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종 법무법인 세종 중국본부장은 지금도 ‘검사’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린다. 대검 중수부장, 마약부장, 중앙지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유 변호사는 권력형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특별검사 1순위로 오르내리는 특수 수사통 검사다. 그러나 날선 검으로 사회 부조리를 척결하던 검사 유창종의 모습은 반쪽 면에 불과하다. 나머지 모습은 기와수집가. 우리 문화예술의 결정체인 기와를 수집하는 데 반평생을 보내서인지 유변호사의 별명은 ‘와당검사’, ‘기와박사’다.

“기와는 거대한 문화·예술 결정체…

 선조들이 전하는 메시지 담겨 있죠”

검사 시절부터 유 변호사의 기와 사랑은 유명했다. 검찰에서 근무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기와를 수집한 것이 7000여 점으로 국내에서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

유 변호사가 기와를 수집하게 된 것은 1978년 무렵부터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데 충주지청에 근무하던 때였어요. 제가 원래 대전고 재학 시절부터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나면 지역 사람들과 함께 충주시 문화유적을 둘러보고 다녔어요. 그때 충주 중앙탑 주변에서 깨진 기와 조각을 처음 봤는데 그 안에 고구려, 신라, 백제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어요. 제 기와 수집은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 유창종 변호사(가운데)가 지난 2002년 9월9일 자신이 기증한 기와를 부인 금기숙(오른쪽) 홍익대 교수, 지건길(왼쪽)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한중일 문화·종교·예술 연결통로

유 변호사가 말하는 기와는 단순한 건축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에게 기와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결정체다.  

“한 시대의 예술적 특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공예품이 바로 기와입니다. 기와를 통해 문화이동 경로는 물론 종교·사상·권력체계까지 유추해볼 수 있지요. 또 기와는 통치자에게는 국가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력이 강성했던 나라일수록 화려하고 독특한 문양의 기와를 많이 사용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그는 특히 기와(와당·瓦當)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처마 끝부분을 장식한 ‘수막새’에는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불교, 유교, 도교 등 당시 한중일의 종교 교류도 기와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게 유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때부터 기와가 있다는 곳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던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기와의 문화재적 가치를 잘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죠. 그랬기 때문에 박봉인 검사월급으로 구입할 수 있었던 겁니다. 거저 줄 때도 있고 개당 1000~2000원 정도를 쳐주던 시기였죠.” 

물증을 통해 원인을 찾아내는 검사 특유의 직업정신이 발휘된 탓일까. 그는 학계의 정설이었던 고구려 연화문 기와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됐다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연화문 기와가 AD 436~496년 북조시대의 것인 반면 그가 수집한 고구려 연화문 기와는 384~391년 사이에 제작된 것임을 밝혀 국내 고미술사학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연화문 기와는 중국에서 시작돼 고구려에서 화려하게 꽃피운 뒤 다시 중국에 전해졌다고 봐야 합니다. 기와문화를 기초로 볼 때 당시 한중일은 한 문화권에 있었어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교류였죠. 물론 세 나라 사이 문화적인 특성은 기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중국이 거대하고 화려한 문양을 많이 사용했다면 일본은 정교하면서도 모방 기술이 뛰어났죠. 반면 우리는 그 당시에도 중국의 것을 일본에 전해주면서 우리만의 것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당시 중국, 일본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창의적인 문양이 우리 기와에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중국 전국시대가 한중일 기와문화의 1차 전성시대였고 2차는 진나라 시대였다면 3차는 한중일을 통틀어 통일신라시대라고 단언하고 싶을 정도 당시 우리 건축 문화는 빼어났습니다."

고구려 문화의 웅장함, 백제 문화의 격조 높음, 신라 문화의 화려함을 그는 기와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세종 중국본부장으로 근무하는 그는 지금도 틈틈이 시간을 내 중국 내 관련 기관에서 한중일 기와문화에 대해 특강을 하고 있다.



- 유 변호사가 수집한 고구려 귀면기와(평양 청암리 출토. 왼쪽)와. 백제 연화문 서까래막새(부여 가증리 출토).

2002년 소장 기와 1873점 국립박물관 기증

유 변호사는 지난 2002년 자신이 수집해온 전통 기와와 벽돌 1873점을 흔쾌히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여기에는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등 그가 틈틈이 출장 다니며 수집한 아시아 국가들의 기와가 총망라돼 있다. 그리고 2009년에는 평생의 꿈인 기와박물관을 종로구 부암동에 열었다. 자신과 아내 금기숙 홍익대 교수의 성을 각각 딴 유금와당박물관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와, 토기, 도용(흙으로 만든 사람모양의 인형) 등이 전시돼 있다. 

 유 변호사는 지난 2005년 일본인 내과의사 이우치 이사오가 소장해오던 기와를 숱한 설득 끝에 국내로 들여온 것을 평생의 업적으로 여긴다. 이우치 이사오는 지난 1987년 자신의 소장품 중 절반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는데 나머지 1301점이 유 변호사의 노력으로 국내로 송환된 것이다. 이 유물들은 현재 유금와당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유금와당박물관에 소장된 기와 수는 이우치 소장품 1301점 외에 2001년 국립중앙박물관 기증 후 수집한 1400여 점 등 총 2700여 점이다.

인터뷰 직후 1시간 내로 김포공항으로 가 베이징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그는 인터뷰 장소를 황급히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기와에서 저는 한국이 어떻게 번영된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찾습니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지정학적인 위치를 잘 살리면서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선조들이 기와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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