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해냈다. 지난 5월 우리 기술로 만든 T-50 고등훈련기(골든이글)가 인도네시아에 수출된 것이다. 이번 수출은 꿈으로 여겨지던 방위수출 강국으로의 첫발을 내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한 김홍경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의 감회는 더욱 남다르다. 지난 7월 15일 서울시 중림동 한국항공우주산업 서울사무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김 사장은 “무기 수입국으로만 여겨졌던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 최고기술의 전투기를 수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계약은 우리 산업사에 중요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항공기 기술 국산화 95% 달성…

 세계 최고 항공기 제조사로 도약”

지난 4월 12일 한 통의 메일이 한국항공우주산업에 전달됐다. 인도네시아 국방부 군수시설국장인 수실로 준장 명의로 발송된 이메일에는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호크(Hawk) MK53 교체 및 후속절차 진행을 위해 KAI(한국항공우주산업)를 물품, 용역 공급자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길고 길었던 T-50 고등훈련기 입찰이 드디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인터뷰가 있었던 7월 15일 인도네시아 정부와 수출 계약을 체결한 지 50여 일이 지났지만 김 사장의 얼굴에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다. 고등훈련기와 전투기 등을 합쳐 초음속 항공기를 자체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 12개 국가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해외에 수출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스웨덴 등 5개 나라에 불과하다. 우리를 제치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고등훈련기를 납품하기로 한 이탈리아 M-346은 초음속 훈련기가 아니다. 이번 계약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6번째로 초음속 비행기를 생산, 수출하는 국가가 됐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지난 1999년 10월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항공부문, 현대우주항공이 합쳐진 국내 유일의 항공기 제조업체다. 이번 인도네시아 수출은 숱한 우여곡절 끝에 나온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인도네시아 국방부가 고등훈련기 도입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3월 무렵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체코 등 5개국이 신청해 이 중 이탈리아와 중국이 1차에서 탈락을 했고 2차 평가에 오른 T-50은 러시아 YAK(야크)-130, 체코 L-159와 경합을 벌여 최종 낙점됐다. 협상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협상단 숙소에 무단 침입하다 적발돼 외교마찰로 불거질 뻔했지만 러시아, 체코 등 전통적인 무기제조 강국을 누르고 이룩한 쾌거라는 점에서 세계 방산업계에서는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2차 평가에 돌입할 때 조금 희망이 보였어요. 일단 체코 L-159는 너무 오래된 기종이라 경쟁이 되지 않았어요. 다음이 러시아 야크-130인데, 인도네시아가 좌우냉전 시대 비동맹국가여서 옛 소련제 무기가 많다는 게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소련이 해체된 이후 부품공급이 원활치 않았어요. 안전성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다른 기종인 야크-139는 개발 과정에서 2번이나 사고를 냈거든요. 때문에 우리는 “KT-1기본훈련기 사봐서 알지 않느냐. T-50은 지금껏 단 한번도 사고를 내지 않았다”는 점을 적극 홍보했습니다. T-50은 지난 2005년 12월 양산된 이후 올 3월까지 3만1000시간 무사고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안전한 기종이죠.”



한국항공우주산업은 T-50 16대를 2013년까지 납품하며 이때 수리부속 일부와 기술교범도 함께 제공할 계획이다. 금액으로 치면 6억 달러 규모다.



T-50은 지난 1997년부터 2조원의 개발비를 들여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공동으로 개발한 고등훈련기로 이번 수출로 해외 시장 개척에 청신호가 들어왔다. 얼마 전 이스라엘 현지 신문인 예루살렘포스트는 한국의 T-50과 이탈리아의 M-346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폴란드의 경우 무기 장착이 가능한 공격기 수준의 제안요구서가 발행됐다. 그 다음 목적지는 세계 최대 무기수출국 미국이다.



“미국은 공격용 전투기만 생산하고 있고 훈련용은 영국산 훈련기를 수입, 개조한 T-38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기종이라 교체를 해야 하는데 신규 훈련기 입찰규모가 최소 350대 이상은 될 겁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UAE 수출 건으로 넘어갔다. 입찰에서 탈락하자 일부 언론에서는 “T-50이 경쟁 비행기에 비해 성능은 뛰어나지만 값이 너무 비싸 시장성이 낮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제품이 비싸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저희는 이탈리아가 얼마에 납품했는지 모릅니다. 이탈리아도 우리 T-50의 가격을 모르죠. 그냥 추정만 할 뿐입니다. 그럴 것이 M-346은 초음속기종이 아니고 무기도 장착할 수 없지만 T-50은 최대 마하 1.5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데다, 상황에 따라 무기 장착도 가능합니다. 방산 입찰이라는 건 단순히 가격만 갖고 논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지난 UAE 입찰 기준도 50%는 비행기 성능, 나머지 50%는 자국 항공산업에 대한 협력이었거든요. 가격만 놓고 보면 이탈리아 것이 좋을 수 있겠지만 비행기는 한두 해 쓰고 버리는 제품이 아닙니다. 먼 미래까지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에 따르면 T-50 16대를 수출하는 것은 중형자동차 1만6000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경제적 효과가 있으며 6억5000여만 달러의 생산 유발 효과와 7700여명의 신규 고용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추산된다.



또 다른 제품 기본훈련기 KT-1은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독자모델 항공기로 현재 우리나라 공군에서 100여 대가 운용 중이다. 이미 인도네시아에 17대, 터키에 40대를 수출했는데 이번 T-50 입찰과정에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깊은 신뢰를 보인 것도 KT-1의 품질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한국형 기동헬기사업(KUH)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지난 2006년부터 1조3000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세계 최대 헬기 제조업체인 유로콥터와 공동으로 헬기제작을 진행해왔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수리온이라는 기동헬기를 양산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수리온은 대한항공을 제치고 지난 7월 초 한국형 공격헬기(KAH)사업의 탐색개발 시제업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밖에도 한국항공우주산업은 F-5E/F 기종이 노후됨에 따라 대체 전력 확보를 위해 T-50의 경공격형인 FA-50을 개발 중이다. FA-50에는 레이더 탐지범위 확장, 정밀유도폭탄, 자체보호능력, 야간임무수행 등이 추가됐는데 내년 10월쯤 모습을 드러낼 계획이다.



인터뷰 도중 김 사장 뒤로 최근 대한항공이 들여온 세계 최대 여객기 A380의 미니어처가 눈에 들어왔다.



“A380의 날개 하부판넬에 우리가 납품한 제품이 사용됩니다. 저희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차 협력사 자격으로 에어버스의 차세대 대형 민항기 A350 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보잉사와는 250~290석급 차세대 여객기 B787-9의 날개 골격을 이루는 복합소재 핵심 구조물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죠. 국내선에 사용되고 있는 보잉 B737의 수평, 수직꼬리 날개와 에어버스 A320 날개 상판도 우리 제품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30일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코스피에 상장되면서 또 한번 대형 홈런을 쳤다. 6월 23일, 24일 양일간 있었던 공모주 청약 경쟁률이 예상치를 웃돈 48.95대 1을 기록한 것이다. 공모가는 1만5500원이었는데 상장 첫날 1만8950원에 장을 마감하더니 7월 15일에는 2만8600원까지 주가가 뛰었다.



대다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앞으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주가가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지배구조 변경에 있다. 지난 2006년 누적결손 해소와 자본확충을 위해 무상감자, 유상증자, 출자전환 후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최대주주가 삼성, 현대, 대우에서 한국정책금융공사로 바뀌었다. 기업공개 이후 정책금융공사의 지분은 26.8%, 삼성테크윈과 현대자동차, 디아이피&오딘(2009년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인수)이 각각 10.0%씩이며 공모주 30%, 우리사주와 기타지분은 9.2%, 4.0%이다. 현재로선 최대주주인 정책금융공사의 민영화 의지가 커 M&A(인수·합병)시장에 나올 경우 삼성, 현대차, 현대중공업, 대한항공, 한화 등 대기업 간 각축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시험 비행중인 T-50 고등훈련기(왼쪽)와 지난 5월 25일 박노선 KAI 수출본부장과 수실로 준장의 계약식 모습.

민영화 추진…대기업 인수 경쟁 치열

“방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절실합니다. M-346을 생산하는 이탈리아 핀매카니카도 이탈리아 정부 지분이 30%나 됩니다. 에어버스의 모기업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부가 각각 25%씩 지분을 갖고 있죠. 민간기업인 미국 록히드마틴의 경우 정부가 공장부지는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있는 것만 봐도 세계 각국이 항공산업에 공을 들이는 것은 상상 이상입니다.”



김 사장은 그러면서도 “지금과 같이 민간이 2대주주로 남아 각각 똑같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기보다는 지분을 한데 모아 한 기업이 주도적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비와 예산을 투입하려면 지배구조가 효율적으로 개편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엔진과 항법장치와 같은 전자계통을 제외하고는 설계부터 생산, 조립이 모두 국산화됐습니다. 내년쯤이면 항법장치도 거의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 기술로 비행기의 95% 이상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초창기 기술제휴사인 록히드마틴의 푸대접을 참아가며 이룩한 결과이기에 더욱 뜻 깊게 느껴지네요. 우리나라의 산업사가 철도, 조선, 자동차에서 이제 항공기로 넘어갔는데 그걸 우리가 이끌어 간다는 데 직원 모두가 깊은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의 록히드마틴’을 향한 한국항공우주산업의 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무인기는 현재 제작돼 실전에 배치됐고 앞으로는 중소형 여객기 제작을 위한 기술력 확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인 1조2667억원의 매출에 영업이익 1210억원을 달성하는 등 3년 연속 5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오는 2020년 매출 2조3000억원을 달성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 김홍경 사장은 … 

1944년 충남 보령 태생으로 67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71년 행정고시(10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91년 상공자원부 기계공업국 국장과 97년 통상산업부 차관보, 98년 에너지공단 이사장, 2003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역임한 뒤 2008년부터 한국항공우주산업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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