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과 상생은 최근 국내 경제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동반성장이나 상생이 화두가 된다는 것 자체가 우리 경제의 ‘불편한 현실’을 말해준다. 한국 경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 주역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는 대기업들이다. 하지만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세계 무대, 아니 국내 시장에서조차 변변한 명함을 내밀 형편이 못 된다. 양지와 음지의 극명한 대비다.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대적 요구로 부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문겸 중소기업 옴부즈만(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을 만나 한국 중소기업들의 현주소와 육성 방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업가정신 살리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부터 만들어야

옴부즈만(ombudsman) 제도는 원래 스웨덴에서 유래됐다. 주로 행정부의 권력 오·남용을 조사·감시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옴부즈만은 스웨덴어로 대리인을 뜻하는데, 영미권 국가에서는 호민관(護民官)의 뜻으로도 통용된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옴부즈만(기업호민관) 제도는 보호 대상이 일반 국민이 아닌 중소기업이라는 점이 다르다. 2008년 중소기업기본법 개정에 따라 도입됐는데, 미국의 옴부즈만 제도를 벤치마킹했다. 중소기업의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불합리한 법령, 규정 등 각종 규제를 찾아내 개선하는 게 주된 임무다. 하지만 아직 국민들에게 낯선 제도인 것도 사실이다. 김문겸 옴부즈만의 설명을 들어보자.

옴부즈만은 정부의 ‘셀프 커렉션’ 활동

“우리나라 옴부즈만 제도는 미국 방식을 따랐습니다. 미국의 옴부즈만은 행정부에 소속된 기구로서 각종 제도, 정책이 ‘합목적적으로’ 운영되는지를 점검하고 피드백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 제도는 정책의 공급자이자 집행자인 정부가 스스로 ‘셀프 커렉션(self-correction·자기교정)’을 하겠다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정부기관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상을 지닌다. 중소기업청장 소속이지만 청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 옴부즈만은 중소기업청장과 동등한 차관급 공직이다. 다만 중소기업청장은 옴부즈만 추천권을 갖는다. 최종적으로는 국무총리가 옴부즈만을 위촉한다. 각종 규제와 법령이 여러 부처에 걸쳐 있기 때문에 옴부즈만의 독립적 활동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옴부즈만의 자격요건은 중소기업 대표·임원, 정무직 공무원, 교수·연구원 등으로 제한돼 있다. 김문겸 옴부즈만은 경영학자로서 오랫동안 중소기업계를 연구해온 경륜과 식견이 추천을 받은 배경이다. 그는 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는 등 중소기업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지난 3월 중소기업 옴부즈만 취임 이후 무척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것은 역시 중소기업인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대기업들은 정부와 국회, 언론 등 여러 창구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 개진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런 언로(言路)조차 갖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 옴부즈만은 “중소기업인들을 만나보니 자신들을 만나준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인들은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관청에 털어놓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점을 제기하더라도 다른 데서 들었다고 얼버무리곤 하죠. 혹시 담당 공무원들로부터 보복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매우 특별한 조직입니다. 독립성 유지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죠. 우리가 성공해서 다른 정부 부처에도 옴부즈만이 생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옴부즈만은 중소기업들 사이에도 ‘온도차’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똑같은 처지나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나 사회에 바라는 희망사항도 다르다는 설명이다. 가령 나름대로 자리잡은 전통 중소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더 많이 요구하는 반면 신생 벤처기업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더 원한다는 것이다.



“옴부즈만 취임 후 중소기업중앙회나 업종별 협동조합 이사장들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중소기업인들 중에서도 소위 ‘잘나가는’ 사장님들이죠. 이분들은 주로 정부가 지원을 더 많이 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많이 하더군요. 사실 정부가 기업에 해줄 수 있는 것은 정책자금 지원, 세금 감면, 땅 주는 것(공장부지 조성·불하 등) 정도예요. 그런데 이게 썩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정부가 할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업가정신과 벤처정신이 살아있는 사회, 도전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한 겁니다.”



그는 신생 기업, 1인 창조기업 등 이른바 ‘롱테일(long tail) 기업’ 육성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롱테일’은 미국 IT 잡지 <와이어드>의 크리스 앤더슨 편집장이 작고 소외된 기업들의 매출 총합이 온라인 시장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김 옴부즈만은 여기에 빗대어 ‘조직화된 협회나 단체 등을 통한 소통창구에 접근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을 롱테일 기업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애로 발굴·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소외된 ‘롱테일’ 기업 애로 해소할 것

“롱테일 쪽으로 내려가면, 가령 1인 창조기업가들을 만나보면 의외로 우리나라는 지원 제도가 잘 돼있다고들 말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 없다는 거죠. 멘토도 없고, 가이드도 없다고 호소합니다. 제가 공직자로서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중소기업 정책들은 실적 위주로, 이름만 섹시하게 붙여서 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은 멋있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라고 봅니다.”



김 옴부즈만은 이른바 ‘회색지대(grey area) 중소기업’의 활성화도 적극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기서 회색지대는 정부 부처의 소관 분야가 명확하지 않은 신생 산업을 의미한다. 이런 산업에 속한 중소기업들은 정부 정책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무시됨으로써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회색지대 중소기업들에 대한 제도와 규제를 점검해봐야 하는 이유다.



“회색지대는 아직 본격적인 산업으로 성장하지 않은 단계의 업종을 의미합니다. 이를테면 ‘맹아기’에 있는 업종이라고 할 수 있죠. 가령 온라인 게임산업의 경우 지금은 거대산업으로 성장했지만 1990년대 후반 무렵만 해도 회색지대에 놓여 있었어요. 사실 회색지대는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영역이지만 이런 쪽 종사자들이 매우 혁신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여기저기 치이는 곳이 많다. 정부 규제가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대기업들이 높은 장벽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기업 생태계 안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동반성장’이나 ‘상생’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김 옴부즈만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주저 없이 “룰을 안 지키기 때문”이라고 직설적으로 원인을 꼬집었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안 지키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제도가 잘 만들어져 있어요. 중소기업 지원 정책도 잘 돼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합목적적으로 잘 운영되느냐 하는 거예요. 룰을 공정하게 집행하느냐 하는 겁니다. 룰이 안 지켜지니까 대기업들이 너무 커졌습니다. 자연 생태계를 보면 사자는 사슴이나 코요테를 잡아먹지 절대 다람쥐는 안 잡아먹습니다. 배가 불러도 더 이상 잡아먹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룰을 안 지킵니다. 자기 욕심대로 다 쓸어버려요. 중소기업끼리의 착취구조도 큰 문제입니다. 하청에 재하청, 또 재하청으로 연결되는 구조에서 밑에 있는 기업들이 얼마나 당합니까? 중소기업간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도 시급해요.”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가장 많이 하소연하는 불공정거래 사례가 ‘가격 후려치기’다. 어떻게든 판로를 유지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갑’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이 구조적인 폐해를 뿌리뽑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김 옴부즈만은 대기업 구매부서 담당자들과 만났던 경험을 들려줬다.



“옴부즈만에 취임한 후 대기업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구매부서 부장, 과장들은 ‘우리도 서민입니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자신들도 회사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거죠. 구매부서 직원들에게 원가절감은 ‘지상명령’과도 같아요. 납품가격을 어떻게든 낮춰야 자신들도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거든요. 이런 현실에서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 회장님들과 만나고 사진 찍고 하는 장면은 구매부서 사람들에게 전혀 와 닿지가 않아요. 가령 원가연동 구매시스템 같은 제도를 확립해 놓아야 실무자들이 공정하게 일할 수 있을 겁니다. 룰을 만들고, 그 룰을 엄정하게 지켜야 합니다. 선언만으로는 안 돼요.”

대기업 구매부서 직원들의 딜레마

최근 수십 년간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말하자면 ‘한번 중소기업은 영원한 중소기업’이 어느새 우리 기업 생태계의 흔들리지 않는 문법이 된 듯하다. 게다가 강한 중소기업, 이른바 ‘강소기업’들도 잘 배출되지 않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궁극적인 원인은 역시 올바른 기업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은 탓이다.



“한국 대기업들을 보면 모두 ‘개발독재시대’에 나온 기업들이에요. 벤처 붐이 일어난 80~90년대에 설립된 대기업은 거의 전무합니다. 반면 미국은 2000년대에도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그런 예죠. 이런 기업 환경을 만드는 게 정부가 할 일입니다. 기업 생태계 내에 게임의 룰이 있으면 기업가정신이 살아나게 돼 있어요.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가기 위해, 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그게 왜 안 되느냐 하면, 사회 전반에 룰과 투명성이 많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서로 죽기살기로 ‘치킨게임’을 하게 되는 겁니다.”



김 옴부즈만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려면 서로 영역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무작정 시장원리를 무시하자는 것도, 무조건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은 대기업의 위상과 역할에 걸맞은 사업을 하라는 제언이다.



“모름지기 대기업이라면 기존 시장을 따먹을 게 아니라 더 큰 시장, 미래에 큰 파이가 될 성장산업에 역량을 투입해야 합니다. 두부나 치즈 따위를 팔아 돈 벌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중소기업의 몫을 손쉽게 빼앗지 말고 좀 더 이노베이션(혁신)할 수 있는 분야, 좀 더 모험적인 사업, 좀 더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시장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김 옴부즈만은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에 대한 한 가지 방안도 제시했다. 현재 대기업과 거래하는 1차 협력업체 중에는 대기업 덕에 큰 기업들도 제법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대기업이 협력업체들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진짜 상생은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연구개발(R&D) 지원을 통해 혁신을 유도하는 겁니다. 그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잘 되는 길이자, 강소기업을 키우는 길이기도 합니다.”

 

  Tip. 중소기업 옴부즈만 어떻게 일하나 

옴부즈만은 지방 중소기업청 및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유관기관의 지역조직 등을 통해 현장 중심의 규제개선 과제를 발굴한다. 이어 관련업계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해 개선 필요성이 높은 과제를 선정한 후 관계부처 협의 등을 통해 개선을 추진한다. 관계부처가 수용하지 않은 개선 과제 등은 규제개혁위원회에 보고, 해결한다. 옴부즈만은 규제개선 실적과 향후 계획 등 옴부즈만실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을 규제개혁위원회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2009년 7월 출범 이후 지난 4월까지 총 1888건에 달하는 중소기업 규제 및 애로사항을 발굴했으며, 이 가운데 1635건을 처리·해소하는 실적을 달성했다.

 

김문겸 옴부즈만 프로필 

1956 대전 출생 / 미국 뉴욕주립대 경영학 석사 / 미국 일리노이대 재무관리학 박사 / 1991~ 숭실대 경영대학 교수 / 2005~2006 한국중소기업학회 상임이사 / 2007~ 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 / 2009~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원장 / 2011~ 제2대 중소기업 옴부즈만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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