두고 대학교수의 논문을 초등학생이 심사한 꼴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특히 그래핀은 상용화되면 투명전극,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꿈의 소재다. 우리나라의 그래핀 관련 기술의 특허 출원 건수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을 정도로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그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그래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이라도 늦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시장이 없지만 이를 우리가 만들어 나가면서 선점하는 ‘리스크 테이킹’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실패를 두려워 한 나머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안전한 곳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부처 간 높은 칸막이 때문에 융합도 쉽지 않고요. 국가의 R&D 시스템과 제도는 아직 추종자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말로만 ‘먼저 치고 나가라’고 외칠 게 아니라 실현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선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선수’인 그가 현실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는 말을 아끼며 신중했다.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고, 신뢰를 심어줘야 하는 것은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벽을 실감했지만 실망하진 않는다. ‘퍼스트 무버’로 가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불가피한 진통이다. 황 단장은 기획단 고유의 임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점에서 2011년이 R&D 혁신의 기틀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2012년은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해가 될 전망이다.

그는 ‘재도약(Leap Again) IT코리아’와 함께 개인용 의료기기 등 ‘차세대 헬스케어 성장 전략’, R&D와 서비스를 융합한 ‘서비스 R&D 전략’, SMR 기반의 ‘한국형 에너지 혁신 전략’, 평창 동계올림픽을 타깃으로 한 가칭 ‘평창, 더 스마토피아’ 등 대형 메가프로젝트에 대한 계획도 처음으로 밝혔다.

“재도약(Leap Again) IT코리아는 슬럼프에 빠진 한국 IT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워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프로젝트입니다. ‘평창, 더 스마토피아’는 기획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연구개발의 결과물을 평창에 한데 모아 전 세계에 우리의 기술력을 알린다는 겁니다. 공허한 계획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천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생각입니다.”

대학 재학시절 반도체 엔지니어가 되기를 희망했던 청년은 이제 국가 R&D를 주도하는 협력기관의 리더가 됐다. 몸은 기관장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기술자다.

목표를 세우면 밤낮 안 가리고 파고드는 특유의 집요함은 여전해 보였다. 완벽주의에다 승부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무조건 하면 된다’ 식으로 뛰어드는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매우 분석적이다. 분석이 끝나면 집요해진다.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행동부터 먼저 하는 경우는 드물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성공신화를 이끌고, 그의 이면에는 철저한 분석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 R&D의 컨트롤 타워를 맡으면서 그는 현장을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는 지난 1년여 동안 전 세계 R&D 현장을 두루 방문했다. 이를 통해 ‘히든 챔피언’의 나라 독일, 교토식 경영으로 대표되는 일본, 작지만 강한 나라 스위스를 우리가 구축해야 할 국가모델이라고 결론지었다.

“독일은 40억달러의 매출로도 세계 톱3 안에 드는 강소기업인 히든 챔피언의 천국입니다. 전 세계 2000개 히든 챔피언 중 무려 1300개를 배출했어요. 이들 기업의 경영자들은 기술개발에 대한 집착이 가히 편집광적입니다. 또 내수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기술력의 축적을 철칙으로 하고 있고요.”

그는 최근 우리가 등한시하는 일본도 절대 무시해선 안 된다고 했다.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도쿄식 경영에서 탈피, 다양성과 역동성을 중시하는 교토식 경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화투를 만들던 개인 상점에서 전 세계 게임의 대명사가 된 닌텐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일반 연구원을 배출한 시마즈 제작소, 세 평짜리 시골 창고에서 네 명이 시작해 30년 만에 매출 6조원을 기록한 일본전산을 예로 들었다. 교토에 기반을 둔 이들 기업은 소규모의 벤처기업으로 출발했으나 장기간에 걸쳐 특화된 기술을 개발해 대기업을 추월한 히든 챔피언들이다.

그는 이들 기업이 직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기술개발로 연결하는 한편, 개발과정의 실패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국토 면적이나 인구는 적지만 특화된 기술과 정책으로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하는 스위스도 벤치마킹 사례로 꼽았다. 스위스 취리히공대에서 배출된 노벨수상자는 31명에 달한다. 이공계를 우대하는 국가 정책을 펼친 결과다.

그는 수많은 해외 석학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 반열에 오른 조지 와이트사이즈 미 하버드대 최고 명예교수,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독일의 헤르만 지몬 박사, 유럽 최대 연구소인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불링거 총재 등을 수시로 만났다. 이들 중 와이트사이즈 교수와 불링거 총재는 전략기획단의 해외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와이트사이즈 교수는 미국에선 젊은이가 창업했다 실패하면 이를 성공으로 본다더군요. 그만큼의 경험을 얻었기 때문이지요.”

향후 어떤 분야가 가장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미래에 집중할 기술과 산업이 우리의 문화, 잠재 능력 등에 적합한지가 중요한 성공의 열쇠라는 충고다. 잘할 수도 없으면서, 단지 시장이 크다는 이유로, 혹은 그것이 첨단 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뛰어 들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명저 <히든 챔피언>의 저자 헤르만 지몬과는 그의 집에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와는 지금 잘 나간다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좀더 창의적이며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블링거 총재는 연구소와 대학의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연구소 조직도에는 숨은 조직이 있는데, 바로 대학이라는 겁니다. 독일 전역에 있는 대학이 사실은 연구소 뒤에 숨어 있다고 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현장 중심의 철학은 중소기업 지원과도 연결된다. 전략기획단은 미래선도기술을 기획하면서 중소·중견기업의 참여를 의무화했고, 과거 대기업이 소유했던 지적재산권도 실제 개발한 중소기업이 가질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그는 “잘 나가는 분야(대기업)는 계속 독려해 더 약진하게 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왔던 분야(중소·중견기업)에도 잠재력과 의지가 있다면 공평한 기회를 주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때”라며 “대기업이 치고 나기지 않는데 중소기업이 크기는 힘들고, 중소기업의 뒷받침이 없이는 대기업의 약진 역시 어렵다”고 강조했다.

 

   Tip. 스티브 잡스와의 인연  

새로운 IT시대 같이 연 파트너

황창규 단장은 ‘배고픈 채로, 바보같이 살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사무실에는 스티브 잡스와 찍은 사진도 보였다.

스티브 잡스와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플은 2001년 선보인 아이팟으로 시장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어요. 그런 아이팟에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하드 디스크를 탑재했다는 점이었죠. 하드 디스크의 특성상 낮은 온도에서는 작동이 잘 안되고, 떨어뜨리면 못쓰게 되기도 했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드 디스크를 플래시 메모리로 바꿔야 했다. 하지만 애플은 요지부동이었다. 가격도 부담이었지만 MP3플레이어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황 단장은 2004년 6월 플래시 메모리로 설계된 MP3플레이어를 만들어 애플에 보내도록 했다.

“3개월 뒤 잡스가 갑자기 연락을 해 왔어요.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첫 번째 약속은 우여곡절 끝에 지켜지지 못했어요.”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은 그해 이뤄졌다. 그는 2004년 12월 애플 본사 회의실에서 깐깐하고 괴팍하기로 소문난 스티브 잡스와 마주 앉았다(그는 스티브 잡스의 성격이 ‘괴팍’하기보다는 ‘독특하고 개성적’이었다고 했다).

“한 시간 가량 아이팟 나노, 아이팟 터치, 아이폰 등에 대해 열정적으로 얘기하더군요. 그리곤 상상을 초월하는 플래시 메모리 예상 주문 수량을 말했어요.”

곧바로 치열한 가격 협상 공방이 펼쳐졌다. 의견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그때도 청바지 차림에 말과 행동이 직선적이었고, 그의 눈빛과 어조는 상대를 압도할 만했다고 황 단장은 기억했다. 결국 애플은 삼성의 플래시 메모리를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삼성은 공급을 책임진다는 합의를 끌어낸 후 4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끝낼 수 있었다. 그는 그해 8월 삼성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60나노 8기가비트 낸드플래시 웨이퍼를 기념품으로 전달했다.

“회의를 마친 후 스티브 잡스가 다른 방으로 나를 부르더군요. 그리곤 아이폰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귀띔해 줬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죠. 그 당시에 이미 그는 소프트웨어가 미래 IT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준비에 들어갔던 겁니다.”

황 단장은 그와 함께 아이폰에 들어갈 비메모리 핵심부품인 모바일 CPU 공급 계획을 심도있게 논의했고, 지금은 아이폰에 전량 한국산 모바일 CPU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와 스티브 잡스는 이후에도 서너 차례 더 만났으며, 전화나 이메일로 수시로 소통하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새로운 IT시대를 같이 연 것이다.

 

황창규 단장은… 

1985년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딴 이후 스탠퍼드대 연구원으로 옮겨 공부를 계속했다. 1989년 귀국해 삼성전자에 입사, 1991년 256메가 D램 개발 책임을 맡았다. 1994년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 이후 쾌속 승진했다. 1994년 상무, 1998년 전무, 1999년 부사장을 거쳐 2000년 대표이사 겸 메모리사업부장이 됐다. 그리고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이 됐다. 황 단장을 말할 때 따라다니는 말이 ‘황의 법칙’이다. 황 단장은 2002년 국제반도체 학술회의에서 “메모리 용량이 해마다 2배씩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이전까진 인텔의 공동 설립자인 고든 무어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적용됐다. 그가 이 법칙을 깨뜨린 것이다. 그는 요즘 R&D전략기획단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역사책을 읽고 한 달에 두 번은 음악회에 간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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