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동안 주인이 9번 바뀌었다.
지난해에는 경영진의 횡령 등으로 인해 증시에서 퇴출될 뻔하기도 했다.
한때 국민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불리던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의 과거가 그렇다.
하지만 미래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보안업체인 소프트포럼과 큐캐피탈로 최대주주가 바뀐 뒤 부활의 날개를 펴고 있다.
그 중심에 서있는 새로운 조타수가 바로 IT업계 베테랑으로 불리는 이홍구 대표다.

 “어느 기업이든 위기와 기회가 공존합니다. 하지만 한컴은 기회가 더 많은 기업입니다. 지난 20년간 문서 중심의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에 집중한 덕분에 그 잠재력이 엄청납니다.”



이홍구 대표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생존은 결국 기업의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술 경쟁력에 달려있다”며 “그런 면에서 한컴은 엄청난 잠재가치를 가진 ‘원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컴에는 비즈니스를 확대할 수 있는 기초자산이 많아요. 20년간 지탱해온 오피스 소프트웨어가 핵심역량입니다. 취임 후 회사 내부를 들여다보니 널리 알려진 한글 제품 외에도 잠재된 성장가치를 보유한 신사업군이 이미 도약의 채비를 마친 상태였어요.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 분야와 해외시장 등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매출 확대보다 가치 성장에 주력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이 ‘아래아한글’을 기반으로 1990년 설립한 한컴은 설립자의 손을 떠나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메디슨, 프라임그룹 등 주인만 9번이 바뀌었다. 지난해에는 수백억원대의 횡령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말 소프트포럼에 인수됐으며, 이홍구 대표는 외부 공모를 통해 지난해 12월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 대표의 화두는 과거와의 단절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본업으로 승부하겠다”, “본연의 사업에서 벗어난 사업진출은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핵심사업인 오피스 소프트웨어의 역량 강화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내부 원석을 다듬는 것보다는 외형 확대만을 추구하는 형태였습니다. 쉽게, 빨리 가는 데 집중하다보니 재무적 투자를 통한 외형 확대에만 신경을 쓴 거죠. 그러나 기업이 쉽게 빨리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한컴은 이제 매출 확대보다는 가치 성장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한컴이 주력사업의 역량강화와 함께 미래 성장동력 확보 등에 집중하면서 내놓은 것이 ‘20-20-20 전략’이다. 이는 전체 매출, 모바일 매출 비중, 해외매출 비중 부분에서 각각 20% 이상 성장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올해 매출 545억원, 영업이익 170억원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첫 번째 ‘20 전략’은 핵심역량 강화를 통해 올해를 원년으로 삼아 이후 연간 20%의 매출 성장을 이루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시장에서는 제휴를 강화한 모델을 선보이는 동시에 해외시장을 타깃으로 한 ‘한컴 오피스’제품을 출시하는 등 질적, 양적인 성장을 동시에 꾀한다는 계획이다.



두 번째 ‘20 전략’은 모바일 오피스 분야의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20%를 모바일 오피스 분야에서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모바일 오피스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씽크프리’의 스마트폰, 태블릿PC, TV 탑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씽크프리 모바일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갤럭시탭, LG전자의 옵티머스원 등에 문서뷰어 편집기로 기본 탑재된 것은 물론 최신 안드로이드 표준폰인 ‘넥서스S’에도 들어갔다.



이 대표는 “모바일 기기에 보다 차별화된 ‘씽크프리’ 제품을 선보이는 한편,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의 오피스 솔루션을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 번째 ‘20 전략’은 해외매출 비중을 전체 매출의 2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해외 시장을 겨냥한 신제품 출시와 함께 해외 시장의 선택적인 진출을 통해 지역적인 확대를 모색한다는 복안이다.



이 대표는 e-북, 클라우드 컴퓨팅 등 트렌드에 기반한 미래 성장동력 확보 계획 역시 밝혔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e-북 솔루션 분야에서는 콘텐츠사와의 제휴를 통해 양방향 전자책 제작과 유통, 소비의 전반을 지원하는 솔루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모바일 클라우드 서비스에 근간한 솔루션과 한컴의 리눅스 OS인 ‘아시아눅스’ 분야에 있어서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기회를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한컴이 보유한 ‘원석’(소프트웨어 기술력)이 모바일 오피스, 클라우드 솔루션 등의 트렌드와 만나 가치 있는 ‘보석’이 될 것”이라며 “이전의 한컴을 잊어달라”고 말했다.



한컴은 내부의 자산과 역량을 트렌드와 접목시키기 위해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리기로 했다. 현재 170여명 수준인 연구 인력은 1년 내에 250명 선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영업이나 마케팅 예산은 지난해 수준에서 전부 동결했다. 한마디로 기술개발 인력 확보에 ‘올인’한다는 것이다. 핵심역량 제고에 모든 투자가 집중돼 있다는 의미다.

다국적기업의 경영 노하우 국내기업에 전수

이 대표는 한국IBM, 컴팩코리아, 한국HP를 거쳐 델코리아 사장을 역임한 IT업계의 베테랑이다. 컴팩이 HP와 합병되던 시기에는 컴팩 출신 임원으로는 유일하게 HP에 남아 PC사업부문에서 승승장구했다. HP의 PC사업 총괄을 맡으며 자신이 정한 매출목표를 28분기 동안 달성한 경력이 있을 정도였다.



쟁쟁한 외국계 IT기업에서 소위 잘나가던 그가 한컴의 대표를 맡게 된 것은 평소 가지고 있던 그의 신념에서 기인한다. “외국계 기업에 있으면서 한국기업들과 경쟁했죠. 성과를 내놔야 하는 입장이었고, 정정당당하게 싸워 목표를 달성했죠. 그래도 빚을 진 느낌이랄까요,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글로벌 IT기업에서 쌓은 경영 노하우를 한국기업에서 쏟아내고 싶었어요. 마침 한컴이 소프트포럼 컨소시엄에 인수가 확정되고, CEO를 공모한다는 얘기를 듣곤 바로 지원했어요.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지 않더군요. 연봉 같은 것은 따질 계제가 아니었죠.”



공모한 지 2~3주 후 김상철 소프트포럼 회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전에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죠. 비즈니스와 경영철학 등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이후 두 달 동안 10여 회를 만난 것 같아요. 아마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였겠죠. 지난해 11월 말쯤 최종 후보군에 들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12월 초에 CEO로 뽑혔어요.”



이 대표는 공모절차 등을 통해 전문경영과 책임경영에 대한 다짐을 받고 한컴의 새로운 닻을 올렸다. “김 회장께 기존 대주주들처럼 회사자금을 빼가지 말 것,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얘기했어요. 김 회장은 당연시 받아들였고요. 한컴의 경영은 모두 제게 일임하고 있어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은 뵙는데, 그저 ‘티타임’ 정도에 불과해요.”



그는 취임하자마자 기업 분위기 쇄신에 들어갔다. 척박한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토종 기업으로서 자존심을 지켜온 한컴이지만 수차례의 경영 갈등과 횡령 사건 등으로 분위기가 처질 대로 처져있었기 때문.



“우여곡절이 많다 보니 피해의식과 자괴감에 빠져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충분히 이해가 됐지요. 기업의 정서와 문화는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는 직원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빠짐없이 참석해 허물없는 대화를 나눴다. 하룻저녁에 두 세 군데 부서 회식에 참석할 때도 있었다.



의사결정 과정도 공개했다. 중간 관리자가 참여하는 경영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은 직원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리고 이렇게 전달된 내용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이 거꾸로 다시 올라온다. 타당성이 검토된 의견들은 정책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러한 과정은 격의 없는 토론을 통해 이뤄졌다.



“경영회의에서는 한컴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고민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트렌드는 무엇이고 한컴이 가진 자산과 기술은 어느 정도인지,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지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식이죠.”



하지만 성과 평가는 엄격하다. 사업의 진행상황과 목표는 월·분기 단위가 아닌 매일, 매주 단위로 점검된다. 단기간의 성과에 연연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직이 목표를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HP 등 다국적 기업의 경우 큰 줄기의 목표는 본사에서 정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에서는 실천전략을 결정할 수 있는 정도죠. 하지만 지금은 세부적인 실행계획과 실천, 성과와 조직관리 등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점이 쉽지 않습니다.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점도 부담이기도 하고요.”

금융부채 없애고 무차입 경영 실현

성장을 위한 기반으로 ‘투명경영’ 역시 그가 강조하는 경영원칙이다. 지난 1월 모든 금융부채를 없애 무차입 경영을 실현한 것을 비롯해 거래 기업에게 한 달 내에 전액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프로세스를 도입한 것 역시 신뢰를 높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안정적인 재무 기반에서 보다 공격적인 사업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 대표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컴에 대한 그의 애정과 사업에 대한 자신감은 자사주 매입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지난 3월 한컴 주식 0.5%를 장내 매수로 취득했다. 금액으로는 5억7800만원어치에 해당한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컴은 국민기업으로 불립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진 빚이 많아요. 그동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요. 이제는 핵심역량에 집중해 현재의 성과와 미래에 대한 투자의 적절한 균형을 통해 명실상부한 한국의 소프트웨어 대표기업으로 성장해나갈 겁니다.”

 

■ 이홍구 사장은… 

1957년생. 81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졸업. 99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석사. 85~96년 한국IBM 국제구매담당 부장. 97~2002년 컴팩코리아 컴퓨터부문 총괄 전무. 2002~09년 한국HP 컴퓨터사업 총괄 부사장. 2010~2010.12 델코리아 사장. 2010.12~한글과컴퓨터 대표.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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