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뉴 밀레니엄의 첫 10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을 구가한 기업을 꼽는다면 단연 STX그룹(강덕수 회장)이 첫머리를 장식할 것이다. 2001년 창립해 올해 고작 10돌을 맞은 STX의 역사는 그야말로 극적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태가 IMF 외환위기 당시 퇴출 위기에 몰렸던 부실기업(쌍용중공업)이었고, 또한 창업자는 바로 그 기업의 월급쟁이 임원이었으며, 더욱이 그 창업자가 부실기업을 발판으로 불과 10년 만에 국내 재계 12위의 대기업집단을 일궈냈다는 사실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시선을 잡아 끄는 스토리라인이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강덕수 회장과 STX그룹을 가리켜 ‘샐러리맨의 신화’라고 일컫기도 한다.
강덕수 회장은 어찌 보면 시대가 낳은 기업가다.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말미암아 자신이 몸담았던 일터가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창업의 길에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느 성공한 직장인들처럼 그저 평범하고 안정적인 은퇴를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불안하고 어지러운 경제상황 속에서 오히려 기회와 가능성을 읽었고, 과감하게 일생일대의 도전장을 던졌다. 평생 월급쟁이 생활로 모은 전 재산을 건 베팅이었다. 그것도 나이 쉰 살이 넘어서였다.
예부터 나이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다. 50세쯤 되면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뜻이다. 빗대자면 강덕수 회장은 사업의 이치를 깨달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자신의 운명에 내재돼 있던 ‘기업가 DNA’를 어느 순간 찾아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창업 이래로 쉼 없이 질주하며 사업을 확장시켜왔다. 그런 그를 보면서 세상은 경이감과 의구심이라는 엇갈린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난 10년의 도전과 성취가 강덕수 회장의 기업가적 역량을 증명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는 벌써 다음 10년의 야심찬 구상을 펼쳐가고 있다.

‘월드 베스트 STX’ 

  

제2막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다



 7대 그룹 도약 청사진 담은 ‘비전 2020’ 승부수    

“하이닉스 인수, 신성장동력 확보 통한 사업다각화”


지난 4월 29일 중국 다롄(大連)에서는 STX그룹 출범 1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다롄은 STX그룹의 해외 거점인 STX다롄 조선해양종합생산기지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그룹 창립 기념식을 국내 본사가 아닌 중국 사업장에서 개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STX의 미래가 해외에 있음을 다시 한번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강덕수 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국내보다는 세계를 무대로 회사를 키워가겠다는 포부를 실천해왔다. 이미 STX그룹은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90%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이날 행사에서 강 회장은 STX그룹의 향후 10년 청사진을 담은 이른바 ‘비전 2020’을 선포했다. 경영 슬로건인 ‘월드 베스트(World Best) STX’를 향한 도전의 제2막을 연 셈이다. 골자는 2020년까지 매출 120조원을 달성해 국내 7대 그룹으로 도약한다는 것이다. 2010년 대비 4.5배의 매출 성장을 해야만 이룰 수 있는 쉽지 않은 목표다. 그는 어떤 복안을 갖고 있을까? 

  “바다와 관련된 모든 사업서 최고 될 터” 

강석진 회장 |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년을 향해 달려가는 야심찬 ‘2020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매출 120조, 7대 그룹 도약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자신이 있습니까?

강덕수 회장 | STX그룹은 2001년 출범 이래 조선·해운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적으로 큰 변화가 많았지만 앞으로 10년은 이전보다 더욱 치열한 경쟁 구도가 펼쳐질 겁니다. 저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제2의 도약을 선언하고자 ‘Leading the Ocean & Beyond’라는 새 비전을 발표했어요. 바다와 관련된 모든 사업 영역에서 최고의 기업이 되어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담았습니다. 우선 기존 주력사업인 조선·해운 부문을 ‘글로벌 톱’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조선·해운 분야는 STX그룹의 밸류체인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 아니라 전후방 사업 파급효과가 큽니다. 여기에다 플랜트·건설과 에너지 분야를 강화시켜 수직계열화 구조를 뛰어넘는 보다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출 작정입니다. 그동안 STX는 사람들이 쉽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일들을 많이 달성해왔습니다. ‘비전 2020’도 우리 그룹 구성원 모두가 ‘창의와 도전’의 정신으로 합심한다면 충분이 이뤄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강석진 회장 | ‘한국CEO포럼’ 초창기 멤버로 회장님과 처음 만난 게 벌써 7, 8년 전인데 그때가 STX그룹이 점차 모습을 드러낼 무렵이죠. 그런데 말이에요,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는데 얼굴이 점점 더 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일동 웃음).

대담에 배석한 추성엽 STX 사장이 “회장님은 기를 모으는 스타일이시죠. 기를 분산하는 게 아니고”라며 거들자, 강석진 회장이 “기를 모을 뿐 아니라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기를 뿌리기도 하시죠”라고 맞받아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강덕수 회장은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는 듯했다.



강석진 회장 | 창업 후 10년 동안 그야말로 질풍노도처럼 달려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회장님의 빠르고 거침없는 행보에 일종의 경이감을 갖습니다. 그렇게 빨리 회사의 규모를 키우고 경영의 무대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통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한번쯤 멈춰 서서 호흡도 가다듬고 휴식도 취해야 더욱 멀리 뛸 수 있다고 하는데 회장님은 지난 10년간 쉬지 않고 한 길만을 달려오신 것 같습니다.

강덕수 회장 | STX그룹이 10년간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리더십과 전략, 그리고 시황의 3박자가 잘 어우러진 결과라고 봅니다. 지난 10년은 세계 경제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많았던 시기죠. 이렇게 급변하는 시기엔 경영자의 빠른 결정과 추진력이 강점으로 작용하는데, 이런 점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를 비롯한 경영진의 명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주력사업인 조선업과 해운업이 호황기를 맞이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특히 중국 다롄 진출이나 STX유럽(옛 아커야즈) 인수 등 그룹 차원의 획을 긋는 중대 결정을 할 때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도 마다하지 않는 STX만의 도전정신이 큰 역할을 했지요.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에 재미를 붙이면 푹 빠져들기 십상이다. 특히 기업가라면 모름지기 회사를 키워나가는 데서 가장 큰 재미를 느낄 것이다. 지난 10년간 말 그대로 엄청난 스피드로 STX그룹을 성장시킨 강덕수 회장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지만 그를 끊임없이 앞으로 추동시킨 동력은 뜻밖에도 다른 데 있었다.

강덕수 회장 | 솔직히 재미라는 걸 느낀 적은 없어요. 늘 숨가쁘게 긴장 속에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사실 회사 구성원들한테도 스트레스를 많이 주고 있는데(웃음), 결국 기업이란 성장을 통해서만 모든 구성원이 만족할 수 있는 법입니다. 회사가 성장해야만 월급쟁이들도 급여를 많이 받고, 임원도 되고, 사장도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데서 직장인들이 비전도 찾고 만족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선업계를 예로 들면, 여느 조선소에선 쉰 살 넘은 부장급들이 꽤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STX는 직원들이 쉰 살이 되면 중역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쉰 살이 넘으면 월급쟁이로선 피날레예요. 임원이 되더라도 남은 시간이 최대 10년밖에 안되니까요. 한번은 임원을 해보고 직장생활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런 기회를 많이 줄 수 있는 기업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기업이 커야만 되거든요. STX엔진의 경우 현재 매출 3조원 정도로 처음보다 10배 정도 커지니까 자리도 10배 늘어났어요. 중요한 건 임직원들의 자리도 늘어났지만 동시에 그들이 회사와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겁니다. 그런데 회사가 어느 정도 커져서 정체상태에 이르면 슬럼프에 빠지거든요. 저는 STX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너무 한 곳에 집중돼 있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앞으로는 적정한 포트폴리오를 갖춰 다음 10년을 준비해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1월부터 TV 전파를 탄 STX그룹 기업광고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초대형 크루즈선이 등장한다. 2010년 11월 STX유럽이 건조한 세계 최대의 크루즈선 ‘얼루어 오브 더 시즈(Allure of the Seas)’호다. ‘이것은 차라리 거대한 도시다’라는 광고 카피가 나타내듯, 이 배는 길이 361m와 폭 47m에 높이는 16층짜리 빌딩과 맞먹을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크루즈선을 한국 기업인 STX그룹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과 자부심을 남겼다. 그런데 이 광고도 따지고 보면 강덕수 회장의 글로벌 기업에 대한 뜨거운 야망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07년 10월 세계 조선업계가 깜짝 놀랄 만한 빅뉴스가 전해졌다. STX그룹이 세계 크루즈선 건조 시장에서 수위를 다투던 노르웨이 조선업체 아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했다는 소식이었다. STX그룹의 아커야즈 인수는 국내 조선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인수합병)이었을 뿐 아니라 유럽의 대표적인 조선업체를 품에 안았다는 점에서 세계 조선시장 판도를 바꿀 만한 사건이었다. 아울러 STX그룹의 본격적인 글로벌 기업 도약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세계 조선업계에 ‘강덕수’라는 이름 석자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강덕수 회장은 강석진 회장과의 대담 내내 차분한 어조로 글로벌 경영에 대한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들려주었다.

  ‘STX유럽’ 발판으로 글로벌 기업 도약   

강석진 회장 | 아커야즈 인수는 한국 조선사(史)에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어떤 이유로 유럽의 거대 조선업체를 인수할 생각을 하셨습니까? .

강덕수 회장 | 유럽 최대 조선소를 인수하면 그들의 원천기술과 STX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건조 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수에 성공한다면 유럽 시장에서 단숨에 입지를 다지는 동시에 우리의 사업 역량을 크게 확대하는 최적의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했죠.

사실 아커야즈 경영권 인수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아커야즈 노조의 반발이 심했다. 그때만 해도 STX가 유럽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 컸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 12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STX의 아커야즈 인수가 반(反)독점에 저촉되는지 여부에 대해 심층조사에 나섰다. EU는 심층조사 결과에 따라 M&A를 승인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강덕수 회장은 고심 끝에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2008년 초부터 무려 8개월 동안 유럽 각지의 조선업체들을 일일이 찾아가 주주와 노조를 상대로 설득작업을 벌였다. 아커야즈 노조와의 소통에도 적극 나섰다. STX가 어떤 회사이며 왜 아커야즈 인수에 나섰는지를 진실하게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낭보가 날아들었다. EU 집행위원회가 “STX의 아커야즈 인수가 유럽 조선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위협하지 않는다”며 독점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강덕수 회장 | 국내 사업과 비교하면 해외 사업이 훨씬 더 힘들어요.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한 데다 문화가 다른 점이 어렵습니다. 똑같은 생각으로 이야기해도 해외 현지인들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또 그 사람들이 지금껏 일해왔던 습관도 우리와 많이 다르고요. 그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도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그런 과정이 참 쉽지 않습니다. 유럽의 CEO들과 우리가 기업을 경영하는 스타일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참 답답하죠. 이거 일을 하는 건지, 노는 건지 알 수도 없고 말이죠. 그분들에게 “왜 당신들은 역사가 200년, 250년이나 되고 좋은 기술도 많이 보유한 조선소를 갖고도 한국, 중국, 일본에게 시장을 빼앗겼느냐”고 물으면 답변을 못해요. 고작 하는 말이 “기술은 좋은 걸 다 갖고 있는데 경쟁력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결국은 많이 놀고 일 적게 하고 임금 많이 받아가서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했죠. 기업이란 제품 기획력과 품질도 갖춰야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가격경쟁력입니다. 유럽 조선업체들은 (시장에서 요구하는) 가격을 못 맞춰서 경쟁력을 잃은 겁니다. 그 사람들은 한국 조선업체에 대해 피해의식도 가지고 있더군요. 특히 LNG선의 경우가 그렇더군요. 1990년대 중반 무렵 한국 기업들이 LNG선 만드는 기술을 배워갔대요. 대수롭지 않게 가르쳐줬는데 7, 8년쯤 지나니까 자기들이 시장에 들어설 자리가 없더라는 겁니다. 시장을 다 빼앗긴 거죠. 그런 과거 때문인지 크루즈선 같은 경우도 “당신들이 왜 유럽이 하는 비즈니스를 하려 하느냐”며 굉장히 냉대를 하더군요. 어떤 이들은 노골적으로 “크루즈선은 유럽(조선업계)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자 기술인데, 이것까지 동양에서 온 당신들이 하려고 하면 어떡하느냐”며 반감을 드러내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우리가 당신들을 없애려고 온 게 아니다. 당신들 기술력도 강화시키고 시장경쟁력, 원가경쟁력도 강화시켜 조선소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왔다”고 달랬죠. 그러고는 “한국 와봐라, 한국서 일하는 것과 당신들 일하는 것을 비교해봐라”며 진해 야드(조선소)로 초대를 했어요. 와서 보더니 다들 깜짝 놀라는 겁니다. 우리가 자기들 야드 규모에서 1년에 40억 달러 이상 매출을 올리고 68척의 배를 만드니까 말이죠. 자기들은 물론 비싼 배를 만들기는 하지만 1년에 고작 서너 척밖에 안 되니까 게임이 안 되는 거죠. 이렇게 되니까 유럽 사람들도 우리를 이해하게 된 겁니다.

STX그룹은 아커야즈 인수로 세계 조선업체 중 유일하게 일반상선, 여객선, 해양플랜트, 군함 등 조선 4대 분야 선종(船種)을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 나아가 국내 진해·부산 조선소와 중국 다롄 기지, STX유럽을 잇는 글로벌 3대 생산벨트를 구축해 세계 최고 조선업체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강덕수 회장의 승부수가 멋지게 들어맞은 셈이다.

강석진 회장 | STX 덕택에 이제는 한국 조선업이 상선뿐 아니라 여객선, 크루즈선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으로 올라간 것 아닌가요?

강덕수 회장 | 지금 세계에서 제일 큰 선박(여객선) 1번부터 14번까지 모두 우리가 만든 겁니다. 우리가 아커야즈를 인수한 후에 넘버 1, 2를 만들었지요.

강석진 회장 | 크루즈선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건 배가 아니라 하나의 종합예술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 안에 첨단기술과 건축예술, 인테리어 등 모든 게 함께 어우러져 있으니 말하자면 예술작품 같아요.



강덕수 회장 | 그 분야에 관해서는 우리가 확실히 1등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우리가 주도해 공장을 짓고 사람을 뽑아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오랜 역사를 가진 외국 기업을 인수해 경영하는 것은 전혀 다르더군요. 외국 기업은 나름의 조직문화가 있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타협이나 절충을 하는 게 상당히 힘듭니다.

강석진 회장 | 그들의 문화도 존중해야 하고 전통도 존중해야 하죠. 그러면서 STX 정신은 넣어야 되겠죠. 그런데 중국 다롄 조선소는 한국식으로 경영합니까?

강덕수 회장 | 예, 그곳은 우리 임직원들 천여 명이 들어가서 운영하니까요. 유럽은 우리 사람을 많이 넣을 수가 없어요. 그러잖아도 거부감이 있는 터라서요. 가령 르노삼성 같은 경우 한국 사람 중심으로 회사를 경영하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STX유럽은 현지인들이 경영에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소요소에 사람들이 들어가 있죠.



- STX그룹이 건조한 세계 최대 크루즈선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호와 ‘얼루어 오브 더 시즈’호가 나란히 운항하고 있다.






- STX유럽의 핀란드 투르크 조선소(왼쪽). 국내 진해조선소의 야경.

  유럽 지도자·CEO들도 수긍한 비전 

강석진 회장 | 현지인들의 능력을 인정해주면서 지금까지 일해오던 방식을 효율적으로 바꾸는 것은 STX의 몫이겠네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현지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가 글로벌 경영의 핵심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껏 훌륭한 기업인들을 많이 배출해왔지만 해외 기업을 인수해서 외국 경영자보다 훨씬 성공적으로 경영한 한국 기업인은 보기 드물어요. 그런 면에서 강덕수 회장님은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 경영자들의 능력을 보여준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강덕수 회장 | 유럽에서 처음에는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진 게 사실입니다. 핀란드 같은 경우에는 그 나라 대통령이 자기 별장으로 저를 초대했습니다. 자기 나라가 245년이나 된 세계 최고 조선소를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비실비실’했거든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조선소를 맡아 변화시키는 걸 보니까 무척 인상 깊었던가 봅니다. 자기들은 기술력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전략을 짜는 것을 보니까 전혀 다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핀란드 대통령이 공감한 것 같더군요. 유럽 조선소들이 가진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경쟁력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예요.

강석진 회장 | 그런데 참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올해 STX가 창립 10주년을 맞았는데, 이처럼 단기간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극히 드물거든요.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강덕수 회장 | STX조선해양은 40여 년, STX팬오션은 40여 년, STX엔진은 36년쯤 된 나름대로 역사가 있는 회사들입니다(세 회사의 전신은 각각 대동조선, 범양상선, 쌍용중공업이다). 그걸 변화시켜서 10년 만에 지금처럼 키운 거죠. 이제까지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데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과제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작년에 “지난 10년 동안의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화두를 던진 겁니다. 이후 싱크탱크를 만들어 새로운 그림을 그렸고, 지금은 열심히 추진 중입니다. STX의 ‘제2기 10년’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가 문제입니다.

강석진 회장 | 성장도 좋지만, 지금부터는 지속성장이 더욱 중요할 때라고 보입니다.

강덕수 회장 | 이제는 한 아이템마다 세계 톱 클래스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엔진 부문은 거의 톱 클래스에 온 것 같습니다. 엔진은 2600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게 지금 한 3조원 정도 하니까 열 배 이상 컸죠. 마력으로 따지면 우리가 3위 정도 되는데, 현대중공업과 두산중공업은 대형엔진을 많이 만들거든요. 하지만 생산금액으로 따지면 선박엔진 분야는 우리가 1등 아니면 2등일 겁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 중에 중형엔진이 비싸거든요.

강석진 회장 | 크루즈선은 가격도 매우 비싸고 부가가치도 높지요. 조선산업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는 또 어떤 게 있습니까?

강덕수 회장 | 오프쇼어(해양플랜트) 분야를 보면 ‘해상의 정유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and Offloading: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가 굉장히 비쌉니다. 그런데 FPSO에 장착되는 드릴링·생산 장비의 가격이 엄청 높아요. 그 장비들은 대부분 수입합니다. 10억 달러짜리 FPSO의 경우, 헐(Hull: 선체) 값은 2억~3억 달러에서 최대 4억 달러 정도 됩니다. 나머지 탑재 설비에 따라 가격이 6억~12억 달러로 올라가지요. 그런 오프쇼어 선박 장비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수입합니다. 3~4년 전까지는 장비 탑재도 국내에서는 하지 못했습니다. 헐을 만들어 유럽에 가져가서 그곳에서 장비를 탑재해 완성시켰지요. 향후로도 당분간은 FPSO의 주요 장비를 국산화하기 어렵습니다. 세계적으로 두세 개 업체가 오프쇼어 장비를 만들고 있거든요. 무엇보다 시추 장비 등이 매우 중요한 데다 고가이기 때문에 오너(발주자)가 아무데나 발주를 하지 않습니다. 어느 회사 제품을 쓰라고 미리 정합니다. 크루즈선도 마찬가지로 내부 인테리어 자재나 핵심 설비 같은 건 전부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지서 구매해 설치합니다. 그러기에 한국서 쉽게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닌 셈이죠.

강석진 회장 | 그런 면에서 STX가 유럽의 장비·설비업체들에게 가장 큰 고객 중 하나겠군요.

강덕수 회장 |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습니다. 인프라는 우리가 다 장악하고 있고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강점이 있다고 할 수 있죠.

강덕수 회장은 평소 임직원들에게 속도(Speedy), 간결(Simply), 타이밍(Timely)의 3가지 업무수칙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이는 그 자신의 업무원칙이자 경영방침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STX그룹의 초고속 성장을 보면 3가지 원칙은 이 회사의 DNA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갈수록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이 ‘S, S, T’ 원칙은 어느 기업에게나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확실하게 실천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는 점이 아닐까.

강덕수 회장 | 기업 경영자는 다양한 덕목을 고루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현장중심경영’과 ‘속도경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는 STX의 고속성장에 근간이 된 핵심 경영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속도경영은 현장을 알아야만 가능한 겁니다. 현장 흐름을 알고 무엇을 뒷받침해야 할지를 파악해야 신속하게 전략을 세워 행동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을 매우 중시합니다. 1년의 절반 이상을 국내 사업장과 중국 다롄 기지, 그리고 전 세계 50여 개 해외 법인 및 지사를 방문하며 보냅니다. 중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도 핵심사항만 검증되면 일단 결단을 내리고 사업 추진을 하는 편입니다. 장시간 고민하며 머뭇거리면 경쟁자는 이미 저만치 앞서나가게 되거든요.



- 강덕수 회장

  속도 · 간결 · 타이밍의 ‘S ∙ S ∙ T’ 원칙 중시 

강석진 회장 | STX의 기본 경영방침이 속도(Speedy), 간결(Simply), 타이밍(Timely)인데 제가 GE에 있을 때도 2가지가 똑같았습니다. 당시 GE는 스피드(Speed), 심플리시티(Simplicity), 그리고 셀프 컨피던스(Self-confidence)가 경영모토였어요. 어쨌든 회장님은 지난 10년 동안 빠른 타이밍에 적절한 기업을 인수 혹은 설립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덕수 회장 | 조선과 엔진사업을 시작한 뒤 흐름을 쭉 보니까 유럽의 조선업체들이 전부 상황이 나빠지면서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더군요. 그 과정을 보면 상선을 하다가 크루즈선으로 갔다가 결국 중공업기업으로 변신했어요. 알스톰 같은 경우가 그렇죠. 일본의 미쓰비시, 미쓰이, IHI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사들은 지금 조선사업 비중이 30% 안쪽으로 줄어든 대신 플랜트나 우주항공 사업 등을 키웠어요. 우리도 조선업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언젠가는 변신하는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는 판단에서 STX중공업을 만들었습니다. 육상용 플랜트, 가령 발전설비, 정유설비, 시멘트설비 등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그 분야가 앞으로 가능성이 클 겁니다. 풍력설비도 그렇죠. 풍력설비에 관해서는 GE와도 미팅을 했어요. 중공업 중에서 잠재력이 큰 미래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수요가 많은 에너지산업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경제지 <포춘> 10대 기업을 보면 주로 에너지 기업들이 들어가 있어요. 에너지산업은 지금도 시장이 가장 크지만 앞으로도 가장 성장성이 높다고 봅니다. 왜냐면 지구 전체 인구 중에서 에너지의 혜택을 받는 인구보다 받지 못하는 인구가 훨씬 많거든요. 우리나라만큼 에너지 혜택을 받으려면 폭발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인구 5000만명이 산업 분야를 포함해 8만5000MW(발전용량)를 쓰는데 2015년까지는 적어도 10만MW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가 인구 1억6000만명인데 발전용량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고작 2000MW입니다. 가스, 원유가 많이 나는데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발전소 조그만 것 하나밖에 안 되는 정도지요. 그 나라는 발전소도 없고 1억6000만 인구 거의 모두가 에너지 혜택을 못 받고 있는 겁니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전깃불도 제대로 못 써요. 아프리카가 자원의 보고임에도 전체 인구 10억 가운데 에너지 혜택을 받는 건 얼마 되지 않아요. 인구 11억의 인도, 인구 13억의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분야가 앞으로 굉장히 사이즈가 커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에너지 분야에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또 하나, 미래에 필수적인 게 해운입니다. 모든 교역의 기본적인 툴이 바로 해운이기 때문에 해운업도 키워갈 생각입니다.

강석진 회장 | 그렇다면 최근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추진하는 것도 지속적인 기업 변신 과정에서 선택한 전략적 시도라고 보면 될까요?

강덕수 회장 | 우리 사업 포트폴리오가 너무 조선·해운 쪽에 치우쳐 있다 보니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가령 지멘스는 중전기(重電機: 발전기, 전동기, 변압기, 터빈 등 중량이 큰 전기설비) 메이커가 전자사업 하다가 반도체사업도 하는 등 새로운 분야로 진출한 케이스죠. 도시바도 중전기에서 반도체까지 하게 된 경우입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기업 모델을 보니까 반도체사업도 우리가 강점이 있겠다 싶더군요. 반도체사업은 자본집약적, 기술집약적이면서 굉장히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야 합니다. 또 솔라(Solar·태양광)사업과도 유사합니다. 반도체보다 한 단계 아래가 솔라셀(태양전지)이에요. 똑같은 원료를 사용하지만 순도(純度)에서 반도체가 좀 위죠. 결국 둘 다 같은 영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반도체 분야가 훨씬 고급인력을 갖고 있죠.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이미 솔라사업(STX솔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너지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미래 에너지시장에서는 솔라에너지의 가능성이 무한합니다. 따라서 반도체 기술을 가지면 미래 그린에너지 사업 경쟁력 확보에 좀 더 용이하지 않겠나 하고 판단한 겁니다. 또 한 가지는 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2위 기업이라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지금 국내에서 새로이 사업을 벌여 글로벌 톱2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없습니다. 특히 반도체 분야는 진입장벽이 엄청나게 높습니다. 돈을 갖고 있다고 해도 쉽게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이닉스가 가치가 있는 겁니다.

강석진 회장 | 회장님이 하이닉스를 인수해 경영하게 된다면 제가 보기에 4, 5년 이내에 완벽하게 다른 기업으로 탈바꿈할 거라고 봅니다. 회장님 특유의 세계를 보는 경영 안목과 빠른 의사결정이 주효할 겁니다. 지금까지 하이닉스는 주인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상태에서도 저만큼 해왔는데 누군가가 확실하게 경영을 맡는다면 세계 톱으로도 갈 수 있겠지요.

강덕수 회장 | 결국 반도체사업은 기술력과 이노베이션, 속도인데 그걸 적절하게 해주는 게 필요하죠. 시장이 원하는 타이밍을 맞춰야 하거든요. 채권단이나 여러 이해관계자가 있는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과 주인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차이가 있지 않겠나, 그런 점에서 누가 주인이 되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앞으로도 낸드플래시, 파운드리(Foundry: 반도체 수탁생산) 분야에서 굉장히 커질 겁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세계 반도체 경기사이클이 하강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산업이든지 경기사이클을 따르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경기사이클을 걱정한다면 어떤 사업도 할 수 없는 겁니다. 그 사이클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타이밍을 어떻게 맞추느냐, 이런 부분을 잘해나간다면 상당히 좋은 업종이 아니냐고 판단합니다.

강석진 회장 | STX가 반도체사업을 하게 되면 기존 사업과 보완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도체 경기사이클은 조선과 다르지 않습니까? 서로 보완적이죠. 게다가 STX가 대형선박을 만드는 회사인데, 그 회사가 반도체도 하고 있다고 하면 세계인들이 보는 이미지가 확 달라지는 거죠.

강덕수 회장 | 시중에서는 중공업을 하는 사람이 최첨단 반도체사업을 하는 게 맞느냐는 소리도 들리더군요. 그래서 저희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심도 있게 살펴보는 중입니다.

STX그룹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추진은 지금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SK텔레콤을 앞세운 국내 4대 재벌 SK그룹과 인수전에서 맞대결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M&A의 귀재’라고 불리는 강덕수 회장이 나섰다는 사실이 가장 시선을 집중시키는 대목이다. 세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기존 주력사업과 전혀 무관하게 보이는 반도체사업에 왜 굳이 뛰어들려고 하는지, 더욱이 인수자금이 수조원대에 이르는 매머드급 매물에 과욕을 부리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다. 설령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관측인 것이다.



- 강석진 회장

  M&A는 시너지와 숨은 가치가 중요 

강석진 회장 | STX가 (어떤 M&A 매물들을) 손만 대면 그 회사가 일어서고, 또 일어서곤 합니다(일동 웃음). STX의 고속성장에는 다수의 M&A가 기여한 것도 사실이죠. M&A에 대한 회장님의 확고한 철학과 원칙은 무엇입니까?

강덕수 회장 | 최근 많은 기업들이 M&A를 중요한 경영기법으로 주목하고 있죠. STX는 M&A를 시도할 때 항상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먼저 생각하고 사업 포트폴리오의 다각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고려합니다. 또한 반드시 인수 대상 기업의 ‘숨은 가치’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인수 후에는 정확한 시황 예측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기업가치를 크게 상승시켰어요. 2001년 1000억원에 인수한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의 경우 매출 4조원, 자산 6조8000억원 규모의 국내 대표 조선소로 성장했습니다. 2004년 4199억원에 인수한 범양상선(현 STX팬오션)도 매출 6조5000억원, 자산 6조원 규모의 세계적 해운선사로 키웠습니다. 저는 “M&A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을 사는 것”이라고 늘 말해왔습니다. 피인수 기업의 인재들을 그룹 핵심부서에 중용해온 것도 그 때문이에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사람입니다.

강덕수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추진에 대해서도 자신의 M&A 원칙에 입각해 부연했다. 하이닉스 인수는 새로운 성장동력 장착을 통해 사업다각화를 하기 위한 것이며, 아울러 조선·해운·기계 분야에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함으로써 그룹 전체의 경영 리스크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것이다. 물론 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과도한 금액으로 무리하게 인수를 추진하지는 않을 방침이며 재무적 투자자와의 협력을 통해 무차입으로 인수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밝혔다.

강석진 회장 | 회장님은 숫자에 밝은 재무통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간 공격적인 사업확장 과정에서 재무적 리스크 관리는 어떻게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강덕수 회장 | 최근 시장에서는 STX의 유동성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걸 압니다. M&A나 해외투자 이후의 자금회수 문제에 초점을 맞춘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STX는 대형 M&A를 단행한 일부 그룹들이 깊은 후유증을 겪은 것과 달리 큰 자금난을 겪지 않았습니다. 대규모 차입을 일으켜 초대형 기업을 인수하는 대신 중간 규모 기업을 주로 보유 현금만으로 인수했기 때문이죠. 특히 투자자본의 조기회수 방안을 전략적으로 고민하는 등 ‘PMI(Post Merger Integration: 인수 후 통합) 전략’과 ‘출구전략’을 항상 최우선 과제로 여겨왔어요. 그 덕에 투자자금을 1~2년 내 모두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강덕수 회장은 국내 재계 12위의 STX그룹 총수로서 새로운 글로벌 기업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평범한 월급쟁이였다. 진정한 인생역전이란 강덕수 회장에게 꼭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쌍용그룹에서 27년간 근무한 ‘쌍용맨’ 출신이다. 2000년 쌍용중공업 전무(CFO) 시절 외환위기의 충격파가 쌍용그룹을 덮쳤고, 그가 다니던 쌍용중공업은 졸지에 퇴출기업으로 지정돼버렸다. 하지만 그는 쌍용중공업을 인수한 외국계 컨소시엄에 의해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그간 쌓아온 성과와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 자신도 예기치 못한 반전에 반전이었다. 하지만 쌍용중공업 CEO로서 월급쟁이 경력에 정점을 찍은 그는 스스로 대반전의 승부수를 던졌다. 평생 모은 20억여원의 재산을 털어 쌍용중공업의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아파트 두어 채 가격에 불과한 돈이었지만 당시 쌍용중공업의 주가가 바닥세였던 탓에 단숨에 최대주주가 됐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일터가 가진 기업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직접 오너가 되어 회사를 번듯하게 살려놓고 싶은 열망이 일었던 것이다. 오늘날 ‘샐러리맨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강석진 회장 | 쌍용중공업에 임원으로 있다가 그 회사를 통째로 인수할 생각을 어떻게 가지시게 된 거죠? “내가 인수하면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이나 용기가 있었던 겁니까?

강덕수 회장 | 당시 제가 영업을 맡고 있던 중에 외환위기가 왔어요. 그런데 자금을 담당하던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재무 쪽을 챙길 사람이 공석이 된 겁니다. 그러자 당시 사장님이 “당신이 영업과 재무를 함께 봐줘야겠다”고 해서 둘 다 맡게 됐죠. 재무를 맡다 보니까 동료가 그만둔 이유를 알게 됐어요. 워낙 회사 자금사정이 어려웠던 거죠. 그런 상황이다 보니 임원들이 개런티를 섰어요. 당시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사장, 임원들이 연대보증을 섰거든요. 하지만 사장님은 (자금사정이 안 좋은 사실을) 벌써 알고 안 섰고, 자금 담당은 그때까지는 모르고 보증을 섰어요. 그러다가 회사 사정을 알게 되니까 못하겠다면서 그만둔 거죠. 그런데 저는 영업하다가 멋모르고 들어가서 계속 보증을 선 거예요. 나중에 보니까 전부 내가 떠안게 생긴 거예요(그 일도 추억인 듯 강 회장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내가 보증선 게 아마 380억원이었나 그럴 겁니다. 어쨌든 불가피한 상황이었어요. 그러자마자 회사가 퇴출된 거예요. 개인 금융거래가 정지되고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몰린 거죠. 회사가 죽으면 내가 돈을 토해내든지 아니면 감방에 가든지 둘 중 하나였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러다 M&A가 시작됐는데, M&A를 하는 쪽에서 저보고 “당신이 계속 보증을 서고 회사를 살리는 조건부로 CEO를 맡아라”고 해서 CEO가 된 겁니다. 저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긴 마찬가진데, 한번 해보자고 한 거죠. 어차피 380억이나 400억이나 500억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웃음) 난 회사를 잘 아니까 살릴 자신도 있었지요. 그래서 3년 만에 완전히 지급보증을 해제하게 됐죠.



강석진 회장 | 지금 우리가 M&A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M&A라는 용어조차 낯설 때였지요. 회장님은 그런 곡절 끝에 쌍용중공업에 모든 운명을 걸고, 온 열정을 쏟으시게 된 것이군요. 그리곤 10년 만에 오늘의 세계적인 기업을 일궜고요. 한마디로 기적입니다. 그런데 만약 쌍용그룹이 해체되지 않고, 쌍용중공업이 부실화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회장님은 안 계셨을까요?

강덕수 회장 | (웃으며)그렇죠. 아마도 그저 사장 하다가 그만둔 정도가 됐겠죠(일동 웃음).



- STX 다롄 조선소 전경(위). 강덕수 회장(왼쪽서 두번째)이 현장경영을 하고 있다.





- STX 다롄 조선소를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맨 오른쪽) 일행을 맞아 강덕수 회장이 조선소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인생은 영원한 도전의 연속이다” 

강석진 회장 | 사람은 위기에 처했을 때 오히려 기회로 바꾸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스스로 기가 꺾여 더욱 위기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도 있죠. 젊은이들과 젊은 경영자들에게 강 회장님이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좀 해주시죠.

강덕수 회장 | 어려움을 만났을 때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우리 때보다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좀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취업난 등으로 많이 움츠려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항상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과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인생의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인생은 영원한 도전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은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새로운 일을 찾아 도전해온 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STX의 경영이념 또한 바로 ‘창의와 도전’입니다. 제 인생이 ‘꿈과 도전’의 의미가 희미해진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는 단초가 된다면 큰 보람입니다.



- STX솔라 직원이 태양전지 모듈을 검수하고 있다. 강덕수 회장은 하이닉스반도체와 그린에너지 사업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Tip. STX그룹 경영현황 

4대 부문 수직계열화 … 2010년 26조원 매출

STX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현재 조선 ∙ 기계, 해운 ∙ 무역, 플랜트 ∙ 건설 4대 부문으로 짜여 있다. 조선 기자재→ 엔진 제조→ 선박 ∙ 플랜트 건조→ 자원개발→ 해상운송으로 이어지는 완전한 수직계열화 구조가 특징이다. 강덕수 회장은 창업 이후 회사를 인수 혹은 설립할 때마다 사업 연관성과 시너지를 첫 번째 기준으로 삼아 지금의 사업 구조를 완성했다. STX그룹은 2010년 매출 26조원을 달성했다. 창립 10년 만에 100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아울러 2010년 기준 자산 32조원으로 국내 재계 순위 12위에 올라 있다.

 

  Tip. 강덕수 회장의 기업·경영관 

“1조원 이익보다 1만명 고용이 더 소중”



- 강덕수 회장이 ‘비전 2020’ 선포식에서 STX 깃발을 흔들고 있다.

강덕수 회장은 평소 “1조원의 이익보다 1만명의 고용이 더 소중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여기에는 그의 기업관, 경영관이 농축돼 있다. 스스로가 월급쟁이 출신인 때문인지 일자리의 중요성을 어떤 기업인보다 강조한다. 그는 “좋은 기업이란 효율적인 기업 운영을 통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임직원의 복리를 증진시키며, 나아가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회사”라고 말한다.



좋은 기업이 되려면 결국 지속성장이 관건이다. 특히 오늘날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기업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아이디어를 실천에 빠르게 옮기는 실행력과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신조다. 속전속결의 ‘속도경영’을 펼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Tip. 강덕수 회장의 인재경영 

“경영자는 인재 만났을 때 가장 행복”

강덕수 회장은 신입사원 공개채용 면접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그만큼 인재에 대한 관심이 크다. STX는 아주 젊은 기업이다. 이 젊음과 역동성을 유지하면서 지속성장을 실현하려면 우수한 인적자원 확보가 필수다. 강 회장이 신입사원 면접을 반드시 챙기는 이유는 그들이 곧 STX의 미래라는 생각 때문이다.



강 회장의 말이다. “2005년 STX팬오션을 인수해 그룹의 틀을 갖춘 직후 대대적인 공채를 실시했어요. STX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들이라서 직접 면접을 보고 뽑았죠. 젊고 우수한 친구들이 STX와 함께 자신의 미래를 펼쳐가겠다는 포부를 밝힐 때의 흥분과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행복을 이어가려고 지금도 신입사원 면접은 직접 챙기고 있어요. 경영자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역시 최고의 인재를 만났을 때라는 생각입니다.”



STX그룹은 모든 신입사원을 ‘해신 챌린저’라고 불리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참가시켜 국제감각과 진취적 도전정신을 배양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젊은 사원들이 일찍 해외로 나가 글로벌 마인드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글로벌 파이어니어’와 ‘글로벌 인턴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Tip. STX그룹 3대 생산거점 

한 ∙ 중 ∙ 유럽 벨트로 글로벌 톱 조선그룹 노려



- 강덕수 회장이 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STX그룹은 국내 진해조선소, STX유럽 조선소와 함께 중국 다롄조선소를 글로벌 3대 생산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진해조선소는 LNG선, 유조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기지 및 연구개발(R&D)센터로, STX유럽은 크루즈선, 특수선, 해양플랜트 등의 건조기지로, 중국 다롄조선소는 엔진 및 기자재 생산·조달을 비롯해 벌크선, 컨테이너선 등 범용 선박 건조기지로 각각 역할을 나눴다.



특히 다롄조선소는 총 면적이 550만㎡(약 170만평)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 중 하나다. 이 조선소는 기초 소재 가공, 조선 기자재 생산, 엔진 조립, 선박 건조, 블록 생산, 해양플랜트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종합생산기지다. 말 그대로 선박 건조에 필요한 모든 공정을 소화할 수 있다. 당연히 물류 및 시간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강점을 가졌다. STX그룹은 3대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벌크선부터 크루즈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종을 생산하는 ‘글로벌 톱 조선그룹’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 강덕수 회장은… 

1950년 경북 선산 출생 / 1969년 동대문상고 졸업 / 1973년 쌍용양회 입사 / 1974년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 1988년 (주)쌍용 총무부장 / 1993년 쌍용중공업 이사 / 2000년 쌍용중공업 전무, 사장 / 2001년 STX 대표이사 사장 / 2003년~ STX그룹 회장

■ 강석진 회장은… 

연세대 대학원(공업경영학 석사)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30여년 간 제너럴일렉트릭(GE)에 몸담았고, 그중 20년은 GE코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 전문경영인학회 이사장, 서강대·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CEO컨설팅그룹 회장이다. 서양화가로도 활동해 세계미술문화진흥회 이사장과 한·일 서양화 교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역서: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라>, , <잭 웰치와 GE방식> 등

김윤현 기자 / 대담 :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 정리 :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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