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어느 날, 갓 설립된 신생기업 삼성전자에 창립 멤버로 합류한 젊은 직원 윤종용은 일본으로 연수를 떠났다. 당시 첨단산업 강국으로 군림하던 일본의 산업현장을 견학하기 위해서였다. 가슴 설레던 마음은 이내 막막함과 절망감으로 뒤바뀌어버렸다. 일본 기업들의 선진 기술력에 압도된 탓이다. ‘아마도 우리는 영원히 일본을 따라갈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는 훗날 어느 책에 직접 쓴 글에서 당시의 충격을 “우물 안 개구리가 처음 바깥세상에 나온 듯한 당혹감과 놀라움”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일본의 아성은 30여년 만에 깨졌다. 그것도 바로 삼성전자에 의해서. 삼성전자는 2000년대 이후 ‘기술 일본’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니를 마침내 앞질렀다. 시가총액(2002년), 매출액(2004년), 브랜드가치(2005년) 등 기업 경쟁력을 나타내는 핵심지표에서 잇달아 소니를 추월한 것이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그 대역전의 시기, 삼성전자의 CEO는 바로 윤종용이었다. 한 세대 전 맨손으로 전자산업에 뛰어든 삼성전자를 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킨 일등공신 중 한 명이 바로 그다. 2005년 10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리더 25인’을 선정·발표하면서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을 1위에 올려놓았다. <포춘>은 그를 넘버원으로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규정하는 영향력의 정의를 알고 싶다면 윤종용 부회장을 보면 된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는 것이 힘이라면, 그가 그런 힘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2008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에서 물러났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꼭 40년째 되던 해다. 하지만 그는 은퇴한 게 아니다. 기업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다방면에서 경영혼(魂)을 불태우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이었을 뿐 아니라 공학도들의 멘토 역할을 했던 ‘윤, 종, 용 이름 석자’가 주는 신뢰감과 그 자신의 일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 빚어내는 뜨거운 황혼이다. 지난 5월 16일 서울 중구 태평로빌딩에 자리한 삼성전자 상임고문실에서 그를 만났다. 번득이는 생각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영원한 현역 경영인’의 아우라를 풍겼다.

윤종용 상임고문은 삼성전자 CEO 퇴임 이후 폭넓은 대외활동을 펼치면서 회사 경영을 최우선시했던 전문경영인 시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일선 기업 현장에서 수십 년간 축적한 노하우와 경륜, 지혜를 자연스레 사회에 환원하는 바람직한 ‘롤 모델’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 셈이다. 그는 현재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한국공학한림원 회장도 역임했다. 한국 전자·IT산업 역사의 산증인이자 공학도 출신의 ‘일류 테크노 경영인’이었던 그에게 딱 어울리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또 지난 3월 말 대통령 소속 상설기구로 출범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의 초대 위원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상 가장 강력한 후보였지만 끝내 고사했다. 국과위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예산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다.(*윤 고문이 한국 전자·IT산업에서 차지하는 상징성과 위상을 감안해 그의 직함을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회장으로 통일한다.) 

- 윤종용 회장(오른쪽)과 강석진 회장은 과거 각각 삼성그룹과 GE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두 회사의 돈독한 협력관계에 디딤돌이 됐던 인연을 가졌다. 윤 회장은 강 회장의 소개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화가들을 오랫동안 후원해왔을 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깊다.
- 윤종용 회장(오른쪽)과 강석진 회장은 과거 각각 삼성그룹과 GE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두 회사의 돈독한 협력관계에 디딤돌이 됐던 인연을 가졌다. 윤 회장은 강 회장의 소개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화가들을 오랫동안 후원해왔을 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깊다.



 한국 경영인들 세계에 내놔도 손색없어

강석진 회장(이하 강 회장) 평소 “이공계 출신이 공직에 많이 진출해야 이공계 출신을 우대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될 수 있다”고 말씀해 오셨는데, 초대 국가과학기술위원장직을 사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윤종용 회장(이하 윤 회장) 그거야 뻔하죠. 더 이상 욕심도 없고, 제가 지금까지 한평생 기업 CEO로 살아왔지 않습니까? 이곳 저곳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정통 경영인으로 남고 싶은 개인적 바람 때문에 사양했습니다. 가끔 주변에서 이해가 안 된다고 하던데 그때마다 “뭐가 이해가 안 되나. 내가 하기 싫으면 그만이지”라고 답해요(웃음). 젊고 유능한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이제는 그들을 키워야 합니다. 사회가 영웅을 만들어야 해요. 미국 같은 선진국은 인재를 만드는 게 하나의 사회적 풍토로 자리잡았어요.



강 회장 회장님께서는 삼성전자 CEO 시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경영인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즈니스위크>, <포춘>,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등 세계 유수의 경영 관련 매체가 회장님을 한국은 물론 나아가 아시아의 넘버원 경영인으로 손꼽기도 했지요.



윤 회장 사실 우리나라 경영인 중에는 저 말고도 큰 성과를 낸 분들이 많아요. 제가 세계를 다니면서 외국 경영인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그때마다 우리 CEO들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요즘 들어 주목받는 경영인들도 많잖습니까? 앞으로도 우수한 CEO들이 더 많이 나올 겁니다.



강 회장 최근 우리 경제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가 동반성장 혹은 상생입니다. 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개선하자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이사장도 역임하신 바가 있는데,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윤 회장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잘되는 방법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산업화된 나라라면 모두 갖고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중소기업도 3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대기업과 협력관계(Supply Chain)로 묶여 있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기업들은 대기업과 거래하면서 동시에 자체적인 판로를 확보하고 있기도 합니다. 세 번째가 소상공인, 즉 자영업을 하는 분들입니다. 소상공인들은 사실 대기업과의 상생을 논할 대상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세 종류의 기업을 모두 같은 중소기업으로 혼동합니다. 언론도 그렇게 보는 것 같아요. 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전략을 세우기 전에 중소기업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올바른 방법이 나올 수 있어요. 사실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기업들은 사정이 그나마 훨씬 나아요. 대기업에서 기술지도는 물론 종업원 교육을 해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회사는 협력업체, 대리점주 자녀들을 6개월~1년가량 교육시켜주고 인턴으로 채용해 1~2년 근무하게 하는 곳도 있어요. 제 생각은 이래요. 중소기업이라도 돈 벌어서 재투자 안 하고 인재육성 안 하는 곳은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주식이나 땅을 사는 기업인들은 사업을 바르게 영위할 의지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중소기업이라도 기업이라면 모름지기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구멍가게’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잘되려면 상생, 공생의 사회적 컨센서스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상생(相生)은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자’라는 의미잖아요. 저는 더 나아가 ‘다 함께 잘살자’는 공생(共生)의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이웃 도와주는 걸 좋아하잖아요. 부조(扶助)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그게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뜻이잖아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계’ 문화도 마찬가지죠. 그런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 윤종용 회장은 2008년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의 명예회원으로 선임됐다(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섰던 윤 회장.
- 윤종용 회장은 2008년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의 명예회원으로 선임됐다(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섰던 윤 회장.



 다 함께 잘사는 ‘공생’의 문화 필요해

윤 회장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갑을 관계’ 통념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요지는 그렇게 너와 나를 구분해서 상하 관계로 규정할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어떤 회사가 ‘100% 갑’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자는 뜻일 게다. 그는 삼성그룹의 예를 들었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도 ‘갑’과 ‘을’, 심지어 ‘병’까지 있어요.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를 만들어 미국, 유럽의 큰 기업에 납품합니다. 그럼 ‘을’이 되는 거예요. 가령 반도체 거래 방식은 고정거래와 현물거래가 있는데, 삼성전자가 현물시장 가격보다 낮은 고정거래 가격으로 납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손해를 보고 거래할 때도 있다는 의미다).”



강 회장 우리나라 제조업을 이끄는 대기업들은 기술력, 경쟁력에서 세계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제조업의 밑바탕인 부품·소재산업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독일의 예를 들자면, 그 나라 산업 경쟁력의 바탕에는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s)’이라고 불리는 세계 최고 기술의 부품·소재기업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부품·소재 분야 중견·중소기업들을 독일의 히든챔피언들처럼 만들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요?



윤 회장 우리나라와 일본의 교역에서 무역역조가 가장 심한 부분이 소재산업입니다. 부품산업은 대일역조가 많이 개선됐지만 소재산업은 아직도 격차가 커요. 그런데 소재산업이란 게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고 많은 시설투자를 해야 합니다.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거죠. 그런데 한국 대기업은 왜 소재산업을 하지 않느냐 하면, 사업 여건이 맞지 않아서 그래요. 미국, 독일, 일본은 워낙 오랜 제조업 역사를 갖고 있어 부품·소재산업 경쟁력도 월등했으며, 자본도 충분히 축적돼 있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제조업의 초점을 세트(완제품)를 만들어 파는 데만 맞췄기 때문에 첨단 부품·소재산업을 함께 키우지 못했어요. 그런 터라 우리 대기업들이 지금 와서 뒤늦게 부품·소재사업을 한다 하더라도 미국, 독일,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비즈니스 원리상 안 맞는 거죠. 차라리 다른 나라서 부품·소재를 사다 쓰는 게 이익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품·소재산업에 대해 대기업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거예요. 부품·소재사업을 하더라도 중소기업이 할 게 있고, 대기업이 할 게 있습니다. 특히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소재사업을 하기란 쉽지 않아요.

윤 회장도 부품·소재산업 육성 방안에 관해 나름의 생각은 있다. 특히 여러 가지 ‘난제’가 얽히면서 일본 산업계가 다소 위축돼 있는 현 국면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를 조심스레 밝혔다. 최근 국내 일부 부품·소재기업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먼저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부출연연구소가 역할분담을 하도록 한 다음 부품·소재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방안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가령 자동차, 조선, 전자 등 우리 주력산업의 핵심기업들이 위치한 산업단지 부근에 부품·소재산업단지를 세우는 겁니다. 그런 다음 한 10년 정도만 지원하여 육성한다면 상당히 발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 회장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IT·전자산업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철강 등 한국 주력산업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크게 높아졌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현재 한국 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시는지요?



윤 회장 조선, 자동차, 철강, 전자는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고 봅니다. 응용·개발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어요. 특히 IT 분야는 컨버전스(융합) 추세를 잘 활용해 제품도 좋아지고 생산성도 많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다만 부품·소재처럼 기초산업 부문과 기초기술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연구개발을 해야 합니다.



윤 회장은 한국 주력산업의 현주소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다가 갑자기 ‘전통산업’으로 화제를 돌렸다. 한평생 ‘첨단산업’에 몸담았던 그이기에 다소 생소하면서도 이채로운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경지에 오르면 다른 분야에도 통(通)하는 법. 윤 회장의 ‘전통산업론’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농업 등 전통산업을 미래산업으로 키워야

윤 회장 우리나라 전자, 자동차산업은 40여년 만에 세계적인 기업을 배출했는데, 왜 식품산업에서는 네슬레 같은 세계적인 식품기업이 안 나올까요? 제가 작년에 ‘과학기술 출연연(구소) 발전 민간위원회’ 위원장을 할 때 앞으로 우리를 먹여 살릴 미래산업이 뭐냐라는 문제를 논의하다가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첨단소재, 그 다음으로 농업을 꼽았어요. 농업을 미래산업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웃지 싶더군요(웃음).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업이 바로 농업입니다. 앞으로 인류가 직면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뭘까요? 세계 인구가 20~30년 뒤에는 100억명으로 늘어날 겁니다. 그러면 물, 그리고 식료(식량) 확보가 가장 심각한 이슈가 될 겁니다.



강 회장 유럽의 선진국인 네덜란드는 국토가 우리의 절반이지만 꽃 수출량이 세계 1위이고 유가공제품 수출은 덴마크와 1, 2위를 다투고 있으며 육류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농·축산업이 첨단 기술산업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네덜란드의 선진 농업 모델을 배워야 해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농업을 하나의 성장산업으로 육성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인간은 ‘먹고 마시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다. 윤 회장은 바로 그 만고불변의 진리가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도 변함이 없음을 짚은 것이다. 의식주는 인간 생존의 기본이 아니던가. “물론 첨단산업도 해야 합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보험’처럼 여기고 발전시켜나가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신발, 의류 등 특유의 경험과 강점을 지닌 산업들에 대해 왜 손 놓고 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왜 한국에서는 명품 구두, 명품 와이셔츠가 안 나오는 거냐 말입니다. 우리도 이제 전통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모색해야 해요. 소재, 디자인, 마케팅의 3박자만 잘 갖추면 충분히 잘할 수 있습니다.”

윤종용 회장은 한학자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백부는 고향(경북 영천)에서 이름난 한학자였다. 그는 여섯 살 꼬마 시절부터 백부께 중국 고전이나 역사, 성인군자들에 대해 배워야만 했다. 외가도 서당 집안이었던 까닭에 어머니께도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친가와 외가 양쪽의 가풍은 그의 인생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던 스무 살 무렵부터 평생에 걸쳐 늘 곁에 두고 읽어온 책이 있다. 유교의 4대 경서인 사서(四書) 중 <대학(大學)>, <중용(中庸)>이 그 책들이다. 특히 <대학>에 나오는 구절인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일생의 좌우명이 되어왔다. 그의 집무실 창가 벽에는 이 글귀를 담은 큰 액자가 걸려 있다.

강 회장 회장님께서 평생 간직해오신 좌우명이 ‘격물치지’라고 들었습니다. ‘격물치지’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요? 경영자라면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하시는지요? 또 ‘격물치지’를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오셨는지도 궁금하군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 회장은 서가에서 책을 한 권 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의 사서삼경 해설서 중 한 권인 <대학·중용강설>이었다. 그는 책장을 넘기더니 직접 한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마치 저 옛날 서당에서 나이 지긋한 훈장님이 학동들을 앞에 두고 책의 글귀를 읊조리는 듯한 장면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서는 어딘지 선생님이나 학자의 풍모가 배어났다.

윤 회장 古之欲明明德於 天下者(고지욕명명덕어 천하자)는 先治其國(선치기국)하고 欲治其國者(욕치기국자)는 先齊其家(선제기가)하고 欲齊其家者(욕제기가자)는 先修其身(선수기신)하고 欲修其身者(욕수기신자)는 先正其心(선정기심)하고 欲正其心者(욕정기심자)는 先誠其意(선성기의)하고 欲誠其意者(욕성기의자)는 先致其知(선치기지)하고 致知(치지)는 在格物(재격물)이라.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옛날에 밝은 덕(명덕)을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 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수양해야 하고, 그 몸을 수양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로잡아야 하고, 그 마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다해야 하고, 그 뜻을 바로 잡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앎에 도달해야 하고, 앎에 도달함은 물건(사물)의 이치를 연구함에 있다’라는 겁니다. 격물치지는 바로 여기서 비롯했습니다. 사물을 꿰뚫어봐야(格物) 지(知)에 도달한다는 것인데 그건 사물의 본질을 본다는 뜻입니다. 옛말에 왜 문리(文理)가 터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물을 안 보고도 아는 게 바로 문리가 터진 경지인데 결국 세상의 덕을 밝히기 위해서는 사물을 꿰뚫어 앎에 이르러야 가능한 겁니다. 옛날에 지혜 있는 사람은 안 보고도 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 회장 예전에 회장님께서는 “앞으로는 ‘지식경영’이 아니라 ‘지혜경영’의 시대”라고 하셨는데 그게 바로 여기서 출발한 거로군요.



윤 회장 그렇습니다. 정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 지식입니다. 이 지식을 단순히 아는 수준을 넘어 경험하고 실천하면서, 통찰력을 갖게 되고 완전히 몸에 익혀 실천하면 그게 지혜가 되는 겁니다.





 조직의 리더는 ‘카오스 메이커’가 되어야

강 회장 삼성전자 CEO 시절 이야기를 좀 하죠. 회장님은 당시 “리더는 ‘카오스 메이커(Chaos Maker)’가 돼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오스는 혼돈이라는 뜻이 강한데, 어떤 의미에서 ‘카오스 메이커’를 주창하신 건가요.



윤 회장 혁신이나 변화를 하려면 과거의 제도, 과거의 사고방식, 과거의 가치관, 과거의 일하는 방식을 깨야 합니다. 대다수 기업들은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다가 시대와 환경의 변화를 못 따라가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한번 큰 성공을 경험한 기업이나 전문가들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을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기업이 지속 발전하려면 과거의 여러 가지 틀을 깨야 합니다. 그래서 카오스(혼돈) 상태로 만들어놓으면 구성원들은 위기의식을 갖고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방심을 안 해요. 내일 당장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어요.



강 회장 회장님은 예전부터 “잘나갈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른바 ‘위기경영론’은 ‘카오스 메이커’와 비슷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군요.

윤종용 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5가지’ 행동이나 습관이 있다. 타성, 고정관념, 형식주의, 관료주의, 이기주의가 바로 그 ‘못난이 5형제’다. 이게 존재하면 사람이든 조직이든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부터 성찰하고 다스리는 게 그의 오랜 습관이다. 윤 회장은 자신이 만나고 상대하는 타인들의 반응을 ‘거울’로 삼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이란다.



강 회장 평소 우수한 학생들의 이공계 대학 기피 현상을 크게 염려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고, 그 해법은 어떤 방향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윤 회장 잘살고 부유해지면 그렇게 됩니다.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도 부유해지고 나니까 기술자를 경시했어요. 공과대가 생긴 것도 미국, 독일보다 늦었죠. 이공계 대학을 나와 관련 직업을 가지면 평생 공부해야 하니 소위 ‘3D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똑똑한 사람들이 ‘편한 직업’으로 쏠리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과학기술 발전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알렉산더 대왕과 진시황이 기원전 300~200년 무렵 비슷한 시대 사람들입니다. 알렉산더는 인류 역사상 처음 대왕(The Great)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진시황은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설하여 중국 최초의 황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들 정복자가 인류 역사에 기여한 바가 얼마나 됩니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잘 살게 한 게 있나요? 자신의 영토만 넓혔을 뿐이죠. 반면 세상 사람들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인류역사를 얼마나 크게 바꿨습니까? 원자력, 컴퓨터, 반도체, DNA구조 발견 같은 ‘킬러 테크놀로지(세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혁신적인 신기술)’를 어떤 과학자가 실현해냈는지를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들 덕분에 세상이 확 바뀌었는데 말이죠.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하려면 초·중·고 학생들부터 수학, 물리 같은 기초과학에 관심을 갖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 과학기술이 국가 발전의 기본 토대라는 공감대를 확산하고 이공계 출신들이 공정한 보상과 대우를 받도록 해야 해요. 그러면 이공계의 자긍심도 자연스레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강 회장 우리나라의 미래는 이공계 인재에 달려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젊은 세대가 이 분야에 꿈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 회장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창의성은 사람이 호기심과 열정을 갖고 ‘왜’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겁니다. 일본 사람들을 만나면 “왜 이렇게 한국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으냐”라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능지수는 세계 톱 수준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은 머리는 좋은데, 정답만 알지 과정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디다. 과정을 알면 응용이 가능한데 말이죠.



강 회장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도록 훈련해야 하는데 우리 교육 시스템은 그런 점이 부족한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모범 답안만을 외우도록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윤 회장 맞습니다. 그러기에 교육 방식과 시스템도 확 바꿔야 합니다. 주입식 공부는 그만 시켜야 합니다. 객관식, 단답형 시험도 주관식, 서술형 시험으로 바꿔야 하겠죠. 대학 교육도 혁신해야 합니다. 정부는 대학에 자율성을 부여해 대학 스스로 인재육성 철학을 갖고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초일류 CEO 되려면 역사부터 공부하라

윤종용 회장은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4년 2월 <초일류로 가는 생각>이라는 책을 펴냈다. 거대 기업의 CEO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 책을 쓴 것은 ‘일류기업’ 삼성전자를 ‘초일류기업’으로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한 마음가짐을 임직원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 책은 출판시장에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고,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읽는 사내용으로만 배포됐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당대 최고기업 CEO가 ‘초일류’라는 화두로 책을 쓴 까닭에 재계 안팎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독서경영을 추구하는 한 대형 건설업체 CEO는 해외 출장길에 이 책을 읽고는 자기 회사 임직원들과 교훈을 나누기 위해 1000여권을 어렵사리 구해 가기도 했다.

윤 회장 삼성전자가 일류로 올라온 시기가 2003~2004년쯤이었습니다. 저는 언제쯤 삼성전자가 자타가 인정하는 일류기업이 될 것인가 생각해봤어요. 그때 새로운 비전을 임직원들에게 제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죠. 성실해야 한다, 기술 개발해야 한다, 이런 건 너무 뻔하잖아요. 그런 고민 끝에 <초일류로 가는 생각>이라는 책을 쓰게 된 겁니다. 초일류기업이 되려면 현재에 대한 통찰력, 미래에 대한 선견력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를 알아야 해요. 인류사회를 변화시켜 온 동인(動因)이 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산업사를 읽으면서 찾아낸 것은 바로 도구의 발명과 과학기술의 혁신이었어요. 그리고 사회를 혁신시키려는 의지, 바로 그것이 역사의 동인이었죠. 제 책이 좀 색다른 것은 서양과 동양의 역사를 연결시켰다는 점, 또 중국은 왜 근대화에 실패했고 일본은 왜 성공했는지, 그때 한국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서로 상관관계를 갖고 접근했다는 점입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은 정말 중요합니다.



강 회장 한국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으로서 젊은 경영자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덕담을 한 마디 해주시기 바랍니다.



윤 회장 모름지기 초일류기업을 꿈꾸는 경영자라면 역사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통사(通史)도 중요하지만 특히 자신이 속한 분야의 산업사를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가 보이고, 미래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경영환경 변화에 늘 대비하는 위기의식도 가져야 하겠죠. 또 현장경영 역시 중요합니다. 문제와 해답은 항상 현장에 있거든요. 사무실에 있으면 ‘인의 장막’에 가려져버릴 가능성이 높아요. 아울러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리더십과 국제감각도 갖춰야 합니다. 숫자에도 밝아야 해요. 그냥 숫자가 아니라 숫자가 만들어지는 프로세스를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일 게 있습니다. 산업시대의 변화는 눈에 보였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의 변화는 눈에 안 보이는 게 더 많습니다. 디지털시대의 경영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감지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잠시만 흐름을 놓쳐도 금세 도태됩니다.



  Tip. 윤종용 회장의 학창시절

‘차선’으로 선택한 전자공학,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 되다

윤 회장의 집무실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가가 대번 눈에 들어온다. 어림짐작으로 봐도 수천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경제, 경영에서 철학, 역사, 과학까지 장르도 온갖 분야를 넘나든다. 그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게 바로 이 서가를 빼곡하게 채운 책들이다.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은 ‘공부하는 CEO’의 면모를 유감없이 나타내는 증거다.



그는 중·고생(경북대 사범대 부속중·고) 시절 과학반에서 특별활동을 열심히 했다. 지금의 그를 감안하면 의당 그럴 법하다. 그런데 막상 대학진학을 앞두고는 철학과에 가고 싶었다고 한다. 평소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터였다. 2순위는 물리학이었다. 서양학문의 기본이 철학과 물리학이라는 생각도 작용했다. 하지만 결국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다. 그는 “집안이 부자였으면 철학과나 물리학과를 갔을 텐데, 거기 졸업하면 먹고 살기가 힘들 것 같아서 단념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물론 ‘차선’으로 전자공학을 선택한 것은 평소 취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서울대에 입학(1962년)할 무렵에는 원자력공학과가 공대에서 가장 점수가 높았다. 이승만 정부가 50년대 말 원자력연구소를 세운 뒤 몇 년간 원자력공학과의 인기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화학공학과, 기계공학과, 전자공학과, 전기공학과 순이었다.



그렇다면 윤 회장은 전자산업의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이나 비전을 갖고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던 것일까? 이런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에이, 그 나이에 그런 선견지명은 물론 없었죠”라고 웃었다. 하지만 60년대 말에 이르러 전자, 전기공학과가 공대의 선두로 치고 올라가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전자산업의 여명기와 맞물리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Tip. ‘탤런트 아들’에 대한 에피소드

연예계 데뷔 ‘방해공작’도 열정 앞에 무산

탤런트 윤태영 씨(사진)는 데뷔 얼마 후 아버지가 ‘삼성전자 CEO 윤종용’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낳았다. 세간에는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데뷔했다는 ‘삐딱한 분석’을 내놓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윤 회장은 아들이 탤런트가 되고자 하는 것을 처음에는 만류하다가 결국 허락했다고 한다.



“뭘 하든 하고 싶다면 해야죠. 그런데 다른 일은 본인이 열심히 하면 개척해나갈 수 있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소질과 끼가 있어야 하고, 얼굴도 잘생겨야 하잖습니까? 사실 우리 집안에 끼가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게다가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하도 하겠다고 하기에 그럼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니까 유명한 아버지 덕 좀 보자는 건지 ‘힘’을 좀 보태달라고 하는 거예요. 안 해줬다가는 부자간에 의를 상할 것 같아 누구누구 찾아가라고 몇 군데 소개를 해줬지요. 그러고는 아들 몰래 그쪽에다 우리 애가 찾아가면 ‘자네는 소질이 없으니 빨리 포기해라’는 말을 해달라고 당부를 해뒀죠.(웃음)”



윤 회장은 얼마 뒤 낙담한 아들의 푸념을 듣게 됐다. “아버지가 소개해주시는 곳은 이제 안 갈 겁니다. 가는 데마다 무조건 ‘자네는 안 된다’라고만 하네요. 아버지도 못 믿겠어요.” 그 순간 윤 회장은 짐짓 모른 척하며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때부터는 나한테 부탁도 안 하더군요. 나중에 보니 누군가의 로드매니저부터 시작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고생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쨌거나 기왕 탤런트가 됐으니 ‘톱 클래스’가 돼야 하는데….” 윤 회장의 말에서는 속 깊은 아버지의 은근한 부정(父情)이 묻어났다.





 <초일류로 가는 생각>서 엿본 ‘윤종용 경영철학’



▷▶ 경영은 혁신의 연속

기업은 환경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경영자원을 지속적으로 보강하고 재배치해야 한다. 또한 경영 프로세스도 항상 최상의 효율성과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특히 개별적인 프로세스뿐 아니라 각각의 프로세스가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최적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경영은 고객만족·창출의 프로세스

고객은 냉정하다. 어떤 회사가 자신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며 신뢰할 만한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객을 만족시키고 고객으로부터 사랑받아 온 기업만이 장수할 수 있었다. 결국 기업 경영의 최종 지향점은 고객만족과 고객창출이다.

▷▶ 초일류기업의 3가지 특징

1.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사업과 제품을 창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술혁신을 한다.

2. 끊임없는 혁신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한다.

3.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여 고객을 만족시키고 사랑과 신뢰를 받는다.

▷▶ 초일류의 7가지 인자

1. 꿈과 비전과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2. 통찰력과 분별력이 있다.

3.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한다.

4.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다.

5. 스피드와 속도가 있다.

6. 신뢰와 믿음이 있다.

7. 기술과 정보를 중시한다.







윤종용 회장은… 

1944 경북 영천 출생 / 1966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삼성그룹 입사 / 1977 삼성전자 동경지점장 / 1990 삼성전자 가전부문 대표이사 /1992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 / 1993 삼성전관 대표이사 사장 / 1996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 1999~2008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 2004~2010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 2004~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회장 / 2008~ 삼성전자 상임고문

강석진 회장은… 

연세대 대학원(공업경영학 석사)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30여년 간 제너럴일렉트릭(GE)에 몸담았고, 그중 20년은 GE코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 전문경영인학회 이사장, 서강대·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CEO컨설팅그룹 회장이다. 서양화가로도 활동해 세계미술문화진흥회 이사장과 한·일 서양화 교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역서: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라>, , <잭 웰치와 GE방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