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사모펀드 보고펀드가 출범한 지 6년째를 맞았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보고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남다르다. 지난 2004년 12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된 사모펀드(PEF)의 역사가 바로 보고펀드의 역사일 정도로 이 펀드가 우리 금융계에 남긴 발자취는 의미가 있다. 창립부터 지금까지 공동대표 파트너십으로 운영되고 있는 보고펀드의 과거, 현재, 미래 활약상을 지난 9월6일 소공동 사무실에서 이재우 공동대표로부터 직접 들어봤다.

“기업들의 전략변화 도움 주는

‘착한 펀드’될 겁니다”

동양생명·LG실트론 ‘백기사’…

“우리금융 매각 목적 다시 세워야”

정부가 지난 2004년 12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개정해 사모펀드를 도입한 것은 국내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토종 사모펀드 육성이 선결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듬해 기업이 아닌 개인이 국내외로부터 자금을 모은 토종 사모펀드가 설립됐다. 이름도 9세기 동아시아 바다를 주름잡은 해상왕 ‘장보고’처럼 외국계 사모펀드와 한판 경쟁을 벌여 나가겠다는 데서 착안해 붙였다. 보고펀드(VogoFund)는 이렇게 출범됐다.

보고펀드는 설립뿐 아니라 운영방식도 색다르다. 보고펀드는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주도로 이재우 리먼브라더스 한국대표, 신재하 모건스탠리 한국 기업금융부문 대표 등이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국내 금융시장을 지켜내자”며 ‘도원결의’를 맺어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파트너십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박병무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을 추가로 영입했다.

그중에서 내부 자금운용 등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이재우 대표는 리먼브라더스 한국대표, H&Q AP 설립 대표이사를 지낸 기업 인수합병(M&A)의 대가다. 우리금융지주를 뉴욕증시에 상장시키고 LG투자증권(우리투자증권 전신)을 인수하도록 한 것이 그의 작품. 이토록 잘나가던 기업 M&A 전문가가 왜 느닷없이 토종 사모펀드 설립에 뛰어들었을까.

“좀 거창하게 말하면 미력이나마 한국 금융시장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변양호 대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어요. 변 대표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인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 과장시절에 처음 만났어요. 그 후 여러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소신과 실행력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그런 분이 공동창업을 제의해왔는데 저로선 명분과 실리 모두가 괜찮은 조건이었습니다. 우선 토종자본이라는 명분이 맘에 들었고 한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인 만큼 잘하면 개인적으로도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죠.(웃음)”

보고펀드는 금융과 산업 사이 튼튼한 가교역할을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사모펀드야말로 선진 금융시장에 꼭 필요한 투자자본이라고 설명했다. 

“두산그룹을 예로 들게요. 이 회사는 원래 오비맥주 등 생필품 생산 판매가 주력인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공업 주력 그룹으로 탈바꿈했어요. 이렇게 기업의 전략 변화를 만들어주는 게 사모펀드의 순기능 중 하나예요. 가령 금융시장 불안으로 단기 유동성을 겪는 기업이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이 기업이 공개적으로 시장에서 자본금 확충을 모색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주가는 떨어지고 회사 경영은 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이런 경우 사모펀드는 아주 조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6300억원(국내자본 5000억원+해외자본 1300억원)으로 시작한 보고펀드의 투자금은 BC카드, 동양생명, 노비타, 아이리버, LG실트론 등에 투자됐다. 이중 LG실트론만 2대 주주고 나머지는 1대 주주다. 보고펀드는 지난 3월 동양그룹이 보유한 동양생명 지분 46.5%를 9000억원에 인수하면서 기존 지분까지 포함, 전체 66.16%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투자실적도 괜찮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투자기업 매출과 이익 성장률이 연 15~30%다. 

“우리는 성장성 있는 산업의 회사인지, 산업 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좋은 가격에 매입하는 것인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양생명만 해도 상장을 앞두고 자본 확충이 필요했기 때문에 좋은 조건에 인수를 할 수 있었어요. BC카드는 은행이 어려워진, 더 정확히 말하면 리먼 사태 이후 은행들이 비핵심 자산을 팔기 시작할 때 인수를 시작한 겁니다. 실트론은 지분 49%를 갖고 있던 동부그룹이 어려워지면서 넘긴 지분을 인수한 거고 노비타는 두산계열사인 네오플러스가 외부자금을 받아 운영하던 것인데 그 자금을 돌려줘야 할 시점에 우리에게 기회가 왔죠. 물론 이 모든 경우 사전에 인수 후 회사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인지 전략을 세우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보고펀드에게 늘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6년 변 대표가 공직시절 론스타와 공모해 외환은행을 고의로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혐의를 받아 구속되면서 보고펀드는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좌장이 영어의 몸이 된 상황에서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도 이제 막 출범한 토종 사모펀드에게는 시련의 연속으로 다가왔다.

“아이리버, 파트너십 체결로 돌파구 찾겠다”

아이리버는 보고펀드는 물론 이 대표에게도 아쉬운 투자회사다. 한때 세계 MP3시장을 석권했던 아이리버는 애플 아이팟 등 글로벌 IT업체들의 도전으로 지금은 사세가 많이 위축됐다. 이런 와중에 보고펀드가 아이리버를 인수하자 시장이 의아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때지만 세계시장을 석권하던 토종 브랜드를 토종 사모펀드가 살려보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실적은 생각처럼 빠르게 개선되지는 않습니다. 적자폭은 줄고 있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죠. 짧은 시간이나마 저는 아이리버를 경영하면서 트렌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생태계를 쥐고 있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 대표는 아이리버 대표이사 취임 후 이같은 환경 속에서는 아이리버 독자 힘으로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 ‘파트너십’을 돌파구로 내세웠다. 지난해 9월 아이리버는 LG디스플레이와 합작으로 e-북 전문 생산업체 L&I를 세웠다. L&I가 개발한 첫 제품은 구글 북스가 독점 탑재돼 올 7월 미국 시장에 출시됐다. 최근에는 LG유플러스와 손잡고 안드로이드 태블릿PC 아이리버 탭(ILT-MX100)과 청소년층을 타깃으로 한 스마트폰 바닐라폰도 출시했다. 앞서 지난 4월부터는 KT와 공동으로 개발한 유아교육용 로봇 키봇(Kibjot)을 판매해 4개월 만에 1만 대를 팔았다. 이 대표는 IT기기업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9월1일 박일환 전 삼보컴퓨터 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영입하고 자신은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 대표는 삼보컴퓨터에서만 20여 년간 근무해 사장자리까지 오른 IT계 스타 전문경영인이다. 

“많은 분들이 아이리버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가 계속되고 있고 가시적인 결과도 나오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는 아이리버라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제품, 서비스는 괜찮은데 지명도가 낮거나 자본과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기업들과 제휴해 나갈 생각입니다.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 생각인 거지요.”

지난 9월7일 금융감독위는 KT가 BC카드의 최대지분을 인수하는 것을 허용했다. KT는 보고펀드로부터 BC카드 지분을 인수,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통신과 금융을 한데 아우르는 기반을 만들었다.

“BC카드는 여러 시중은행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구조였어요. 아마 KT가 바로 BC카드를 인수하려 했다면 (인수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저희는 BC카드에 투자할 때부터 복잡한 지분구조를 정리할 생각부터 했거든요. 이미 4~5곳 주주에게 지분 매각을 설득한 상태였고 SC제일은행과 하나은행 지분은 저희가 인수했습니다. 그 와중에 KT가 지분을 사들이자 일부에서는 BC카드를 놓고 보고펀드하고 KT가 지분싸움을 한다고 봤지만 저희는 오히려 좋은 파트너를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 지난 7월 17일 미 타겟(Tarket)매장에서 열린 아이리버의 구글e-북 전용단말기 ‘스토리HD’ 출시 기념행사(왼쪽). KT와 공동으로 개발한 유아용로봇 키봇.

해외투자로 두 번째 도약 준비

지난 8월 보고펀드는 우리금융지주 매각 입찰에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막판에 이를 철회했다. 결국 최종 입찰에는 또 다른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만 단독으로 참가, 입찰 기준 미흡으로 최종 무산됐다.

“애초 저희는 금융기관들로 전략적 투자자를 구성해 인수전에 뛰어들 생각이었어요. 그 금융기관들은 추후 우리금융지주 자회사를 소유하거나 경영하고 싶어하는 곳들로 채울 계획이었죠. 그런데 도중에 한 전략적 투자자(SI)가 참여가 어렵다고 통보해왔던 겁니다. 물론 거대 금융기관을 사모펀드가 사는 것에 대한 정서적 거부반응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

이 대표는 우리금융지주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매각 주안점’을 어느 곳에 맞출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우리금융지주 매각 기준으로 공적자금 조기 회수,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금융산업 발전을 내세우는데 그러기 위해선 경영권 매각은 필수예요. 경영권을 가져와야 이상적인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고 이후 매각 시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물론 한꺼번에 (경영권을) 인수해야 조기 회수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그 막대한 자금을 누가 쉽게 투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사모펀드 참여에 대한 거부반응까지 보이는 마당에 매각은 더 힘들다고 봅니다. 결국 선택은 정부 몫이겠지만 저는 세 가지 기준 중 매각 주안점을 어디다 맞출 것인가부터 결정해야 한다고 봐요. 조기회수라면 블록세일일지 분리매각일지를 결정해야 하고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를 생각한다면 다른 금융지주사가 참여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죠. 마지막 금융산업 발전을 우선시한다면 사모펀드나 외국 자본에 대해서도 좀 더 개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보고펀드의 다음 과제는 ‘글로벌’이다. 이 대표는 인터뷰에서 올해를 기점으로 해외진출에 본격 나설 것이라는 청사진을 밝혔다. 그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토종 사모펀드들에게 긍정적인 시장 변화”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가 국내 기업 지분투자 방식 위주였다면 앞으로는 해외자원 개발, 해외기업 M&A 등으로 투자대상을 다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투자 대상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한국 내지는 한국기업과 관련된 투자물건이 보고펀드나 이 대표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한 자금조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 UBS를 통해 펀드레이징(자금조달)을 준비중인데 7000억원 내외가 목표입니다. 국내, 해외자금을 반반씩 모집할 계획인데, 일단 해외 반응은 나쁘지 않습니다. BC카드 등 몇몇 투자 건은 이미 좋은 수익률로 회수가 진행되고 있어 다른 투자기업들의 경영 성과 또한 좋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해외 기관들 사이에 ‘한국 내 투자는 한국기업 환경을 잘 아는 로컬 펀드 매니저에게 맡기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재우 대표는… 

1957년생. 80년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83년 미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83년 씨티은행에 입행, 95년 한누리살로몬증권 상무, 98년 H&Q AP코리아 대표이사, 2000년 리먼브라더스 한국대표를 거친 뒤 2005년부터 보고펀드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송창섭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