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대장을 응원하는 IT업계의 차세대 리더들이 엄 대장을 지리산 산행에 초대했다. 중산리~천왕봉~백무동을 잇는 만만찮은 당일 산행에 흔쾌히 동행했다. 주도적으로 자리를 마련한 이는 LG유플러스 노세용(52) 전무다. 그는 스물두 살 때부터 지금까지 30년을 산을 탄 등산마니아이자 엄 대장의 팬이다. (주)라온엠씨 김영수(45) 대표 역시 엄 대장과의 산행을 학수고대했다. 그는 중앙고교 산악부 출신으로 꾸준히 해온 등산 외에 마라톤(풀코스 6번 완주)과 자전거를 즐기는 활동적인 CEO다.

젊은 등산 초보 CEO지만 엄 대장과 산행한다는 얘기에 과감히 지리산에 도전장을 낸 이도 있다. (주)플립커뮤니케이션즈 이병하(40) 대표와 그레이삭스 이승이(39) 대표다. 이병하 사장은 자신의 산행 최고 고도인 관악산(630m) 기록을 깨고, 남한 내륙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오르기 위해 왔다. 관악산과 청계산을 오를 때도 “죽는 줄 알았다”고 하는 그이기에 이번 산행이 긴장되지만 ‘언제 엄홍길 대장과 지리산을 올라보겠나’싶어 참여했다. 이승이 대표는 평소 등산과 담을 쌓고 살았지만 이번 산행을 위해 등산화를 새로 샀다. 그는 20대 초에 친구들과 무작정 지리산 종주에 나선 적이 있었는데 날씨가 나빠 천왕봉은 오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20여 년 만의 천왕봉 재도전이다.



이들을 지원하고 산행에 함께하고자 나선 이들도 여럿이다. <월간 산> 안중국 편집장, 이창희 조선매거진 디지털미디어 본부장, 정용권 밀레 홍보이사, 성애경 엄홍길휴먼재단 사진작가, LG유플러스 이갑수 부장, 전영태 차장, 송철 과장, 이정우 팀장, 김민철 플립커뮤니케이션 이사, 정상택 서울시연맹 산악구조대원, 정희준 국립공원 지리산사무소 직원 등이다.



중산리~천왕봉~백무동 산행의 경우 장터목대피소에서 자고 일출산행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많은 인원의 대피소 예약이 어려워 당일 산행으로 간다. 중산리탐방지원 센터 부근에서 민박하고 입산한다. 일기예보와 달리 화창한 하늘, 사람들의 걸음걸이에서 신바람이 묻어난다.



- 천왕봉 정상에 선 엄홍길 대장(왼쪽)과 IT업계 차세대 리더들. 오른쪽부터 김영수 라온엠씨 대표, 이승이 그레이삭스 대표, 이병하 플립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노세용 LG유플러스 전무.

LG텔레콤 산악회가 해체된 것은 노 전무 때문?

엄홍길 대장은 지난해 TV 오락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출연진과 천왕봉에 오른 이후 처음이다. 안나푸르나 원정에서 발목이 부러진 후 장거리 산행 시 통증이 있어 지리산처럼 큰 산 산행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노세용 전무와 IT CEO들의 요청에 특별히 응했다. 컨디션을 묻자, “산에 들 수 있는 것 자체가 즐거운 거 아니겠냐”며 주위 사람들의 염려를 깔끔하게 씻어준다.



노세용 전무와 엄 대장, 김영수 사장이 산행 중간 중간 얘기를 나누고 초보자인 이병하 ∙ 이승이 대표는 살짝 긴장된 얼굴로 걸음에 집중한다. 여유 만만한 얼굴로 다른 대표들에게 산에 대한 설명도 하며 오르는 노세용 전무는 LG그룹 내에서 산행마니아로 유명하다. 한때 LG에서 함께 근무한 김영수 대표는 “LG텔레콤 산악회가 전무님 산행 스타일 때문에 해체됐다”고 할 정도다. 그는 밤 버스를 타고 지리산에 내려가 새벽 3시 반쯤 성삼재를 출발, 종주해 오후 5시 전에 중산리로 내려올 정도로 발이 빠르다. 그의 이런 달리기 산행 스타일로 인해 산악회에 나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 결국 해체되었다.



로터리대피소가 가까워 오자 천왕봉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이들이 늘어난다. 공통된 반응은 “아이고! 엄 대장님 아니십니까! 지리산에서 이런 행운을 얻네요!”하는 식의 반가움에 대한 즉각적인 표현이다. 악수하고 포옹하고 사진 찍고 얘기 나누느라 의도치 않게 지체되면서 산행은 여유롭다. 그러나 중산리는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단거리 코스인 만큼 가파르고 바위가 많아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는 곳이 부지기수다. 제일 먼저 반응이 온 사람은 플립커뮤니케이션즈의 이병하 대표다. 평소 “체력이 안 좋아 아차산 같은 낮은 산을 즐긴다”는 그는 스틱까지 준비해 왔으나, 땀이 비 오듯 하고 숨은 넘어갈 듯하고 걸음은 계속 뒤로 처진다. 주변에선 정 힘들면 로터리대피소에서 하산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150명의 직원을 둔 사장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로터리대피소를 지나고도 포기할 기색 없이 악착같이 오른다. 오히려 걸음이 점점 가벼워지고 호흡이 편안해지면서 선두와의 거리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죽을 것 같았는데 몸이 풀렸는지 참고 오르다 보니 걷기 수월해졌다”고 한다. 제품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직장생활 1년 후 바로 디자인회사를 창업했다. 1990년대 후반 닥친 경제위기로 “자연스레 디자인회사가 디지털 쪽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의 회사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대기업의 모바일 웹사이트 제작, 기업 온라인 마케팅 등 IT 관련 총체적인 아웃소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IT업계에서는 드물게 13년간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여 연매출 규모가 100억~150억원에 이른다. 모바일 사업은 인력이 부족할 정도로 일이 많지만 그는 “수익 대부분을 회사의 성장에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수익이냐 성장이냐의 기로에서 그는 늘 성장을 택해왔고 “직원들과 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걸 보는 것이 만족스럽다”고 한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제일 뒤에 처진 이는 라온엠씨 김영수 사장이다. 등산과 마라톤, 자전거로 다져진 그이지만 “어제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안 좋아 허벅지 근육이 뭉쳤다”고 한다. 산행 베테랑이니 만큼 뒤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근육을 달래가며 천천히 걷는다.



- 엄홍길 대장의 사인을 받고 즐거워하는 김영수 대표(왼쪽)와 이승이(오른쪽) 대표.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진 길의 전망바위에서 엄홍길 대장이 지리산의 산세를 설명한다(왼쪽).

630m 관악산이 최고기록이었던 이병하 사장, 천왕봉 등정

LG애드, LG텔레콤 등 LG에서 15년간 근무한 그는 2006년 독립 회사를 세웠고 현재 라온엠씨 대표다. 라온엠씨는 엠토스트를 개발, 제18회 대한민국멀티미디어기술대상에서 방송통신위원장상을 받았다. 엠토스트란 문자 편집기인데 사진이나 그림, 내용, 스티커 등을 자기 마음대로 편집해서 보낼 수 있는 서비스다. 모바일 계통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신생 기업이다. 근육 통증으로 힘든 와중에도 파스를 붙이고 스틱을 최대한 활용해 포기하지 않고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지리산 꼭대기에 처음 오른 이병하 ∙ 이승이 사장의 얼굴엔 해냈다는 성취감과 멋진 풍경에 대한 놀라움이 흥건하다. 반면 20일 만에 천왕봉에 섰다는 노세용 전무는 함께 정상에 오른 직원들의 감격스러운 반응에 즐거워한다. 엄홍길 대장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어서 밀려드는 등산객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하느라 정상의 감흥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IT 차세대 리더들의 소감을 들었다. 가장 젊은 이승이 사장은 “엄 대장님과 오게 되어서 기쁘고 뿌듯하다”며 “알프스 융프라우 2600m까지 걸어서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어려웠다”고 한다. 이병하 대표는 “황홀하다”며 “힘들었는데 재미있었다”고 한다. 김영수 대표는 “늘 일출 보러 컴컴할 때 오르다가 낮에 올라오니 이상하다”고 한다. 노 전무는 “평소보다 느리게 왔지만 엄 대장과 함께 올라 좋은 기운을 듬뿍 받아간다”며 미소 짓는다.    



점심을 먹고 백무동으로 하산한다. 장터목에서 일행 몇 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한참 기다린다. 김영수 사장이 허벅지 통증으로 걷기 어려워 일행의 도움으로 겨우 내려온다. 대피소에서 약을 바르고 마사지를 받고 배낭을 들어주는 등 일행의 도움으로 기력을 차린 그는 진통제를 먹고 후다닥 뛰어 산을 내려간다. 엄 대장 역시 사람들의 촬영 요구가 계속 이어지면 제시간에 백무동에 도착하기 어렵다고 판단,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만 나누고 빠르게 내려간다.



가장 많은 식구를 끌고 온 노세용 전무는 인원을 점검하고 체력이 떨어진 사원들을 챙기느라 바쁘다. 그는 LG유플러스 컨버전스 사업단 단장이다. 110명의 단원들을 이끌고 있으며 유플러스 다섯 개 사업단 중 유일한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의 직속 사업단이다. 이상철 부회장은 “탈 통신하여 통신 외의 분야에서도 수익을 내자”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컨버전스 사업단은 이러한 기치의 최전방에 서 있다. 직원들이 얘기하는 그는 “도전적이고 아이디어가 많고 공격형”이다. 그의 산행 스타일과 닮아 있다. 반드시 정상에 올라야 하는 성미이며 워낙 오랫동안 산에서 달린 탓에 무릎 관절이 안 좋지만 진통제와 보호대를 해가며 오르고야마는 스타일이다.



- 중산리 산입구에서 코스를 설명하는 엄홍길 대장(위). LG유플러스 노세용 전무와 IT업계 사장들은 산꾼들에게도 만만찮은 힘든 당일 산행을 포기하지 않고 마무리했다.

그는 “워낙 오랫동안 무박으로 달리는 게 습관이 됐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회사에 여름휴가와 추석이 연휴의 전부였는데 그때도 늘 지리산과 설악산을 밤에 내려와 당일로 산행하고 다시 상경했다. 이후 무박산행이 습관이 되어 지금은 불수도북을 18시간에 주파하는 준족이 됐다. 5년 전까지는 매주 장거리 산행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뛰어다니면 풍경을 보기 어려울 것 같지만 “계절이 변하는 걸 보는 즐거움이 크다”고 한다. 지금은 무릎이 나빠져서 매주 장거리 종주를 하진 않는다.



그에게는 중학교 때부터 담배 피우고 말썽 피운 아들이 있는데 그는 호통치는 대신 말썽을 부리면 그저 “산에 가자”고 한다. 그냥 산이 아니고 불수도북이나 지리산 종주,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를 무박에 당일로 같이 하는 것이다. 힘들게 아이를 데리고 산행을 마치면 스스로 잘못을 알고 고친다고 한다.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산에 간다고 하면 오히려 아빠에게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세요”하고 응원한단다.  



중산리길보다는 완만하지만 더 먼 백무동 하산길, 바닥난 체력과 아픈 다리를 이끌고 산을 내려서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병하 ∙ 이승이 대표가 처지기 시작한다. 이승이 대표는 미국 코넬 대학 출신으로 학창시절 꾸준히 축구와 테니스, 농구를 해와 체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천왕봉을 오를 때까지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백무동을 내려가면서 다리가 풀어지고 쥐가 나는 등 고생한다.



포기하지 않는 건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의 강단 같은 것이다. 그의 회사 그레이삭스는 직원 수는 적지만 ‘드럼 마에스터’와 바이올린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 미국과 일본 시장에 상위에 올랐다. 한국 시장보다 훨씬 큰 미국 시장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면 매일 수만 달러의 수익이 난다고 한다.



엄 대장과 노세용 전무, 김영수 대표가 하산을 끝내고 이승이 대표와 이병하 대표를 기다린다. 절뚝거리며 12.5km의 남한 내륙 최고봉 산행을 끝낸 이들에게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IT업계 차세대 리더들과 엄홍길 대장이 굵고 짧은 지리산 산행을 하고 내려간다. 어리석은 자가 들면 현명해지는 산의 가르침을 안고 내려간다.



(이 기사는 이코노미플러스와 월간 산 7월호에 함께 게재됐습니다)

신준범 <월간 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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