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후계자였던 옥타비아누스는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정치적 라이벌인 안토니우스를 격퇴하고 로마의 패권을 잡았다. BC 27년에는 원로원으로부터 ‘존엄자’라는 칭호를 받으며 마침내 제정 로마 시대의 막을 여는 주인공이 됐다. 그가 바로 고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뜻)다. 아우구스투스는 통치기간 동안 이른바 ‘팍스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의 초석을 놓았다. 그의 시대에 로마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전성기에 접어들었다. 아우구스투스에게는 지혜롭고 현명한 조언자이자 충신이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가이우스 마에케나스(Gaius Maecenas). 마에케나스는 정치나 외교도 능란했지만 무엇보다 문화예술의 후원자로 이름이 드높았다. 당대의 시성(詩聖)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이 그의 지원 덕분에 마음껏 예술혼을 꽃피웠다.
마에케나스의 이름은 200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오늘날에도 빛나고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두터운 보호와 지원’을 뜻하는 고유명사 ‘메세나(Mecenat: 마에케나스의 프랑스어 표기)’로 부활한 것이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한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기업들이 주축이 된 메세나 관련 기구가 잇달아 설립됐다. 국내에서는 1994년 출범한 한국메세나협의회(이하 메세나협의회)가 기업들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을 조직하고 장려하는 주춧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메세나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리더는 박영주 이건그룹 회장이다. 박 회장은 2005년 말 메세나협의회 회장 취임 이래 국내 기업들과 문화예술계를 잇는 든든한 가교를 만드는 데 아낌없는 열정을 쏟아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마에케나스’라고 불러도 손색 없는 박 회장을 만나 기업경영과 문화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한국의 마에케나스’

    

 기업과 문화, 상생을 이끌다



- 솔로몬 군도 현지인들이 만든 공예품 진열대 앞에서 박영주 회장이 활짝 웃고 있다.

언제부턴가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를 합친 신조어 컬처노믹스는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페테르 두엘룬 교수가 1990년대 초반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여러 차례의 의미 변용을 거쳐 2000년대 들어서는 문화와 산업의 창조적 융합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매김했다. 쉽게 말해 문화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모든 것이 컬처노믹스인 셈이다. 가령 경영활동에 문화예술을 접목하는 ‘문화경영’이나 제품·서비스 판매에 문화적 코드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문화마케팅’ 등이 컬처노믹스와 같은 맥락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문화의 가치와 효용성이 강조되는 21세기에 컬처노믹스는 기업뿐 아니라 개인, 도시, 국가, NGO 등 거의 모든 사회 주체들에게 중요한 함의를 제공하고 있다.

강석진 회장(이하 강 회장) | 21세기는 흔히 문화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경제만 갖고는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와 문화가 함께 성장해야죠. 박 회장님께서는 한국의 메세나 활동을 리드해온 경영자이신데 문화와 경제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동반성장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박영주 회장(이하 박 회장) | 최근 감성경제, 감성경영 같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저는 경제가 어떤 수준까지는 문화의 도움 없이도 성장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려면 문화가 갖고 있는 ‘대단한 힘’을 사용하지 않고는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봅니다. 사실 문화라는 게 따지고 보면 디자인, 미술, 음악, 스토리 같은 거잖아요. 이런 것들은 기업 경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도구’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대단한 걸 얻을 수 있는 거죠. 또 창의력이라든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요소들은 무엇보다 문화의 힘이 필요합니다. 결국 어떤 수준 이상의 발전을 위해서는 모든 산업이 문화에서 자양분을 얻어야 한다고 봅니다. 문화가 갖고 있는 힘을 경영에 접목시킬 때 기업이나 산업의 차원이 달라지는 겁니다. 국민경제도 마찬가지죠.

박 회장은 10여년 전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문득 한 가지 단상이 머릿속을 스쳤다고 회고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거쳐 칠레에서 출발한 비행기 안에서였다. “이제 한국 기업들이 제품만을 만들어 파는 시대는 지난 것 아닌가, 앞으로는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를 팔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더군요. 우리 제품에 우리 문화를 결합시켜 팔지 않고는 더 이상 높은 차원으로 성장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 거죠.”

박 회장 | 2000년대 이후 <겨울연가> 같은 드라마를 필두로 한류가 시작됐고 지금은 유럽까지도 K팝(K-Pop: 한국 대중음악)에 열광하고 있는 것을 보세요. 한국 문화가 참 대단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예요. 이웃 일본이 한때 문화적으로 얼마나 대단했습니까. 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서부터 일본 정부나 기업들이 그걸 지속시키지 못한 것 같아요. 우리가 한류를 지속적이면서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려면 전통문화를 가미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대중문화와 고유문화를 접목한 전략적 접근방식이 필요한 거죠.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지금 국가브랜드위원회 같은 곳이 활동하고 있지만, 이제 모든 정부 부처가 힘을 합쳐 장기적이고 치밀하게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특히 민간과 함께 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는 굉장히 좋은 기회를 맞았습니다. 이 기회를 일과성으로 흘려 보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정부와 기업, 사회의 리더들이 좀 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우리 문화의 힘을 100% 발휘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해외에 나가 보면 삼성, 현대차, LG 같은 기업들이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 못지않게 한국 문화의 힘과 백그라운드가 함께 가야 합니다. 저는 사업도 하고 문화도 사랑하는 사람 입장에서 요즘 ‘위기감’ 같은 게 느껴집니다. 제가 말하는 위기감은 뭔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죠.



- 인천국제공항 외벽에 설치된 이건창호 제품.

한류 열풍은 우리 문화 세계화의 기회

강 회장 |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 것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아직까지 한국을 ‘문화 선진국’이라고 느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또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안다고 해봐야 겨우 요즘 유행하고 있는 K팝 정도죠. 특히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습니다. 그건 우리 문화를 세계화시키고 널리 알리는 데 정부나 기업이 아직 큰 역할을 못한 것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선진국에서는 보통 큰 기업들이 문화에 굉장히 많은 지원과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GE(제너럴일렉트릭) 같은 회사는 본사 건물 1층을 미술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항상 많은 문화행사에 후원 또는 참여를 하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메세나를 통해 한국 문화를 세계화하는 데 앞장서면서 정부와도 많은 협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 회장 | 문화 분야에도 국가적인 전략과 전술이 필요합니다. 전체가 컨센서스를 이뤄 큰 그림 위에서 각 분야별로 열심히 노력하면서 서로 협력관계를 구축했으면 합니다. 우리 기업들이 각 산업 분야에서 아주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문화를 어떻게 창출해내고 실행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또 국민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문화를 대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게 필요합니다.

강 회장 | 우리 산업 경쟁력이 더욱 높아지려면 문화가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회장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큰 백화점에 가보면 한국,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 넥타이 제품을 볼 수 있어요. 한국산 넥타이는 10달러 정도면 살 수 있고 중국산은 훨씬 더 쌉니다. 우리가 볼 때 디자인과 품질에 별 차이가 없는데도 프랑스, 이탈리아 제품은 100달러 이상 받습니다. 문화 선진국이냐 아니냐에 따라 국가브랜드가 확 달라질 뿐 아니라 그 나라 제품 가격도 크게 차이가 납니다. 한 나라의 문화가 그 나라의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겁니다.

박 회장 | 지금 삼성, 현대차, LG 등 우리 기업들의 브랜드 파워가 얼마나 커졌습니까. 세계 일류 브랜드가 됐죠. 만약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문화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브랜드라면 그 상승효과는 엄청났을 겁니다. 문화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기 문화에 대한 자국민의 자긍심이 얼마나 큰가 하는 점입니다. 여러 가지 역사적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 것에 대한 비하감이 큰 것 같아요. 최근에 와서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면서 많이 불식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은 약하지 않나 봅니다. 나아가 우리 제품이나 기업에 대한 자긍심도 약한 것 같아요. 사실 세계 어느 나라나 인텔리 계층은 자기 나라 치부까지 잘 아니까 자기네 것을 깎아내려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제가 얼마 전 회의 참석차 영국,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을 다녀왔는데 서울에 들어오니까 우리나라가 제일 좋은 것 같더군요. 편리하죠, 깨끗하죠(웃음). 그런 면에서 우리가 우리 것에 대해 좀 더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그러려면 우리 것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애정도 가져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박 회장은 대뜸 ‘송광사 새벽예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전남 순천 송광사는 경남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더불어 한국 3대 사찰로 꼽힌다. 이들 세 사찰은 불교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불(佛), 법(法), 승(僧)의 세 가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라고 해서 삼보사찰(三寶寺刹)로도 불린다. 특히 송광사는 매우 경건하면서도 웅장한 새벽예불로 정평이 나있다. 무엇보다 예불 소리의 품격과 감동이 여느 예술작품 이상이라는 평가다. 박 회장의 말이다.

“얼마 전 한 레코딩 엔지니어(황병준 사운드미러코리아 대표)가 송광사 새벽예불을 녹음한 것을 들었는데요. 그걸 듣고 정말 놀랐어요. 아, 너무 좋아요(박 회장은 여기서 아주 길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 4~5년 전쯤 아일랜드 수도사들이 부른 콰이어(Choir: 성가대) 음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건 지금도 세계 음반시장에서 베스트 음반으로 기록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에는 우리 송광사 새벽예불이 그것에 전혀 뒤지지 않아요. 정말 멋있습니다. 제가 요즘 외국에 나가면 송광사 새벽예불 CD를 하나씩 나눠줘요. 저는 종묘제례나 아악 같은 것도 우리의 굉장한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회장 | 메세나협의회 회장직을 만 6년간 맡아 오셨는데,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메세나 활동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박 회장 | 세계적으로 봐도 예술단체와 기업의 협력을 주도하는 민간단체 중 우리 메세나협의회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한 축에 듭니다. 얼마 전 메세나협의회가 유네스코에서 발표회를 가질 기회가 있었는데, 다들 어찌나 질문과 관심이 많던지요(웃음). 그만큼 한국메세나협의회의 활동은 예술단체와 기업 간 협력의 좋은 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강 회장 | 이탈리아 플로렌스(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던 데는 메디치 가문의 역할이 컸지요. 상업을 통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문화예술 분야에 아낌없이 투자한 메디치 가문 덕택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탄생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메세나협의회가 ‘한국의 메디치 가문’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 박영주 회장과 강석진 회장은 문화예술로 ‘코드’가 잘 맞는 CEO들이다. 대담 역시 문화예술의 향기가 그윽했다.

한국메세나협의회 활동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박 회장 | 한국의 메디치라고 하면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님을 우선 떠올릴 수 있습니다. 가문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대기업들, 특히 삼성이 문화예술 분야를 굉장히 많이 후원하고 있지요. 삼성, LG, 현대차, SK, 한화, 금호아시아나, 두산, 크라운-해태제과 등이 벌이는 문화예술 후원 활동은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니레버 등의 외국 기업 사례를 말하는데, 후원 활동의 금액 규모나 종류 측면에서 우리 대기업들만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외국인 주주들이 주주총회 때 (후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는 그렇게 열심히 해도 별로 알아주질 않는다는 거예요(웃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강 회장 | 2009년 이후 기업들의 문화예술 기부 및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이른바 ‘메세나 특별법’ 제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는데요. 메세나법의 의의와 효과, 그리고 입법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박 회장 | 현재 국내의 전체 기부금 총액 중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기부금 비중은 2%에 불과합니다. 지금 정부에서 문화예술 지원 예산을 늘린다고 많이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는 정부가 세금을 거둬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민간기업이나 개인들이 문화예술을 직접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큰 물줄기는 정부가 잡아주고, 작은 물줄기는 민간기업이나 개인들이 하는 게 상당히 바람직하거든요. 그런데 2%밖에 안 되는 문화예술 분야 기부금을 늘리려면 기부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취지에서 조세특례 규정 등을 담은 메세나 특별법 제정을 위해 몇몇 국회의원들과 함께 나서고 있는데, 국회에서 진전이 잘 안되고 있네요. 아무래도 세수 감소라든지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 등을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추산하기로 이 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세금 감소분은 약 260억원에 불과합니다. 대신 문화예술계로 지원되는 금액은 1000억원 이상이 될 겁니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 2003년 메세나 특별법 제정 이후 문화예술계가 열 몇 배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 회장 | 우리나라는 문화예술에 대한 예산이 다른 예산에 비해 너무 적은 편이에요. 중국만 해도 문화예술 분야 지원은 정부가 주도하고 있고, 특히 중국 문화와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 정부와 기업이 상당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 미술이 우리나라에 비해 수준이 높지 않은데도 세계에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거죠. 반면 한국 미술은 거의 세계에 알려지지 못하고 있어요.

박영주 회장은 2005년 10월 제6대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문화예술인들의 큰 울타리 역할을 하던 전임 박성용 회장이 타계하면서 중책을 이어받았다. 박 회장은 2009년 6월 제7대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역대 최장수 메세나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특히 박 회장 취임 이래 메세나협의회의 사업 내용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매우 풍성해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동안 기업과 예술의 만남, 중소기업 예술지원 매칭펀드, 찾아가는 메세나, 어린이 메세나 등이 메세나협의회를 대표하는 주력사업으로 자리잡았다.

박 회장 | 저는 메세나 활동 중에서도 저소득 계층이나 소외된 지역을 위한 ‘문화나눔’ 사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사업은 현재 대기업들이 상당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한 해 열리는 문화나눔 행사만 해도 2400여건 정도 될 겁니다. 군 병영에 가서 군인들을 대상으로 문화체험 행사를 가지거나 외딴 섬에 사는 아이들에게 무용을 가르치거나 소년원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등 굉장히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많아요. 저는 어렸을 때 문화적인 감동을 많이 받고 자라면 나중에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진다고 봅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나눔 사업이 중요한 이유죠. 또 문화예술단체들의 형편이 매우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하고 있는 사업이 기업과 문화예술단체의 짝짓기 운동이에요. 그게 아주 효과적입니다. 제가 회장이 되고 나서 도와달라는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주로 군소 문화예술단체들이었죠. 한데 메세나협의회는 봉사하는 단체지 돈이 있는 단체가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대기업에 군소 문화예술단체를 소개해줄 수도 없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중소기업들도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다 몇 해 전 문화부 장관을 만나 ‘매칭펀드’ 제안을 했습니다. “중소기업들을 좀 참여시킵시다. 그러기 위해선 뭘 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이죠. 매칭펀드는 가령 중소기업이 문화예술 지원금으로 1000만원을 내놓으면 정부도 함께 1000만원을 내놓는 식입니다. 그 사업이 예상 외로 잘되고 있어요. 요즘은 1년 예산이 4~5월이면 모두 떨어집니다. 예산이 얼마 안 되니까요. 현재 예산을 3~4배로 대폭 늘려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작은 예술단체, 지방 예술단체를 지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문화예술단체가 가장 부족한 게 경영능력입니다. 마케팅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1년에 한 번씩 문화예술단체 매니저들을 초청해서 3박4일 교육을 시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얼마나 오겠나 싶었는데 지금은 줄을 섰습니다(웃음). 3박4일간 교육을 받으면 굉장히 많은 걸 배우거든요. 기업은 예술단체로부터 감성이나 창의력 등을 배우고 예술단체는 기업에게 관리능력 등을 배우니까 서로 ‘윈윈’하는 체계가 마련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의 문화예술단체 지원 규모가 커지면 청년실업 문제 해소에도 일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문화예술 분야를 전공한 대학 졸업자가 연간 5만명 정도 배출되고 있다. 반면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대부분 문화예술단체들이 ‘춥고 배고픈’ 형편이라서 새로이 단원을 충원하는 것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문화예술단체의 숨통을 틔워주면 문화예술 분야 전공자들의 취업난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 박영주 회장

‘이건음악회’는 국내 대표 문화공헌 사례

강 회장 | 이건그룹이 매년 개최하는 ‘이건음악회’가 기업의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유명합니다. 햇수로도 벌써 20년이 넘었지요. 이건음악회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습니까.

박 회장 | 저희가 인천에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커지면서 인천시에 세금도 많이 내는 등 지역사회에 기여했지만 그것만으로 되겠나 싶어 ‘인천시민들에게 뭘 봉사할까’를 생각하게 됐죠. 처음에 여러 의견들이 나왔어요. 그런데 저를 포함한 모든 경영진이 공교롭게도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 게다가 인천은 인구가 많지만 서울과 가까워서 그런지 음악회를 보려면 서울로 가는 겁니다. 좋은 음악단체는 인천에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인천시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겁니다. 마침 그때 누군가가 체코의 ‘아카데미아’라는 목관5중주단을 소개해줬어요. 제가 음악을 들어보니까 상당한 수준이더군요. 그래서 초대했죠. 사실 조그마한 목재회사가 그런 걸 기획한다는 자체가 좀 웃기지 않았겠습니까(웃음). 그런데 그게 벌써 올해로 22년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행사 경험이 없다 보니 프로모션 회사에다 견적까지 받아봤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겁니다. 그래서 의논 끝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인하우스(In-House)로 해보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렇게 시작한 첫 행사가 굉장히 성공적이었어요. 인천에서 한번 하고 우리 공장에서 한번 하고 그 다음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등 총 3번 음악회를 열었죠. 당시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하는 음악회에 가면서 아내와 “아무도 안 오면 어쩌지” 하면서 걱정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이제는 그런 행사를 기획하는 노하우가 많이 쌓였어요.

이건음악회는 문화적 혜택이 적은 지역민에게 클래식 음악의 향연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무료음악회다. 1990년 처음 시작해 어느덧 22년째를 맞았다. 이건음악회는 문화를 통한 사회공헌 활동 차원에서 시작됐지만 이건그룹의 지명도를 높이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이건그룹 하면 문화경영, 박영주 회장 하면 문화CEO를 떠올리는 것도 이건음악회 덕이 컸다.

특히 이건음악회는 공연 기획, 연주자 섭외, 대관 등 모든 행사 과정을 이건그룹 임직원들이 손수 맡고 있어 ‘문화를 통한 나눔과 봉사의 실천’이라는 의미가 크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제1회 음악회에 초대된 체코의 아카데미아 목관5중주단을 필두로 미국 로드아일랜드 색소폰4중주단(1998), 독일 고(古)음악단체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2002), 영국 현악4중주단 더 스미스 콰르텟(2008) 등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연주자들이 그간 이건음악회를 빛내왔다.

지난 10월말~11월초 개최된 제22주년 행사에서는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클라리네티스트 샤론 캄이 고양, 부산, 인천, 대구, 서울 등 5개 도시를 순회하며 황홀한 연주를 선보였다. 특히 한국의 젊은 첼리스트 백나영이 고양 및 서울 공연에서 샤론 캄과 멋진 협연을 선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 회장 | 이건음악회 공연단체는 전부 외국서 데려옵니다. 저희는 표를 팔지 않으니까 예산을 많이 쓸 수 없거든요. 그래서 좀 덜 알려졌지만 실력은 대단한 단체들을 선별 초청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올해는 샤론 캄이라는 세계 최고의 클라리넷 연주자를 초청했어요. 또 한 가지 원칙은 해외 연주자를 초청하면 반드시 우리나라 젊은 연주자와 협연을 하게 한다는 겁니다. 이번에도 신예 첼리스트 백나영과 샤론 캄이 합주를 하게 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참 희한한 게 우리가 초청하고 나면 점점 더 (해당 단체들의 개런티가) 비싸져요(웃음). 제가 8년 전인가 영국 런던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리다 아카데미아를 소개한 <선데이타임즈> 기사를 봤는데 거기 이렇게 돼 있더군요. ‘세계 최고 수준의 5중주단이라는 평가가 전혀 손색이 없다’라고요.

강 회장 | 이건음악회가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을 키워내는 산실 역할을 하는군요.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가와 한번 협연을 한다면 그것 자체로 실력 향상에 큰 계기가 되니까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회장님께서 문화예술 분야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니까 이건그룹 직원들의 문화적 소양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박 회장 | 오랜 기간 문화예술 활동을 하니까 직원들도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봅니다. 기업이 문화 활동을 하면 회사 내부적으로 좋은 문화 환경을 갖게 된다고 말이죠. 또 중요한 것이 사원 전체가 취향의 고급화, 다시 말해 품격 같은 게 올라가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긍심 같은 것도 생기게 되죠.

강 회장 | 문화경영을 하게 되면 기업의 창의성 향상 등에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박 회장 | 그건 말이죠. 눈에 딱 띄게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는 없어요. 요즘 화제가 된 스티브 잡스도 창의력이라는 것은 다른 것들을 다 연결할 수 있을 때 발휘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요사이 인문학 얘기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문화예술이나 인문학 등에 대한 소양을 기르면 창의성이 높아지겠죠.

강 회장 | 21세기 들어 창조경영이나 지식경영을 말할 때 문화와 경영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는 분위기잖습니까. 문화와 경영을 접목하면 똑같은 사람이라도 생각이 훨씬 다양해지고 창조적이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에 창조적인 발상과 경영을 가능하게 하죠. 문화라는 것은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창조적인 발상에서 비롯되지 않습니까. 창조적이지 않으면 문화는 생겨날 수 없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기업과 문화의 접목은 우리나라 산업 전체를 창조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발판이라고 봅니다.

박 회장 | 이제는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재정적 후원을 넘어 아예 문화예술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을 기업 안으로 끌어들여야 해요. 가령 저희가 지금 작은 무용단 한 곳을 도와주고 있는데 그곳 분들이 회사에 와서 강의나 강연도 하고 퍼포먼스도 합니다. 과거에는 기업이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윈윈’해야 해요.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기업이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문화예술을 100% 활용해야 합니다. 문화예술에는 그만한 힘이 있습니다. 많은 기업인들이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문화예술 후원을 하겠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분들에게 바로 지금 얼마라도 이익이 생기면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지속적으로 한 분야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무슨 결실을 보지 않겠습니까. 어떤 문화재단은 사업을 10가지 넘게 하는 경우도 있던데 이것저것 막 하니까 10년, 20년이 지나도 뭔가 실적이 쌓이지 않게 되죠.



강 회장 | 회장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은 기업, 나아가 국가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무엇보다 먼저 문화 선진국으로 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기업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세계 시장에서 확 달라질 거라고 봅니다.



- 강석진 회장

문화예술 지원은 국가 미래에 대한 투자

박 회장 | 경제만 발전하고 문화가 발전하지 못하면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처럼 사회의 품격이 좀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사회가 밸런스 있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문화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강 회장 | 개인적인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문화예술 애호의 길로 들어서셨는지요. 어릴 적부터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박 회장 | 저희 선친께서 문화에 관심이 많으셨죠. 자연히 저도 어릴 때부터 그쪽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선친께서 특별히 예술활동을 하신 건 아니지만 많이 즐기시고 지원하셨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문화적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기 때문에 복이 많았죠. 제가 항상 어릴 때 한번이라도 문화적인 감동을 받아보는 게 평생을 살아가는데 큰 자산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강 회장 | 회장님께서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하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문화예술 장르 가운데 평소 어떤 분야를 가장 즐기시는지요.

박 회장 | 저는 말이죠, 굉장히 잡식성이에요(웃음). 전 음식도 안 먹는 것 없이 다 좋아해요. 음악도 클래식부터 컨트리송까지 다 좋아합니다. 미술도 컨템퍼러리(현대미술)부터 옛날 미술까지 다 좋아하고요. 좋은 건 다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국악도 굉장히 좋아하죠. 무용은 옛날 러시아 발레도 좋아하지만 요즘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무용과 연극을 융합한 극무용(탄츠테아터)의 창시자)와 같은 첨단 현대무용도 무척 즐깁니다. 제가 굉장히 기호가 넓은 편이에요. 그래서 이게 좀 문제예요(웃음). 미술도 한 30년 동안 즐겼는데, 비록 돈은 많지 않았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뭘 해줄까 늘 고민을 했거든요. 그래서 판화 수집을 시작한 겁니다. 30년 동안 판화를 수집했는데 그게 좀 특별한 취미예요. 판화는 워낙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데다 책도 보고 공부도 좀 해서 애정이 큽니다. 물론 나머지 예술장르도 다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깊이가 없어요(웃음). 제일 중요한 건 말이죠, ‘얼마나 즐기느냐’ 하는 거예요. 보고 듣고 만지면서 얼마나 즐기느냐, 그건 영적이거나 혹은 감성적인 거니까 표현하기 어렵겠죠.

강 회장 | 예술을 무척 사랑하시는데, 혹시 경영도 예술이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박 회장 | 그렇습니다. 경영도 하나의 종합예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경영이라는 것은 사람에 관한 부분, 정신에 대한 부분이 모두 포함된 것이기에 하나의 예술이라고 볼 수 있겠죠.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도나 즐기려고 하는 경향이 굉장히 높아진 거 같아요. 이제는 그런 젊은이들하고 어울려 즐기는 것도 굉장히 좋더군요.

박영주 회장은 한평생을 목재산업에 바친 기업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ROTC 1기로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입사한 곳이 장인이 경영하던 광명목재라는 회사였다. 그때가 1965년이다. 운명이었을까. 그는 “원래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장인의 부름을 받고 몇 년간 함께 일하면서 결국 이 길로 접어들었다”고 회상했다. 1960년대 중반 목재·합판산업은 한국 경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광명목재를 비롯해 동명목재, 성창산업, 대성목재 등이 그 시절 이름을 날린 기업들이다. 당시 수출 실적 톱10 기업 가운데 목재·합판기업이 5개나 포함된 적도 있다.

1972년 박 회장은 독자적으로 창업에 나섰다. 이건그룹의 모태인 이건산업을 설립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목재기업으로 성장한 이건산업은 합판, 보드, 목조주택자재, 목재바닥재, 시스템 월&도어(Wall & Door) 등 다양한 목재제품을 생산·판매한다. 그뿐 아니라 목재자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해외에서 대규모 조림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남태평양의 솔로몬 군도에 위치한 초이셀 섬과 뉴조지아 섬이 조림사업의 핵심 교두보다. 초이셀 섬은 제주도 2배 면적인 36억㎡(약 11억평) 크기로 독점 개발권을 보유한 상태다. 또 뉴조지아 섬에서는 여의도 90배 면적(약 8200만평)의 땅을 아예 사들였다.

박 회장 | 지금 전 세계적으로 목재자원이 크게 부족한 상태입니다. 중국과 인도의 수요가 커지고 있어서죠. 특히 인도가 큰 변수입니다. 인도에는 나무가 별로 없습니다. 땔감이 없으니까 죄다 나무를 베어 사용하고 있어서 ‘1000년 보호림’으로 지정한 북쪽을 제외하고는 거의 나무가 없어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거의 빨간색이죠. 인도의 경제성장이나 정책 여건을 보면 앞으로 목재 수요가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 같습니다. 중국도 목재 수요 충당을 위해 러시아, 뉴질랜드 등지서 생산된 것을 수입하고 있는 형편이죠. 장기적으로 보면 모든 원자재가 다 똑같겠지만 목재 확보 문제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강 회장 | 이건그룹은 해외 진출 지역에서도 문화예술이나 교육을 통한 현지 밀착형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어떤 사업들을 하고 계십니까.

박 회장 | 저희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회와 사람들에게 봉사하자, 생활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자’는 모토로 요약됩니다. 솔로몬 군도에는 의료시설이 부족한 터라 진료소를 설립해줬어요. 또 워낙 원시적인 곳이라서 학교를 세워 아이들 교육도 시키죠. 고등교육을 받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장학금도 주고 해외유학도 보내줍니다. 지역 원주민에게 임업과 농업 교육도 실시합니다. 문화 활동도 하고 있는데 가령 국립미술관 같은 곳을 후원하거나 시골 오지에 가서 영화 상영도 하죠. 칠레에서는 지역 전체 어린이가 참가하는 사생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들을 하다 보니까 아주 재미있습니다(웃음). (사회공헌 사업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강 회장 | 언젠가 K팝 가수들을 데리고 가서 공연하면 어떨까요(웃음).

박 회장 |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런데 K팝 스타들의 돈(초청비)이 비싸서 말이죠, 허허허.



- 올해 22회 이건음악회에 초대된 세계적인 클라리넷 연주자 샤론 캄(맨 왼쪽)이 열정적인 연주를 하고 있다(왼쪽). 지난해 이건그룹 인천공장에서 열린 21회 이건음악회.

인간·자연·문화 중시하는 인본경영 철학

강 회장 | 그런데 말입니다. 목재산업은 전형적인 전통산업인데요. 혹시 새로운 시대 트렌드를 반영한 첨단산업이나 유행산업으로 진출하려는 생각을 하신 적은 없으신지요.

박 회장 | 저희가 요즘 신경을 많이 쓰는 화두가 ‘조림’과 ‘환경’입니다. 이건산업은 세계적 권위의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로부터 ‘FSC CoC(Chain of Custody) 인증(합법적 조림과정과 벌목을 통해 확보한 목재로 만든 자연친화적 제품임을 인정하는 제도)’까지 받았어요. 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솔라(태양광산업) 분야에서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창문, 유리문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창호 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꾼 회사가 바로 이건입니다. 옛날에는 에너지와 전혀 관련 없는 창을 쓰다가 저희가 ‘시스템 창호’를 출시하면서 시장이 형성된 겁니다. 저희가 직접 유리를 만들지는 않지만 판유리를 가공해서 ‘에너지 절약형 유리’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에 대해 많은 연구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대규모 조림사업을 벌이는 것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죠.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게 나무입니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고체로 만드는 게 나무가 하는 일이죠. 나무는 자랄 때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빨아들입니다. 이밖에 목재 폐기물 리사이클링(재활용) 사업도 벌써 한 15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목재 폐기물을 활용해 산업용 팔레트를 만들기도 하고, 목재 폐기물을 연료로 열병합발전소를 가동해 스팀(증기) 에너지를 생산·판매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친환경 사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갈 계획이에요.

강 회장 | 회장님께서는 평소 인간중심 경영, 인본 경영을 중시한다고 들었습니다. 회장님의 경영철학을 좀 소개해주시죠.

박 회장 | 저희가 솔로몬 군도에서 내건 기업활동 모토가 ‘러브 피플(Love People), 리스펙트 네이처(Respect Nature), 프라이드 인 잡(Pride in Job)’이에요.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존중하며 자기 일에 긍지를 갖자는 뜻입니다. 제가 종종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게 “우리 업(業)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활을 좀 더 편리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봉사하자”는 겁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 기술, 서비스를 갖고 세계 시장에서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는 최고의 리더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업을 통해 직원들이 성취감과 행복감을 갖는 겁니다. 결국 모든 일이란 게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 솔로몬군도 현지인들을 위해 이건그룹이 세운 병원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한 박영주 회장(위 가운데 모자 쓴 이). 솔로몬군도 조림지.

 

  Tip. 이건그룹 비즈니스 현황 

목재사업 수직계열화 ‘종합목재기업’

이건그룹은 모기업이자 주력기업인 이건산업을 비롯해 이건창호, 이건그린텍, 이건환경, 이건에너지 및 해외 자회사들로 이뤄진 중견그룹이다. 이건산업은 일반용 ∙ 상업용 합판과 보드, 주택 건축용 자재, 주거용 마루, 상업용 마루, 학교용 마루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건창호는 1988년 ‘시스템 창호’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 주역으로 현재 시스템 창호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꼽히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도 이건창호의 제품은 ‘하이엔드(최고급)’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밖에 대형건물의 외관을 꾸미는 용도로 쓰이는 커튼월, 태양광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태양광 창호, 특수창호 사업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또 이건그린텍은 재생목재를 활용한 그린 팔레트(물류자재) 제조가 주력 사업이고, 이건환경은 조경용 목재제품 제조 및 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이건에너지는 스팀 에너지 생산 및 판매 사업을 한다.

이건그룹은 미국, 솔로몬 군도, 칠레, 말레이시아 등지에 해외 사업장을 두고 있다. 미국법인은 목재 가공품 무역업을 주력으로 하고, 솔로몬에서는 대규모 조림 및 원목생산, 목재가공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아울러 칠레법인은 합판 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박영주 회장은 한-칠레경제협력위원장으로 양국간 경제교류 활성화에 앞장서왔다. ‘가장 성공적인 FTA’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도 숨은 가교 역할을 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Tip. 한국메세나협의회는… 

국내 문화예술 후원 운동의 구심점

한국메세나협의회는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제고하여 문화예술 인구의 저변 확대를 기하고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예술의 균형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기업 및 개인의 문화예술 지원을 유도하면서 국민적인 메세나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기업과 문화예술단체를 연결시켜주는 ‘기업과 예술의 만남(Arts & Business)’과 문화공헌사업 등이 있다. 기업과 예술의 만남은 기업과 문화예술단체의 1대1 결연을 통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업은 창조적 조직문화를 수혈받고 문화예술단체는 안정된 창작활동을 보장받는 ‘윈윈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기업이 특정 문화예술단체를 직접 지원하는 ‘대기업 결연’ 프로그램, 중소·중견기업이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금액에 비례해 정부가 문예진흥기금을 추가 지원하는 ‘예술지원 매칭펀드’ 프로그램도 뿌리를 내렸다.

문화공헌사업에는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된 계층을 직접 방문해 공연 행사 등을 개최하는 ‘찾아가는 메세나’, 저소득층 자녀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예술캠프 참가, 공연장·전시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어린이 메세나(Arts For Children)’ 등이 있다. 문화공헌사업은 여러 대기업들이 메세나협의회와 공동 주최하는 방식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

 

  Tip. 박영주 회장의 특별한 옛 인연 

“당대 지성인들과 교류 …인생을 배웠어요”

박영주 회장에게는 아주 특별한 옛 인연이 있다. 박 회장 부부가 30대 초반 연세대 동쪽의 한 마을(현재의 금화터널 부근)에 둥지를 틀고 살 때 동네교회(대신교회)에 다니면서 맺어진 인연들이다. 박 회장 부부는 그때 한 모임에 나가게 됐는데, 그 모임에는 우연히도 당대의 지성인들이 수두룩했다. 오화섭(영문학자·연극번역가), 이한빈(전 부총리), 김형석(연세대 명예교수), 박두진(청록파시인), 김동길(연세대 명예교수), 김활란(여성운동가·전 이화여대 총장), 박대인(감리교 선교사·본명 에드워드 포이트라스) 등이 그 면면이다.

“당시 저는 나이가 한참 어려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요. 하지만 그런 분들과 교류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제 생각에는 대학 다니는 것 이상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 동네에서 사업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는데, 돈 냄새 풍겼다간 큰일났죠(웃음). 그 분들이 한결같이 검소하게 사시니까요. 그 분들을 보면서 저희 부부가 굉장히 많이 배웠습니다. 그 무렵 검소하게 사는 게 몸에 뱄던 것 같아요.”

그 모임에서 박 회장은 박두진 시인, 박대인 선교사와 함께 ‘삼박씨’로 불렸다. 같은 성씨인 데다 연배와 상관없이 잘 어울려 다녔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그 동네를 떠난 후에도 삼박씨는 자주 모여 회포를 풀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무렵 박대인 선교사가 정년퇴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가 다가왔다. 세 사람은 부부 동반으로 한국 최남단의 섬 마라도를 찾았다. 석별의 정을 달래고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곳에서 탄생한 작품이 박두진 시인의 유작과도 같은 시 ‘마라도’라고 한다.

“제가 지금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에 박두진 선생님 아들인 화가 박영하씨(홍익대 미대 교수)가 마라도를 그리고 그 위에 박두진 선생님의 시를 쓴 게 있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참 훌륭한 시인을 가까이서 모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겐 축복이었죠.”



- 박영주 회장은 2005년 독일 몽블랑 문화재단으로부터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수상했다.

 

■ 박영주 회장은… 

1941 부산 출생 / 1959 경기고 졸업 / 1963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1975 광명목재 대표이사 / 1978 이건산업 대표이사 / 1988 이건창호시스템 대표이사 / 1993 이건산업 회장 / 1993 솔로몬군도 명예영사 / 1995 세계임업협회 회장 / 2001 전경련 부회장 / 2002 태평양경제협의회 한국위원장 / 2005~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

■ 강석진 회장은… 

연세대 대학원(공업경영학 석사)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30여년 간 제너럴일렉트릭(GE)에 몸담았고, 그중 20년은 GE코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 전문경영인학회 이사장, 서강대·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CEO컨설팅그룹 회장이다. 서양화가로도 활동해 세계미술문화진흥회 이사장과 한·일 서양화 교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역서: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라>, , <잭 웰치와 GE방식> 등

/ 대담 :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 정리 : 김윤현 기자, 송창섭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