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데즈컴바인은 국내 패션업체들 중에서 급격한 성장세로 화제를 낳은 기업이다. 10년 전 1개 매장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지난해 2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다. 핵심 경쟁력은 자라, H&M, 유니클로 등 세계적인 패션업체들로부터 벤치마킹한 SPA 시스템이다. 코데즈컴바인은 최근 들어 SPA 브랜드들이 국내 젊은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형 SPA’의 선두주자로 조명받고 있다.

“자라·유니클로 · 망고 뺨치는



‘한국형 1호 SPA’로 성장해야죠”




 “소비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동할 때도 스마트폰으로 패션업체들의 제품을 꼼꼼히 비교하거든요. 글로벌 SPA 브랜드들은 이런 소비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신상품을 거의 매주 쏟아냅니다. 그래서 전 세계 소비자들이 이들에게 열광하고 있지요. SPA의 엄청난 속도에 대처하지 못하면 국내 패션업계는 당분간 고전을 면하기 어려워요.” 



박상돈(55) 코데즈컴바인 회장은 국내 패션업계의 동향을 이해할 키워드로 SPA를 꼽았다. SPA는 신상품의 출시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인 저가형 의류를 말한다. 최근 2~3년 사이 글로벌 SPA 브랜드들이 급속도로 영향력을 키우면서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명동, 강남 등 특급 상권은 대부분 자라, H&M, 유니클로, 망고, 포에버21, 갭 등 세계적인 SPA들이 장악했다.



‘한국형 SPA’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이랜드·LG패션 등 굴지의 패션업체들이 자체 SPA 브랜드를 론칭하며 글로벌 업체들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국내 패션업계에 전운이 감도는 상황이지만 박 회장은 다소 느긋한 표정이다. “전반적으로 국내 SPA 업계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입니다. 반대로 코데즈컴바인은 세계적인 패션업체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이미 2000년대 초부터 SPA 브랜드로의 변신을 시도했죠. ‘한국형 SPA 1호’로서 글로벌 업체들과 함께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자라’ 벤치마킹한 뒤 SPA 뛰어들어 

박 회장이 SPA의 위력을 실감한 것은 2000년이다. 출장지였던 스페인에서 쇼핑객들로 북적이는 대형 매장 한 곳이 눈에 띄었다. 세계 최대 SPA 자라의 매장이었다. 박 회장은 10대 때부터 패션업에 종사해온 관록의 경영인이다. 판매대의 옷들을 본 순간 단번에 ‘필’이 왔다. 세련되면서도 저렴한 자라의 옷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는 그때부터 자라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자라는 SPA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패션업체다. 우선 신상품이 1~2주마다 입고될 정도로 매우 신속하게 공급된다. 일반적인 패션업체들이 계절별로 신상품을 공급하는 것에 비해 월등히 빠른 속도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일반 패션업체들의 절반 이하다. SPA가 ‘패스트패션’이라도 불리는 이유다. 주문하면 곧바로 음식이 나오는 값싼 패스트푸드에 빗댄 말이다. 



자라를 비롯한 SPA 브랜드의 기민한 움직임은 무엇보다 혁신적인 공급망 덕분이다. 기획에서 제조, 도·소매에 이르는 모든 업무를 한 회사가 처리한다. 다양한 품목을 소량으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급변하는 트렌드와 소비자들의 복잡한 취향을 적시에 반영한다. 반대로 일반 패션업체들의 경우 생산과 유통을 다른 업체들에게 위탁하기 때문에 소품종 대량생산에 치중한다. 속도에서 SPA 브랜드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SPA는 대형 패션업체들에게 적합한 방식이다. 박 회장은 처음부터 무리하게 글로벌 SPA의 공급망을 도입하진 않았다. 우선 제품에 대한 디자인 프로세스를 본받았다. 자라의 경우 철저한 전문화가 특징이다. 예를 들어 500명의 자라 디자이너들의 역할은 세분화되어 있다. 같은 남성복 디자이너라도 각각 셔츠, 바지, 타이, 구두를 따로 전담한다. 셔츠 디자이너들끼리도 밀리터리, 빈티지, 시티룩 등 서로 다른 스타일을 연출한다. 간부급 디자이너들이 하급 디자이너들의 작업에 관여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이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북돋아주기 위해서다. 그 결과 같은 품목이라도 하루 수백 종씩 서로 다른 디자인 시안이 도출된다.



박 대표는 2002년 코데즈컴바인을 설립하면서 과감하게 자라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2~3주마다 신상품이 생산될 수 있을 만큼 많은 디자인이 확보됐다. 그러나 회사 내부의 반발도 심했다. “국내에선 간부급 디자이너들이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행사합니다. 블라우스든 스커트든 품목마다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려고 하죠.



그래서 하급 디자이너들의 자유로운 발상이 쉽게 무시당합니다. 이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내려면 간부급 디자이너들의 권한을 상당 부분 거둬들여야 했습니다. 이들을 설득하느라 회사에 조용할 날이 없었죠.”



현재까지 박 회장의 ‘한국형 SPA’ 실험은 일단 성공적이다. 설립 첫해 1개에 불과했던 매장은 지난해 270개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50억원에서 1942억원으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설립 초기 20대 초·중반 여성들이 타깃이었지만 고객층도 다양해졌다. 이들 사이에서 마니아층이 형성되자 여성복의 유행을 주도하는 강남권의 20·30대 직장인과 주부들이 가세했다. 주종인 레이어드(겹쳐입기) 품목이 뱃살·허릿살 등 민감한 신체부위를 커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는 남성복을 필두로 이너웨어, 유니섹스, 아웃도어, 아동복 등 8개 부문으로 취급 품목을 넓혔다. 



“자라는 루이뷔통·샤넬 등 명품의 카피제품을 판매하는 조그만 매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전 패션 부문을 통틀어 세계 최대의 의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죠. 코데즈컴바인의 뿌리도 동대문 의류상가의 작은 피복공장입니다. 그러나 자라처럼 얼마든지 세계적인 명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죠. 해외에서 글로벌 SPA들과 당당히 경쟁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동대문에서 재단사로 첫 출발

박 회장은 국내 패션업계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1970년 13세 때 혈혈단신으로 상경해 동대문 평화시장의 한 봉제공장에 심부름꾼으로 취직했다. 올해로 41년째를 맞는 ‘패션 인생’의 출발점이다. “동대문에서 재단사가 되는 것이 어린 시절 꿈이었습니다. ‘내 옷은 내가 지어 입는다’는 소박한 의도였죠. 공부하는 것을 유달리 싫어했지만 누구보다 외모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박 회장은 꼬박꼬박 모아둔 월급으로 과외비를 지급하면서까지 재단을 배울 정도로 열성이었다. 한편 그는 동대문에서 소문난 패셔니스타였다. 18세 때 재단사가 되자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모조리 직접 만들어 입었다. 1970년대에 이미 90년대부터 등장한 찢어진 청바지와 빈티지룩으로 청계천을 활보할 만큼 실험적인 면모도 돋보였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76년, 선배 재단사와 청바지 공장을 차리면서부터다. 이후 ‘히트 제조기’라는 별명처럼 유겐트, 옹골진, 마루, 노튼 등 지금까지 론칭한 20여개의 브랜드들이 대부분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 시장 진출, 현지화가 ‘관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성장한 이력 탓에 박 대표는 패션업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업무에 정통하다. 휴일에도 수도권 일대의 대형 매장을 돌며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필 만큼 여전히 부지런하다. ‘모시기 힘든 상사’ 중에서도 으뜸이다. “매장이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면 직원들과 대화를 못 나눠요. 동대문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입니다. 업무에도 깊숙이 관여하죠. 간부들이 저를 ‘시어머니’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 시어머니가 바라보는 코데즈컴바인의 약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제품의 가격이 글로벌 SPA들에 비해 다소 비싸다는 점이다. 이들처럼 자체 공장을 운영해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단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중간 유통상을 두고 공장과 계약하는 구조이지만 올해 중 공장들과 직거래를 시도할 계획이다. 물류비용을 줄여 가격을 15~35%까지 다운시키기 위해서다. 



해외 시장의 경우 박 회장이 가장 관심을 두는 지역은 중국이다. 세계적으로 패션업체들의 선점 경쟁이 가장 치열한 지역이다. 이랜드, 베이직하우스 등 국내 업체들의 진출이 활발하지만 성공 사례는 손꼽을 만큼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코데즈컴바인도 2007년부터 상하이, 하얼빈 등 대도시 위주로 28개의 매장을 개설했다. 그러나 지난해의 경우 20억원의 적자가 발생할 만큼 사정은 녹록지 않다.    



전반적으로 현지화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비자들이 대체로 백화점을 선호하지만 코데즈컴바인은 1000~1300㎡(300~400평) 대형 로드숍 위주로 매장을 개설했다. 국내에서 성공한 전략을 별다른 수정 없이 중국에 적용한 것이다.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내수용 제품을 그대로 중국에 가져간 것도 패인이다.



“중국 시장의 경우 적극적으로 투자할 계획이지만 신중하려고요. 우선 올해 백화점 위주로 현재의 두 배 이상 매장 수를 늘리고 제품도 현지화할 계획입니다. 현지 디자이너들을 고용해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색상과 디자인을 반영할 겁니다. 국내에선 동대문 일대의 의류업체들과 함께 두 개 이상 새로운 SPA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가시장 이미지이지만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죠. 이들에게 자금을 쥐어주면 얼마든지 막강한 시너지가 발휘될 겁니다.” 



- 코데즈컴바인의 서울시 홍익대 인근 매장 모습.

 

박상돈 회장은 … 

1957년 출생 / 1996년~현재 유겐트어패럴 대표 / 1999년~현재 다른미래 대표 / 2000년 섬유진흥 대상 / 2002년 동대문세무서 납세표창 / 2009년 제23회 섬유의 날 모범경영인 산업포장 / 2002~현재 코데즈컴바인 대표.

조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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