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열풍에 한 한국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케이디씨그룹이다. 현재 케이디씨정보통신을 모기업으로 PMP로 잘 알려진 아이스테이션과 3D콘텐츠 전문기업인 리얼스코프, 국제전화사업을 하는 케이디씨네트웍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지난해 그룹 총매출은 4100억원 수준이며, 이 중 케이디씨정보통신의 매출은 800억원 정도다. 극장용 3D영사장비 부문에선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다. 3D에 올인하고 있는 김태섭(47) 회장을 만나 그의 입체경영에 대해 들었다. 그는 누구나 어렵다고 한 일을 끝까지 밀어붙여 영화 속 화살이 눈앞으로 날아오듯 놀랄 만한 성과를 거뒀다.

케이디씨그룹의 3D 부분 매출성장이 경이적이다. 2007년 2억5000만원에 불과했던 3D관련 매출이 2009년 210억원, 지난해에는 무려 800억원으로 성장했다. 4년 새 무려 300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이러한 성장은 현재 전 세계 40개국에 수출되는 극장용 3D 영사기의 역할이 컸다. 이 회사는 극장용 3D용 영사기를 CGV 등 국내 대형극장에 납품한 것은 물론 생산량의 50% 정도를 미국 등에 수출하고 있다. 2009년 500여 대에서 2010년 1800대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총 출하량은 4000대를 돌파했다. 시장 점유율도 27%를 넘어서면서 미국의 리얼디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김태섭 회장은 “3D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수출 위주로 판로가 확대됐다”며 “세계적으로 3D상영관이 많아져 수출량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모바일에서 제2의 3D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3D는 모바일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전 세계 2억 대에 불과한 TV보다는 30억 대에 달하는 모바일 시장에서의 파급력이 엄청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일본 시장조사 기관인 후지키메라종합연구소의 시장 예측자료를 예로 들었다. 이 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올해 3D영상 기능이 있는 휴대기기 시장 규모는 약 4658억 엔(한화 약 6조2719억원)으로 지난해 152억 엔(2046억원)보다 약 30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그는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3D 모바일 시장에서 케이디씨의 위상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케이디씨는 현재 충북 증평에 연산 600만개 3D패널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증설, 모바일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화면 크기가 12인치 이하인 휴대전화에는 3D의 단점으로 지적된 안경 장비가 필요 없습니다. 케이디씨는 지난 2009년 일본 히타치에 무안경 방식의 3D 패널을 공급했으며, 히타치는 이 패널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이동통신업체인 KDDI에 납품했어요. 지금도 일본, 대만 등지에 휴대전화용 3D 패널을 공급하고 있어요.”



김 회장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지난 7월 KT와 손잡고 MVNO(가상이동통신망)사업에도 진출했다. MVNO사업은 기존 통신사의 통신망을 임대해 소비자에게 재판매하는 사업으로 동일한 통신품질과 서비스를 기존 통신사 대비 20% 정도 저렴한 요금으로 제공할 수 있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김 회장은 3D와 이동통신을 결합하면 충분히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3D를 통신사업의 킬러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기존 3D 사업의 안정적인 성장과 매출 증대를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으로 제4이동통신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아 포트폴리오를 확대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3D 시대 일찌감치 내다봐

김 회장이 케이디씨정보통신을 인수한 것은 지난 2003년. 1988년 데이터베이스(DB) 기업을 창업해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케이디씨정보통신의 전 소유주인 인원식 회장이 인수를 제안한 것이다. 은퇴를 앞두고 있던 인 회장이 가족승계보다는 회사 매각을 추진하면서 김 회장을 적당한 인수자로 꼽은 것이다.



“케이디씨와는 1990년대 초부터 해외사업을 같이 하면서 인연을 맺어왔어요. 그러다 2003년 2월 인 전 회장으로부터 아예 회사를 인수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됐죠. 신뢰를 많이 쌓은 덕분에 아주 좋은 가격에 인수했어요.”(웃음)



1990년대 초 김 회장은 케이디씨의 중고 네트워크 장비를 중국에 내다 팔았다. 이 사업이 시들해지자 한국에 쌓인 의류 재고분을 중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3년 만에 매출액이 10배나 늘어날 정도로 큰돈을 벌었다. 그때 그는 오른쪽 귀의 청력을 잃는 불운도 겪었다. 운전기사와 단둘이 500km가 넘는 장거리 출장을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김 회장은 오른쪽 귀에서 보청기를 꺼내 보이며 “이 불운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 마니아였다. 대학 다닐 때 ‘음악다방 DJ’로 먹고 살 정도로 음악에 심취했다. 하지만 한쪽 귀의 청력을 잃으며 서라운드 음향을 즐길 수 없었던 그가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영화였다. SF·공포영화 마니아인 그는 요즘도 3D 영화는 거의 빼놓지 않고 본다고.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된 영화에 대한 취미가 우연한 기회에 3D 사업으로 이어졌다. 김 회장은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등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한 ‘쇼 웨스트’전시회에 참석하면서 3D 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당시 쇼 웨스트는 ‘홈 엔터테인먼트’에 빼앗긴 영화관객을 3D를 통해 극장에 되돌아오게 하자는 ‘할리우드 3D영화선언’이었어요. 영상 산업의 대안은 결국 ‘실제에 가까운 입체영상’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공감했어요. 물론 당시 3D 제품군은 해상도나 입체감에서 조악한 수준이었죠. 하지만 실물과 근접한 3D 콘텐츠가 영화와 방송 산업을 주도할 것이란 확신을 가졌어요.”



그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본격적인 3D 사업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업계 반응은 냉담했다. 3D 열풍이 불고 있는 현재와 달리 당시만 해도 3D라는 용어조차 일반인들에게 낯설었다. 게다가 IT업계에 한파가 몰아쳤던 시기였다. 투자자들도 고개를 흔들었다. “3D 시대가 오겠느냐”며 코웃음을 쳤고, ‘사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3D를 허황된 얘기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땐 오죽했겠냐고 했다.



김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 국내 대형 영화사가 디지털 3D 장비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왔다. 그는 이를 계기로 영사기부터 휴대전화, 태블릿PC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3D 제품 라인업을 구축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시장은 생각만큼 빠르게 열리지 않았고, 지속된 투자로 인해 2006년에는 적자까지 났다.



막상 극장용 디지털3D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라마운트 등 미국 대형 영화제작사에 수차례 제안을 했지만 한 군데에서도 만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이다. “국내 시장은 좁고 해외시장을 뚫어야 했는데,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죠. 이런 저런 궁리 끝에 <LA타임즈>에 기사를 내보냈어요. 한국의 조그만 기업이 파라마운트에 3D 장비의 비교 시연을 요청했다는 내용이었죠. 근데 그게 통했어요. 얼마 후 비교, 시연을 했는데 파라마운트 관계자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2006년 장비 개발 이후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진 것은 2008년. 판로 확보에만 무려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이다. 미국 시장을 뚫자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케이디씨는 현재 미국 리얼디와 더불어 세계 3D 영화 시스템 시장을 양분할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 3D 상영시스템을 갖춘 극장 4000개 가운데 27%가량이 케이디씨 장비를 택했다.

세계 최초 3D 태블릿PC 출시 성공

특히 케이디씨는 실시간 3D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특수 카메라 장비와 3D필터 설계·접합 등 3D LCD 양산에 필수적인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도 확보하고 있다. 3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세계 최초의 3D 태블릿PC를 출시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3D시장에서 앞서 가기 위해서는 3D 콘텐츠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3D시장에서의 승부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서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콘텐츠의 동반성장 없이는 3D산업의 발전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콘텐츠를 가진 자가 승자가 될 겁니다.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하면 미국 등 3D 선진국의 부품기지밖에 되지 못합니다.”



김 회장이 2006년 콘텐츠 생산업체인 리얼스코프를 인수, 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얼스코프는 지난해 슈퍼주니어의 아시아투어 콘서트를 3D로 찍어 올 초 극장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입장료가 비싸거나 거리가 멀어서 콘서트를 보지 못한 관객들은 극장에서 3D로 제작된 영상을 보면서 콘서트 이상의 감동을 누릴 수 있었다. 개봉 첫 주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6위의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일본에서도 개봉됐다.



김 회장은 매달 2번 1000여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e-메일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지에는 김 회장의 일상생활, 기업 상황과 그의 경영가치, 유머 등 소소한 얘기가 담겨 있다. 가끔 퀴즈도 내는데 정답을 보낸 직원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김 회장이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부터. “회사가 불안정하다고 느끼면 인재들은 떠납니다. 직원들과 소통하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렇다고 직원들과 일일이 만날 수도 없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e-메일 편지였죠.”



김 회장은 사생활의 아주 깊은 부분까지 공개하기도 한다. 그의 편지에 많게는 500여명의 직원들이 답장을 한다. 개인적인 고민에서부터 비즈니스 제안에 이르기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그는 받은 편지를 반드시 모두 읽어본다. 답장을 하기도 하고, 직원들이 내놓은 좋은 제안은 경영에 도입하기도 했다. 편지를 주고받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결과물을 눈에 보이게끔 만든 것이다. 지난해 도입한 ‘일찾사’도 그중 하나다. ‘웃찾사’를 패러디한 ‘일찾사’는 ‘일을 찾아 하는 사람’이란 말의 앞 글자를 딴 이름으로 일종의 칭찬운동이다.



“어느 직원이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는 ‘일을 찾아서 잘하는 사람’을 칭찬하자고 제안하더군요. 그래서 이를 고유의 기업문화로 만들기로 하고, 이를 사내에 확산하고 있습니다. 분기별로 칭찬을 많이 받은 직원을 선정해 상도 수여합니다.”



최근에는 e- 메일 편지를 묶어 <달리는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는다>는 책으로 발간했다. 그는 “자전거는 홀로 설 수 없다”며 “두 바퀴가 함께 달리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 김태섭 회장은 … 

1964년생. 1987년 한양대 경영정보학 졸업. 1988년 데이터베이스라인 창업. 2003년~현재 케이디씨정보통신·케이디씨그룹 대표이사, 회장. 2010년~현재 한국리얼3D콘텐츠제작자협회 초대회장.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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