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고령화에 따른 공동화, 그리고 농수산물시장 개방으로 인해 암울했던 우리 농촌에 다시 희망이 보이고 있다. 창조적 아이디어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 성공신화를 써가는 강소농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이 올해 역점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강소농 육성은 우리만의 독창적인 경쟁력으로 강자와 한번 붙어보자는 한국형 전략이다.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가 바로 민승규 농촌진흥청장. 그는 복잡한 시스템 대신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 것이 농정의 성공비결이라고 믿는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9월16일 ‘방방곡곡 농촌사랑방’이 열린 전남 강진에서부터 전남 해남의 배추농가, 전남 나주의 축산농가로 이동하는 그의 차 안에서 이뤄졌다.

“한국 농업 재도약 위해 10만 강소농 육성하겠다”

"우리나라 농가의 대부분은 소농이거나 가족농입니다. 미국의 농가와 비교해보면 130분의 1에 불과할 정도죠. 이들과 똑같이 해선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민승규 청장은 우리 농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농가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며 어영부영해선 절대로 이들을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 농촌은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한창 일할 젊은 세대들이 농촌을 떠나고 70~80대 노인들만 남아 있다. 많은 이들이 얘기하는 농촌 위기의 중심에는 이렇듯 고령화에 따른 ‘농촌 공동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가 우리 농업과 농촌의 뼈아픈 현실이라며 한 초등학생이 지은 한 편의 시를 내밀었다.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의 산문집에 실린 <촌아 울지마>라는 시였다. 내용은 이렇다. ‘사람들이 / 다들 도시로 / 이사를 가니까 / 촌은 쓸쓸하다 / 그러면 촌은 운다 / 촌아 울지마.’ 그는 이 시를 ‘사람들이 / 다들 농촌으로 / 돌아오니까 / 촌은 외롭지 않다 / 그러면 촌은 행복하다 / 촌이 웃는다’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 농촌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농촌으로 되돌아오는가 하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고소득을 올리는 전문 농업인의 수도 점점 늘고 있다.

“지금은 우리 농업이 지속적으로 침체의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재도약할 것인지 선택할 중요한 시점입니다. 재도약을 할 수 있는 돌파구가 바로 강소농입니다.”

10여 년 전 강소농 개념 정립

민 청장이 강소농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은 10여 년 전 삼성경제연구소에 재직할 때였다. “그때 강소국이라는 용어가 막 등장했어요. 그걸 보고 우리 농업에도 이러한 개념을 접목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가격’이 아닌 ‘가치’로 승부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봤어요.”

그는 한국벤처농업대학을 통해 작지만 강한 농업에 대한 가능성을 엿봤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은 민 청장이 주도해 2001년 설립한 곳으로 10년 넘게 차별화된 농업 전문인력을 양성해오고 있다. 성공한 벤처 농업인들이 꽤 많이 배출됐다.

- 전남 강진에서 열린 ‘방방곡곡 농촌사랑방’에서 민승규 청장이 강소농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 전남 해남의 배추밭에서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민승규 청장.
- 전남 강진에서 열린 ‘방방곡곡 농촌사랑방’에서 민승규 청장이 강소농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 전남 해남의 배추밭에서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민승규 청장.

그 사이 농업의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농업인에게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의 기회가 확산됐다. 바야흐로 농업도 돈이 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8월 농촌진흥청장에 취임하자마자 작지만 강한 농업인 강소농을 화두로 던졌다. 지난해 말에는 강소농 사업의 세부계획을 마련하고, 올 3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 농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진짜 위기는 우리 농업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라며 “우리 농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소규모 가족농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한국형 전략이 바로 강소농 육성”이라고 말했다.

강소농은 한마디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위기를 기회로,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기 위한 역발상 전략이다. 농업을 통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이 골자다. 경쟁국에 비해 작은 영농규모라는 한계를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상품 및 서비스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작지만 강한 농업’으로 체질개선을 하자는 얘기다.

“이제 소비자들은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농이 유리하겠죠. 하지만 소농도 결코 불리하지 않습니다. 다품종 소량 소비시대에는 오히려 소농이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환경변화와 체질개선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소농, 가족농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리고, 다양한 분야와의 융복합을 시도한다면 소비자들의 요구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민 청장은 우리 농업이 변하기 위해 필요한 7가지 열쇠를 제시했다. ‘꿈, 열정, 연·개·소·문, 결코 포기하지 마라’가 그것이다.

“꿈이 기적을 만듭니다. 꿈은 막연해선 안 되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농업과 농촌에서는 사람이 희망이고 꿈이 에너지입니다. 여기에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오지만 그 기회를 잡는 것은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열정으로 만들어집니다.”

- 민승규 청장이 전남 나주의 한 축산농가를 둘러보고 있다.
- 민승규 청장이 전남 나주의 한 축산농가를 둘러보고 있다.

연개소문(連開小紋)은 강소농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다.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하고(連), 고정관념을 허무는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하며(開), 작은 규모의 특색을 살려야 하고(小), 남들과 다른 1%의 상상으로 나만의 특별한 무늬(紋)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그것이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강자와 경쟁하다보면 분명 지치게 될 겁니다. 그래도 포기해선 안 됩니다. 포기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처절하게 해야 합니다.”

2015년까지 강소농 10만 경영체를 육성한다는 것이 민 청장의 목표다. 올해에는 전국적으로 1만5280개의 강소농이 선정돼 육성되고 있다.

1년 동안 8만km 넘게 현장 방문

그는 강소농 사업을 통해 지도사업을 부활시키고, 활성화된 지도사업을 통해 강소농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생각이다. 그가 농업인에게 꿈을 심어주는 소통의 자리인 ‘방방곡곡 농촌사랑방’ 등을 추진한 것도 농촌진흥기관을 친밀도가 높은 조직으로 탈바꿈시켜 지도사업을 부활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농촌진흥청에는 수많은 연구결과가 있는데, 이러한 연구결과가 신속히 보급돼 활용되기 위해서는 기술보급을 담당하는 지도사업의 부활이 필수적이다.

“연구는 현장의 요구에 맞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강소농 육성을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현장 맞춤형 연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갑과 을의 관계를 바꾼 거죠.”

농가의 변화와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발로 뛰겠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이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방방곡곡 농촌사랑방’을 운영하며 얻은 ‘녹색우체부’라는 그의 별명에서 잘 드러난다. 이 사랑방은 자치단체장, 농촌진흥청장 등과 농업인이 지역 농업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소통의 자리다. 그가 지난 3월부터 9월 중순까지 48개 시군에서 만난 농업인만 1만3000여명에 달한다. 일주일에 절반은 현장에서 보낸 셈이다. 그의 차의 주행거리계는 1년 만에 8만km를 넘어섰다.

“차관 시절, 정부의 농업정책이 현장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여러 차례 실감했어요. 강소농 사업의 경우 충분한 예산과 조직을 갖춘 후 추진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농업인은 물론 공무원들에게도 한번 해보자는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앞장서야 했어요.”

이날도 그는 전남 강진에서 ‘방방곡곡 농촌사랑방’에 참가한 이후 전남 해남의 배추 재배농가, 전남 나주의 축산농가를 돌아보는 강행군을 펼쳤다. 그는 현장에서 농가의 애로사항을 일일이 듣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같이 머리를 맞댔다. 일손이 부족해 모종을 심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배추농가에는 모종 정식기를 임대형식으로 지원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수입사료 대신 조사료를 직접 만들어 쓰는 축산농가를 위해 영산강 하천부지에 친환경 초지 단지를 조성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루에 세 군데 정도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다반사라고 한다. 하루 9시간 이상 서 있다 보면 몸에 무리가 오기도 한다. “사실 육체적으로 힘듭니다. 그때마다 저는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발레리나인 강수진씨와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을 생각합니다. 강수진은 다리뼈에 금이 가는 고통을 이기며 하루에 19시간까지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평발이었던 박지성 선수는 발 구석구석마다 3000번의 공이 닿도록 끊임없이 훈련을 했고요. 옹이가 박힌 그들의 발을 떠올리며 나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이 있는지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죠.”

민 청장이 앞장서면서 지도공무원들도 현장에서 농민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34만명에 달하는 중앙 및 지방 공무원 중 20명의 행정의 달인을 뽑았는데, 이중 7명이 농촌 지도직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3차 농업혁명에선 한국이 중심 될 것”

지금까지 농업 분야에는 2차례의 혁명이 있었다. 1차 농업혁명은 영국의 삼포식 농업이었으며, 2차 혁명은 1950년대 미국에서 촉발된 다수확 품종의 개발이었다. 2차 혁명의 결과로 미국이 세계 농업의 중심이 됐으며, 1·2차 농업혁명의 특징은 생산량의 비약적인 증가였다.

“이제 3차 농업혁명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3차 혁명의 특징은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입니다. 농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융복합이 이뤄질 겁니다. IT·BT, 문화·예술, 심지어는 K-팝이 융합될 겁니다. 아직 이를 주도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우리가 더 고민한다면 3차 혁명의 중심에 설 국가는 바로 대한민국이 될 겁니다.”

그는 한국농업이 더 이상 지원의 대상이 아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돈 되는 산업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확신했다. 5~10년 후 청소년들이 장래 희망란에 ‘농부’라고 쓸 수 있는 희망이 있는 농촌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농업이 ‘넘버 원’이 되기를 원하진 않습니다. 쉽지도 않고요. 하지만 나만의 개성을 살려 남들과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면 ‘온리원(only one)’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가격과 품질로 승부하는 것이 아닌 제3의 경쟁력을 찾는다면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농촌, 안심 농산물이 있는 나라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민승규 청장은… 

1961년생. 1988년 동국대 농업경제학과 졸업. 1991년 도쿄대 대학원 농업경제학 석사. 1994년 도쿄대 대학원 농업경제학 박사. 1995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2008년 청와대 경제수석실 농수산식품비서관. 2009년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2010년 8월~현재 농촌진흥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