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투어는 여행업계 ‘삼성’으로 불린다. 국내 여행업계 1위 기업으로 전국 6000여개의 소매여행사를 대상으로 여행상품을 기획·판매한다. 2010년 1600여명의 직원이 218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13개 계열사를 두고 있는 하나투어의 수장은 박상환 회장. 박 회장은 패키지여행 상품의 표준화와 시스템화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지난 7월 18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있는 하나투어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한·중·일 동북아 네트워크 활용

  글로벌 여행종합기업 될 겁니다”

Park’s Room’이라고 쓰인 박 회장의 집무실은 작았다. 다른 기업 회장실에 비해 초라할 정도다. 책상 하나와 회의 테이블이 전부였다. 그가 출장을 가거나 자리를 비울 때는 회의실로 쓰인다.

그의 책상 옆 벽에는 ‘공변자무발전(恐變者無發展)’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발전이 없다’는 의미다. 박 회장의 좌우명이다.

그는 “항상 변화에 주력해왔고, 하나투어에 있어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여행산업도 기존의 비즈니스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한계에 왔어요.”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집무실이 있는 10층에는 유독 눈에 띄는 부서가 있다. 바로 ‘신성장사업부’다. 이 사업부는 호텔 숙박, 해외박람회, 콘텐츠 제작과 판매, 공연기획, 웨딩컨설팅 사업 등 하나투어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지난해 신설됐다. 기존 여행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문화관광 분야로 사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다.

그동안 하나투어는 급변하는 여행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사업을 늘리고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는 등 변화에 주력해왔다. 특히 늘어나고 있는 개별 자유여행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여행자에게 에어텔, 배낭여행, 호텔, 현지투어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팝콘’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으며, 다양한 개별 여행상품군을 발굴해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중소형 여행사는 꿈도 꿀 수 없는 시도다.

“앞으로는 자유여행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겁니다. 기존의 정형화된 상품으로는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어요. 항공권을 여행 패키지로부터 따로 분리해 판매하고, 호텔도 원하는 날짜에 따로 예약하는 등 여행객이 직접 목적지와 숙박하고자 하는 호텔의 종류, 항공좌석을 결정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이들의 니즈에 부합할 수 있는 단위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겁니다.”

새로운 성장의 발판인 글로벌 비즈니스에도 많은 변화가 시도된다. 세계적인 여행종합그룹을 넘어 문화관광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하나투어는 기존의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중국과 일본 관광객을 국내로 끌어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제3국 여행상품도 준비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중국 여행상품을 팔고, 중국인에게 유럽 여행상품을 팔겠다는 겁니다. 국내 여행자의 해외여행이나 외국인 여행자의 국내 여행뿐만 아니라 이제는 해외여행자의 해외여행까지 담당하는 거죠.”

특히 박 회장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문화공연 기획에 거는 기대가 크다. 세계적인 공연을 국내에 유치하거나, 아예 뮤지컬 등을 직접 기획해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는 포부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K-팝 공연을 싱가포르나 유럽에 열어 일본이나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식이죠. 또 템플스테이 같은 우리 고유의 문화콘텐츠를 통해 외국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도 있고요.”

일본과 중국 현지에서 직접 고객을 모집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박 회장은 글로벌 여행기업과 맞설 수 있는 경쟁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일본의 경우엔 현지 직영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지 여행사와 겨룰 정도의 충분한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요. 하나투어는 한·중·일 3국을 잇는 동북아 관광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무대로 글로벌 경영을 확장해나갈 겁니다.”

최근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도입했다. 기존에 하나투어가 일방적으로 여행상품을 공급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전국 대리점과 국내외 여행사, 골프장·호텔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자가 상품을 공급해주고, 하나투어가 유통망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행상품 판매자가 동시에 공급자가 되는 쌍방향 참여형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박 회장이 여행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1년.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그는 대기업 입사를 꿈꿨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외국인을 많이 만나는 여행사도 좋겠다 싶어 입사한 곳이 고려여행사였다. 그는 이듬해 국외여행 안내원 자격증을 따고, 70여개국에서 한국인 관광객 여행 가이드를 했다.

“위기에도 한 명도 감원 안했어요”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그는 고려여행사에서 일하던 동료 4명과 의기투합해 국일여행사를 창업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상장을 해 사업규모를 키우자는 약속도 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매영업’에 나서면서 회사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도매영업은 소규모 여행사를 대상으로 여행상품을 파는 방식이다. 도매 여행사는 중소 소매 여행사의 손님을 묶어 그룹을 구성하면 고객들은 값싸게 여행을 할 수 있고, 중소 여행사는 커미션을 받을 수 있어 상호 모두에게 이익이다. 현재 도매 여행사는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뿐이다.

몇 년 후 박 회장이 상장을 제안하자 동업자들은 “아직 이르다”며 거절했다. 당시만 해도 여행업체에는 투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관광법규에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해외 여행상품 판매에서 10% 이상 수익을 내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어요. 하지만 여행업체들은 단체관광객의 경우 10% 이상 수익을 내고, 10%가 넘는 부분은 매출에서 누락시키는 경우가 많았죠.”

여행업의 특성상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본력이 중요했다. 여행사도 상장을 통한 투명경영으로 자금의 유입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박 회장은 결국 독립을 결심했다. 1993년 국일여행사의 자회사인 국진여행사를 맡게 됐으며, 1995년에는 자본을 분리하고 회사이름도 하나투어로 바꿨다. 국일여행사는 지금의 모두투어가 됐다.

그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우리사주제를 직원들에게 제안했다. 각자 500만원 정도의 주식을 보유하자고 설득했다. 인적 서비스의 의존도가 높은 여행업체는 직원들의 주인의식이 생산성 향상을 좌우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창업멤버들이 그의 제안을 따랐다. 그가 1억원을 내고, 나머지 2억5000만원은 직원들이 보탰다.

도매영업 방식으로 입지를 넓혀나가던 하나투어가 업계 1위에 올라선 것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1998년 1~2월 패키지여행 수요는 전년대비 95%가 감소했다. 상위 10개 업체 중 절반이 문을 닫았다. 살아남은 업체들은 인력의 80%를 줄였다.

하지만 박 회장은 인력을 감축하지 않았다. “6개월만 버티면 여행수요가 20%까지는 살아날 것으로 봤어요. 당시 현금이 2억원가량 있었는데, 매달 5000만원으로 6개월만 버티자고 했어요. 직원이 180명이었는데, 한 명도 줄이지 않는 대신 월급은 30만원씩만 받자고 했죠.”

4월부터 여행수요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직원이 없었던 다른 여행사는 이에 대처하지 못했다. 하지만 준비된 직원들이 있었던 하나투어에는 손님이 몰렸다. 5월부터는 다시 예전처럼 월급을 줄 수 있었다.

2003년 사스(SARS)가 유행할 때도 그는 감원하지 않았다. 그는 감원 대신 비용을 줄였다. 전산시스템을 개선해 효율성을 높였으며, 무급휴가 신청을 받았다.

이처럼 박 회장은 사람을 가장 중시했다. “고객의 신뢰가 원동력인 여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입니다. 돈보다 먼저 사람을 생각한 게 성공요인인 셈이죠.”

자기 회사 주식을 일정 가격에 매수하는 권리를 주는 ‘스톡옵션’제도 도입에서도 박 회장의 사람 중시 경영이 엿보인다. 박 회장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전 직원에게 직급과 영업 능력에 따라 스톡옵션을 줬다. 지금은 팀장 이상 직원들로 범위를 줄였다.

박 회장은 2000년 하나투어를 코스닥에 상장했다. 여행업계 최초의 상장이었다. 상장은 쉽지 않았다. 여행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도 제동을 걸었다. 여행업이 소비향락 사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등록예비심사를 하던 때에는 “여행사도 상장을 하냐”, “여행사가 기업이냐”며 비아냥대는 코스닥위원회 심사위원도 있었다. 엄격한 심사를 거친 하나투어는 2000년 11월 코스닥 상장을 이뤄냈다. 하나투어가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이후 모두투어, 자유투어, 롯데관광 등 여행 기업들의 상장이 잇따랐다.

하나투어는 2000년 여행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2006년에는 코스닥 상장사 최초로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하나투어는 2000년 여행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2006년에는 코스닥 상장사 최초로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하나투어는 상장을 통해 다른 여행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아졌다. 코스닥 등록으로 자금의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규모의 경제를 누리게 됐으며,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나투어는 2006년 11월에는 코스닥 상장사 최초로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글로벌 여행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하나투어는 국내 13개 계열사와 전 세계 29개의 해외현지 법인·직영 네트워크를 보유한 국내 최대 여행사다. 1998년부터 13년 연속 해외여행·항공권 판매 1위를 지켜오고 있다.

하나투어가 끊임없는 성장세를 이어가는 밑바탕에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한 데다 다양한 유통 채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해외지사 서비스와 계열사를 통한 사업 다각화도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하나투어는 이를 바탕으로 2020년 ‘글로벌 No.1 문화관광그룹’의 비전을 꿈꾸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여행’에 대해서 물었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여행 없이 인생을 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책에서 얻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바로 여행입니다.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여행을 해야 합니다.”

“죽기전 가봐야 할 여행지는 인도 바라나시”

박 회장은 1년에 2번 정도는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그야말로 ‘쉼’을 위한 여행이다. “여행사에 입사해 첫 10년 동안 안 가본 곳이 없었어요. 요즘도 한 달에 한두 번은 해외출장을 다녀오고요. 그래서 가족과는 휴양리조트로 여행을 떠납니다. 푹 쉬었다고 옵니다.”

그에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추천을 부탁했다. 그가 꼽은 곳은 인도의 바라나시였다. “인도인에게 천국으로 가는 통로로 여겨지는 바라나시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한쪽에서는 시체를 화장해 그 재를 강에 뿌리고, 또 다른 쪽에선 성스러운 목욕을 합니다. 저한테는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였습니다.”

■ 박상환 회장은… 

1957년생. 1982년 중앙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1981년 고려여행사 입사. 1993년 하나투어 대표. 2008년~현재 하나투어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